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항일유적 광복60주년기념기행2>왕청의 유격근거지3

 

ohmynews 이창기(lck615) 기자   

▲ 청산리 전투 기념비. 중국정부의 우려 때문에 겨우겨우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2005 이창기
왕청 유격근거지를 본 후 우리는 왕청 시가지에서 동북 방향으로 7-8리가 떨어져 있는 덕원리에 가 보았다. 덕원리 앞에는 꽤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었고 왕청하라는 강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왕청하 건너 덕원리 마을에는 집이 한 채도 없었다.

1932년 일제의 대토벌로 완전히 다 불타버린 것이다.

일제는 이 때 세차게 흘러가는 왕청하 이 쪽 편에 박격포를 걸어놓고 무차별 포격을 가했으며 이 과정에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할머니 한 분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일제는 폭격 후에 집집마다 불을 놓아 마을을 전소시켰다.

▲ 서일, 김좌진 장군의 활동 중심무대였던 왕청의 덕원리. 지금은 아예 사라져 무덤만 가득하다.
ⓒ2005 이창기
덕원리 마을은 1920년대 서일 장군이 독립군을 이끌고 싸운 근거지였으며 이후 공산당 계열의 반일투쟁의 불길이 타오른 곳이다. 그런 유서 깊은 40여 호의 마을이 이제는 아예 사라져버리고 밭으로 변해 있었다. 그 밭 위에는 수많은 무덤들이 더욱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 왕청의 대감자촌 도로표지판. 조선족이 많이 살아 표지판에도 한글이 들어있는데 지금 이 마을에는 조선족이 없다.
ⓒ2005 이창기
다음에는 우리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살면서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왕청현 대감자촌에 가보았다. '반일전가'를 부르며 일제와 항일의 혈전을 벌렸던 고장이라고 하는데 가보니 아무런 유적지 표식도 없이 십자가만 덩그러니 꽂혀 있는 교회만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가 아니다 보니 우리가 직접 그곳에 유적지를 만들 수도 없다. 화룡에 가면 청산리 전투 기념비가 있는데 그것도 중국정부에서 반대를 많이 해서 겨우 겨우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중국 정부로서는 조선족의 항일투쟁 기념비가 대대적으로 만들어지고 유적지가 조성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십분 이해가 된다.

과거 고조선과 고구려의 땅 위에 조선족의 유적지가 선다는 것이 자칫 한민족에게 과거 실지 회복의 의지를 불러올 수도 있으리라 우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의 분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중국 정부에 더욱 적극적으로 조·중 연대와 친선의 역사유적지로 개발하면 좋으리라고 생각이 드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들 해외 여행을 태국과 같은 따뜻한 곳으로 가는데 여기 연변과 왕청에도 많이 와 보았으면 좋겠다. 아직 오염이 되지 않아 강물도 맑디맑고 사람들의 인정도 훈훈하다. 순수한 우리 민족의 정이 아직 여기 왕청에는 남아 있기 때문이다.

왕청의 조선족 음식은 그렇게 맛이 있다. 왕청의 '멋있는남자네집'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조선족 음식점에서 먹은 소고기는 야들야들한 육질에 향도 은은하여 정말 일품이었다.

왕청의 너른 들판에는 소들이 자유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들판에 내다가 풀을 뜯기고 사료도 그 지역에서 생산하는 옥수수나 콩으로 만들어 먹이기 때문에 광우병도 없다고 한다.

▲ 왕청의 '멋있는남자네집' 조선족 처녀
ⓒ2005 이창기
음식점의 귀여운 조선족 아가씨는 부끄러움이 얼마나 많은지 물어도 대답도 없이 뱅그르르 고개만 돌린다. 저 친구도 언젠가는 여기를 떠나 도회지로 나가려고 하지 않을는지….

중국의 농산물 하면 값싼 항생제 사료와 농약이 떠올랐는데 동북3성 지역은 아직 깨끗해 보였다. 벼도 이앙기가 아니라 직접 손으로 꽂아서 심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왕청에는 지금 27명이 살고 있는데 조선족이 7-8만 명 정도 살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10만 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도시로 많이 나가고 또 요즘 부부들이 아이를 많이 낳지 않아 점점 인구가 줄어드는 형편이다.

과거에는 한족이 별로 없었으나 중국정부의 이주 정책에 의해 한족들이 계속해서 대대적으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남방의 어떤 현은 20-30%가 옮겨오기도 했다.

동북 3성에 있는 동포들이 북경이나 상하이로 떠나지 않고 계속 고향에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도록 경제협력사업도 잘 나가고 여행도 많이 가서 조선족 동포들 가게도 많이 이용하면 좋을 것이다.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자동차로 우리가 마음껏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와야 할 것이다. 낙후된 동북3성의 우리 조선족 동포들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그 땅에서 일제에 희생되어 아직도 원한을 품고 구천을 떠돌고 있을 우리 선조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통일은 한시도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왕청현 당안국 역사연구소 최금철 소장은 "전 중국의 56개 민족 가운데서 가장 문명한 민족이 조선족이다. 정말 누구 말마따나 자식공부, 문화수양 중시, 문화보급정도가 가장 높은 민족, 대학생이 가장 많고 문명정도로 보자면 우리 민족이 최고이다" 라며 우리 조선족에 대한 자부심 넘친 말을 힘주어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통일에 대해서도 "그래 통일 꼭 될거야, 꼭 되지"라며 통일에 대한 강한 확신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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