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역사와 함게 한 위인들 8

[서울=동북아신문]김유신(金庾信, 595년 ~ 673년 음력 7월)은 가야의 왕족 출신 신라의 군인, 정치인이자 외척이었다. 신라에 귀순한 가야 왕실의 후손으로서 신라의 삼국 통일에 큰 역할을 한 화랑 출신의 신라장군이다.

김유신은 용맹과 지략이 뛰어나 후세에 ‘삼국사기’ ‘삼국유사’등을 통해 많은 설화를 남겼다.

15세 때 화랑이 되어 몸과 마음을 닦았다. 학문이 깊고 무예가 뛰어난 그는 신라의 오랜 꿈인 삼국 통일을 위해 의지를 키워나갔다. 한 때 천관이라는 기생에게 마음을 빼앗겨 술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로부터 크게 꾸지람을 듣고 깊이 반성한 김유신은 자신을 태운 말이 술 집문 앞에 가서 멈추자 말의 목을 베어 버렸다. 이와 같은 결단성은 훗날 신라의 삼국통일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660년 소정방이 이끄는 당나라군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 고구려도 멸망시켰다. 고구려 정복 후 당나라가 신라마저도 정복하려 하자, 김유신은 망한 고구려 백제군과 연합하여 이를 물리침으로써 삼국 통일의 위업을 이룩하였다.

태종무열왕과 문무왕을 곁에서 보좌하여 삼국통일과 원정, 외교 사업을 지원하였고 당나라, 무열왕, 문무왕 등과 함께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의 기틀을 완성했으나 673년 통일을 눈앞에 두고 병으로 사망하였다. 신라의 통일전쟁에서 뚜렷한 공적을 세워 당시 신라에 귀화한 가야왕족으로서는 불가능했던 신라정권의 중추적 인물로 성장했다.

그는 비록 신라의 삼국통일 이전에 사망하였으나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진 인물 중의 한사람이기도 했다. 보통 그를 칭할 때는 장군이라는 존칭을 함께 붙이며, 그는 김해 김씨의 중시조로 추대되었다. 835년 특별히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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