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꽃샘 추위를 이겨내고 피여나는 개나리는 더욱더 화사한 노랑빛으로 담장너머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만산자락 가득가득 모여있는 핑크빛 진달래는 사람들에게 끈끈한 정을 연상케 한다. 그 와중에서도 길가에 아니면 누구네 담장높이를 훌쩍 넘어선 고고한 목련은 순백의 기상을 뽑내며 눈이 시리도록 예쁜 자태로 넋을 놓고 바라보게 한다. 

봄에 피여나는 저 멋지고 예쁜 꽃들 처럼 사람들의 시선도 사로 잡지 못하고 마음에 자리잡지도 못하는 나뭇잎마냥 그냥 수수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반추해 본다. 그리고 진달래의 모습에 나랑 닮아있는 재한 동포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인생의 무수한 소용돌이에서 물에 빠진 사람이 지프라기 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지금의 남편과 만나서 몇 개월간의 연애시절을 보내고 누구의 축복도 없이 두 사람이 함께 은은한 샴페인 한잔을 나누고 난뒤 남은 여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새로운 삶을 기약하며 나는 <국민의 배우자>라는 활자가 찍힌 <외국인 등록증>을 발급 받고 본격적인 한국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남은 여생의 봄을 맞아 7개월이라는 긴 기다림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사실혼 여부를 확인하는 방문 조사를 무사히 끝마치고 발급 받은 <외국인등록증!>

합법적인 신분으로 한국에서 우리 부부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데 바탕이 되어주는 <외국인 등록증>을 받아 들고 <우리는 이제야 진정한 부부로써 헤여짐이 없는 삶을 시작한 것이구나> 안도감과 감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이렇게 허전하고 엄마의 고국에서 <외국인으로 등록>을 하고 살아 가야 하는 현실이  내 마음을 다시 움츠러 들게 한다.

  <외국인등록증>이라고 활자로 크게 찍힌 작은 카드에 영문으로 진츄우웨이라고 찍혀 있다. 오매불망에도 그리던 부모님의 고국에서 한글이름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가? 중국에서 태여 나서 자랐어도 우리 민족의 전통 교육을 받으면서 한민족의 얼을 지켰다고 자부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부모님 세대의 고생 덕분에 우리말 학교에서 우리말을 낭낭하게 읽으면서 당당하게 우리의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왔다. 중국에서 살때는 중국정부에 고마움을 몰랐던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민족언어를 사용하게 하고 민족의 얼을 고취하도록 자유발전하게 했던 거에 고마움이 묻어난다.

  사실 <외국인등록증>이 나오기전 까지는 신분이 확실치 않으니 어디가서 취직도 할 수 없어서 남편이 혼자서 일하는 것을 보고 늘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심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부분은 말로 표현이 잘 되질 않는다.
  남편의 월급으로 중국에서 대학입시공부를 하고 있는 아들에게 학자금에 생활비를 매달마다 60-70만원씩 꼬박꼬박 보내주고  중국에서 마땅한 직업이 없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동생에게도 용돈을 아끼지 않고 보내주던 남편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또한 미안한 마음에 혹시라도 주눅이 들어 있을가 걱정되여 늘 격려의 말씀으로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면서 <괜찮아~조금만 있으면 당신도 나랑 같이 벌어서 우리 금방 부자된다>고 달래주던 남편의 마음 씀씀이에 나는 정말 천군만마를 얻은 듯 삶의 용기와 희망을 다시 부여 잡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절박하게 필요했던 신분증! 그것을 받아들고 눈물이 글썽이고 마음 한구석이 시려오는 원인은 무얼가?

<외국인등록증>에는 엄마,바빠가 지어준 김추월이라는 (추석전날 태여 났다고 금빛나는 가을달이 되라고 지어준 이름)이름 대신JIN QIU YUE라는 영문이름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외국인등록증! > 우측 가운데 에는 체류자격F-2-1(국민의 배우자)라는 글짜가 또다시 유난히 마음을 건드린다.

  중국에서 태여나서 살면서도 우리 고유의 이름석자를 자랑거리로 생각하면서 살아온 나는 충격이 쉽사리 사그라 들지 않는다. 부모님이 늘 그리워하던 고향에 한번쯤 가봐야 겠다는 소망을 늘 하고 있었는데 정작 부모님의 고향은 모든 것이 익숙하고 낯설지는 않는데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너무나 멀리 있는 그런 느낌이 드는 건 어쩔수 없었다. 어찌 나뿐이랴~모든 동포들의 마음에 드리워져 있을 그늘이 내 마음에 겹쳐진다.

  <저 세상에 계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어머니는 내가 차린 제삿상을 보고도 내 이름을 찾지 못해 나를 찾아오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핑 돈다.
<전체적인 사회분위기에 약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하나쯤은 스스로 알아서 다스려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굳건히 하는데 이번에는 남편이 볼멘소리를 하신다. <어~내 마누라를 왜 국민모두의 배우자로 표현하냐구?> 농담처럼 하는 남편이 느끼는 저 서운함에 나는 웬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외국인 아내라서 미안해요!> 외국인라서 미안할 거가 뭐가 있겠느냐만은 이작은 카드가 나와 남편사이에 무언의 격리대를 만들어 주는 것 같아  석연치 않은 마음은 오랫동안 마음에 그늘이 되어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그 뒤로도 영문으로 표기된 김추월이라는 이름 때문에 사사건건 불편함이 따라 다닌다. 힘들게 얻은 직장에서 월급통장으로 한글이름이 있는 통장을 가져오라는데 은행에서는 외국인등록증에 근거하여 영문이름으로 통장을 발급하다 보니 모순이 아닐수가 없었다.
재외동포법이 개정되어 발표된지도 몇 년이나 지났다는 이야기를 들은지도 한참 된다. 재외동포법에 의하면 나는 <외국인등록증>이 아닌 <외국국적동포국내거소신고증>을 발급받아야 되는 것 아닐 가? 하는 의문을 풀수가 없었다. 엄마아빠 호적이 한국에 엄연히 남아 있는데 다문화가정에 분류가 되여 동포의 부류에서 빠지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하이코리아사이트 회원가입시에도 재외동 포 코너에서는 등록이 되지 않고 외국인 코너에서 등록이 될 때 도 꽤나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한국에 계시는 삼촌이 나의 남동생을 방문취업(H2)비자로  초청을 해 주셔서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되는 동생도 중국에서는 한글만 배웠기에 영문으로 된 자기 이름자를 읽히는데 꽤나 애를 먹고 있다.

한국에서 중국동포로 살아가는데에 불편함이 묻어나는 영문이름이 표기된 <외국인등록증>,중국에서 태여나서 생활하면서도 우리말 이름으로 전혀 불편함이 없이 생활할수 있었던 것과 비교가 된다.

작은 카드 하나가 현실생활에서 이렇게 큰 문제를 안고 가는 <외국인 등록증>, 기술상 문제로 영문이름을 표기해야 된다면 우리고유의 이름이 그 윗 부분에  표기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가?

봄에 꽃샘추위를 머리에 이고 화사하게 피여나는 저 진달래 처럼 밝게 웃고 싶다. 그리고 순백의 기상을 뽑내는 저 목련처럼 부모님의 고국에 다시 뿌리 내리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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