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제6절 중국 국내해방전쟁에서의 조선인

1946년 6월, 쨩쩨이스은 전면내전을 발동하여 사평, 장춘을 점령한 뒤 화동, 화북에 대한 대거진공을 감행하였으며 10월에는 동북근거지에 대한 대규모의 진공을 들이댔다. 연변경비여 주력은 교하, 랍법, 신참 지역에서 적들의 전략진공을 분쇄하여 동만근거지를 보위하였다. 중국 국내해방전쟁시기 조선청․장년 6만 2942명이 참군하였는데 송강성에 1만 2644명, 요녕성에 8753명이었다(「동북조선이주민 여러 통계표」). 연변 5개 현에서는 3만 4855명이 참군하였으며 동시에 10여만 조선인 공안부대, 기간대(基干队), 무장민병 등 지방무장조직에 참가하였다(「연변지위중요문건집」).
1946년 12월부터 1947년 4월까지의 3하 강남, ‘4보임강’ 전역에서 주력부대에 참가한 조선인전사들은 송화강을 세 차례나 건너 1월에는 치따무전투, 2월에는 성자가전투, 3월에는 덕혜와 농안 간의 전투에 참가하였다.
1947년 5월 하기공세에서 동민독립사와 길동경비여는 6종대와 협동작전하여 화전, 반석, 해룡, 쌍양 등 현을 해방하고 동만과 남만 근거지를 하나로 연결시켰다.
추기공세에서 연변, 목단강, 송강, 통화 지구의 지방부대에서 싸우던 2만 여 명의 조선인 지휘관과 병사들은 야전군 각 종대에 편입되었다. 동만독립사는 동북군구 독립1사, 독립3사와 합쳐 10종대로, 이홍광지대는 동북군구 독립4사(후에는 166사로)로, 원 길동군구 독립3, 6퇀과 길남군부구 71퇀은 동북군구 독립6사(후에는 156사로)로, 송강군구 8퇀과 길남군분구 72, 74퇀은 동북군구 독립11사(후에는 164사)로 각기 편성되었다.
동기공세에서 10종대는 법고, 도가툰, 황화툰, 142고지, 동사산, 대고가자, 대쌍림자 등 전투에서 적 59사, 169사의 일부를 섬멸하고 그다음 이홍광지대와 기타 주력부대와 협동작전하여 적 62사를 섬멸하였으며 개원해방전투를 거쳐 적 53군 30사의 일부와 지방부대 도합 1000여 명을 섬멸하였다.
길림 외곽에서 활동하던 독립6사는 장춘으로 철퇴하는 국민당군 60군을 호가툰-산주자 일선에서 저격, 추격하여 2000여 명을 섬멸하였다.
1948년 가을, 요심전역에서 독립6사와 독립11사는 장춘포위전에 참가했고 이홍광지대는 심양해방전투에 참가하였다. 10종대는 흑산-대호산 일선에서 수량상 몇 배나 우세인 료요썅병퇀의 5개 군, 12개 사를 밤낮 3일간 막아냄으로써 금주전역의 승리를 보장했다.
동북해방전쟁이 끝난 뒤 164사는 장춘위수임무를, 166사는 심양위수임무를 맡고 그 외의 4야전군 각 종대의 조선이주민 관병은 산해 관을 넘어 관내로 진출하였다.
동북해방전쟁에서 수많은 조선이주민 전투영웅과 전투모범단체가 용솟음쳐 나왔다.
왕청현조선농민으로 구성된 모 부 김성범(金成范)련은 ‘전투모범련’의 칭호를 받았고 오상현과 연길현의 조선인장병들로 무어진 28사 82퇀 3영 8련은 ‘강철8련’의 칭호를 지니었다. 대공 8차, 소공 2차를 세운 전투영웅 김복성(金福星), 1등 인민영웅 김천덕(金天德), 모택동상장을 받은 특등공신 한국화(韩国和), 주덕상장을 수여받은 박룡운(朴龙云), 다섯 차례나 간고분투상장을 수여받고 용감상장을 획득한 김학범(金学范) 등은 해방전쟁시기 조선인군인의 대표이다.
조선인은 전쟁후근사업에 적극 뛰어들었다. 1947-1948년 연변에는 연인수로 3만 6938 명이 전시사업에 뛰어들었고 여러 차량이 6420차 동원되었다(「연변지위주요문건집」). 원 송강성에는 1만 2000여 명 조선이주민이 전시후근사업에 참가하였다. 수많은 조선이주민들이 담가대, 운수대에 나가고 철도복구, 방어공사수축에 동원되었다. 훈춘병기공장, 로투구고무공장의 노동자들은 밤낮으로 일했고 도문철도국의 노동자들은 마사진 기관차를 다그쳐 수리하고 막힌 터널을 소통시키어 빠른 시일 내에 동만의 철도를 개통시켰다. 연변에는 37개 집체와 722명 개인이 입공하였으며 19개 집체와 1582명 개인이 모범으로 당선되었다(「연변지위주요문건집」).
해방전쟁시기 조선인의 많은 아들딸들이 귀중한 생명을 바쳤다. 1950년에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3년간 중국 국내해방전쟁에서 희생된 조선인열사는 도합 3550명, 그중 길림성에 2662명, 송화강에 521명, 원 요동성에 264명이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동 시기 연변의 열사는 3350명인데 조선인이 3041명이다. 이는 조선인 5세대에 1명의 열사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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