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식 수기

[서울=동북아신문]인간은 흔히  세상살이에 익숙해질수록 순수하고 리타적인 마음은 점점 사라지고 이악스럽게 자신의 몫에 집착하게 된다.욕심은 탐욕을 부르고 움켜쥔 돈이 저절로 굴러 돈으로 만들기도 한다.자기만 잘 살고 잘 먹고 배부르면 그만이지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와는 상관없다는식의 리기주의적사고가 만연되여 있는 이 현실에서,세상의 한구석에는 거센 바람에 맞서 작은 초불 하나를 지키려는 사람. 바로 한국<돌감자장학회>박무웅회장과 같은 사람이 있어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다양한 만남을 우연 또는 필연적으로 만난다.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몇만겁의 세월속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이라고 하지만 그냥 옷깃만 스쳐가는 만남도 있을수 있고 잊을수 없는 만남도 있을것이다.내게 있어서 박무웅회장님과의 만남은 나의 편안함과 행복만을 위해 리기의 울타리만 높게 쌓았던 삶의 방향을 돌려주는 만남이였다.아주 작은것에서부터 따뜻한 가슴과 가슴을 전할줄아는 삶을 살아갈수 있게 해준 만남이였다.

1994년여름,박회장께서 부인 남정이녀사와 함께 당시 내가 몸담고있던 흑룡강성연수현조선족중학교를 찾아왔을 때 나에게 준 인상은 투박하고 우직하면서도 믿음직스러움이였다.그때 그는 오자마자 <돌감자장학회>의 이름으로 우리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었고 또 8명장학생을 선발하여 천딸라의 장학금을 지불했을뿐만아니라 자기의 돈을 내여 교원들의 산놀이도 조직하였다.전혀 생면부지의 한 외국인으로서 편벽한 현성조선족중학교를 찾아 자매결연을 맺고 장학금까지 지불한다는것은 결코 간단한처사가 아니였다.그는 도대체 한국에서 무슨 사업을 하는 분이며 얼마만한 재산을 갖고 있으며 이렇게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이는 나뿐만아니라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짙은 호기심을 안겨주었다.그리고 장학회의 이름도 괴상하였다.<돌감자>,돌과 감자는 무슨 관계인데?정상적인 사유로서는 풀수없는 수수께끼였다.그러던 어느날 박회장은 <돌감자장학회>를 소개하면서 그 함의를 해석하였다.즉 불변의 진리를 뜻하는 돌과 조금은 어리석고 바보같지만 거짓을 모르는 순수를 의미하는 감자,진리우에 순수함이 피여나라는 마음에서 <돌감자장학회>라는 이름을 지었다 한다.

그후에도 박회장은 해마다 한번씩 우리 학교에 찾아왔는데 이듬해부터는 마침 내가 학교장학생관리를 맡게 되다나니 매번 그가 올 때마다 내가 나서서 접대하고 안내하게 되였다.그는 매번 올 때마다 몇명의 장학생을 더 선발하여 장학금을 지불하였고 때론 자기의 돈을 내여 학생지력경색 등 활동을 조직했을뿐만아니라 교원들의 유람도 조직하였다,지어는 리퇴직교원들의 문구초청경기까지 조직해주고 식사를 대접하군 했다.그밖에도 그는 10여차에 걸쳐 천여권에 달하는 도서를 보내왔는데 그 책들은 모두 그가 몇십년동안 모아온 장서들로서 우리 중국에서는 살래야 살수 없고 구할래야 구할수 없는 훌륭하고 진귀한 책들로서 그값이 한국돈으로서도 엄청 비싼것들이였다.

처음 나는 박회장의 이런 대범하고 통큰 처사를 보고 매우 감복하면서 한편 속으로 그는 아마 돈이 괭장히 많은 큰 사업가일것이라 추측했다.후에 그에 대한 료해를 한층 깊게 하면서 나는 나의 추측이 엄청 빗나갔음을 알았다.알고보니 박회장님은 많은 돈을 벌어 성공한 사업가가 결코 아니였다.그는 사업가도 아니요,그렇다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사회의 한 구성원에 지나지 않았다.그는 지극히 평범한 샐러리맨으로서 한달에 한번씩 꼬박꼬박 월급을 받을뿐 큰  땅덩어리도 큰 빌딩도 가지고있지 않은 보통사람이였다.그는 단지 박봉의 생활에도 절약하여 아껴 쓰며 하나,둘 장학생을 늘려가면서 장학사업을 해왔을뿐이였다.하기에 그가 자신의 많지 않은 주머니를 헐어 장학사업을 하는것은 어떠한 개인적인 공명을 위함도 아니고 나중에 다른 리익을 챙기기 위해 전시적으로 벌이는 행사도 아니였다.오직 돌감자처럼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인간으로서 인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때문이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사업가도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어느 한번 우리 둘은 우리 집에서 늦도록 술을 마시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적 있는데 그날 박회장은 자기신상에 대해 많은것을 들려주었다.

젊었을 때 그는 여행을 좋아하였는데 주말이나 공휴일시간이 날 때면 아무데건 마음내키는대로 훌쩍 떠나곤 하였다.꼭 가보아야 할 목적지가 있는건 아니였다.어디라도 좋았다.그곳에서 추워보이는 로인이 되였건 람루한 옷차림의 아낙네가 되였건 딱해보이는 사람이 눈에 띄면 주머니를 털었다.결코 동정은 아니였다.민망해하는 그들의 손에 몇푼의 돈을 꼬옥 쥐여줄 때 말없이 쳐다보던 그들의 눈빛은 무언가 뜨거운 기운으로 몰려와 박회장의 가슴을 더웁게 했다. 그러기를 몇년,그러다가 1975년10월,그는 <장학회>를 만들어보자고 스스로를 다졌다. 보다 체계적인 활동을 하자>는 생각에서였다.이때부터 그는 일년에 한명이건 두명이건 형편이 닿는대로 돈이 없어 학업을 포기해야만 하는 학생들에게 학비를 대주었다.그러다 마침내 지난 1983년,숙원하던 <장학회>를 결성하였다.장학대상은 공부만 잘하는 학생이 아니라 결손가정,소년,소녀가장,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진실하게 생활하며 공부하고있는 학생이였다.보다싶이 사회의 어두운곳을 향해 넘쳐흐르는 박무웅회장의 사랑이  장학회사업을 하게 한것이다.그는 마음속에 남을 돕고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있었다.항상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남의 주머니를 조금이나마 더 채울생각에 그는 바쁘고 즐거웠다.

<라면 한개를 끓여먹더라도 함께 나누어 먹으면 그보다 더한 진수성찬이 어디 있겠나?>하고 껄껄 웃는 그를 그날 나는 다시 한번 우러르보게 되였다.

그는 장학대상을 국내뿐만아니라 윁남,중국 등 나라에까지 뻗쳤다.한명으로 시작하여 오늘의 국내외에 수백명의 장학생이 있기까지 <돌감자> 이제 이땅에 값진 씨앗을 뿌렸다.한사람의 힘이 사회의 밑거름이 되여,포자가 퍼져나가듯이 아름다운 세상이 되여가고있다.

인간의 성격에도 양극이 공존하는 모양인바 한편으로 통 큰 그가 다른 한면에서는 내가 접촉한 한국사람가운데서 또 제일 째째한 사람이다.그래서 그는 매번 중국에 올 때마다 곁의 사람을 고달프게 할 때가 많았다.장학생한테는 추호의 주저도 없이 큰 돈을 쓰는 그이지만 택시타는 돈은 그렇게 아까와 어딜 가면 꼭 삼륜오토바이나 공공뻐스를 타려 하고 끼니마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쓸가봐 채견하는가 하면 려관에 들어도 제일 싼 려관,제일 싼 침실을 택하고 그돈마저 아까워 여기에 오면 아예 학생기숙사나 장학생들집을 택하면서 공연히 남바쁘게 달군다.그리고 매번 행차에 쓴 경비를 저녁마다 옴니암니 결산을 하는데 옆에서 보기 피곤할 지경이였다.그러나 그이가 자기 고생은 고생같지 않게 여기며 자기가 좀 더 고생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좋고 다른 사람들을 웃게 하지 않겠는가고 해석삼아 말씀하실 때면 나는 바로 그 째째함속에서 그의 고상한 인간의 마음과 됨됨이를 읽으며 마음에 감동의 파문이 파문이 곧 일군 한다.

그의 장학생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장학금을 주는데서 그치지 않았다.그는 매번 중국에 들어올 때마다 장학생네 집을 찾아 방문하거나 이미 대학에 간 장학생을 찾아 한두군데는 다녀오군했다.그 길이 아무리 멀고 로정이 불편해도 아랑곳않는다.우리 집 애도 장학생이였는데 걔가 대학에 다니던 어느 해였다.그번에 중국에 온 박회장은 꼭 우리 집 애를 만나보러 가겠다는것이였다.그 말을 듣고 나는 극구 말렸다.그것은 우리 집 애가 다니는 학교가 중국에서도 제일 북쪽인 도시,쏘련과 흑룡강을 사이두고 마주한 흑하에 자리잡고있는데 그곳은 기후가 얼마나 찬지 모른다.애가 대학에 입학할 때 거기까지 데려다줬던 나는 그때 너무 떨어 혼난일이 있어 흑하라면 아예 머리부터 흔들린다.그만큼 그곳은 추운곳이였다.게다가 그쪽으로 조선족이라고는 전혀 없을뿐만아니라 교통도 불편한데 할빈에서 그곳까지 통하는 기차는 하루에 두번밖에 없고 그것도 15시간이나 달려야 한다.그러니 환갑이 지난 로인으로서 그것도 한어를 잘 모르는 한국인으로서 그곳까지 찾아간다는것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그래서 나는 물론 주위사람들까지 말렸지만 종시 그 고집을 꺾지 못했다.그래서 내가 동행하려 해도 굳이 거절하였다.다행이도 회장님은 그곳까지 무사히 잘도 찾아갔다.이렇게 박회장은 자기가 선정한 장학생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지고 관심과 배려를 돌리는 분이시다.

이렇게 진실과 사랑으로 돌감자장학회를 꾸려가고있는 박무웅회장,그이는 어느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그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간다.가슴에는 진실을 담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봉사의 길을 걷고있다.자신이 로동의 대가로 번 돈을 절약해서 장학사업을 펼친 박회장은 그간 장학회활동으로 <서울시민대상>외에도 <자랑스러운 서울시민600인>,<새서울시민상>을 수상하였고 여러단체로부터 감사장과 감사패를 받았다.또 이러한 사실들이 한국 주요방송사와 일간지 그리고 월간지, 전문지 이밖에 중국의 <흑룡강신문>,<조선족중학생보> 등에 소개되기도 했다.

지금도 <돌우에 감자꽃을 피우>기 위해 고심하고있는 박무웅회장님은 자기가 걸어온 이 길과 그 시간들이 랑비는 아니였다고 자부한다.저 넓은 세상을 거침없이 살아갈 인간들에게 자기가 조금이나마 그 터전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되였다고 생각하니 그의 마음은 항상 기쁨으로 가득차있단다.그래서 그는 오늘도 어렵고 불우한 애들을 위하여 봉사할수 있는 진실한 삶들을 찾아내고 육성하는데 게을리하지 않고있으며 항상 진실,최선,봉사의 신념으로 깊이있는 사고와 안목을 키워나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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