서지월 시인의 만주이야기

"이렇게 귀한 것이 왜 여기에…" 뒷간에서 기념품 챙긴 웃지못할 사연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북극촌 가는 길

▲ 중국 최북단인 만주땅 북극촌 흑룡강 최상류의 풍경. 맞은편으로 바라보이는 곳은 러시아 땅이다.
막하시에서 북극촌까지는 두 시간 가량 걸리는데 막다른 길 같이 서북으로 뻗어 있었으며 9월 초순인데도 벌써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정경이었다.

코스모스가 피어 있고 사루비아가 지고 있는 모습을 보니 한국의 가을 정취와 다름없었다. 곧 저버릴 막다른 저녁 햇살을 받으며 산능선이 이번에는 오른켠에서 함께 가자는 듯 달려오고 있었는데, 바로 그 대흥안령산맥이었다. 막하까지 열차 타고 그 대흥안령산맥이 우리가 막하역에 내려 잠시 공백의 시간을 가지는 동안 어딜 갔다 왔나 싶었는데, 그는 말없이 어느새 오른켠에서 심심할 테니 같이 가 주겠다는 듯 동행해 주었다. 중국 동북쪽에 드러누운 대흥안령(大興安嶺)산맥은 흑룡강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마주하며 수탉모양의 중국지도에서 대흥안령은 마침 닭볏 위치에 있어서 금관 위의 보석으로 불리기도 한다.

내 제자 백민시인은 다시 기행노트에서 ‘북극촌 가는 길은 그 자체가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적고 있었다. 이따금씩 산간에서 나와 이 비포장도로 위에 먼지를 날리며 달려오는 나무 가득 실은 트럭이 지나가는가 하면 마차에 통나무나 짚더미를 싣고 돌아오는 풍경도 눈에 띄었다. 저녁 해는 노을을 깔면서 총천연색의 자신의 몸을 던져 마지막 장면을 연출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한 시간정도 달렸을까. 새로운 진풍경들이 연출되었다. 이제까지 보아왔던 오른켠의 대흥안령산맥은 자취를 감추고 좌우가 산과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솔숲길을 가고 있었다. 봇나무들이 흰 몸뚱아리 드러내며 군락을 이루고 있던 풍경들이 인상적이었듯이 이곳에서는 적송군락이 진풍경이었다. 금강산 오를 때 눈에 띄게 즐비하게 군락을 지어보이던 날씬한 몸매의 적송풍경을 눈 여겨 본 적이 있는데 그와 같았다.

'날씬한 몸매의 적송들이/ 군락을 지어 보이며/ 어찌 보면 미인대회라도 열 듯/ 약간씩은 몸을/약간 옆으로 돌린 듯한/ 인상 주는 것도 있었으며/ 산기슭에서부터 산마루까지 줄지어서/ 머리 위에는 싱싱한 푸른 솔 이고/ 아, 이것 참! /기막힌 풍경이라 해야 하나?'

이런 싯구도 한번쯤 나올 만했다. 추운 지방이라 그런지 가지가 옆으로 뻗지 못하고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처럼 하늘 쪽으로 치솟아 있었다.

◇ 헌책 종이로 밑닦기 하는 사람들

▲ 화려하게 채색한 북극촌마을의 휴양소.
북극촌마을에 들어섰을 때는 벌써 어둠이 내려 깜깜했다. 우리 일행을 태운 운전기사가 안내해 준 대로 승합차를 몰아 간 곳이 바로 흑룡강이 눈앞에 보이는 ‘망강루주가’(望江樓酒家)였다.

간판을 보면 꼭 주점 같지 않은가. 그렇다. 중국은 호텔이나 여관 같은 숙소의 표기가 ‘대주점(大酒店)’ 또는 ‘주가(酒家)’ 이렇게 되어 있는데 숙박업소인 것이다.

우리 일행이 낯선 중국땅 최북단 북극촌에 와서 하룻밤 머물 숙소다. 밤이라서 뭐가 뭔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밤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자가발전으로 전기가 공급되며 제대로 공급이 잘 되지 않는다 한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나서 바깥으로 나가 보았다. 마당 귀퉁이에 판자로 막아놓은 헛간 같은 곳이 있었는데 다가가 보니 변소였다. 지난날 우리 한국의 전통 정낭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종이도 신문지도 아닌 못 쓰는 헌책을 가지고 종이대신 밑닦기를 하는 것이었다. 거기서 나는 중국 소학교 교과서를 발견했는데 귀한 것이라 기념으로 챙겨 들고 나왔다. 맞은편 집들을 보니 이곳이 관광 휴양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무로 만든 울타리와 집들이었는데 군데군데 색색의 페인트로 칠한 꼭 유치원을 연상케 하는 숙소들 모습이었다.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흑룡강으로 나갔다. 강변에는 '신주북극(神州北極)이라는 비가 세워져 있었는데 중국의 가장 북쪽임을 알리는 국경경계선 표시였다. 그 아래는 집체만한 땟목 가득 실은 배가 꼼짝 않고 떠 있었다. 그 뗏목배를 타고 흑룡강 하류로 가려고 물어보니 통나무를 다 실어야 하니 며칠이 지나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 위쪽에서는 언제 나타났는지 아주머니 한 사람이 강물에 들어가 다슬기를 줍고 있었다. 이 또한 강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네 삶과 다름 아닌 풍경이었다. 나도 강물에 손을 적셔 보았는데 그래서 쓴 시가 있다.


'내 손이 강물과 만나 / 더욱 부드러워지고 / 강물이 내 손 잡아주어 / 따스한 피 도는 것을 / 서로는 알고 있었을까?' ‘강과 손’이라는 시이다.

◇ 최북단의 집에서 기념사진 찍는데 3위안

▲ 중국 최북단인 만주땅 북극촌 흑룡강 최상류 강가를 거니는 서지월 시인. 맞은편 바라보이는 곳이 러시아 땅.
강 너머는 러시아 땅은 바위로 둘러쳐진 깎아지는 절벽뿐이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저 뗏목을 실은 배가 떠 있는 조금 아래 강가로 나가보았다. 거기에는 관망대도 세워 놓고 관광객을 맞고 있었다. 그곳 강가로 나가 보니 강 건너 강둑에 모여있는 러시아땅 집들이 또다른 이국적 풍경을 더해주었다.

이 강의 수많은 돌들은 수천년을 입 다물고 살아왔고 또 입다물고 살아가는 것이고 보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물새들이 저 위쪽 절벽에서 이쪽으로 비껴 날아가는 모습 또한 그 시늉을 어떻게 읽을 수 있으리요. 그들만의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인 것을, 그들의 세계 밖에서 내가 바라보고 있을 뿐이니. 하늘은 낮게 내려와 잘 왔다는 듯 반겨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안타까움이 나를 편하게 하진 못했다. 나는 돌을 줍기 시작했다. 몇 개의 돌이라도 주워 내 시름의 머리맡에 두고두고 이 강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갈 요량이었다. 손끝에 닿지 않는 저 러시아땅을 눈앞에 둔 채. 오래 흑룡강을 기억하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누가 거대한 검은 용에 비유해 꿈틀거리며 흘러가는 이 강을 흑룡강이라 이름지었는지 난데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승천한 흑룡이 잘 왔다고 반기며 내려주는 빗줄기라 생각했다.

내리는 비속을 뚫고 우리 일행은 이곳 북극촌마을 맨윗쪽까지 향했다. 거기서 발견한 것이 바로 중국땅 최북단이며 러시아 땅과 경계에 위치한 집이 한 채 기념비처럼 있었는데 기념사진을 찍는데 3위안을 지불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이 빗속에서 차를 몰아 갔더니 그 소리 듣고 집주인이 문열고 나와 내다보았다. 이런 것도 돈 받는게 우습고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빗속에서 내려 3위안까지 주고 기념사진 촬영하기엔 뭣해 차 속에서 바라보며 살짝 카메라 셔터 누르는 것으로 차를 돌려버렸다. 중국 국가에서 지정했다는 그 집 앞에서 ‘중국 최북단의 집’이라는 푯말 또한 인상적이었다. 국경에 인접한 최북단에 집 하나 있다고 해서 그것도 관광명소처럼 인식해 돈을 받는다? 재미있지 않는가.

그새 내리던 비는 그치고 비가 그친 길에는 코스모스가 만개해 있었으며, 마을의 중심부로 보이는 큰길 네거리 옆 정자가 하나 우뚝 세워져 있었는데 채색이 화려한 그 정자를 중심으로 장이 펼쳐져 있는 진풍경이 또 눈에 들어왔다. 고기를 내다 파는 사람, 액세서리 옷가지를 파는 사람, 채소를 수확해 파는 사람 등 볼거리들이 모두 고급이 아니라 소박한 것들이었다.

흑룡강 상류인 흑룡강성 막하현의 북쪽 끝인 북극촌은 중국대륙 전국토의 최북단으로 신강성 북쪽 끝자락인 우의산보다 위도 상으로 훨씬 더 북쪽에 위치해 있다. 북위 53.5도인 고위도 지대에 있어 매년 6월 21일 하지(夏至)때가 되면 밤이 2시간밖에 되지않는 '백야(白夜)현상'과 '북극광(北极光)현상' 두 기이한 자연경치로 유명하다. 매년 하절기가 오면 북극촌에는 낮이 점점 길어지고 밤이 짧아지는데, 특히 하지를 전후해 낮이 19시간 동안 지속되는데 이때 대낮같이 환한 밤에 화려한 색채와 변화무쌍함을 자랑하는 북극광 현상이 이곳 북극촌의 상공 북측에서 자주 찬란하고 다채롭게 펼쳐진다. 북극광은 오로라현상을를 말하는데 여러 색깔의 광선들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이동하는 자연 현상으로 일반적으로 북극과 가까운 지역에서 자주 보이며 태양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으로 밤에 가장 잘 보인다고 한다.

▲ 러시아 땅과 경계에 위치한 중국 최북단의 집. 북위 53.5도로 백야와 북극광으로 유명하다.
막하 북극촌은 ‘불야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중국에서 가장 북쪽(中國最北点)에 위치하여 있는 작은 마을로 100년전만해도 북방의 유목민들이 사냥을 하면서 살던 황막한 곳이였는데 1860년 이곳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이 모이게 되였으며 중국력사상 기상기록으로 가장 추운곳으로 알려져 있다. 흑룡강성의 대흥안령산맥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여 있는데 흑룡강을 사이두고 러시아와 마주 보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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