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옛 시골에서는 김치를 담그는 날도 잔치집 못지 않게 흥성거렸었다. 김치독을 씻어 마당끝에 대기시켜놓고 간밤에 담근, 초절이가 맞춤하게 된 배추를 건져 맑은 물에 헹구어 물기를 찌우고 찹쌀죽을 곱게 쑤어 양념을 재우고 본격적으로 김치 버무리는 일이 진행되였다. 버무리는 절차만은 뭇아낙네들의 손을 빌어야 해넘어가기전에 김치잔치가 끝날수 있을만큼 동네 아낙네들은 저마다 김치를 많이 담그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김치는 시골사람들의 절반량식이였으니까 그럴법도 하겠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슬슬 넘어갈 정도로 고추가루양념을 듬뿍 바른 남선김치, 겉보기엔 흰배추 그대로이나 속을 펼쳐보면 고물양념이 가을 밤톨처럼 골똑골똑 들어찬 북선김치…  버무리는 아낙네들의 고향입맛에 따라 하루사이에 버무린 김치래도 각양각색이다. 한창 버무리는 김치잎을 자꾸자꾸 찢어먹어서 모여온 동네 아이들의 입가는 무대우에 나선 중국 창극쟁이들의 입술처럼 온통 뻘겋게 고추물이 든다. 감자나 원두콩을 섞어 지은 쌀밥 한양재기를 구들 한복판에 놓고 김치독을 묻을 땅을 파느라고 합세를 한 이웃집 남정네들까지 회동하여 금방 버무린 김치잎을 술목이 부러지게 뜬 밥우에 척척 얹어먹는 때가 그날 김치잔치에서는 합환의 극치이다. 

그렇게 둘레둘레 마을안을 돌며 동네 김치를 다 담그고나면 이튿날은 어김없이 그해의 첫눈이 내린다. 창밖에서 거위털 같은 눈송이가 쉼없이 쏟아져내려도 아낙네들의 마음은 여느때없이 든든하다. 겨우내 먹을 량식을 땅밑에 묻어두었다는 두둑한 배짱이 득돌 같이 차있기때문이다. 누군가 밤비 내리는 날은 창가에 서서 행복에 젖고 첫눈이 내리는 날은 창밖을 내다보며 안락을 느낀다고 했던가. 바람과 더불어 비줄기가 창가를 때려도, 치성했던 여름 들판과 추억으로 주렁졌던 가을 들판을 뒤덮으며 흰눈꽃이 무정한 겨울을 힘차게 몰고와도 내 몸이 안주할수 있는 따뜻한 방 한칸과 겨우내 먹을 량식을 그속에 마련해두었다는 안정감때문이리라.

소금이 없는 찬은 생각할수 없듯이 김치가 빠진 밥상은 말이 안된다. 아침도 김치, 점심도 김치, 저녁도 김치… 김치는 벼농사를 주산업으로 살아온 우리의 밥상에 이밥과 찰떡궁합이 되여 식탁을 지켜왔고 생활을 리드해왔다. 술을 썩 좋아했던 아버지는 밖에서 아무리 맛있는 중국료리를 대접받고 와서도 집에 오시면 어김없이 통배추김치에 밥 한그릇을 비웠다.  

《고기야 술이나 마실 때 집는거지 밥을 먹는 때는 이 놈의 김치가 없이야 되나? 녀편네   없인 하루 살아도 김치가 없인 하루도 못사는 나다.》 

번번히 한저녁 밥상을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에 어머니가 짜증를 낼라치면 아버지는 자기 나름대로의 상당한 구실을 이렇게 피력했다.
가을이 되여 싣걱질이 시작되면 조선동네에서는 한족동네의 마차를 곧잘 빌려 썼다. 품삯을 계산해주고도 점심 한끼를 대접해주던것이 그때 시골의 인심이였는데 한족동네의 차부들은 조선동네의 김치와 이밥을 먹어보려고 며칠전부터 너도나도 자진해서 일거리를 찾아왔다. 그가운데 조선동네 밥이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앉은자리에서 일곱그릇을 비우고 위장에 탈이 생겨 마차에 누워 병원에 실려간 사람도 있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어느때부터였는지 동네 아낙네들은 그렇게 겨우내 먹고도 남을만큼 손 크게 담근 김치를 봄이 되면 10리 상거한 진거리로 내여다 한족사람들에게 팔기도 했다. 김치독을 비우는 방법으로 시작한것이 제법 장사가 되여 생활에도 얼마간 보탬이 되였으니 일거량득인 셈이였다. 동네 아낙네들은 김치를 판 돈으로 남비도 사오고 라지오도 갖추었다. 제일 장사를 잘한다는 아낙네는 김치를 판 돈으로 재봉침까지 갖추어놓아 동네 어른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하루해를 지켜서서 팔다 남은 김치를 어머니는 시장안에 있는 고기집에 들려 돼지고기와 맞바꾸어오기도 했다. 돼지고기에 김치를 섞어 볶은 료리는 김치의 색다른 맛을 시골사람들에게 하사했다. 매콤하고 시원한 맛으로만 먹던 김치가 더운 료리를 좋아하는 중국사람들의 구미에도 딱 들어맞아 《꼬우리 쏸차이》(고구려 절임배추)라면 누구라 없이 혀를 내두를만큼 알아주는 메뉴가 되여 느끼하고 기름진 중국료리를 따돌리고 중국집 메뉴판 제1호에 자리매김을 하기도 했다. 
김치는 동네 아낙네들에게 돈을 모으는 재미를 알게 했고 살림을 윤택해지게 하는 길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벼농사에만 목을 매고 살던 사람들이 어느때부터는 수도인 북경의 거리에까지 김치를 가지고 가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김치는 마을사람들이 논밭을 떠나 시장경제라는 큰 바다에서 항행하는데 노가 되여주었고 시골사람들이 외계로 진출할수 있는 티켓이 되여주기도 했다. 장터 한쪽구석에 앉아 마른 벼짚 한오래기로 질끈 동여 팔던 김치가 요즘은 고운 우리 글로 포장되여 당당히 슈퍼의 한곳을 차지하고 이쁨을 자랑하고있다.  

아들애 생일날 우리는 처음으로 남들이 다 간다는 《맥도날드》집으로 갔다. 누군가 《맥도날드》와 《캔더키》가 있는가 없는가를 통해서 당지의 소비수준을 가늠할수 있다고 하더니만 시장경제의 덕을 입어 생활이 전에 없이 눈에 띄게 개선된 이 동네 골목골목에 요즘 들어 《맥도날드》와 《캔더키》는 물론 《치킨집》에 《피자집》까지 비집고 들어와서 오픈을 낸다고 듣그럽게 폭죽을 쏘아대는가 하면 부끄럼도 없이 마구 벗은 처녀애들이 배꼽을 드러내고 요란스런 춤을 추며 야단법석이다.  아들애가 어느 정도 유혹이 된 모양, 생일에 뭘 먹겠느냐는 물음에 《맥도날드》집을 가리켰다. 집안이 들썽하니 크고 고급스레 장식된 반면에 손님이 별로 많지 않아 호젓했다. 손님이 없는데 장사가 되는게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고있으려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아들애의 식사량에 알맞을 정도로 주문을 했을뿐인데도 엄청난 가격표가 나왔다. 

집에서 료리를 만들어 먹으면 세식구가 두끼를 푸짐히 먹을수 있는 값을 아들애 혼자서 한끼에 때리는 셈이였다. 빵 두쪽사이에 상추잎 한잎, 도마도, 소고기 한장을 끼워넣은 음식을 내려다보며 우리의 상추쌈밥이나 김밥, 그리고 중국식 《죠즈》나 《뽀우즈》와 그 내용물이 좀씩 다를뿐 음식재료를 반반씩 섞어서 함께 싸먹는다는 형식은 거의 닮았다는 생각을 하고있는데 영화에서 본것처럼 크게 한입 베여 먹던 아들애가 문뜩 기발한 착상을 했다.

《엄마, 이 빵속에 김치볶음을 넣어 먹으면 더 맛이 있겠다, 그치?》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들애가 중국말로 지껄이는 엉뚱한 소리를 듣고 옆상에 앉았던 젊은 한족 부부가 웃음을 못참고 키드득거렸다. 

《이 놈아, 누가 널 조선놈 아니랠가봐 그러냐?》

남편이 아들애의 뒤통수를 손가락으로 튕겨주며 나무리자 방금 키득거리던 부부가 말을 받았다.

《왜요? 괜찮은 착상이구먼.  우리 애도 그런 생각하고 입맛을 고쳐주었으면 좋겠어요. 자꾸 뚱뚱해지면서도 이 음식이라면 오금을 못쓰는 우리 애입니다. 학교 가면 <저팔계>라고 놀림을 당한다면서도 이걸 안먹으면 음식대접을 못받은걸로 치부하니 아니 먹일수도 없구. 이 고열량 음식을 대체할수 있는 다른 뭔가 나와주었으면 좋겠어요. 값이나 눅어요? 이 애 혼자서 먹은것이 물만두 네그릇 값은 충분하다니까요.》

어디에서는 제일 값싸고 쉽게 사먹을수 있다는 음식이 중국땅에 들어와서는 값비싼 고급음식으로 둔갑되여 아직은 아까운것 모르는 철부지애들과 서양문화를 맹종하는 젊은이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가고있다. 비만원인을 《맥도날드》같은 고열량 음식때문이라고 여기저기서 떠들어대는 와중에 우리의 대표음식인 김치는 《사스》 같은 무서운 질병을 예방할수 있다는 호평이 나왔다. 조선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도 못한 사람들까지 김치를 찾는다고 하니 무엇보다 생명과 건강을 지키려 하는것이 21세기 모든 사람들의 첫째가는 욕망이고 최대 관심사인것 같다. 

그 비싼 음식도 별로였는지 아들애는 집으로 돌아오자바람으로 랭수에 밥 한공기를 말아 배추김치를 쭉쭉 찢어 볼이 미여지게 퍼먹고야 시름을 놓는다. 남편은 아들애를 바라보며 《오늘 누구는 생일을 개 보름쇠듯했구나.》고 놀려주었다.

요즘 이웃에 사는 복순아줌마는 《우루무치》시에서 가이드일을 하는 막내아들이 김치생각이 나서 죽을 지경인데 인편으로라도 엄마가 담근 김치를 좀 보내줄수 없는가 하는 전화가 왔다며 발을 동동 구르며 법석을 떨고있다. 

《빌어먹을 자슥, 그만큼 객지생활을 했으면 이젠 입맛이 변할 때도 되겠구만은 한달에 한번씩은 꼭꼭 이렇게 어미속을 훑어놓는다아입니껴? 우루무치가 옆집입니껴, 뒤집입니껴? 인편이 어디 있다고 심심하면 김치타령을 해쌌는지? 아무래도 내가 그 놈때메라도 이 닭갈비 같이 먹을 알도 없는 직장 때려치우고 우루무친가 두루무친가 하는데 가서 김치장사를 할가보네?》

한달후 과연 복순아줌마는 겁없이 직장에 사표를 내고 우루무치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로 날아가도 몇시간이 실히 걸린다는 중국 최서단 《우루무치》시 거리에 빨간 통배추김치가 달고 신 《신강포도》와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만큼 일미라는 《신강양고기뀀》과 함께 세인들의 눈길을 새롭게 모을 생각을 하니 괜히 어깨에 힘이 생긴다. 

아침준비를 하려고 랭장고문을 열었더니 담근지 이틀도 안된 김치가 벌써 굽이 나있었다. 래일아침은 시장에 나가 큰놈으로 배추 둬포기 골라다가 새 김치를 담가야겠다.

연변인터넷방송/

[저작권자(c) 평화와 희망을 만들어가는 동북아신문(www.dba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