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얼어붙었던 겨울 나그네가 몸을 풀어 버리는 계절이 오면 나는 진한 그리움에 젖어든다.

진달래가 만발 했던 고향집 뒷산이 그립고, 노란 유기가 반질반질 하던 엄마의 구들이 그립다. 그리고 그 구들에 엎드려 보들레르, 랭보, 마리로랑생, 플로베르의 시를 읊다가 앞마당 해당화 나무가지에서 앉아서 열심히 조잘대는 참새들의 자유에 감동이 되여 그만 소리내어 울어버리기도 하던 감상적이던 문학소녀시절이 그립다.

“철없는 계집애야~엄마 빨리 죽으라고 우니? 울긴?”

책 속의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는, 다정다감한 소녀로 장성해 있는 딸을 대견스레 바라보시며 농담을 하시던 어머니! 그 농담이 씨가 되었던지 어머닌 마흔아홉 고개를 넘기지 못하시고 청명이나 추석이면 우리 형제를 한 곳에 부르는 고향의 ‘빈터’가 되고 말았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무치는 그리움만 무더기로 남겨둔채로!

청명 날이면 어김없이 찾고 싶은, 엄마가 비어있는 자리에 엄마가 보고 싶어 우리 형제는 한곳에 모인다. 엄마의 '빈터'까지 가서 보면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씩 열린다. 비록 엄마의 얼굴은 볼 수 없지만 엄마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것 같고 마음의 안식처를 찾은 것 같기도 하다.

‘빈터’에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갑기도 하다. 각자가 자신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의 ‘빈터’를 찾아 왔다가 소꿉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떠올리면 사람도 풀씨와 같아서 어디라도 날아가면 뿌리를 내리게 된다는 생각이 새삼스럽다.

이번 청명에도 어김없이 찾은 어머니의 ‘빈터’에서 더는 소꿉친구들을 만날 수 없음에 마음이 허전했고, 그들과 함께 다니던, 일정 규모를 갖추었던 우리 말 우리 학교가 인젠 또 다른 ‘빈터’로 되어버렸음에 경악했다. 때로는 세월이 무섭게 느껴지기 까지 한다.

30년 사이에 2백여 호, 순 조선족 마을에서 색동저고리를 입고 뛰놀던 소꿉친구들은 아예 찾아 볼 수 없었고 ‘빈집’들만이 멀리 떠나버린 주인을 기다리며 초라하게 서있지 않는가!

중학교 까지 있었던 우리 말 우리 학교가 송두리 채 없어 진 그 자리에 휑뎅그렝 ‘빈터’만 남아 있는 쓸쓸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빈터’가 계속 늘어 가고 있는 향후에 대한 위구심에 더 슬퍼졌다.

나는 엄마의 ‘빈터’에 술을 붓고 꾸벅꾸벅 절을 했다. 황량한 ‘빈터’가 가슴을 허벼 온다. 이제 50년, 아니 20년이 더 지나면 '빈터'마저 없어 질 것 같은 위구심에 슬퍼져서 마침내 꺼이꺼이 울음소리까지 냈다.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내년 봄에는 '빈터'에다 진달래랑 백일홍이랑 가득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제라도 낳을 수만 있다면 아이도 두 셋 더 낳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멀리 집을 떠난 소꿉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회포를 나눌 수 있는 그날이 올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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