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섭 글

용문(龍門)

▲ 연변 용정의 용문교 입구

[서울=동북아신문]연변의 해란강은 반만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겨레의 성산-장백산이동의 베개봉기슭에서 발원하여 청산리계곡과 화룡분지, 평강벌을 감돌아서 룡정시를 한품에 안은 풍요로운 땅-세전이벌에 흘러든다. 강의 길이는 145킬로메터로서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반수인구가 이강 량안에 살고있다.

그 옛날 이 강을 사이두고 비암산과 주암산기슭에는 일잘하는 해라는 힘센 총각과 손재주가 뛰여난 란이라는 예쁜 처녀가 삼두륙비의 악아를 족쳐버리고 백성들을 잘살게 한 아름다운 전설이 깃들어있는 강이다.

우리 조상들이 이 고장을 찾아와 용드레우물을 파고 벼농사를 짓기 시작한것은 19세기 후반기부터였다. 가난한 농민과 애국지사들이 이곳에 모여 새 학당을 꾸리고 민족계몽과 반일 기치를 높이 들고 일떠나게 되자 룡정은 일약 독립운동의 중심으로 부상하였다. 1920년 10월에 있은 청산리전투도 바로 이곳 해란강상류의 백운평마을에서 벌어진것이다.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으로 알려지고있는 “선구자의 노래”가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창작한것이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아, 슬프다! 당년에 그처럼 효용을 떨치던 력사의 주인공들은 이미 “거친 꿈”속에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의 지조는 해란강의 푸른 물처럼 불멸의 혈맥, 끈질긴 생명력의 고동으로 끊임없이 흘러가고있다. 가사에 나오는 일송정, 해란강, 용드레우물, 룡문교, 룡주사, 비암산 등 지명이 오늘도 이곳에 살아 숨쉬고있어 영광과 비애로 점철된 굴곡의 력사를 증언하고있다.

만주사변이후 일제는 룡정 해란강구에서 무려 94차에 달하는 토벌을 감행하여 “해란강대참안”을 빚어내고 1700여명의 항일투사와 백의동포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광복직후 학살된 동포들의 피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해란강혈안”만인성토대회가 연길광장에서 성대히 진행되였다.

해방후 나라의 주인으로 된 인민들은 공산당의 령도하에 주덕해, 김시룡, 리옥금, 환순옥, 려근택 등 선구자들과 함께 유서깊은 해란강반에 더욱 아름답고 뷰유하고 살기좋은 고장으로 건설하였다.(다음에 계속)

[저작권자(c) 평화와 희망을 만들어가는 동북아신문(www.dba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