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CJ문학상수상작

현영애

[서울=동북아신문]마침내 이사를 끝냈다. 결혼생활 30 여년에 이르는 중년세대 누구나 마찬가지로 우리도 신접살림 셋방살이부터 시작하여 오늘 새 아파트에 들기까지 얼마나 많이 이삿짐을 싸고 풀었는지 모른다. 물독과 쌀독 몇개에 이부자리와 옷 꾸러미 한보따리… 손수레나 작은 밀차에 모두 실어도 헐렁한 구석이 많던 때가 햇내기살림시절이였다면 30 여년이 지난 오늘의 살림살이는 랭장고, 세탁기, TV에 오디오 등 현대생활용품인 전자제품과 소파며 옷장, 이불장에 이런저런 살림도구들이 주렁주렁 곁달려 이사짐센터의 대형트럭에 꽉 박아 실어도 넘쳐나서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규모가 커지고 종류도 다양해지었다.
이 늘어난 살림살이로 하여 나는 새집들이 이사짐을 꾸리고 정리하는데 적지 않은 고민이 생기였다. 이것을 넣으려 하면 저것을 버리고 가는것이 아깝고 저것을 챙기려면 이번엔 또 이것을 두고 가는 것이 눈에 밟혔다. 어느것인들 정들고 손때 묻어 아끼던것들이 아니겠는가. 이것저것 번갈아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하며 결국 새 아파트에 당당히 “입성”하는 품목에 당첨된 물건과 치열한 “입찰경쟁”에서 밀려난 낡고 허름한 물건들이 판가름 나서 밀물이 왔다 썰물이 지듯 양편으로 쫙 갈라졌다.
희비가 엇갈린 저 물건들, 수십년간 우리 가족의 뒤바라지에 물이 나고 색이 날고 금이 가며 나와 즐거움을 같이 하고 시름을 같이 한 물건들이 새집들이라는 준엄한 선택앞에 놓인것이다. 그리고 “O”와 “X”, “업”과 “다운”의 랭정한 판단에 의해 행운의 꼭지를 잡은것들은 신문지와 보자기에 알뜰살뜰 싸여 새 아파트로 가는 트럭에 실리는 물건이 되고 여기서 탈락된것들은 가차없이 분리되여 쓰레기더미로 직행하는 처량하고 서글픈 막장신세가 되고말았던것이다.
그런데 례외가 있었다. 이사짐을 싸면서 반듯한 바둑판위에 량편으로 갈라놓은 흰 돌과 검은 돌처럼 두편으로 쫙 갈라진 “선택”과 “탈락”의 량쪽 진영 한가운데 유독 이렇게도 못하고 저렇게도 할수 없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어딘가 숨어있다가 문득 나타난 작은 항아리 하나였다.
울퉁불퉁하고 조금 기울어진듯 비틀어진 자세, 유약도 골고루 칠해지지 않아 해빛이 얼룩덜룩 비치는 겉모양은 투박하다는 말은 맞을지 몰라도 절대로 우아하지는 않은 조그마한 항아리 하나가 나를 이렇게 심각한 고민에 빠뜨리게 할줄은 정말 몰랐다. 이 항아리는 여태까지 장단지로 사용되여 집안 어느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던것이다.
그냥 내다버려도 아까울것 하나 없을것 같은 이 작은 항아리 때문에 내가 이와 같은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 리유는 이사짐을 정리하다가 이 항아리를 발견하고 남편이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어!? 이거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렇게 나타났나. 참, 오래된 것인데… 좋아, 좋아. 허― 허― 허!”
그래, 오래된 물건이란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좋은것이란 가당치도 않은 소리. 우리 집에 좋은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저따위 항아리가 어떻게 감히 좋은것 리스트에 들기나 하겠는가. 그러나 내가 이 조그마한 항아리 앞에서 입을 꼭 다물고 그렇다는 말 한마디 할수 없는것은 이 항아리가 시어머님이 남겨주신 물건으로는 현재 우리 집에 남아있는 유일한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고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이렇게 살림을 하는 동안 시어머님은 우리들에게 살림살이 물건들을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셨다. 그러나 세월이 가고 이곳저곳 이사를 다니면서 적지 않은 물건들이 깨지고 잃어지고 버려지게 되였다. 그리고 주방용품도 날이 바뀔 때마다 디자인이 바뀌고 성능이 바뀌는 세월이라 30년전의 그릇이나 수저 따위가 오늘까지 그냥 그대로 있을리도 만무하다. 그런데 이 작은 항아리가 그동안 집구석 어디에 숨어있다가 오늘 이렇게 불쑥 나타나서 나를 괴롭히고 있는것인가. 우리가 이제 곧 입주할 새 아파트에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을 저 항아리, 아파트살림에서 아무것에도 쓰일데 없고 새집 어느 구석에도 놓일 곳 없는 저 항아리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남편은 나의 이런 고민을 아는듯 모르는듯 항아리를 닦고 쓸고 만지였다. 막내아들로 태여나 어머니의 사랑이 유별났던 남편은 시어머니가 주신 항아리를 발견하고 무척이나 반가와 하는것이였다. 마치 십년전에 세상 떠나보내신 어머니와 다시 만난듯 애틋해하는 항아리를 옛집에 그냥 버려두고 올수 없어 나는 끝내 이 항아리를 이사짐 제일 마지막 품목으로 지정하여 새 아파트에 옮겨왔다.
곁방살이 살림 수년간의 신고를 마무리하고 새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자 남편은 집안 인테리어에 많이 신경을 썼다. 새집에 들어 꿈에도 그리던 자신의 공간인 서재를 곧 얻게 된다는 기쁨에서인지 인테리어잡지들을 한 아름씩 안고와 펼쳐보기도 하고 새벽녘까지 컴퓨터를 켜고 앉아 아파트인테리어 관련 홈페이지를 구석구석 둘러보는 일도 여러번 있었다. 이렇게 알심을 들인 결과물로 상해에서 대학공부하는 딸애가 방학이면 집에 돌아와서 쓸 방도 예쁘게 탄생하였고 특히 주방에 무척 신경을 써서 요모조모 편하고 알뜰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꾸며주어 고마웠다. 전기밥솥, 전자레인지며 가스레인지 그리고 식기세척기, 식탁, 의자에 이르기까지 내가 원하는 모든것들을 주방에 채워주었다.
그러나 주방을 포함하여 침실, 서재, 복도 어디에나 이 작은 항아리가 앉을 자리는 적당하지 않았다. 여기에도 놓아보았고 저기에도 두어보았다. 일단 새 아파트에 들인 물건이라 어딘가에는 반드시 그 위치를 지정하여 주어야 할것인데 이사짐 꾸릴 때부터 애먹이던 항아리가 새 아파트에 와서도 골치거리가 되는가. 그러다가 나중엔 베란다 창턱 근처에 빈 공간이 있어 거기에 놓아버리고 말았다. 빈 항아리가 아가리를 벌린채 거기 그냥 덩그렇게 놓여있는것이 안쓰러워 한번은 등산을 다녀오며 꺾어온 마른 갈꽃 몇잎 꽂아두었다.
그런데 이처럼 별생각 없이 행한 행위가 이 작은 항아리의 신분을 확 바꾸어놓고 몸값을 엄청나게 부풀려주는 계기가 될줄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으랴. 골치거리 항아리가 단번에 새 아파트에 와서 가장 주목 받는 물건이 되여 집안에 이채를 돋구어주는 디자인 포인트 1번이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던것이다.
새집들이 인사차 우리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은 대부분 남편과 내가 그처럼 알심을 들여 꾸민 집안을 이구석 저구석 한번 휙 둘러보고는 그저 “괜찮네, 괜찮습니다.”라고 형식적인 인사말을 남기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베란다 창가 근처에서 갈꽃 몇 잎 꽂혀있는 작은 항아리를 보고서는 무슨 신대륙이나 발견한듯이 너도나도 눈빛을 반짝이며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지르는것이였다.
“저 항아리 좀 봐. 아이쿠, 예쁘네. 시인의 집이 다르긴 다르나봐. 창턱에 갈꽃이 피여있다니. 우아하기도 하지. 저 도자기 비싼것이지요. 언제건가요. 값은 얼마나 해요. 아마 엄청나겠지요.”
이럴 때면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남편의 얼굴만 쳐다본다. 그저 빙그레 웃고만 있는 남편은 이렇다는 말, 저렇다는 말 한마디 없고 그럴수록 방문객들의 궁금증은 더해만 간다. 나는 다만 어처구니가 없어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그러하리라. 아파트 집집마다 인테리어를 하고 이 인테리어들이 아무리 개성을 살려 독특하게 설계되고 남다르게 꾸며진다고 하여도 결국은 현대화란 시스템의 굴레에 묶이여 진행되는 우리 삶의 한 편린인 것을. 어느 집에 들어가 보나 거기서 거기일것이다. 그리고 집안 대부분을 자리차지하고 있는 전자제품이나 가구들도 상가나 백화점에서 들여온 것이니 누구의 눈엔들 한번쯤 뜨이지 않았겠는가. 거기에는 나만의 삶이 묻어날수 없는것이다. 그런데 이 번쩍번쩍 광채가 나는 럭셔리한 세계에 수십년전 물건인 투박한 항아리 하나가 그것도 자연의 작품인 하얀 갈꽃 몇잎 담고 자리를 버티고 앉아있으니 어찌 눈에 확 들지 않겠는가.
아파트 창가에 놓인 작은 항아리, 시어머님이 남겨주신 이 작은 항아리 하나가 우리 집의 품위를 한껏 높여주는것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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