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산 글

[서울=동북아신문]나는 어제 선배선생을 만나러 1호선 전철을 타고 석계역으로 갔다.
출구에 나가서 휴대전화기를 열어 보니 약속시각이 아직도 반 시간가량 남아 있었다.
바삐 서두르다 나니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다.

버스정류소 저쪽에 간이 포장마차가 보였다.
나는 포장마차에서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어묵을 먹었다.
한참 먹고 있노라니 버스를 타는 쪽에서 와짝 떠드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그 소리가 내 귀에 익었다. 나는 쳐다보았다.
한 오십 대 초반의 중년 사나이 세 명이 버스를 타려고 그러는지 거기서 서성거리면서 욱짝 떠들고 있었다.

내가 자세히 쳐다보니 셋 다 머리숱은 더부룩하고 옷은 시세에 떨어진 옷을 입었는데 유난히 눈에 확 덜어오는 것이 세 명다 얼굴이 수수떡처럼 벌겋다.
분명히 대낮에 알코올로 얼굴을 색칠한 것 같다.

옷을 어떻게 입던 술을 어느 때 먹든 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가 감히 인권을 침해하면서 뭐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내 귀에 그슬리는 것은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옆 사람들에게 지장을 주니 말이다.
더구나 한국말 절반에다 중국말 절반을 섞어서 큰 소리로 소리치며 말하니 옆에 있는 사람들은 벌써 눈살을 찌푸린다.

그렇게만 해도 괜찮겠는데 거기에 또 어린아이처럼 장난기가 발동해서 가끔가다 <와/ > 하고 고함까지 지르며 술래잡기까지 해대니 옆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랄 할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들도 어안이 뻥뻥해서 쳐다본다.

안 그래도 요새는 사회가 불안하다. 매일 테러니 급변사태니 하면서 서로 노심초사고 있는데 공공장소에서 갑자기 큰 소리를 질러봐라, 사람들이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한 지나가든 아저씨가 보기가 구차한지 그렇게 장난하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본인들도 차들이 왔다 갔다 하니 위험하다고 말하자 장난을 거만 둔다.
아저씨의 저지로 장난은 더는 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개운하지가 않았다.

며칠 전의 일이다.
머리를 깎으려 가리봉삼거리에 있는 골목의 어느 한 이발관에 갔다.
머리 깎으려는 사람이 내 앞에 두 명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소파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면서 신문을 뒤적였다.
텔레비전에서는 한국과 우즈베키스탄과의 축구경기를 다시 중계하고 있었다.
축구에 대해서 이발사와 고객이 말이 오가고 있었다.
한참 신문과 축구를 번갈아 보다 나니 내 차례가 되었다.

머리를 깎으면서 나는 축구를 잘 모르지만, 인터넷에서 본 박지성과 이영표의 국가축구팀 은퇴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이발사는 아주 좋은 일이라고 한다. 후배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선배로서 미덕이라 한다.
이렇게 조용히 이야기하다 나니 머리는 거지반 다 깎은 것 같다. 이제는 안면 면도만 남은 것 같다. 그런데 이발사는 머리를 다 깎아서니 일어나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의아해해서 말했다.
“면도는요?”
“면도해요?”
이발사도 나를 빤히 쳐다본다.
“중국동포들은 돈 3천 원이 아까워서 안면 면도는 하지 않던데?” 하면서 우물쭈물 넘긴다.

그리고 또 하는 말이 중국동포들은 돈 쓸 줄 모른다고 한다. 술과 노래방에는 엄청나게 돈을 쏟아 부어도 돈 삼천 원이 아까워서 자기 몸을 깔끔하게 하는 데는 발발 떤다고 한다. 그리고 더 형편없는 것은 머리를 깎고는 머리도 안 씻고 가는 사람이 많단다.

물론 이발사의 말에는 전면성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기분이 안 좋았다. 그래서 나는 이발사의 말에 더는 말도 섞지 않았다.

그 일이 있는 후 어느 날 이였다.
그날은 다른 때보다 일찍 퇴근했으므로 찬거리나 좀 사려고 가리봉시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는 오후 세시쯤 되어서 길에는 사람이 그리 많이 않았다.
가리봉삼거리에서 건널목을 건너 가리봉시장 쪽으로 굽이 터는데 갑자기 떠드는 소리가 났다. 나는 호기심에 동해서 소리 나는 쪽으로 가보았다.

한 사십 대 중반의 사내가 일방적으로 한 아주머니를 삿대질하며 욕을 하는 것이다.
그 사내의 모습은 구걸하는 사람처럼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발에는 기름한 번 먹어 보지 못한 뒤축이 꾸겨진 구두를 신고 상체에는 색깔이 낡은 칠팔 년 전에 유행했던 점퍼를 입었으며 모자는 떼가 꼬질꼬질한 것 체로 쓰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은 모자 밑으로 더부룩하게 나와 몇 달 동안 이발을 안 한 것 같다.
더욱 보기 구차한 것은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바람처럼 왔다갔다 한다. 거기에다 얼굴은 수수떡을 발라 놓은 것처럼 붉다 못해 벌겋다.

구경꾼한테 물어보니 자기는 가만히 지나가는데 아주머니가 자기를 밀쳤다고 시비를 건다고 한다.
그래서 그 아주머니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사내는 계속 한국말 절반 중국말 절반 섞어가며 높은 소리로 쌍욕을 하고 있다.

나는 처음에는 지나가던 노숙자인가 했다.
그 사람의 말소리를 듣고서야 그 사람은 노숙자가 아니라 중국동포라는 것을 알았다.
나 자신이 창피해서 더 구경하고 싶지 않아 사람들의 틈으로 빠져나왔다.

나는 어제 일과 며칠 전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정말로 이발사가 우리를 편견으로 얕잡아서 말한 것만 아닌 것 같다.

물론 일부 우리 동포들의 심정을 이해할만하다. 고국이라 믿고 찾아왔는데 어느 누가 따뜻하게 대해준 이 있었던가?
그저 부족한 인력 수급으로 일회용 노동자로 취급만 받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남이 다 꺼리는 허드렛일과 3D업종에서 며칠, 몇 달도 아닌 몇 년을 버티면서 고향에 있는 부모를 섬기랴, 아들딸의 공부 뒤 바라지를 하랴...
또 거기에다 일터에서 갖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생것으로 삼켜야 하는 그 심정 백번 알만하다.

그렇다고 매일 술에 고주망태가 돼서 거리를 휘젓고 다니거나 내 혼자만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고함을 지르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시비를 거는 것이 바람직하겠는가?

그리고 같은 갑이면 분홍치마라고 이왕이면 겉면이라도 깔끔하게 다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게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지금 인터넷에 들어가 보시라 일부 사람들은 우리를 얼마나 얕잡아 보고 미워하는지 아시는가? 이를 수록 우리는 마음과 행동을 똑바로 하고 한국사회에 깊이 덜어가 국민과 같이 숨을 쉬고 모범적으로 법과 공공질서를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이럴수록 우리는 초심에 품었던 소망을 하루 빨리 실현하기 위해 마음의 탕개를 더 단단히 조이고 열심히 뛰고 또 뛰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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