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조선족집거구가 어제날 행정구역인 촌을 기준으로 형성되였다면 오늘에 와선 조선족중소학교를 둘러싸고 새롭게 일떠서고 있다.

현재 이런 현상은 이미 개별적이 아니라 보편화 되였다.

흑룡강성을 놓고 볼 때 대중형 도시에 자리잡고 있는 할빈시조선족제1중학교, 목단강시조선족중학교 등 학교주변이 이런가 하면 소도시(현급 시)에 위치해 있는 아성, 상지, 오상, 해림, 녕안, 밀산, 벌리, 탕원 등 조선족중소학교 주변도 례외가 아니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작은 도시에서 큰 도시로 인구류동이 거세찬 흐름을 이루고 있는데 구경 이것이 희(喜)인지 비(悲)인지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지만 거스릴수 없는 시대흐름인것만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20세기 80년대초, 중국의 개혁개방 동풍을 빌어 조선족농민들이 선참으로 한국과의 혈연관계와 인맥을 활용하여 한국 또는 연해 도시로 한집 두집 새로운 치부길을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갔다. 이런 판국에 학교라고 무사할리 만무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이런 현상이 몇몇 농가에서 자녀를 데리고 타지방으로 떠나가는데 불과했지만 나중에는 외지에 나가 돈을 번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오지 않고 자녀들을 공부 조건이 보다 훌륭한 도시학교로 전학시키는 바람에 그만 풍기로 내번져 급기야 학교도 문을 닫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 변혁과 더불어 도시학교 주변에는 자녀들의 공부 뒤바라지를 위해 몰려온 학부모들을 위주로 한 제민족끼리 한데 모여 살기를 원하는 조선족들로 새로운 조선족집거구(조선족마을 혹은 코리아타운이라고도 부름)를 이루기 시작했다.

10여년의 노력끝에 현재 흑룡강성 조선족학교들은 통합이 기본상 이뤄지고 이런 고장마다 크고 작은 집거구가 형성되였다.

할빈시에는 할빈시조선족제1중학교에서부터 할빈코리아타운까지 이 구역에 조선족들이 약 700가구 가량 들어앉고 목단강시에는 목단강시조선족중학교, 조선족소학교, 조선민족상점, 조선족문화관 등 여러 조선족 단위를 에워싸고 전 시 시내구역 조선족인구의 약 90%를 차지하는 2만5천명이 집결되여 있다.

그리고 상지조선족중학교 주변에 조중교원주택, 공안국가족아파트, 국가세무국가족아파트 등 건물을 중심으로 약 700~800가구, 오상시조선족중학교 주변에 장흥소구, 조중소구(小区)를 중심으로 약 600~700가구, 아성시조선족중학교와 소학교 주변에 조중교원주택, 성건촌아파트, '우방지가',계전기가족아파트를 중심으로 약 500여가구, 녕안시조선족중소학교 주변에 광명아파트, 공안국가족아파트, 단층집을 중심으로 약 500여가구, 벌리현조선족중학교 주변에 '앞마을'과 '뒤마을'을 중심으로 약 400가구, 탕원현조선족중학교 주변에 교원호, 향양(학교와 붙어있음)촌 농호, 외래호를 합해 약 200여가구가 오붓이 한테 모여 새로운 삶을 가꿔가고 있다.

이곳 거주형편을 보면 절대 다수 가정에서 국내외로무수출로 벌어온 돈으로 제집을 장만하여 안착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반면에 일부 가정에서는 수중에 돈이 있어도 자식 공부 뒤바라지를 끝낸 뒤 더 좋은 고장으로 떠나갈 타산으로 림시 세방살이를 하고 있으며 일부 가정에서는 집을 살 돈이 없어 남의 세방을 얻어 쓰고 있는데 그중 경제상황이 좀 좋은 가정에서는 아파트에 들고 그렇지 못한 가정에서는 단층집마저 면적이 작은것을 선택한다.

이곳 거주자들의 년령 구조를 보면 학생을 주축으로 손자, 손녀의 공부 뒤바라지를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어린 자녀를 혼자 떼놓을 형편이 못되여 남아있는 30대 주부들이 일정한 수효를 헤아리며 부부가운데 한사람이 외지나 외국에 나간 40~50대 중장년 남녀들도 더러 끼여 있다.

하여 이곳도 촌과 별로 다를바 없이 늙은이와 아이들의 세상으로 주목되고 있다. 흑룡강성 조선족중소학교 주변 조선족집거구 형성 원인을 분석해 보면 우선 '자고로 빌어 먹어도 자식 공부는 시킨다'는 선조들의 우량한 전통관념 영향밑에 학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보다 우월한 학습조건을 마련해 주기 위해 촌에서 소도시로, 소도시에서 큰 도시로 이주온 주관 노력이 가장 관건적인 원인,동시에 무너지는 학교를 지탱할 힘이 없어 통합하지 않으면 안되는 객관 환경도 홀시할수 없는 중요한 원인이다. 이밖에 조선족들이 국내외 로무수출로 도시에 집을 사서 자녀 공부 뒤바라지를 할만한 경제조건을 갖춘것 또한 홀시할수 없는 다른 주요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흑룡강일보 고범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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