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박사의 퓨전로드맵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의 웅장함과 강한 중국적 색채는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중국 고대문명부터 현대까지의 5000년 역사, 그리고 우주시대에 이르기까지 지구촌 사회가 추구해야 할 평화의 메시지를 탁월한 상상력과 첨단기술력으로 압축하여 재현한 능력도 놀랍거니와 이합집산하는 군무를 통하여 인해전술식 조직력을 과시하면서 새로운 중국의 힘과 이미지를 형상화 시켜나가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오리엔탈 쇼크'라고 할 만한 이 거대한 응집된 기상의 폭발력은 장차 중국과 세계의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중국은 오늘 밤 자아도취 상태다. 그리고 이날 아침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사설엔 이런 글이 실렸다.

“오늘밤 북경의 역사는 새로 쓰여진다. 중국은 이제 세계를 품는다.”

중국은 개막식 공연을 통해 과연 무엇을 보여 주려고 하는가. 그들이 품고 있는 비전은 도대체 무엇인가. 200여 년 전,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중국? 잠자는 사자를 깨우지 말라. 잠에서 깨면 귀찮아질 테니까”

나폴레옹의 우려처럼 오늘 밤의 중국은 천하를 호령했던 ‘강한성당(强漢盛唐)’의 시대로 회귀하려는 듯한 독주의 의지가 엿보인다. 중국이 다시 일어서려는 목적이 패권 추구라면, 그것은 결코 화(和)가 아니다. 사자가 조련사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조련사는 알지만 사자는 정작 모른다. 그러나 사자가 그 사실을 알아 버렸는데도 조련사가 예전처럼 사자를 길들이려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이것은 나의 우려가 아니다. 10여 년 전 중국 신세대 지식인들이 탐독했던 초베스트셀러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中國可以說不)」에서 이미 제기되었던 경고다.

나는 민박회 지인들에게 이 문제를 화두로 던졌다. 그러자 서영박사가 나의 우려에 대해 진지하게 대답해주었다. 중국은 올림픽을 계기로 문화대국으로서의 중국부흥을 꿈꾸고 있을 뿐이며 이것이 바로 진시황 이후 2000년간 중국 역사를 이어온 중화의 맥이라는 것이다. 중국 현 지도부가 대외정책을 화평발전에 두고 있는 것도 중국의 발전에 있어서 이 화(和)의 정신이 흐려지면 또 다시 세계 냉전을 몰고 올 것이며 그 때는 중국의 미래는 재기불능의 위기에 빠질 것이란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미국, 러시아, 그리고 EU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려는 의지가 강하며 그것이 곧 화(和)로 표현된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만족어 전공학자이자 중앙민족대학 만족어교수인 고와박사가 좋은 예를 들어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중국 55개 소수민족은 메이저 그룹인 한족과 더불어 대 가정 국가를 이루고 있는 주요 자원입니다. 중국 내 56개 민족의 화합이야말로 중국 체제의 키워드입니다. 중국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입니다. 이 지구촌 사회에서 중국처럼 화합을 중시하는 나라는 없을것입니다. ‘和’자는 국제관계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국가체제 유지를 위한 대내 정책의 핵심 정신입니다. 다른 나라도 중국의 화평정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국제관계의 분쟁과 시비를 해소하는 방책으로 활용한다면 지구촌 전체의 화합을 위해 많은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중국정부의 소수민족정책에 대한 소수민족 지식인들의 신뢰가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티베트나 신장 위구르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와 탄압의 악순환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중국은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평화의 나라인가. 이런 의구심속에서도 세계는 올림픽 이후 중국이 새로운 행동과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했었다.

그러나 중국은 그 직후 멜라민파동과 소파피부병파동으로 지구촌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유럽에선 천 여명이 기준치보다 수십배나 되는 방부제가 들어간 중국산 소파를 사용하다가 중증피부병에 걸려 난리가 나고 멜라민이 들어간 중국산 분유를 먹은 아이들이 죽음의 위기에 내몰렸다. 전 세계에서 중국산 제품의 수입금지조치가 내려지고, 먹거리에 대한 공포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가운데 더욱 경악할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중국의 지도층 인사들은 그들만을 위해 특별히 생산되는 유기농 우유와 음식을 먹고 있어서 이런 제품이 시중에 나돌고 전 세계 시장으로 팔려나가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처음에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용을 타고 달나라로 아름답게 비상한 항아의 꿈을 형상화하며 선진입국의 의지를 위협적으로 과시했던 중국은 하루 아침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자로 곤두박질쳤다. 수백억을 들여서 과시했던 화(和)의 자존심은 하루아침에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감격에 찬 목소리로 올림픽 개막식의 개회선언을 했던 후진타오 주석은 불과 두 달 뒤 전 세계를 향해 소파파동과 멜라민파동에 관련한 사과성명을 발표해야 했다.

곤두박질 친 중국의 이미지를 다시 회복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주선까지 쏘아올리며 선진국으로서의 모양새를 내는 데 바빴던 중국은 아마도 속이 탈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진정으로 국제 사회에서 대국으로서 세계의 신임과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올림픽 개막식에 들였던 것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정성과 집중력으로 이 사태의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중국의 성급한 야심이다. 중국은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벌써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닌 중국식 스탠다드를 고집해 국제 관계의 틀을 새롭게 짜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개막식 선수입장 순서를 기존의 관례인 영어 알파벳 순서로 하지 않고 중국 간자체의 획수 순서로 배열한 것이다. 이런 점이 국제사회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베이징올림픽의 앰블럼을 기존의 올림픽 앰블럼 대신 한자의 여러 서체 중 하나인 전서체(篆書体)를 기반으로 도안했다. 어떻게 보면 이는 주최국의 재량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도 한자문화의 위대함을 안다. 적어도 19세기까지는 전 세계 정보량의 90%를 한자문화가 차지했었다. 하지만,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그 90%를 알파벳 문화가 점유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한자를 강렬하게 부각시킴으로서 영어에 빼앗긴 문자의 글로벌 패권을 되찾으려는 듯한 인상을 풍겼던 것이다.

그와 함께 중국이 막강한 힘을 이용해 다시 세계를 중화주의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밀려왔다. 아니다. 지금은 21세기다. 세계를 끌어들이려 하지 말고 중국이 과감히 세계 역사의 흐름에 편승해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사회주의의 문을 열고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덩샤오핑의 선택을 상기하라. 이제 좀 경제가 먹고 살만 하다고 벌써 성급하게 글로벌 스탠다드를 외면하고 중국식 스탠다드를 고집한다면 제2, 3의 멜라민파동, 소파파동이 계속되는 한편, 국제관계는 또 다시 차갑게 경직될 것이다. 만일 중국이 5000년 역사의 문화력과 급부상한 경제 및 외교력을 기반으로 하여 장차 군사력에까지 세계 최대강국의 위치에 도전하려는 패권의식이 있다는 인상을 준다면, 그래서 만일 미국이 과거처럼 중국을 최대의 적대국가로 지목하게 된다면 세계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 될 지도 모른다. 중국은 그것을 원하는가.

평화와 화합을 내 세운 경이로운 개막식 광경의 이면에서 13억 중국인들이 과시하고 있는 이 거대한 국력의 제의(祭儀)를 보며 느끼는 두려움은 저 힘이 우리 한반도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기세등등한 저 중화 민족주의와 공생하는 비결을 우리는 갖고 있는가. 개막식 후반 선수 입장식 때 등장한 한국과 북한 선수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런 의문을 던지고 있었다.

지금도 베이징올림픽 하늘을 눈부시게 밝혔던 성화 점화장면이 눈에 선하다. 체조 스타 리닝(李寧)이 한 마리의 새가 되어 공중을 날아오르면서 성화대에 불을 붙이는 광경이 TV화면에 클로즈업 되자, 새 둥지 모양의 냐오차오 스타디움은 그야말로 터져 나갈듯한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걱정과 우려로 가득했던 내 가슴에도 희망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저 성화는 지중해 연안 도시국가였던 그리스의 아테네를 출발하여 유럽과 미국을 거쳐 아시아 지역 여러 국가를 돌아 베이징까지 달려왔다. 알고 보니 이 성화가 달려온 길은 세계역사의 진로와 궤를 같이 하고 있었다.

역사학을 다루는 관점 가운데 섭리사관이 있다. 기독교 사상이 기초가 된 이 역사관은 세계 복음화의 물결이 서진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한다. 중동지역 팔레스타인 광야에서 시작된 그리스도 복음의 물결이 지중해와 로마를 거쳐 유럽으로 전파되었으며, 그 후 대서양을 건너 신천지 미국에까지 이른 이 물결은 마침내 태평양을 건너고 일본과 한국을 거쳐 드디어 중국 대륙에 까지 전파된 사실을 근거로 한 것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런 순서로 20년을 주기로 순차적으로 밀려온 올림픽의 물결도,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파고를 넘고 미·소 양대진영의 냉전의 벽을 넘어 마침내 공존과 상생을 목표로 새로운 화합의 복음을 지향하는 세계역사의 서진화 현상을 상징하는 예표가 될 만하다.

더구나 베이징 이후의 중국의 변화는 곧 세계의 변화를 상징한다. 세계 역사의 흐름은 중국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물결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그 중국의 변화가 이끄는 새로운 역사의 흐름은 과연 어디로 향할 것인가.

"중국이 참여하지 않으면 21세기에 제대로 할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후변화에서 안보, 경제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파트너십이 꼭 필요하다."

베이징올림픽을 지켜보며 토니 블레어 영국 전 총리가 한 말이다. 이제 국제사회의 관심은 이른바 ‘중국 끌어들이기(China Engagement)’에 쏠릴 전망이다. 베이징올림픽 참석 직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워싱턴 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대통령 취임 전 CNN과의 인터뷰에서도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차별화할 가장 중요한 정책 분야가 어떤 것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마디로 ‘중국’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아무튼 이제 중국은 싫던 좋던 국제사회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글로벌 이슈인 기후변화, 안보, 교역 문제뿐만 아니라 인권문제 해결 및 해외의 사회공헌 활동, 시장체제의 개방과 자유민주주의 확대 등 다양한 현안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책임을 다해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될 전망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중국지도부와 국민들이 1989년도의 천안문사태에 대한 정신적 부채 등으로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가져왔던 굴레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 문화, 군사력 위에 윤리적인 중국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의 변화는 바로 이와 같은 도덕적 리더십 확립을 핵심과제로 삼을 때 비로서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1978년 개혁 개방이 시작된 지 꼭 30년 만에 열린 이번 북경올림픽은, 그동안 30년간 고생해 온 중국인들의 어깨를 펴게 하고 그 노고를 치하하는 자축의 향연이었으면 싶다. 나는 그렇게 보고 싶다. 아편전쟁 후 서구 열강으로부터 100년간 침탈을 받았던 쓰라린 역사를 딛고 일어선 중국은 이제 동서양 세계역사 흐름의 가장 중요한 합류지점으로 들어섰다. 한당(漢唐)시대 이후 1000년 만에 다시 세계 속에 재등장하는 중화민족 부흥(팍스 시니카)의 이 축제가 세계와 더불어, 세계를 섬기며, 세계를 위한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는 중국의 모습을 기대케한다. 그래서 마침내 중국이 베이징올림픽에서 표방했던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One World, One Dream)’을 이루어가는 그런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3시간 반 가까이 진행된 개막식의 전모를 시청하는 동안, 한방에 둘러모인 일행들과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 가슴속에 숨어 있는 소수민족으로서의 이중적인 감정들 ― 애환과 여망을 동시에 감지하면서, 그리고 이러한 감각과 지적활동이 중국을 뛰어넘어 세계역사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화해의 여정(和諧之旅)을 시작하는 단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하나님, 이 길이 당신이 원하는 길입니까. 중국을 통해 중국을 넘어서야 할 길은 어디로 열려있나요. 작은 자를 사용하여 큰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 새로운 역사발전의 진로를 위해 이 소수민족들을 사용해주십시오. 이들을 통하여 중국과 세계가 조화롭게 발전하는 길을 예비해 주십시오.

마음속으로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데 불현 듯 몇년전에 읽었던 책 한권이 기억에 새롭게 떠올랐다. 일본 고쿠시칸대학 교수인 이시바시 다카오가 쓴 ‘대청제국’(홍성구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이라는 책이었다.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화이일가(華夷一家)’ 즉, 1750년대 후반 최대 판도를 형성하던 청나라가 중국의 한족과 소수민족들을 하나의 ‘다민족 국가’ 개념으로 결속시키기 위하여 다섯 개의 주요 민족을 동등한 중국인으로 인정하는 오족(五族)체제를 공포했으며, 이 체제는 나중에 현대중국의 성(省)과 자치구제도의 연원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번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 티베트에 대한 국제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부르짖었던 구호가 바로 이 ‘화이일가’였다. 이는 청나라의 국정 슬로건을 글자 한자 안 바꾸고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지금 중국의 표준어인 베이징어 역시 한족만의 것이 아니다.
지금의 베이징어는 만주족과 몽골족, 한족이 뒤엉켜 살았던 요동지방 언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게 정설이다.
당시 이 지역의 지배자는 이미 만주족이었고, 그곳에서 사용했던 방언은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만주어와 한어가 결합된 언어였다. 이 언어가 청나라가 베이징에 입성한 후 베이징어가 되었으며 이후 중국의 표준어가 된 것이다.
흔히 식자들이 말하는 ‘만주족은 힘으로 한족을 점령했지만 결국 한족문화에 동화되어버렸다’는 식의 이야기는 성립되지 않는다.
청나라 5대 황제였던 옹정제(雍正帝)가 한족들에게 내린 준엄한 경고가 이를 입증한다.

“변경에 살던 여러 부족이 판도안으로 귀복했다. 이것은 중국의 신민에게는 위대한 행운일 뿐 그 무엇도 아니다. 어찌하여 아직도 화이(華夷), 중외(中外)의 구분이 있다고 하는가”

어쩌면 오늘날 중국 55개 소수민족 인민들의 가슴속에는 옹정제가 질타했던 이 한마디가 삶의 가치가 되고 목표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백두산 천상호텔에서 TV영상으로나마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 동참했던 우리 민박회 일행들은, 저마다 몸은 비록 산에 있으나 마음은 중국 온 천하를 넘나들며 새로운 역사발전의 지평을 꿈꾸며 날아오르는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비상하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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