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들
장혜영


그렇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한창 촬영에 신이 나던 지혜가 갑자기 앗~ 하는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바윗돌위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며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녀가 손에 잡았던 삼각대도 함께 넘어졌다. 카메라가 바위에 충돌하며 퍽! 하는 부드러운 소리를 냈다. 다행이도 이끼가 두터웠기 때문이다.
“파랑 씨.”
그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촬영을 하던 정도는 한달음에 파랑이 쓰러진 장소로 달려왔다. 파랑은 배를 부여안은 채 고통을 호소하며 땅바닥에서 마구 뒹굴었다. 그녀의 얼굴과 머리카락에 가랑닢들이 매달려 데룽거렸다.
“왜 그래요? 파랑 씨. 어디 다쳤나요?”
“배가.”
“배라니요?”
불길한 예감이 뇌리에서 번갯불처럼 번쩍 튕긴다. 걱정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은 아닐지. 더럭 겁이 났다.
“아무래도 출산이……산통이 시작되었나 봐요……어머, 나 죽어요! 하신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아요. 아이-아악! 선생님. 살려주세요. 저 죽어요. 아아- 아악!”
“해산날까지는 아직도 한달이나……”
“조산일 수도 있잖아요. 아아! 아파요. 정말 아파요! 뭐가 나왔어요. 질퍽한 것이……”
“양수가 터진……제가 봐도……”
정도는 급한 김에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허둥지둥하기만 했다. 양수가 터지면 곧 출산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이다.
“빨리 도와주세요. 뭐가, 아이가 나오려고 해요……걸렸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파랑의 얼굴에서 어느덧 땀이 비 오듯 흘러 내리고 있었다.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하체에 힘을 주느라고 안간힘을 쓰는 통에 얼굴이 벌겋게 핏독을 쓰며 혈관이 불끈불끈 팽창한다. 사지는 힘을 줄 때마다 죽은 개구리다리처럼 푸들푸들 경련한다.
“병원엘……”
“병원에 갈 시간이 어디 있어요. 어서 아기를 받아……”
정도는 자신의 코트를 벗어 땅바닥에 깔고 파랑의 몸뚱이를 그 위에 눕혔다. 그리고는 스커트자락을 쳐들고 다리 밑을 들여다 보았다. 음부에서 하혈이 쏟아져 나오며 허벅지를 벌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스커트치마가 벌어지지 않아 벗기려고 했지만 손이 떨려 뜻대로 되지 않았다.
“찢으세요. 손칼이 있잖아요. 찢으시라고요……아아- 나 죽어요! 왜 이렇게 아픈거죠. 으-으음!”
갑자기 늘 호주머니에 휴대하고 다니던 손칼도 급하니까 찾을 수 없다. 그냥 이발로 물어뜯었다.
스커트를 두 손으로 쫙 찢었다. 순간 그녀의 피범벅이 된 하체가 활짝 드러났다. 외음부는 무서울 만큼 커다랗게 부어 있었고 찢겨져 있었다. 금방 펴 놓은 코트위에 핏물이 수증기를 물물 피워 올리며 개구리 알처럼 두둑이 쌓여 있었다.
피는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왔다.
파랑의 손가락이 허빈 땅에서 거죽이 벗겨지며 아직도 언 채로인 동토의 속살이 드러났다.
“병원으로 옮겨야지. 저로서는……”
“아이가 안 보이세요. 머리가……제가 힘을 줄 테니 잘 보세요.……으-으윽! 아, 아파요! 안 나와요.”
한동안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노라니 발 같이 생긴 살덩이가 핏물을 뒤집어쓴 채 로 외음부 밖으로 비주룩이 내밀린다.
“보입니다. 뭔가가 밖으로 나왔어요.”
“뭐예요. 아기 머리죠?”
“아니, 발 같은데요.”
“발이라고요. 아. 전 인젠 죽었어요!”
난산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정도를 공포에 전율시켰다. 아기가 죽을 수도 있고 하혈이 멈추지 않으면 산모의 생명에도 위험이 닥칠 것이다.
아이는 죽더라도 파랑은 살려야 한다.
“힘을 내세요. 제가 잡아당길 테니까……”
“안돼요. 아기한테서 손을 떼세요. 어서요!”
정도는 파랑이 그처럼 무서운 소리를 지르는 걸 처음 들었다. 쨍하고 쇳소리처럼 새되게 울리는 고함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러 벌렁 엉덩방아를 찧었다.
“절 업으세요. 어서요. 업고서 병원으로 가요.”
“하혈이 심한데 업고 가다가 도중에……”
“망설일 새가 없어요. 어서요. 제발 빌어요!”
파랑은 스스로 땅바닥에서 엉금엉금 기며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알았습니다. 업을게요.”
그녀를 등에 업었다. 순식간에 잔등이 뜨거운 액체로 푹 젖어 들었다. 피비린내가 역하게 풍겼다. 여자들은 아기를 낳아 보지 않고서도 어떻게 그 모든 출산과정을 이처럼 손금 보듯 소상하게 알고 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낳을거예요.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낳고야 말거예요. 제 혼자 만의 아기가 아니잖아요. 언니의 아이고 선생님의 아이잖아요.”
그녀는 점점 탈진해 가는 듯 말소리마저 목구멍으로 잦아들었다.
“어서 달려요. 빨리요……”
카메라고 뭐고 다 내던지고 그녀만 업고 골짜기에서 미끄러지고 톺고 뒹굴면서 숲을 헤집고 등산로까지 간신히 나오니 하늘이 도왔는지 마침 지나가던 등산객 부부를 만났다.
“좀 도와주세요. 산에서 갑자기 산통이 발작해서……”
다행스럽게도 50대의 사나이는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다. 대답 대신 주위에서 나무 두 대를 꺾어 오더니 코트를 비끄러 매어 간편한 들것을 만들었다. 사나이와 함께 파랑을 들것에 눕히고 생각보다 빠르고 쉽게 산 아래까지 하산할 수 있었다. 주차장에 당도하자 사내에게 고맙다는 인사마저도 변변히 올릴 사이도 없이 부랴부랴 파랑을 승용차에 옮겨 싣고 시내로 달렸다.
“선생님. 저…… 윤정도 씨라고 불러도 되죠?”
뒷좌석에 의식을 잃고 누워 있던 파랑이 잠간 정신을 차린 모양 말을 건넨다.
“당연하죠.”
“제 본명은 파랑이 아니라 미라예요.”
“은미라 씨.”
“네. 절 사랑하시죠?”
“네.”
“제가 정도 씨의 친구인 준범 씨를 자살하도록 완전범죄를 자행한 나쁜 여자라고 해도 사랑하실 거예요?”
“그럼요.”
“다 알고 계셨던거죠?”
“네…… 말을 하지 마시고 가만히 계세요. 하혈이 더 심하니까.”
내리막길을 달릴 때 그녀의 하신에서 흘러 나온 핏물이 뒤로부터 물길을 이루며 운전실까지 흘러들어 고무바닥에 붉게 고였다.
정도는 저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쭈르륵 흘러내렸다. 자꾸만 시야를 가렸기에 손등으로 눈물을 부단히 닦아야만 했다.
“전 나쁜 여자예요. 정도 씰 사랑할 자격조차 없어요.”
“아닙니다. 파랑 씬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고운 여자입니다. 독거노인을 돌봐주시는 걸 보고서 전 벌써 알았습니다.”
“그건 저의 더러움을 감추고 양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에요.”
“진통은 좀 어떻습니까?”
“마비된 것 같아요. 인젠 아픈 줄도 모르겠어요. 맥이 다 빠지니까 도리어 편안한 것 같아요.”
“병원에 다 왔으니 조금만 더 참으세요. 말을 하지 마시고……”
“전 끝이 난 것 같아요. 제발 아이만 살려주세요. 부탁이에요.”
“무슨 그런 말을……아기도 파랑 씨도 다 살아야 합니다.”
가속페달을 밟거나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구둣발 밑에서 핏물이 질퍽거렸다. 과다출혈로 산모가 숨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정도더러 교통규칙마저 무시하도록 만들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행인만 없으면 적신호등도 무시하고 무단통행을 강행했다. 느릿느릿 늑장을 부르는 차량이나 적신호등에 막힌 차들은 따돌리며 요리조리 초월운전을 하거나 불법과속운전을 하기도 했다. 아슬아슬한 충돌사고를 면한 운전기사들은 모두 그를 음주운전자인줄을 알고 욕설을 퍼부어댔지만 그런 신경질적인 반응쯤에는 아랑곳 하지도 않았다.
또 의식을 잃었는지 뒷좌석은 다시 잠잠하다.
진눈깨비는 아예 함박눈으로 변하면서 서울의 하늘을 꽉 덮으며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 해의 마지막 눈이리라. 그래서인지 석별의 정이 아쉽다. 강설은 땅에 내려앉자마자 녹아버리며 달리는 차량들을 썰매처럼 줄줄 미끄럼질을 시킨다.
“올해의 마지막 눈인가 봐요. 설경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나지막한 목소리가 가쁜 숨결에 토막토막 잘리며 또다시 새어 나온다. 마자막이라는 말이 웬일인지 귀에 걸린다. 죽음을 암시하는 말 같아서 가슴이 꿈틀했다.
음주운전자로 판단한 패트롤카 한 대가 요란스런 경보를 울리며 뒤를 추격해 오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불법운전을 멈추지 않았다. 면허정지가 어찌 인간의 생명에, 더구나 사랑하는 여자와 아기의 생명에 비하랴. 교통규칙을 위반하면서라도 두 사람의 생면만 살려낼 수 있다면 경찰에 구속되어도 도리어 기쁠 것이다. 규칙은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지만 때로는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장애물로 반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오늘 처음으로 느꼈다.
차를 어느 산부인과 앞에 세우고 뒷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산모는 혼수상태에 빠진 채 피바다위에 누워 있었다. ‍
무작정 등에 업었다. 병원 안으로 막 들어가려는데 뒤미처 따라온 패트롤카 안에서 교통순경 두 사람이 뛰어 내리더니 허둥지둥 그를 쫓아왔다.
“아저씨. 잠간 봅시다.”
순경이 가쁜 숨을 헐떡거리며 정도의 앞을 막아섰다.
“당신들 눈에는 규칙만 보이고 긴급 상황은 보이지 않습니까?”
정도는 타일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난산입니다.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단 말입니다. 어서 길을 비켜주세요. 사람부터 구하고 봅시다. 그 담엔 순순히 당신들을 따라갈 테니까요.”
혼절한 채 고개를 축 늘어트린 산모의 창백한 얼굴과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을 번갈아 보더니 순경들도 상황의 급박함을 파악한 듯 그제야 한걸음 물러서며 길을 틔워준다.
“난산입니다. 생명이 위급합니다!”
정도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은 카운터의 간호사가 어디론가 급히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몇 분 내에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타났다.
여러 사람들이 서둘러 산모를 응급실로 옮겼다. 정도는 간호사들이 앞길을 막아서서야 걸음을 멈췄다.「분만실출입금지」라고 쓴 간판이 문 이마에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
“제발 산모를 살려주세요. 아기가 죽더라도 산모만은 살려내야 합니다.”
간호사의 손을 잡았지만 아가씨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그제야 산모가 죽고 사는 건 간호사와는 상관없고 의사에게 달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맥없이 물러섰다.
대기실에 와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불안하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이라는 말이 어쩐지 불길했다. 지금까지 비밀에 붙였던 준범의 죽음에 대한 죄를 선듯이 실토한 것도 예사롭지가 않아 보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갑자기 분만실 안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정도는 저도 모르게 대기석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만실을 향해 다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분만실문이 활짝 열리며 한 간호사가 강보에 싼 아기를 안고 나타났다.
“아빠시죠?”
그를 향해 물었지만 정도는 간호사를 지나 뒤따라 나오는 의사의 팔소매를 잡았다.
“산모는 무사합니까?”
그것이 아기의 탄생보다 더 궁금했다.
“과다출혈로 숨졌습니다. 아기가 살아난 것만 해도 기적입니다.”
의사는 평상심 그대로 얼굴색 한 가닥 변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네?!”
정도는 자신의 귀가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자신이 잘못 들었거나 의사가 잘못 말했을 거라고 억지를 부리고 싶었다.
“죽었습니다. 아기는 다행이도 절개수술로 분만했고요.”
의사는 보다 정확하게 확실한 표현을 골라 입 밖에 내던지고는 분만실을 떠나갔다. 사람이 죽었으니 더 이상 의사가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녀가 죽다니?!
파랑이 아니, 미라가 죽다니?!
슬픔이나 고통보다는 허탈감이 먼저 밀려들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이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죽음이라는 말의 의미도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리셨어요. 왜 일찍 병원에 모셔 오지 않으셨어요.”
간호사는 무심한 남편을 나무라듯 곱지 않은 눈길을 흘긴다.
“아기가 생존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 남자애에요. 안아 보실래요.”
정도는 엉겁결에 간호사가 넘겨주는 아기를 품에 안았다. 아기의 얼굴에는 아직도 양수와 핏물이 묻어 있었고 눈도 뜨지 못하고 있었다. 녀석도 엄마가 죽은 사실을 아는지 울음을 그칠 줄을 모른다.
“엄마를 많이 닮은 것 같아요.”
간호사가 무심히 던진 말에 아기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지만 누굴 닮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인간이 아닌 그냥 무슨 외계인 같아 보일 뿐이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아이! 그래서 측은하고 가엾어 보일 뿐 귀엽지도 예쁘지도 않았다. 엄마의 죽음을 대가로 태어난 아기의 생명욕구가 지독하리만치 영악해 보인다.
그 면에서는 제 엄마를 닮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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