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제3절 사회생활습성

1.1.1. 1. 전통유희

씨 름
조선이주민의 전통적 민족운동항목이다. 해마다 단옷날이면 씨름장에 모여들어 경기를 진행한다. 간도에서는 함경도에서 살던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 함경도씨름을 많이 하였다, 함경도씨름은 늦은 샅바걸이씨름으로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씨름은 20년대에 와서는 단일종목경기대회까지 있었다. 사료들을 두루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1923년 양력 6월 18일 용정동흥중학교 교정에서 단오씨름대회가 열렸는데 함경도 씨름이었으며 관중은 6000-7000명에 달하였다. 결승전에서 용정의 김경준(24세), 조선 종성의 길용률(20세), 용정 영신의 황경식(24세)이 각각 1, 2, 3등을 따냈다.
1926년, 훈춘현에서 씨름대회를 열었는데 하다문향의 박광호 씨가 2등을 하였다. 박광호 씨는 그 후 훈춘, 조선 등지의 씨름경기에 참가하여 수차 1등을 따내었으며 일생 동안 황소 13마리나 탔다,
1927년 6월, 팔도구학교에서 단오절씨름경기가 있었는데 백하진 씨는 비교로부터 결승까지 무려 38명이나 넘어뜨리고 우승을 하였다.
1931년 6월 20일부터 22일까지 용정 육안교 부근 해란강가에 자리 잡은 광장에서 단옷날씨름대회가 열렸다. 이번 대회에서는 특별상을 걸었는데 1, 2, 3등에 각기 황소, 중축에 가는 소, 송아지를 상으로 주었다. 결과 1등은 윤중렬, 2등은 대성중학교의 김상수, 3등은 용정청년구락부의 박춘식이였다.
1935년, 국자가씨름대회에서는 연길뿐만 아니라 용정서 온 선수들도 참가하였으며 조선 청진에서 온 선수들도 있었다. 이번의 씨름은 함경도씨름이었다. 조선 청진의 강영필이 1등을 하고 연길의 김기률과 김동진이 각기 2등과 3등을 하였다.
씨름판은 마당 한가운데 모래를 둥그렇게 펴놓는다. 씨름꾼은 넓적다리에 샅바를 매는데 샅바를 매는 것도 어느 쪽 다리에 매는가에 따라 손잡는 법이 달랐다. 조선이주민의 씨름은 아주 널리 보급되었다. 씨름을 할 때 샅바가 없으면 바지가랑이나 허리춤을 쥐고 씨름을 하였다. 그리고 모래판이 없으면 밭머리거나 잔디밭에서도 씨름을 하였다 .
농촌에서는 샅바를 매지 않고 하는 ‘민중씨름’(네굽씨름이라고도 함)을 많이 하였으며 때로는 선 채로 하는 ‘선씨름’도 하였다.
재만조선이주민은 씨름에서 오랫동안 무체급개인전의 경기방법을 사용하였다. 키가 크고 작고 간에, 체중이 무겁건 가볍건,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상관없이 씨름판을 벌렸다. 이것은 조선이주민씨름이 아주 널리 보급될 수 있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이다.

그 네
동네어구 등 곳에 서있는 큰 느티나무나 버드나무의 굵은 가지역에 매어놓고 동네사람들이 수시로 나와서 뛰며 놀게 한다. 대개는 단옷날에 그네뛰기를 하는 것이 통례이다. 그네는 또 인공적으로 장대를 세워 매기도 한다. 혼자 뛰기도 하고 두 사람이 마주 서서 뛰기도 한다. 그네의 경기는 누가 제일 높이 올라가느냐에 따라 승부를 정한다,
재만조선이주민의 그네뛰기는 이주 초기부터 조선이주민이 집거한 촌마다에는 거의 그네터가 없는 곳이 없어 단옷날 여성들의 놀이로서 대성황을 이룬다. 하지만 운동종목으로서의 그네뛰기는 20년대 초기부터일 것이다. 「훈춘현체육지」에는 20년대 초에 그네 등 운동종목을 포함한 운동대회가 있었고 「도문시체육지」에는 석건평에서 1933년에 학생, 농민이 참가한 구(区)운동회가 있었는데 경기종목에 그네가 있다는 기재가 있다. 1935년 월청, 위자구 등 지역에서 단오절에 그네뛰기경기를 하였고 1937년 6월 13-14일 진행된 위자구 그네뛰기경기에서 안현숙 씨가 1등을 하였다.

널뛰기
널뛰기는 음력 정초를 비롯하여 5월단오, 8월추석 등 명절에 성행하였다. 재만조선이주민의 널뛰기는 이주 초기부터 시작되었으며 농촌에서 많아 성행하였다. 널뛰기가 경기종목에 들기는 1930년대이다. 훈춘현에서는 1938년과 1940년 단오절에 널뛰기, 그네, 씨름대회가 있었다. 널뛰기경기는 주로 단옷날에 진행되었다.
널뛰기 시설에는 널 고임목이 있다. 널은 흔히 홍송을 많이 쓴다. 고임목은 널 중간 밑에 괴는 것을 말하는데 옛날에는 짚단을 많이 썼다. 짚단이 아니고 가마니 같은데 흙을 넣어 쓰기도 했다. 널뛰기경기에는 줄뽑기와 표현이 있다. 선수들이 올라간 높이와 공중에서의 표현을 보고 우승을 정한다.

가면무
남만 지대에서 유행되었는데 집단생활 속에서 창조된 전통유희이다. 명절이거나 농한 때면 농민들이 가면을 쓰고 가짜옷(假装)을 몸에 걸친다. 형상적인 유희로서 많은 환영을 받았다.

농악무
전통유희의 일종이다. 벼모내기, 물도랑을 수리하거나 제방을 쌓거나 풍년을 경축할 때 여러 가지 민족악기를 연주하여 한편 노래하고 한편 춤춘다. 농악무는 조선이주민의 근로하고 용감하고 활발한 품성과 창조정신을 반영하였다.

화 투
화투놀이는 여러 가지이다. 보통 월별로 그림을 맞춰가는 민화투는 끗수를 계산하여 가장 많이 딴 쪽이 이기는 것이다. ‘약’은 난초약, 단풍약, 비약, 오동약 등이 있는데 그달의 4장을 모두 차지하면 규정에 따라 한사람께 20 또는 40을 준다. 술과 돈을 걸고 놀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밖에 윷놀이, 목마타기, 팽이치기. 제기차기, 공기놀이, 연띄우기, 장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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