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영국은 전통적으로 지방에 있는 귀족의 권력이 강력했습니다. 마그나카르타를 성립시킨 것도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도 강력한 지방귀족권력의 힘이었습니다. 이들 귀족들은 자기 영지에 대한 확실한 지배권을 가졌으며 중앙권력의 개입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지배의 다른 측면으로 이들은 영지내의 사람들에 대하여 책임도 졌습니다. 일상적으로 영지 내에 머물면서 보통사람들과 생활도 같이 했습니다. 크리켓경기 등 여가도 보통사람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물론 영지내의 농사일, 목축 기타 산업의 육성에도 관심을 가졌고 기여도 하였습니다. 도로, 저수지, 제방, 방앗간 등 사회간접자본을 만들어내는 것, 중앙에 낼 세금을 걷는 것 등 지방공동체 생활의 중심에 귀족이 있었습니다. 일찍부터 지방자치와 분권이 발달한 뿌리이겠습니다. 

프랑스의 귀족은 이와 달랐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은

   
 
권력이라기보다는 특권이었습니다. 지방에서 이루어져야 할 행정들-공공시설 등 설치계획의 수립 및 이를 위한 부역의 할당, 세금의 징수, 산업의 장려 등-은 중앙왕권이 파견한 총독의 권한이자 몫이었습니다. 귀족들은 부역, 세금 등 각종 부담을 지지 않는 특권을 향유하였습니다. 권력은 중앙으로 집중되었고 귀족들은 중앙권력(왕권) 곁에서 그가 나누어주는 떡고물을 받아먹으며 즐기는 궁정중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자기 영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책임 없이 농노로부터 지대만 뽑아내는 不在地主였던 것입니다. 프랑스혁명은 이런 특권들의 타파를 겨냥했습니다. 토지는 몰수되어 중앙의 지배 아래로 들어갔으며, 모두가 세금을 내는 쪽으로 되었고, 국민개병이 실시되어 군사영웅 나폴레옹의 물질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권력이라기보다는 특권이었습니다. 지방에서 이루어져야 할 행정들-공공시설 등 설치계획의 수립 및 이를 위한 부역의 할당, 세금의 징수, 산업의 장려 등-은 중앙왕권이 파견한 총독의 권한이자 몫이었습니다. 귀족들은 부역, 세금 등 각종 부담을 지지 않는 특권을 향유하였습니다. 권력은 중앙으로 집중되었고 귀족들은 중앙권력(왕권) 곁에서 그가 나누어주는 떡고물을 받아먹으며 즐기는 궁정중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자기 영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책임 없이 농노로부터 지대만 뽑아내는 不在地主였던 것입니다. 프랑스혁명은 이런 특권들의 타파를 겨냥했습니다. 토지는 몰수되어 중앙의 지배 아래로 들어갔으며, 모두가 세금을 내는 쪽으로 되었고, 국민개병이 실시되어 군사영웅 나폴레옹의 물질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권력이라기보다는 특권이었습니다. 지방에서 이루어져야 할 행정들-공공시설 등 설치계획의 수립 및 이를 위한 부역의 할당, 세금의 징수, 산업의 장려 등-은 중앙왕권이 파견한 총독의 권한이자 몫이었습니다. 귀족들은 부역, 세금 등 각종 부담을 지지 않는 특권을 향유하였습니다. 권력은 중앙으로 집중되었고 귀족들은 중앙권력(왕권) 곁에서 그가 나누어주는 떡고물을 받아먹으며 즐기는 궁정중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자기 영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책임 없이 농노로부터 지대만 뽑아내는 不在地主였던 것입니다. 프랑스혁명은 이런 특권들의 타파를 겨냥했습니다. 토지는 몰수되어 중앙의 지배 아래로 들어갔으며, 모두가 세금을 내는 쪽으로 되었고, 국민개병이 실시되어 군사영웅 나폴레옹의 물질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구한말 조선의 양반사대부들을 살피자면 프랑스 귀족에 가까웠다고 보는 것이 맞겠죠. 不在地主로 소작료만 뽑아갈 뿐 이들의 삶을 위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공공생활을 위한 모든 부담(세금, 부역 등)으로부터 면책의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렇다면 혁명은? 여기서 프랑스와 조선의 길이 갈립니다. 조선은 모두가 특권을 누리는 방향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것도 평등실현 방법이라면 방법일 수 있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재산을 모은 사람은 족보를 사거나 공명첩을 사거가 수단 방법 껏 양반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세금을 내거나 공역을 면제받은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고종황제의 책임도 컸습니다. 왕실내탕금 조달용으로 돈 받고 면역의 특권을 남발했습니다. 결과는 명약관화입니다. 조선왕실의 조정에는 일본공사관의 소수 수비병력 조차 제압할 물리력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사회통합도 붕괴되었습니다. 어제까지 상민이던 사람이 양반이 되면서 상민을 '상놈'취급하고 천대하였습니다. 사회는 더 불평등해지고 갈등은 깊어 갔습니다. 사회 밑바닥에 대한 착취는 더욱 가혹해지고 기댈 언덕을 잃어버린 하층은 절망합니다. 급기야는 외세라도 좋다하기까지에 이릅니다. 일진회가 등장하는 등 망국의 길로 갔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복지국가'의 건설을 시대의 소망으로 모두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꿈꿔왔던 민주화운동의 구체화된 버전일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이므로 실현될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특권의

   
 
타파 위에서만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지속가능한 복지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대학을 위하여 모두의 공유자산인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려면 만연한 특권부터 철폐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MB에게 반값등록금 실현의 책임을 묻지만 국민세금이 'MB'의 돈은 아닙니다. 'MB'가 대학등록금을 올린 것도 아닙니다. 턱없이 높은 등록금을 만들어 낸 것은 대학의 독과점적 특권이며, 그 떡고물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향유하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연구 없는 오로지 안식뿐인 安息年을 위한 비용으로 혈세가 사용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자녀의 장학금 및 취업보장까지 누리는 교직원의 과잉혜택을 위해 쓰일 혈세는 없어야겠습니다. 오래전부터 초중등 교원에게도 안식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요구되어 왔고 몇 해 전부터 부분적으로 도입되어 시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기 몫의 특권 챙기기, 모두가 특권누리기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느낌이 개인적이 기우에 불과한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타파 위에서만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지속가능한 복지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대학을 위하여 모두의 공유자산인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려면 만연한 특권부터 철폐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MB에게 반값등록금 실현의 책임을 묻지만 국민세금이 'MB'의 돈은 아닙니다. 'MB'가 대학등록금을 올린 것도 아닙니다. 턱없이 높은 등록금을 만들어 낸 것은 대학의 독과점적 특권이며, 그 떡고물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향유하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연구 없는 오로지 안식뿐인 安息年을 위한 비용으로 혈세가 사용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자녀의 장학금 및 취업보장까지 누리는 교직원의 과잉혜택을 위해 쓰일 혈세는 없어야겠습니다. 오래전부터 초중등 교원에게도 안식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요구되어 왔고 몇 해 전부터 부분적으로 도입되어 시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기 몫의 특권 챙기기, 모두가 특권누리기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느낌이 개인적이 기우에 불과한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타파 위에서만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지속가능한 복지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대학을 위하여 모두의 공유자산인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려면 만연한 특권부터 철폐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MB에게 반값등록금 실현의 책임을 묻지만 국민세금이 'MB'의 돈은 아닙니다. 'MB'가 대학등록금을 올린 것도 아닙니다. 턱없이 높은 등록금을 만들어 낸 것은 대학의 독과점적 특권이며, 그 떡고물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향유하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연구 없는 오로지 안식뿐인 安息年을 위한 비용으로 혈세가 사용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자녀의 장학금 및 취업보장까지 누리는 교직원의 과잉혜택을 위해 쓰일 혈세는 없어야겠습니다. 오래전부터 초중등 교원에게도 안식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요구되어 왔고 몇 해 전부터 부분적으로 도입되어 시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기 몫의 특권 챙기기, 모두가 특권누리기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느낌이 개인적이 기우에 불과한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디자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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