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환의 평론 '스탈린 독제체제하에서 고려인 일가一家가 겪는 뼈아픈 삶을 그린 가족사'

[평론] 스탈린 독제체제하에서
고려인 일가一家가 겪는 뼈아픈 삶을 그린 가족사
-빅토르 김-리 作 『충청도를 등지고 떠난 사나이의 운명』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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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환(시인/문학평론가)

카자흐스탄 알마타 시市에서 활동하는 빅토르 김-리(1928~ )의 작품 『충청도를 등지고 떠난 사나이의 운명』은, 이미 1993년 알마타에서 러시아어판 단행본으로 출판(ISBN5-615-1229-3) 되었었다. (①표지 이미지 첨부) 그 뒤에 남경자 번역문학가가 우리말로 번역하였고, 실향민후계육성회 이인섭의 도움으로 가편집되었다.
원작자인 빅토로 김-리 씨가 2010년 9월 중순경에 현재의 부인과 함께 서울을 방문하여 이 작품에 대한 한글판 출판을 요청해 왔다.(②빅토르 김-리 작가의 부부 사진) 이에 필자는 가편집된 번역원고를 두 차례 정독할 수 있는 기회를 미리 가졌었다. 그 덕에 이글을 쓰지만 원작자의 소원이 성취되기를 기원하면서 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1. 내용상의 두 줄기
이 작품은 크게 보아, 내용상 두 개의 큰 줄기가 있다. 하나는 아버지인 이기원의 비운悲運적인 삶을 그리는 축이고, 다른 하나는 그 아버지의 큰아들인 나(길원)의 삶을 그리는 축이다. 굳이, 여기에 하나를 더 든다면, 아버지만큼이나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어머니(마리아, 실명: 김세희)의 삶과 나의 동생(뾰또르)의 삶을 간접적으로 그리는 축일 것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이미 「머리말을 대신하여」라는 글에서 “여기에 씌어진 일들은 사실 그대로라”고 밝힌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가족사를 소재로 재구성한 픽션임에 틀림없다. 다시 말해, 소설 형식을 빌린 가족사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상상력에 의해 한껏 부풀려진 문장이 주는 흥미나 기지機智는 없다. 그 대신에 어떤 상황이나 사건을 기술하는 문장들이 간결하지만 현실적인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 현재의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곤란한, 스탈린 독제체제하에서 자행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적 상황들은 독자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먼저, 아버지의 삶이란 큰 줄기를 확인해 보자. 작품 속에서 아버지는, 소련의 레닌(1840~1924) 혁명노선에 매료되어 1922년에 고향인 충청도를 떠나 구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작품 속에서는 ‘블라지보스토크’, ‘블라지워스토크’, ‘해삼’ 등으로 쓰이고 있음)로 가서 한인학교를 세우고, 교장으로서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그 무렵에 머리를 땋고 예쁘장한, 농촌 마을 출신인 동포 여자와 결혼하였고, 1932년 가을, 첫째 아들이 3살 때에 내무인민위원회 소속 사람들로부터 한 밤중에 연행되어 심문과 고문을 받고, 재판과정도 없이 감금되어 10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한다. 소위, 반혁명 선전, 선동죄를 뒤집어 씌고서, 10년 자유 박탈형을 받은 것이다. 감옥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선천적으로 건강한 사람인지라 아버지는 살아남아, 비록 폐인廢人이 되다시피 했지만, 1943년 가을, 어느 저녁에 아내와 두 아들이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강제 이주당해 살고 있는 집(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즈베키스탄 지역에서 어머니의 새 남편을 따라 이주한 곳인 카자흐스탄 지역의 ‘알렉산드롭카’를 거쳐서 간 ‘카라칸다’임.)을 수소문 끝에 찾아간다.

그러나 가족과의 재회는 그다지 감격스러운 일이 되지 못한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아버지로서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책감과, 이미 몸이 상할 대로 상해 버린 현 상태와, 앞으로 살아갈 험난한 현실과, 스탈린 독재체제에 대한 절망 등으로 이미 무력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큰아들과 조심스레 대화를 나누지만, 아버지는 재회의 기쁨을 누리지도 못하고 돈을 벌 수 있다고 판단되는 텅스텐 광산 지역으로 홀로 떠난다. 먼저 그곳에 가서 자리를 잡고 가족을 부르겠다고 약속했지만 끝내 부르지도 못한다. 광산의 야간감시원으로 취직은 되었으나 곧바로 폐광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사이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햇빛조차 들지 않는 토굴집에서 누워 지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그런 생활을 한지 1년이 조금 넘었을까, 큰아들이 수소문 끝에 찾아왔다. 아버지는 힘을 얻지만 자신이 죽어감을, 아니 얼마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실로 많은 대화를 나눈다. 고향인 충청도를 떠나 소련에 오게 된 동기로부터 강제 연행되기 전후의 생활과, 스탈린 독재체제의 허구성과 미래, 그리고 자신의 조국과 뿌리[정체성]에 대한 그리움의 사무침과, 하나님을 외면한 잘못된 삶의 태도까지 말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죽음의 문에 점점 다가서고 있는 형국이었고, 아들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겨 어머니와 한 지붕 밑으로 옮겨 살게 되지만, 아버지는 결국 1945년 봄철에 헛간에서 조용히 홀로 눈을 감는다. 그리고 아내와 두 아들에 의해 관棺조차 없이 홑이불에 둘둘 쌓여 공동묘지에 묻힘으로써 한 많은, 뜻을 이루지 못한, 짧은 생을 마치게 된다.

이처럼 청운의 꿈을 안고 조국을 떠나 소련까지 왔지만, 스탈린(1897~1953) 독제체제(1922~1953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1941~1953년 소련 국가평의회 주석) 아래서 자행되었던 고려인에 대한 인권유린과 노동력 착취, 천대와 멸시 등으로 죽어가야 했던 아버지의 슬픈 운명적 삶에 대해서, 작가는 “마르크시즘에 유혹되어 머나먼 시베리아로 흘러가 비참한 생을 마친 한 지식 청년의 이야기(「조국의 독자를 위한 글」중에서)”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작품 속 화자話者이면서 주인공인 ‘나’의 삶이란 큰 줄기에 대해서 정리해 보자. 나는 비운의 삶을 살다 간 아버지의 큰아들로서, 남겨진 어머니와 남동생과 동고동락을 함께해야 했던 사람이다. 특히, 아버지가 강제 연행되던 날 밤부터 아버지 없이 10년을 살아야 했는데, 이때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나의 나이 3살에서 13살까지(우리 나이로 계산하면 5살에서 15살까지가 된다)로 추위와 굶주림과 냉대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에 나는 어머니와 동생으로부터 떨어져 약 5년 동안 외할머니 댁에 살면서 극심한 외로움과 주변 아이들로부터 ‘인민의 원수’ 아들이라 하여 왕따당하며 살아야만 했고, 1937년 스탈린의 특명에 의해 이루어진 고려인 강제이주 때에는 소 돼지처럼 화물열차에 실려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철로가 끝나는, 현 우즈베키스탄 지역의 황무지로 내몰렸다.

그리고 어머니의 개가改嫁가 있었고, 의붓아버지를 따라 지금의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이사하여 그런대로 살았지만 그 의붓아버지조차 친아버지처럼 내무인민위원회 소속 사람들로부터 연행되어 그 생사조차 알 길이 없게 되었다. 그야말로, 어머니와 동생과 내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동생은 입을 옷이 없어서 바깥출입을 못하는 상황이고, 나는 남의 집 땔감나무를 해다 주거나 이삭을 줍고, 얼어터진 감자를 주우러 도둑기차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하루에 400그람의 배급 빵과 물만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1943년 겨울에 출감되어 찾아온 아버지와 뜻밖에 재회한다. 아버지에 대해 기억조차 없었지만 나의 이름을 부르는 낯선 사람이 아버지이고, 그에게는 말 못할 사연이 많음을 직감할 수는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왜 강제 연행되어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아버지가 내게 하고자 하는 말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와의 그런 재회는 나에게 궁금증과 연민의 정만 증폭시켰고, 살아남기 위해서 다시 아버지와 잠시 떨어져 살아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연락이 없고, 나는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아버지가 말한 텅스텐 광산이 있다는 ‘우순블라크’로 이사하여 살게 되면서, 나는 아버지를 찾아 나서게 되었고, ‘악차타우’라는 지역의 한 토굴집에 누워있는, 병색 짙은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나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으로 모시고 왔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동안에 실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며, 차츰 자신의 정체성과 아버지의 근심과 진정을, 그리고 스탈린의 모순적인 정치적 진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는 헛간에서 홀로 숨을 거두고, 나는 사회적 환경의 열악성에 길들여져 가면서 나도 모르게 강인해져 간다.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린 상태에서 오기와 투지가 발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장티푸스에 걸려 1개월 이상 죽다 살아났지만 나는 ‘아르젤리’라는 텅스텐 광산에 들어가 텅스텐 함유 원석을 캐어 약간의 돈을 벌기도 했다. 그리고 학교에 입학허가조차 내주지 않는 상황에서 교장선생을 직접 만나 그동안에 받은 상장 등을 공개하며 허가를 받아내고, 마침내 학생위원장으로 피선되며, 삐오네르 위원이 되어 능력 발휘를 했다. 그러면서 각별하게 우정을 느꼈던 동급생 ‘올라’와 사귀게 되지만 이내 헤어지고 만다. 그녀의 집이 모스크바로 이사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요청도 있었지만 건축전문학교 입학을 위해서 난생 처음 모스크바로 갔다. 그곳에서 올라와 재회하게 되고 건축전문학교도 입학하지만 졸업하지 못한 채 유일한 여자친구였던 그녀와도 헤어져야만 했다. 고려인으로서 모스크바에서 살 수 없는 정치적 현실적 장애 요인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이나 다름없는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 아델고진 시市 공청위원회 삐오네르 사업부에서 일하면서 야학하여 1954년 알마타 종합대학 법학부에 입학하여 대학생활을 하게 되고, 졸업 후에는 아크몰린스크 내무국 예심원으로 파견 근무하였으며, 그 공功으로 알마타 시로 영전되어 근무하기도 하고, 10여 년 동안 변호사로서 일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세월이 흘러 젊은 나이에 죽어버린 아버지와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 1993년에는 아버지 삶에 대한 이야기를 집필하였으며, 1991년도에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조국인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처럼 작품 속의 나는, 아동기와 청소년기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구소련 스탈린 독제체제 아래 자행된, 고려인에 대한 집단해고, 강제이주, 인권유린, 노동력 착취, 굶주림과 추위, 냉대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고려인 1세다. 게다가, 비운의 운명적인 삶을 살다간 아버지와, 두 남자를 이유도 모른 체 잃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의 어머니를 통해서 인민을 위한다는 마르크시즘에 뿌리를 둔 소련 공산당의 허구성을 절감하면서 살아야 했다. 이런 자신의 삶에 대하여 작가는 스스로 말하기를 “냉혹한 시련의 운명을 겪은” 삶이라 했다.

2. 소설로서의 문학적 장치
작품 속 화자인 ‘나’에 의한 아버지 삶에 대한 기술은 양적으로 그리 많지는 않다. 아마도, 어린 나이에 직간접으로 들은 내용을 환갑이 넘은 노인이 되어서 회상하였을 것이고, 동시에 아버지의 삶이 짧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의 정을 유독 많이 가진 아들로서 그의 삶을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이면서 실로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곧, 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들을 곱씹으면서, 아버지를 절망케 하고, 젊은 나이에 죽게 한, 당시 소련 공산당의 정치체제와 현실적 여러 현상이나 정황들에 대하여 여러 사람들의 저서著書나 말을 인용하면서 사실상 재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과정이나 방식이 불가피했던 것은, 나의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벌어진 일들로서 정치적 이념이나 제반 사회현상을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입장이었고, 또한 작품을 쓰는 작가인 나로서는 변호사로서 익숙해진, 사실과 증거 중심의 판단을 앞세우는, 몸에 밴 성향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바로 이런 요소들 때문에 이 작품이 진지하지만 흥미롭지는 못하다. 작가 자신이 「머리말을 대신하여」라는 글속에서 “문학적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이미 시인하였듯이 기억된 내용을

가지고 사실 중심으로 기술하려니 많은 제한이 따랐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작가는 문학적 흥미를 증대시키기 위해서 나름대로 몇 가지, 음식의 양념 같은 소스를 첨가하고 있다. 곧, ①가족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단순히 시차 순으로 나열하지 않고 재구성하였으며, 특히 ②나의 강인한 삶의 의지와 투지를 드러내기 위해서 두 차례의 위기상황(장티푸스에 걸려 투병중인 상황과 이삭줍기하다가 받는 폭언과 협박과 멸시 속에서의 삶의 의지를 가다듬는 상황)을 설정, 극복해 내고, ③극복해 내는 과정에서 ‘꿈’에 나타난 하나님이나 천사들의 도움을 받는 허구를 끌어들이고 있다. 그리고 ④나의 첫사랑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올랴’와의 사귐과 가슴 아픈 이별과정이 상당부분 할애되고 있으며, ⑤이별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적 삶을 ‘발하스’ 호수에 얽힌 비극적인 전설傳說과 결부시키고 있는 점 등이다.

문제는, 스탈린 독제체제 아래에서 야기되는,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인간 삶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주체나 방법이 ‘나(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초인적인 힘과 능력과 권위를 지녔다는 ‘하나님’이라고 여기는 믿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인간이 극도로 절망적일 때에는 본능적으로 그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서, 혹은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초자연적 혹은 초인적인 어떤 존재를 떠올리게 되고, 그를 통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다시 말해, 자신보다 월등한 능력을 가진 대리존재를 내세워서, 그를 믿고 그를 의지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향 때문에 인간에게는 종교라는 것이 붙어 다니게 마련이지만 어쨌든, 이 작품에서도 그런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곧, 내가 장티푸스에 걸려 죽어갈 때에, 비록 꿈속에서이지만 ‘하나님’이란 존재가 나를 살려주고, 내가 극도로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절망할 때에 낟가리 속으로 기어들어가 쪼그리고 앉아서 잠이 들지만, 역시 꿈속에서 천사가 나타나 도움을 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너무나 오래되고 상투적인 기법이라 아니 말할 수 없다. 이런 상투성은 1991년 제2차 한민족체전에 초대되어 아버지의 조국을 방문할 수 있었던 사실에 대해서조차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것으로 여기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정서적 반응을 낳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작가에게 있어서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불완전성과 인간사회의 절망에서 나오는 현상으로서 인간 한계라고 생각한다.

3. 작품의 의미
그림 : 빅토르 김-리 작가가 2살 때에 찍은 가족사진 : 좌로부터 아버지 이길원, 빅토르김-리, 남동생, 어머니
“스탈린 감옥의 죄수였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동시에 냉혹한 시련의 운명을 겪은 그의 두 아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의무가 있다.”고 작가가 이미「머리말을 대신하여」에서 술회하였듯이,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인 이 작품은 구소련, 지금의 여러 공화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수백 수천 명의 고려인들의 어제와 오늘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비록, 한 가족사라고 말하기에는 어머니와 동생의 삶에 대한 기록이 상대적으로 많이 누락되었고, 나 자신의 이야기조차 많이 생략되었지만, 스탈린 독제체제하에서의 아버지와 나의 삶을 중점적으로 기술함으로써 당시의 시대상과 많은 고려인들의 비극적인 삶을 대언해 주고자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기술로써 구축되는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오로지 경험적 내용을 가지고 사실 중심으로 기술하다보니 흥미는 떨어지지만 긴장과 진지함은 크다. 다시 말해서, 사실주의 문학작품으로서 한 시대상을 환기시키고,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는 뜻이다. 더욱이 직접 경험을 토대로 작품을 쓸 만한 인적자원은 이미 거의 다 타계한 상황인데, 이 작품의 원작자이면서 작품 속 주인공격인 작가 자신도 2010년 현재 이미 82세나 되었듯이, 스탈린 독재체제를 직접 경험한 고려인 1세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스탈린 독제체제하에서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어버린 고려인으로서, 비록 아동기와 청년기를 보냈지만,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구소련과 1991년 독립된 카자흐스탄공화국의 지식계층의 일원으로서 일정 부분 중책을 담당해온 사람이 남긴 글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아니 말할 수 없다. 앞으로 그 누구라도 그 시기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스탈린 독재체제하에서의 민중들의 삶을 그리는 작품을 쓴다면 이 작품이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줄로 믿는다. 실제로, 이 작품을 창작 발표하고 나서 작가는, 카자흐스탄 작가연맹의 맹원盟員이 되었으며, 적지 않은 독자들이 눈물을 흘렸다는데(2010년 09월 15일 서울 대담 중에) 이는 스탈린 독제정치가 고려인들에게 어떤 삶의 조건과 질을 가져다주었는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고, 그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의에 의해서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이해하려 애쓰며 온갖 고난을 극복해낸 아들의 눈물어린 삶의 투지를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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