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향미 수기

[서울=동북아신문]묵집, 내가 두달 동안 고정일당으로 일했던 곳이다. 주인들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그런지 가게 분위기가 다른 집과 틀리다. 아침에 출근하면 사모님이 우리를 향해 할렐루야 하신다. 술 좋아하고 담배 피는 사람은 가게에서 쓰지 않으니, 벌교언니가 금연 금주하느라 고생이다. 벌교언니는 나와 같은 날 일일파출부로 온 주방 설거지언니다. 

 첫날, 퇴근버스에 앉아 “기사님, 씽씽 달려주십시오.”하고 쩌렁쩌렁한 목소리 내며 즐거워 하셨다. 버스에서 내려 문득 나에게 묻는다.
 “너 내일도 오냐?”
 “녜, 오라고 하대요.”
 “나도 내일 오래. 야!-- 난 내일도 일한다!” 버스 환승역으로 걸어가면서 밤하늘에 대고 남자들처럼 호탕하게 껄껄껄 웃으신다. 일하는 것이 그렇게도 즐거울가? 이 집 설거지 장난 아니어서 두 번 다시 오려는 사람 없다고 들었는데~ 

 버스 환승해서 퉁퉁 부은 어깨며 손, 이곳저곳 보여주며 아파 죽겠노라고 조금만 주물러달라고 하시더니, 빈자리가 나자 나에게 여러 번 권하시다가 철썩 주저앉으신다. “덩치 좆같이 크네.” 버스 문가에 서있는 젊은 여자를 보며 큰소리로 중얼거리고는 이내 고개를 떨구고 잠들어버린다. 기실 벌교언니 덩치도 장난이 아니다.

1미터 70이 넘는 키에 훗날 주방 실장님이 웃으며 말하시던 고릴라상, 한마디로 남자처럼 건장한 체구다. 얼마나 힘드셨으면? 유원지에 있는 묵집이라 손님들이 버글버글하다. 손님들이 빠질 때면 크고 작은 그릇들이 주방으로 물밀듯이 쓸어 들어가는데, 그 많은 설거지를 해대려니 오죽했으랴? 산더미처럼 밀린 설거지 하다나면 저쪽에서는 설거지 우선 놔두고 수제비 담으라, 백김치 썰어라 호령이고, 그거 하다나면 또 홀에서 밀려나오는 설거지 그릇 자리 빼내라 난리를 친다고 환승역 오는 길에 들려주었었다.
 “다행히 내가 눈치 빠르고 손 빠르니 말이지 다른 사람들은 어림도 없어. 내가 몇 살 되어 보여?”
 “글쎄요. 오십대 초반?”
 “하하하. 내년이면 환갑이야. 나 젊어 보이지? 나 이런 고생은 처음이다. 그러나 지금 나 일 안하면 안되. 돈 벌어야 되.” 

 내일도 나와 달라 했다고 장원급제나 한 듯 기뻐하시던 언니, 하루가 고단하셨는지 갔다 섰다 하는 버스 안에서 입 헤 벌리고 코까지 골기 시작한다. 문득 축 늘어진 그 어깨와 이 늦은 시간에도 초만원이 된 버스에서 흔들리는 대로 몸을 맡긴 사람들의 피곤한 모습에 가슴 한켠이 아려오면서 울컥하고 눈물이 맺힌다. 혼자만 힘들게 사는 것처럼 잔뜩 짜증부리고 투정질 했던 나, 맨날 지겹고 허무하다고 떠들어대던 내가 갑자기 차분한 마음이 되어 자신이 아닌 남들의 삶에 대해, 가슴 울리는 애잔한 느낌을 열심히 읽고 있으니, 이 늦은 밤에 나는 문득 새로운 빛과 힘으로 용기를 얻는 것 같다. 

 난 아직 행복하구나, 젊고, 건강하고, 생각이 있고, 힘이 닿는대 까지 일해 꿈꾸는 대로 부를 축적할 수 있고, 축적한 그 부로 꿈꾸는 바를 더욱 확실히 이룰 수 있지 않는가? 기약할 수 있는 꿈을 향해 노력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삶인가, 바로 그거다! 젊음과 건강을 자본으로 계획된 3년 동안 많이 벌고, 많이 부딪히며 느껴보는 거다. 적어도 힘이 솟구치는 지금만큼은 세상에 두려울 거 없다!

 이튿날, 출근한 나를 보자마자 미국에서 생활하다 왔다는 옥이언니가 급히 묻는다.
 “향미야. 넌 그러면 한국 사람이니?”
 “아니지요. 국적이 중국이지요.”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하여간 저의 할머니가 8살 때 민며느리로 할아버지네 집에 왔는데 그해에 할아버지 식구가 두만강 건너서 중국 건너갔다고 그래요.”
 “그럼 핏줄은 같은 핏줄이네.”흥분해하시는 표정이 역력하다. 첫날인 어제는 까칠해보이더니 태도가 확 바뀌었다. 

 “오늘부터 나하고 방에서 일하자. 내가 실장님에게 널 지목할거야.” 그날부터 옥이언니와 함께 “안방마님”이라 불리우며 방에서 서빙을 하게 되었는데, 헤라, 설하수 방문판매를 했던 언니가 쩍하면 비싼 화장품을 가져다 준다. 미안해 받지 않으려 하면 “괜찮아. 너두 이젠 좀 화장해.”하신다. 이혼의 아픔, 사랑하는 딸과 이별의 그리움 속에서 갈등하시는 언니였다. 그래서 그런지 성깔이 괴팍할 때가 많았다. 휴식시간이면 테라스에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테라스 밖에 무성한 잡초를 하염없이 내려다보며 뭔가를 열심히 찾기도 했다.
 “언니, 뭘 보시는 거예요?”
 “나, 찾았다. 저기. 저기, 크로바!”
 토끼풀을 일컫는 크로바,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네잎짜리를 찾는다는 것이다.
 “행운을 너에게 주마.” 

 책속에 정성들여 끼워놓았던 크로바를 모두 나에게 준다. 적지 않다.
 “나야 뭘, 행운 바라지도 않아. 원래부터 팔자 사나운거.” 나보다 세살위인 언니인데 벌써 산전수전 다 겪으신 듯하다. 아빠와 함께 미국에 있는 딸이 방학을 이용해 비행기 13시간 타고 엄마 보러 온 날, 언니가 가슴 아프게 울었다. 13살 되는 딸이 갑자기 생리 왔는데 비행기 안에서 생리대 달라는 말도 못하고, 13시간 좌석에 꼭 앉아오면서, 바지가 피투성이 되어 내렸다고 한다. 그걸 보고 울었다던 언니, 가게 와서 얘기하면서도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그 아픔을 잘 알거 같다. 느껴보지 않은바 아니다. 내 딸도 이젠 10살이다. 구질구질 내리는 빗속에 모처럼 손님 한 팀도 없던 오후 휴식시간, 피곤에 푹 잠이 들었다가 사장님이 틀어놓은 노래 소리에 잠을 깼다. 그리고 비몽사몽간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가슴 갈기갈기 찢어지던 그 아픔, 내가 왜서 여기 누워있지? 여기가 어디야? 내가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내 새끼는 어디 있어? 그 새끼가 어떻게 크는지도 모르고? 돈 벌러? 

 부슬부슬 빗소리와 함께 애도 곡 같이 가슴을 치는 애절한 노래 소리, 도토리 묵 냄새 배인 방에서 잘도 주무시는 언니들 곁에서 아픈 가슴 부여안고 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사장님, 제발 좀 노래 꺼주세요.”소리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루한 날이 며칠 지속 됬고, 똑같은 아픔이 지속 됬다. 옥이언니가 미국에서 온 딸 때문에 자주 눈물짓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도 개운치가 않다. 구질구질한 장마철이 이어지면서 손님 적은 날이 꾀 많았다. 손님이 적으니 몸을 풀지 못해 짜증이 난다는 정희언니, 사는데 회의감이 든다는 향이언니까지 합세하여 홀 분위기가 한껏 저조 되어 있었다. 지겨움을 많이 타는 내가 그 분위기에 물젖어 침침하고 불안한 눈길을 하고 있던 그때, 내 가방에 며칠이나 그대로 박혀있던 책이 나에게 커다란 힘으로 다가왔다. 어수선한 내 마음에 안정과 여유를 주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했던 책이다. 

 책이름은 “매일아침 긍정의 힘365", 가게 카운터 옆에 진열해둔 책속에서 골라 가방에 넣고 다니며 출퇴근시간에 읽어 보던 것이다. “꿈을 풀어놓으라.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 열정을 잃지 말라. 행복은 선택이다.”얼마나 멋진 말들인가! 이 책들은 모두 목사님이 식사하러 오실 때마다 주인들에게 선물한 것들이다. 간혹 목사님이 오시면 사장님과 사모님이 기독교 방송 들으며 일하던 묵방에서 뛰쳐나오셔 함께 기도를 드린다. 어느날인가 사장님과 사모님이 뛰쳐나와 내가 지나갈 길목에 무릎 꿇고 앉으셔 목사님과 함께 기도를 하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하고 갇힌 신세가 되어버렸다. 눈 감고 큰소리로 기도 하시는 목사님은 코까지 벌름거리며 입동작을 너무 요란스럽게 하셔서 내가 우스워 겨우 참고 있다가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줄 알았다. 목사님 곁에 앉으신 나이 지긋한 분이 눈을 반쯤 뜨고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해서 나오던 웃음이 쏙 들어가 버렸다. 웃지 말자, 괜히 벌 받을라. 목사님 오시면 서빙들이 바빠진다. 특별대우 들어간다. 쟁반국수 열심히 비벼드리고, LA갈비, 도토리전 서비스로 들어가고, 식사 끝나면 예쁜 잔에 팥빙수도 나간다. 다른 손님들도 후식으로 팥빙수 나오는 줄로 알고 있어 해석하기가 난감해진다. “목사님 따라온 저 여자들 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 서비스가 당연한 것으로 알아.”하면서 우리는 뒤에서 험담을 아끼지 않는다. 목사님 가실 때면 주인들이 다시 주방에서 뛰어 나오신다. 

 바로 그 목사님이 선물하신 “매일아침 긍정의 힘 365”, 내 기분이 저하되고 가라앉아 있을 때 하루를 사는 힘을 실어다준 묵상집이므로 감명 깊다. 하루만 읽지 않으면 무기력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하게 읽었었다. 

 그 외에 중국 관련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김하중의 “하나님의 대사”, “진주를 팔아 지혜를 사라”,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 “최고의 삶”, “말의 힘”…… 등 책들이 나의 손을 거쳐 갔다. 교회 다니시는 향이언니는 책 즐기는 나를 눈여겨 보시며 교회 다니라고 자꾸 권하신다. 솔직한 말이지만 책을 읽음에 있어서, 설교나 성경구절은 일체 뛰어넘고, 마음에 와 닿는 좋은 글귀에서 힘을 얻어 지겨움과 허탈함을 이겨나가고자 했던 정도의 독서였을 뿐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책 읽으며 일했던 그 두달 동안 나의 심경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그 영향들이 향후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인생여정에서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교보문고에 씌여진 문구가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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