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박사의 '퓨전 로드맵'

나이를 먹으면서 늘어나는 것 중의 하나가 건배 선창이다. 그런 자리에서 내가 쓰는 몇가지 구호 중의 하나가 ‘진달래’다. 원래는 ‘진정으로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라는 뜻으로 쓰던 것이 요즘에 와서는 하는 일이 그래서인지 ‘진정으로 달콤한 한반도의 내일을 위하여’ 라는 기원을 담아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렇게 선창을 한 뒤 기분좋게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조용히 암송하곤 한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그렇다. 영변은 원래 천재시인 김소월이 읊었듯이 나보다 남을 더 배려할 줄 아는 희생과 헌신을 통해 더욱 강인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살았던 땅이다. 한마디로 우리 고유의 민족정서를 상징하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그 영변은 핵폭탄이라는 무서운 파괴의 불씨를 품은 땅으로 변했다. 그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북한의 암담한 현실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 하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연변과기대에 이어 북한 평양 땅에 과학기술대학을 세우는 일을 지원하기 위해 북한을 오가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 2006년 10월 9일, 오전 11시,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북한 중앙통신사의 뉴스보도를 듣게 됐다. 그 직후 평양에 갔다가 한 고위직 인사를 만나게 됐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다짜고짜 그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핵 카드를 사용하려고 그럽니까? ”
“터질 때 까지 가봐야 될 것 아니요?”
“그럼 혹시 김동지는 최근 남측에서 비밀리에 플라토늄이나 농축우라늄보다 더 위력이 센 핵폭탄을 개발했다는 소식, 못 들으셨습니까?”

그 말에 그 양반이 그만 어찌나 크게 놀라며 눈을 부릅뜨고 되묻는지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니, 그런 것이 있소? 그게 정말이요? 그게 뭔데요?”
“그건 사랑의 핵폭탄이라고 하는 겁니다.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물질보다 힘이 셉니다. 사랑은 융통하고 화합하는 힘이 있지요. 그걸 우리는 흔히 ‘Fusion Power’라고 표현하는데, 이 사랑의 핵폭탄이 한번 터지면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되살아날 수 있지요. 생명을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 사랑의 힘에 의해서 다시 새롭게 거듭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 사랑의 힘에 의해서 진보되어 왔으며, 이 시대 정의의 키워드는 바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 사랑의 핵폭탄을 만들려면 특별한 제조기술이 필요합니다. 그걸 제가 알려드리지요. 이걸 흔히 3C전략이라고 합니다.”

황당해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난 못 본채하고 소통, 육성 그리고 창조(Communication, Cultivation, Creation)의 뜻을 갖고 있는 3C전략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먼저, 소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며 대화해보면 웬만큼 그를 이해하게 되지요. 그런 다음엔 상대방을 배려하며 조용히 돕는 겁니다. 사람을 격려하고 칭찬하고 지원하는 것, 그게 바로 육성입니다. 그 다음엔 마지막으로 상대를 창조적인 능력을 갖추도록 이끌어주는 겁니다. 흔히 말하는 생산성과 리더십은 바로 이 창조적인 능력에서 나오는 거지요. 이 힘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랑의 나눔’이 됩니다. 이 ‘사랑의 나눔’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비결이 되지요. 이게 바로 남한에서 개발한 사랑의 핵폭탄입니다. 어때요? 이게 북측의 핵폭탄보다 더 강력하다는 생각 안드십니까?”

나의 엉뚱한 말에 그는 다소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의외로 상당히 공감하는 눈치를 보였다. 그날은 유난히 바람이 불고 비가 흩뿌리던 날이었는데,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의 말을 경청하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제발, 그들이 눈 딱 감고 한번만 흔들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의 결실이란 것도 그런 것 아닌가. 누군가는 열심히 상대를 흔들고, 그 사람은 자기를 열심히 흔드는 사람의 진정을 느꼈다 싶은 순간, 슬쩍 눈 딱 감고 흔들려 주는 것, 그래야 사랑이 결실을 맺어 부부가 되고 자식을 낳고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닌가.

제발 그렇게 우리가 지치지 않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북한을 도울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우리의 진정을 느끼고 어느 순간 눈 딱감고 한번만 흔들려 준다면, 이 사랑의 핵폭탄을 통해 우리가 뜨겁게 만나 하나가 될 수만 있다면.......그 얼마나 좋겠는가. 아, 얼마나 그날이 기다려지는가.

사랑의 핵폭탄, 평양과기대를 낳다

2009년 5월 초, 나는 내 인생에 또 하나의 분기점 위에 서 있게 되리라. 140여년 전 영국 웨일즈에서 온 벽안의 젊은 선교사 로버트 토마스가 순교했던 바로 그 대동강변 낙랑구 33만평의 대지 위에 평양과기대가 역사적인 개교기념식을 갖게 될 것이다. 이로서 북한땅에 최첨단 교육시설을 갖춘 국제적인 규모의 ‘대학원대학’이 문을 열게 되는 것이다. 북한의 청년들이 이곳에서 국제적 수준의 학문을 접하고 기술을 익힘으로써 북녘 땅에 푸르른 희망의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 생각하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금 건축마무리 공사를 위해 온갖 힘을 솟는 가운데 마음속으로부터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며 지난 8년간 이 모든 일을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무엇보다 감사한것은 이 모든 시작이 한국이나 중국 등 외부에서 시도한 일이 아니라 북한 사회 스스로가 원해서 시작된 일이었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가 사랑으로 전하는 진정성에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 사랑의 핵폭탄과도 같은 이 E -바이러스는 당장은 그 효과가 눈에 띄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플루토늄으로 만든 핵폭탄보다도 더 큰 위력으로 사람들을 감화 시킬 것이다. 북한 사회의 변화는 당장 눈에 보이는 긴급구호물자들 때문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우리들의 동족애와 세계 곳곳에서 답지하는 휴머니즘에 기인한 것이다. 그 여파로 우리들이 평소에 갖고 있던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지금 북한에선 벌어지고 있다. 평양과기대 사업이 바로 이와 같은 사랑과 섬김의 위력에 이끌려 북한이 스스로 문을 열고 손을 내민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묻혀진 비사이지만 원래 평양과기대는 함경북도 나진·선봉에 들어설 뻔 했다. 1993년 연변과기대가 개교하여 길림성 지역의 조선족 사회에 큰 희망이 되는 광경을 지켜본 북한 김일성 주석이 암암리에 김진경 총장을 평양으로 불렀다. 그 자리에서 김일성 주석은 북한에도 연변과기대와 같은 대학을 세워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김진경 총장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연변지역과 근거리에 있는 함경북도 나진·선봉지역이면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김일성 주석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나선과학기술대학」이라는 이름으로 학교 설립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듬해 8월, 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나선과기대 구상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 후 2001년 1월 중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 상하이를 돌아본 뒤 국가경영전략의 기조를 대폭 수정했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정보기술산업의 발전상을 보고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신사고정책이라 일컬어지는 새로운 경제개선조치를 취했는데 이는 낙후된 경제의 재건을 위해 경공업과 제조산업을 우선으로 하는 전통적인 산업단계를 뛰어넘어 곧 바로 첨단산업으로 직행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첨단 기술분야의 인재 육성이 가장 시급한 일인 줄 잘 알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번에는 평양에 과학기술대학을 세워달라고 요청해 온 것이다.

북한 정부가 스스로 평양과기대 설립을 요청·허가함으로써 남북한 교류에 파격적인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다. 더구나 대학의 교수 인사권과 운영권을 위임하고, 그리고 국제 사회에서 누구나 안심할 수 있도록 북한 내각의 결의 하에 100만 평방미터의 대지를 50년간 사용하도록 권리 등기까지 해 준 사실은 북측 정부의 결의와 의지가 얼마나 컷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것은 단순한 대학 건물을 지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폐쇄사회안에 고립되어 있는 북한 젊은이들로 하여금 국제수준의 지식을 전수함으로써 국가경제발전과 신기술사회를 이끌어갈 산업첨병으로 키워달라는 절박한 요청이 담긴 것이다.

그에 따라 2001년 5월 2일 북한 교육성과 한국의 민간육영단체인 동북아교육문화재단(이사장 곽선희 목사)은 ‘평양과학기술대학’ 설립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 남북한 양측이 합의한 ‘건립기본계약서’에 의하면, 북한 교육성에서는 대학 건설에 필요한 땅을 제공하고, 본 재단은 학교 건설과 학교운영에 필요한 설비와 교직원 구성 등을 맡기로 했다. 특히, 해외의 전문인력(교수, 과학자, 기술전문인)을 초빙하기로 하는 등 대학의 교수 인사권과 운영권 및 대학 건설을 위한 계약권도 본 재단과 설립총장에게 위임하였다. 대학운영은 개교일로부터 50년간 남북이 공동으로 하되 쌍방 합의에 따라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학의 규모는 부지가 1백만 평방미터(약 33만 평), 건평은 8만 평방미터(약 2만4천 평)이며 박사원(대학원)과 대학학부를 두기로 했다.
그 후 남북한 정부로부터 공히 승인을 받은 이 대학의 건축 및 캠퍼스 조성 설계는 영종도 인천 공항을 설계했던 ‘정림 건축’이 100% 기증 형태로 참여했으며, 또한 세계 여러 국가 출신의 우수인력들이 교수진으로 참여하기 위해 학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 그리고 학교 부지내에 ‘지식산업복합단지’를 만들어 교학활동뿐만 아니라 외국기업들과 산업단체들이 산학연계활동을 펴 학생들로 하여금 신기술을 습득케하고 생산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공장형 학사제도를 시행키로 했다. 이와같은 과업을 추진하기 위해선 많은 재정과 인력이 필요하며, 또한 한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협조와 지지가 필요한데, 이 부문에 있어서도 미국사회 각계에선 미국 시민권자인 김진경 총장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다방면에 걸쳐 모럴 서포터(moral support)를 제공해왔다. 한마디로 말해 평양과기대는 국제대학으로서의 기능과 명분을 고루 갖추고 있어, 제도적으로 남북간의 갈등구조를 뛰어넘을 수 있는 치외법권적 교육특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캠퍼스 조성 설계가 끝난 2003년부터 부지 정지에 착수함으로서 시작된 공사는 우여곡절 끝에 예정보다 훨씬 긴 6년 여의 시간이 걸린 뒤 지난 연말에 완공을 보게 되었다. 건설시공사인 중국 연변의 ‘항달건축유한공사’의 건축기술자 100여 명이 북한에 파견돼 공사를 지휘했으며, 북한 측은 800명 가까운 ‘청년돌격대’ 노동자들을 제공해 함께 공사에 참여했다. 제 1단계 공사로 학사동건물과 종합생활관, 연구소, 식당, 기숙사 다섯 개 동과 파워플랜트 등 16개 건물을 먼저 완성하여 개교한 뒤, 나중에 2단계로 본관건물과 연구시설 및 부대시설을 확장해 나가기로 계획되어 있다.

금년 5월부터 개강을 하게 될 주요학부는 정보통신학부, 경제경영학부, 농업식품학부 등이며 여기에 앞서 말한 지식산업복합단지가 추가된다. 우선적으로 약 500명의 학생들을 모집해 석박사 과정을 개설하게 되며, 이들을 중견간부요원과 기술경영인 등으로 길러내 북한 경제활성화에 필요한 핵심 인력으로 공급하게 된다. 이를 위해 대학안에 한국을 비롯한 외국기업이 입주해 평양과기대에서 배출한 인력을 활용하여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국제시장 진출을 위한 여러 분야의 협력사업을 실제로 전개해 나갈 예정이다. 바야흐로 북한 경제발전을 위한 다양한 실험과 동기 부여가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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