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향미 수기

[서울=동북아신문] 목사님이 사장님에게 선물해준 책, 어느 책에서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감사기도”란 네 글자에 매료된 적 있다. 이혼까지 생각 하고있는 결혼 10년차 여인이 “범사에 감사하라”는 설교말씀을 듣고 매일 술에 절어 사는 남편을 대상으로 감사의 기도를 들이는데 “코 골며 자는 남편을 보니 그래도 과부보다는 낫고, 저토록 술에 취했어도 다른 데 안가고 집을 찾아오니 감사하고, 토요일은 술을 더 많이 마셔, 주일 날 집 지켜줘서 감사하고, 주일 날 계속 자니 교회 나오는 데 불편하지 않아 감사하고...”이런 식으로 감사할 것이 입에서 계속 넘쳐나는 대로 기도를 하니, 물 마시러 일어난 남편이 이를 알고 감동되어 술버릇 떼고 착한 남편이 되었다 한다. 

 그 얘기를 했더니 교회 다니는 향이언니가 손벽치며 흥분하신다. “바로 그거야, 나도 감사기도 하잖아. 우리 집 인간에게 기적 일어날 가 싶어서야. 나 그 인간에게 뒤통수 많이 맞았어. 다투고 싸우고 별짓 다해 봐도 안 되더라. 집만 더 나갈 뿐이야. 좋은 남편 될 가능성이 있다고 감사 하는거야.”
 어느날 내가 즉흥으로 감사 일기를 쓴 적 있다. “아침이면 하얀 햇살 어김없이 내 창문 찾아주어 감사하고, 건강한 몸으로 일 나갈 수 있어 감사하고, 날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서 감사하고, 곁을 지켜주지 않아도 무럭무럭 잘 커주는 딸이 감사하고, 손가락 10개가 다 있어 자판 뚜드리는 것 생각해도 감사하고…모든 것이 고맙다.”그랬더니 한동안은 마음이 쾌적해져 지겨움 타령이 입 밖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미국에서 온 딸이 돌아갈 날이 임박하여 옥이언니의 얼굴에는 그냥 수심이 가져지지 않는다.
장마가 서서히 물러가기 시작하면서 가게 미어터지게 손님 많았던 그날, 다들 녹초가 되어 마무리도 제대로 못하고 퇴근하는데 카운터에 계시던 사장님이 싱글벙글 하시며 올해 들어 최고로 많이 팔았다면서 2만원씩 장려해주셨다.
 고된 하루였지만 2만원 더 받고, 가게를 빠져나와 버스정류소로 냅따 뛰는 언니로, 미처 화장실 들르지 못해 길섶에서 급히 볼일 보는 언니로, 내 살았다 하며 정신없이 담배 피우시는 벌교언니로 각자 황급히 버스정류소로 움직였다. 버스정류소 옆 “이종환의 쉘부르”에는 주차장이 만원이 됬는지 주차요원이 길가에 주차하도록 안내하고 있었고 건물에서 새어나오는 애잔한 노래가 빗 냄새 나는 여름밤을 울리고 있었다. 팔짱끼고 서성이던 내가 현수막에 써 붙인 글을 소리내어 읽었다. “오늘 공연 밀팡(mr.팡)……베토벤바이러스”
 먼 사람 이름이 저래? 먼 바이러스야? 

 옷 갈아입으면 주방언니라고 상상도 못할 만큼 세련된 여사장님 분위기를 팍팍 풍기는 안산언니가 안경너머로 날 힐끗 보며 다시 소리 내어 읽는다. “오늘 공연 미스터 팡!”
 에이, 쪽팔려~ 그놈의 영어, 독학으로 알파벳은 졸업했는데 말이야.
 주방에서 훈제오리에 동동주 마신 언니들이 술기운이 퍼지는지 버스에 올라 한참 떠들어대다가, 버스에서 내려 한잔 더 하자며 몰려갔다. 물론 나도 끌려갔다. 주점이라 해봤자 지하철역 부근에 있는 비닐하우스 주막집이었다. 떠들썩하며 들어서니 술이 취해 누워있던 주인언니 둘이 발딱 일어선다.
 벌교언니는 담배 피우시는 폼이 꼭 10년이나 했다던 호프집 여사장님 포스다. “향미야, 너 술 안마시면 언니들에게 술이라도 따라라. 어쩌면 눈치 없냐?” 어느새 술이 거나해진 언니들이 다른 언니들 험담을 걸쭉하게 해대며 갈린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고, 혼자 정신이 말짱한 나는 멋 적은 나머지 다시는 이런 장소 따라오지 않으리라 맘먹고 있을 때, 바로 이곳에서 천금 주고도 못 살 인생 공부 단단히 한 것이다. 

 옥이언니가 슬픔과 분노가 잔뜩 밴 목소리로 흐느끼듯 말했었다. “향미야. 나 너보다 세살위지만 너보다 못해! 널 보며 많이 느꼈어. 넌 열심히 적금해서, 몇년만 고생하면 보람이 있잖아. 하고 싶은 일 할 수도 있고, 나도 젊었을 때 돈 못 번게 아니야. 많이 벌었어. 그 돈 적금한거 하나도 없어. 그리고 지금 이렇게 살고있어. 휴~~”
 “그러나 나 이제 이렇게 안살거야. 나 늙어서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늙어서도 생계 위해 이런 고된 일 하지 않을 거라고!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돈 모으며 준비해야겠어. 나 하고 싶은 일 많아. 이렇게 살기 싫어!” 목소리가 힘 있게 갈리고 있었다.
 그때 담배연기 내뿜던 벌교언니의 말씀!
 “다행이다! 일찍 깨달은 거다. 난 이제 와서 그걸 깨달았단 말이야. 환갑 다 되서, 나 지금 설거지 안하면 안되.”
 내 잔잔한 마음의 호수에 커다란 돌을 던져 파장을 일구듯 충격적이다. 누구나 다 아는 도리지만, 가슴 와 닿게 느껴본 사람은 적으리라. 나 비록 악착스레 벌고 열심히 적금하고 있지만 남편이란 남자의 닥달에 피해자처럼 끌려가는 기분이고, 한국 와서 거의 매일 일 나가고, 돈 받아서는 소비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다시 일 나가야 하니 적금이 되는 것뿐이었다. 간혹 미래니 꿈이니 속생각 깊은 척 해도, 차거운 현실에 닥친 언니들의 그 뒤늦은, 뼈저린 깨달음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심장으로 느끼는 현재까지 인생의 진정한 승부에 똑바로 임하고 달려본 적 없다. 늙기도 서러울 나이에 이르러서도 생계 위해 고되고 원하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삶, 그런 인생에서 탈출하려면 젊은 시절부터 평범한 하루하루의 길을 뜻 깊게 닦아가는 수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런 깨달음이랄가?


 문득, 한달 내내 뼈 빠지게 일해 160만 벌어도 남는 게 없다고 한탄하던 향이언니가 떠오른다. 열심히 교회 다니시는 언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 한잔 먹는 시간이면 회의감이니 실의감이니 하시며 안색 흐리울 때가 많다.
 “향미야. 넌 3년이면 이런 생활 끝나겠지만 난 기약이 없어. 왜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교회까지 안 나가면 난 못 살거야.”
 “난 인간들이 싫다. 죽으면 먼지로 될 인간들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망연하게 중얼거리기도 한다.
 화장실 청소 혼자 전담하면서, 나 못지 않게 지겹다, 지긋지긋하다는 말을 내뱉군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열정적으로 살라고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신다. 눈이 어두운 사모님을 위해 성경책도 낭랑히 읽어드린다. 그러던 어느날 질식해서 못살겠노라고 바락바락 화를 내셨다.

 그날도 전쟁이었다. 5명 홀서빙들은 정신 바짝 차리고 뛰고 있었다. 이럴 때 순서 잘못되어 2인분 3인분짜리 잘못 나가는 날에는 소동이 벌이지기 십상이다. 3인분 쟁반국수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내가 번개같이 손님상에 날랐다. 음식 나오자마자 그분들은 눈을 감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일은 바로 그때 벌어졌다. “얘, 거기 아닌데.”하면서 달려간 향이언니가 손님들이 눈을 감고 있는걸 보자 잠깐 멈칫하는 듯 하더니 쟁반국수 살짝 들고 도망치듯 달려왔다. "거기 맞아요. 언니.” 정신 차린 내가 말했으나 이미 늦었다. 눈을 뜬 여자 손님이 음식이 없어졌다고 한바탕 소동을 벌인 것이다.
“기도하고 나니 음식이 없어졌어요. 세상에 이런 법 어디 있어요?” 실장언니가 연신 사죄를 해서 겨우 자리에 눌러 앉히고 사죄 서비스 왕창 들어가는데 여자 손님은 도무지 화가 풀리지 않는지 주문한 음식 외 일체 손도 대지 않는다. 향이언니가 미안해 연신 옆에서 서비스 하는데 갑자기 눈을 감고 기도를 하더라는 것이다. 음식 가져간 년 벌 받게 하고, 이 가게 벌 받게 하라고.
그다음에는 향이언니가 치를 떨며 뒤번져졌다. 세상에 저렇게 독한 여편네 처음 봤어. 음식 잘못 나갔으니 손님이 수저 대기 전에 바꿔 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허둥 댔던건데. 내 생각이 짧은 건 사실이야. 그러나 그만큼 머리 숙이고 사과했으면 됬지 어쩌라고? 교회 다닌다는 놈들이 더 독해. 난 어디 가도 절대 교회 다닌다는 말 하지 말아야겠어. 괜히 교회 욕 먹인다고. 나 내일부터 그만 둘거야. 에이. 지긋지긋해!

 실장언니와 기타 고참 언니들이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다. 그 지독한 여편네가 저주의 기도를 드리는걸 보면 이젠 식당 일 뿐만 아니라 세상살이에 만정이 떨어진단다. 언니가 내일부터 일 그만둔다고 하니 빌려보던 이어령의 “지성에서 영성으로”책을 돌려드렸다. 선물로 주겠다고 받지 않으려 했지만 내가 기어이 언니 가방에 쑤셔 넣었다. 나보다 언니에게 더 필요한 책 같았다.
 그러나 퇴근 후 사장님에게 불려갔던 언니가 이튿날, 한결 새로워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손님 대하는 태도가 더 성근해지고 깍듯해졌고, 더는 실의감이니 회의감이니 불안한 표정이 없었으며 자신의 불안한 감수를 읽으려 하기보다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남을 껴안으려는 그 노력이 눈물겹게 보였다. 언니가 그 일을 겪고 나서 어떻게 깨달음을 얻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이런 말씀 하셨다. “다 이해해줘라.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옥이언니는 딸이 미국으로 떠나자 매일같이 짜증부리고 괴팍하게 굴더니,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끝내 일을 그만뒀고, 그 대신 46살 미모의 경옥언니가 식구로 충원되었다. 미끈한 체격, 긴 생머리, 누가 봐도 사십대 후반이 아닌 삼십대로 볼만큼 아릿따운 언니다. 또한 모르는 것 없을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성깔 하나는 죽여준다. 손님이 슬리퍼 끄는 소리 너무 크다고 하면 일부러 더 질질 끌고 다니고, 사모님이 “어디 아파요? 아픈 사람 같아요.”하고 관심하면 “저 건강해요. 사모님이 더 아픈 사람 같아요.”매몰차게 대답하고, 손님이 ‘상 한번 더 닦아 주세요’ 하면 “손님! 깨끗이 닦았거든요.”하고 눈을 흘긴다. 나가는 손님마다 “제일 예쁘게 생긴 저 언니 태도는 정말 엉망입니다.”하고 신고 들어간다고 한다. 내가 휴식하던 날에는 일이 서툴다고 주방언니에게 욕먹고 크게 울었다고도 하니, 이 심상찮은 언니에게 큰 흥미를 갖고 다가선 내가 알아낸 것은: 내노라 하는 기업에서 봉급 3백만 이상 받아 오다가 나이 많다는 이유로 감원된 후, 딸 셋의 뒷바라지 위해 식당 서빙으로 뛰어 든지 3개월째, 체력이 뒷받침해주지 않아 피곤과 짜증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에는 자신의 위치가 강등했다는 분노와 불안이 가득가득 괴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엇갈린 희비 속에 울고 웃는 언니들과의 만남, 남의 일 같지 않는 그들의 애잔한 삶의 이야기 속에 내 삶의 자리도 함께 했던--한국에서의 3년 취업생활도 끝났다. 그 속에서 내 모습을 비쳐보기도, 새로운 삶의 방향을 설정하기도 하며, 계속 엮어가야 할 “내 삶의 이야기”를 착실하게 준비하고 풀어가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끝없이 감사하고 싶다. “언니들과 삶의 애환을 함께 하면서 지혜와 깨달음을 얻어서 감사하고, 그이들의 삶의 무력함 때로는 삶의 의욕이 내 인생을 채찍질하는 동력이 되어 감사하고, 그래서 점점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는 내 모습 느낄 수 있어 감사하고……”끝없이 감사하고픈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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