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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그 다음날, 아침 식사 후 우리는 연변대학으로 갔다. 9시부터 민족연구원 회의실에서 학술 좌담회가 시작되었다. 우리 소식을 듣고 인문사회학 전공자들이 여러명 회의에 동참했다. 전신자 교수께서 사회를 맡았고, 나의 인사말에 이어 손춘일 박사(민족연구원 원장)께서 기조연설을 해 주셨다. 그는 연변대학 출신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다. 손 원장의 발표는 연변대학 개황, 조선족의 동북지역 이주사, 항일투쟁과 수전개발 분야에서의 조선족사회의 공헌, 최근 ‘동북진흥전략’에 따른 두만강유역개발 전망에 대한 내용이었다.

연이어 토론에 들어갔다. 여러 사람들이 민족문화계승과 발전에 대하여 의견을 발표했으며, 사안에 따라 질의, 답변하는 형식으로 특별한 순서 없이 토론을 진행했다. 토론을 하다 보니 언어학 전공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민족언어교육의 중요성과 함께 시대조류에 적응하는 국제공용어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내몽고 대학에서는 전공분야에 따라 전문적인 몽고족어 교육과 중국어 교육을 병행실시하고 있는데 비해, 연변대학에서는 조선어학부외에는 모두 중국어로만 강의를 하고 있는 점이 지적됐다. 북경 우전대학 같은데서는 소수민족을 위하여 전문적인 예비학과가 설치되어 있어서 지역별로 우수학생을 선발, 중국어 교육을 시킨 후 일정 수준이 되면 전공분야에 배치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학점을 취득하고 졸업하면 출신지역으로 돌아가게 해서 분야별로 취업토록 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예컨대, 위구르족들은 위구르어만 알았지 중국어는 잘 모르므로 1-2년간 예비학과에서 중국어를 공부시킨 후 전공학과에 배치한다고 했다. 그런 반면에 조선족 사회에서는 인구 분산과 함께 중, 소학교가 많이 폐지되고 있으며, 또 중국어 교육에 비해 조선어(한글)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연변대학 같은데서는 조선족 학생들의 신입생 초생(입학전형) 문제가 심각한 상태라는 지적이 계속됐다.

이 점은 내가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에서도 지적한 바 있는데, 장차 조선족사회의 발전과 진로를 감안할 때 중국어 교육과 더불어 한국어 교육을 보강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단계라고 판단된다. 결론적으로, 정보화, 국제화 시대에 적응하는 소수민족들의 인재 육성방안은 기본적으로 자체 민족언어를 일정 수준까지 학습해야하고 거기에 중국어는 물론이고 영어와 같은 국제 공용어까지 겸비한 인물로 키워야 미래가 보장된다는 내용으로 결론지어졌다.

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중국 내 소수민족들에게는 이와 같은 언어 교육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학습하는 것이 그들 사회의 자체 역량을 키우고 세계화시대 현실에 대처 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2시간가량 진행 된 좌담회를 마친 후 우리 일행들은 연변 대학 내 주요 시설을 잠시 둘러본 후 곧장 연길시 북산가에 있는 연변과기대로 향했다.

민박회 일행들은 내가 연변과기대 대외부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대학이고, 또 대학 설립정신과 운영방침이 특별한 국제대학이라서 평소부터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가, 직접 학교를 방문하게 되니 느낀 바가 컸던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예정대로 백두산으로 향했다. 백두산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대개는 안도현 돈화를 거쳐서 백두산으로 향한다. 그 길은 도로 포장이 잘 돼있고 노선이 완만해서 사람들이 즐겨 이용하는 길이다. 한가지 단점은 버스로 5시간이나 걸린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근에 용정, 화룡을 거쳐서 두만강을 따라 가는 산복도로가 도로포장을 마치고 개통됐다. 이 길은 도로세 부담이 크긴 하지만 3시간 반 밖에 걸리지 않는 지름길이다. 우리는 갈 때는 용정, 화룡 코스로 가고 돌아올 때는 안도, 돈화를 거쳐서 오기로 하고 출발했다.

몇 년 사이 백두산 관광을 둘러싼 환경이 많이 변했다. 2년 전부터는 백두산 관광지 관리운영권이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길림성으로 넘어갔다. 그 이후 관광지 시설과 경내 환경이 많이 정비되기도 했지만, 한편에선 한국 투자가들의 시설이 마구잡이로 퇴출당하는 사태가 발생해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곳 중의 하나가 우리가 묵기로 한 천상관광호텔이다. 이 호텔은 한국의 참빛그룹(眞光集団)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백두산 장백폭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 자연분출되는 유황온천수로 난방까지 할 수 있는 곳이다.

일행 중에 온천을 제일 반긴 사람들은 내몽고자치구나 신장자치구에서 온 사람들이다. 마침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공기는 선선하고 상쾌했다. 호텔엔 이 모든 것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야외온천탕이 있었다. 우리는 멀리 장백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와 용암이 흘러 생긴 가파른 계곡 위 푸른 하늘에 하얀 반달이 걸려있는 신비로운 정경을 바라보며 신선이나 된 듯한 기분으로 온천을 즐겼다.

온천 후 저녁을 간단히 먹은 우리는 특별한 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호텔에서 마련해준 커다란 온돌방에 모였다. 그리고 가운데 놓인 대형 탁자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TV에 시선을 집중했다. 오늘밤의 특별한 순서란, 바로 2008 북경올림픽 개막식이었다. TV를 켜니 벌써 화면은 올림픽 열기로 터져나올 듯 했다. 그러나 어디 그 열기가 북경 냐오차오 스타디움뿐이겠는가. 내 가슴엔 문득 백두산 천상호텔 온돌방에서 올림픽 개막식을 함께 보는 우리 민박회야 말로 ‘백두천상’에서 소수민족올림픽을 열고 있는 것이란 감흥이 밀려왔다.

드디어 북경올림픽 개막식이 시작됐다. 1908년 한 중국인이 중국에서 올림픽이 개최되기를 희망했던 때로부터 꼭 100년 만에 ‘중국 올림픽의 꿈’이 찬란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개막식 직전에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이 입장하자 장내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8시 정각에 개막식이 시작돼, 중국 국기가 단상에 높이 올라가고 중국 국가가 퍼져나가자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중국 관중과 경기장의 진행자 자원봉사자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감격하는 모습이었다. 온돌방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민박회 사람들도 55개 소수민족의 어린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중국 국기를 들고 나오는 장면이 클로즈업되자 모두 일어나 숙연한 모습으로 경의를 표했다. 그 모습에 나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그랬다. 중국은 12억 한족의 나라만이 아니다. 비록 중국 한족들의 치밀한 종족통치원칙에 따라 55개 소수민족의 인구는 겨우 1억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중국 영토의 60%를 점유하고 있으며 다양하고 독창적인 중국문화의 풍부한 문화자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이 없는 중국문명, 중국의 독특함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이 있기에 12억 한족들의 삶이 그토록 풍요롭고 자존감 넘친 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고 오늘의 중국이 있는 것이다.

이날 개막식 행사에는 80여개국의 국가정상들이 참석했다. 올림픽 사상 가장 많은 정상들이 참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4개 국가와 1만 5000여명의 선수들이 참여해 역대 올림픽 사상 가장 많은 선수가 참여한 기록을 세웠다. 개막식은 3부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먼저 오륜기 입장과 개막식행사가 있은 후 화려한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수단이 입장한 뒤 올림픽 개막선언이 이어졌다. 그리고 성화 점화로 대미를 장식했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올림픽 주제가 “You and me” 는 영국의 뮤지컬 가수 사라 브라이트먼과 중국 국민가수 류환이 각각 영어와 중국어로 열창했다. 특히 성화 점화가 인상적이었다. ‘화해의 여정(和諧之旅)’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21개국과 광활한 중국 내륙을 거쳐 장장 13만7000km를 달려온 성화가 최종주자인 체조 스타 리닝(李寧)에 의해 점화되는 순간 냐오차오 스타디움의 열기는 절정에 달했다. 13억 중국인들이 꿈을 담아 장예모 감독이 7년간 준비한 개막식은 중화 부흥을 알리는 의미있는 ‘부활의 의식’처럼 다가왔다.

개막식을 지켜본 민박회는 인문사회, 문화, 언어학 부문 전공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첨단 IT기술과 중국인의 탁월한 색채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한 조명예술, 그리고 입체적인 공간연출 기법 등이 어우러진 개막식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길이 70m 짜리 전자 스크린 위에서 춤을 추면서 그린 그림이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과 중국의 고대 복장과 춤으로 종이와 인쇄, 화약, 나침반 등 중국의 4대 발명품을 표현한 아이디어에는 다들 혀를 내둘렀다. 그 중에서도 3000명의 예술단이 현란한 변화속에서 마지막에 점을 찍듯 만들어낸 ‘어울릴 화(和)’자 앞에서 나는 심장이 멎는 듯 했다.

이 화(和)는 공자의 ‘화위귀(和爲貴)’이자 후진타오 주석의 정치이념인 ‘화해(和諧)’이며 온 인류의 염원인 ‘평화(平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보다 내가 더욱 놀란 것은 화(和)의 정신이 단순히 베이징올림픽에서만 보여진 중국의 정신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64년 도쿄 올림픽의 주제는 화혼(和魂)이었고 88년 서울올림픽의 주제는 조화(調和)였다. 역사적으로도 한국엔 고대로부터 화백(和白)이라는 만장일치의 통치이념이 있었으며 일본엔 일본근대혁명의 근간이 된 명치유신의 정신이 대화혼(大和魂)이다. 알고 보면 한중일 삼국의 정신과 정서를 관통하는 이 화(和)의 정신 안에 한중일 삼국은 이미 하나였던 것이다. 백두산에서 지켜본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그것을 통해 첫 번째 느낀 나의 감흥은, 그것이 중국과 세계를 하나로 융합하고 연결하는 인류문화의 최대 축제인 동시에 중국 최대민족인 한족과 55개 소수민족간의 대 화합의 축제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한·중·일 삼국의 정신적 원류가 화(和)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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