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재외동포 문학상 수상집 (대상) 김연아/미국

 [서울=동북아신문]그녀의 외모는 냉동실과 바비인형을 떠올리게 했다. 그녀는 바비인형과 같은 비율의 몸매를 가졌고, 냉동실처럼 차갑다는 인상을 풍겼다. 인상도 차가웠지만 피부도 창백해 보였다. 정맥이나 모세혈관이 퍼져 있을 것 같지 않은 얼굴, 그러고보니 그날은 질리도록 하얗고 추운 겨울이었다.

12월 초순에 내린 첫 눈은 군데군데 둔턱으로 남았다가 새로 내려앉는 눈들을 고스란히 떠받쳤다. 절기상 입춘이 지나도 이 곳 메사추세츠(MA)는 봄이 올 때까지 첫 눈을 품는다. 한국처럼 삼한사온이 없는 탓인지, 숲과 잔디가 많은 탓인지 어림잡아 9할의 대지는 겨울동안 순백이다. 눈이 오면 제설차가 차도를 긁어 눈을 한 곳으로 모은다. 그렇게 모인 눈은 처음엔 상 것의 봉분만 하다가 곧 양반의 것만큼 커지고 겨울 막바지엔 왕릉만큼 거대해 진다. 하얀 프로스팅(frosting)으로 덮힌 케이크를 손가락으로 스윽 긁어 노란 빵이 빼꼼히 드러난 모양처럼 세상은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만 회색을 내비칠 뿐 모두 하얗다. 지붕, 창 턱, 나무, 입김과 그 입김을 뿜어내는 입 언저리…

차문 밖으로 발을 내딛자 턱과 어깨가 심하게 흔들렸다. 몸을 옹송그린 세라를 품에 안은 채 꽁꽁 얼어붙은 바닥을 더듬으며 걷다가 그녀와 마주쳤다. 우리는 고전적인 붉은 벽돌로 지어진 교회당을 향해 서로 반대쪽 주차장으로부터 걸어오는 중이었다. 그녀의 푸른색 눈동자가 나와 세라를 별스럽지 않게 담았다. 나의 밤색 눈동자는 그러나 그녀를 특별한 느낌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나처럼 두꺼운 파카를 입거나 목도리를 두르지 않았다. 하얀 털실로 짠 반코트에 가는 허리가 강조되도록 같은 재질의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었지만 턱을 떨지도 어깨를 움추리지도 않았다. 1미터 70쯤 돼 보이는 키와 50킬로가 채 될 것같지 않은 몸매는 라인이 또렷해서 얄밉도록 맵시가 났다. 세상도 하얀데 밝은 크림색 부츠까지 신고 있어서 그녀는 북극산 바비인형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탈이었다. 알고보니 앤을 대신해 수업을 맡기로한 자원봉사자였다. 교회에서는 화요일 하루 ESL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앤은 우리반 담임이었다. 앤은 임신 3개월에 접어들었는데 입덧이 심해서 약을 먹기 시작했다고했다. 수업 도중 그 말을 한 건 그녀의 실수였다. 학생들은 모두 경악에 찬 시선을 드러냈고 특히 중국인 할머니들은 위험하다거나 심지어는 말도 안 된다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앤은 그 알약이 안전하다고 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듣고 안심하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우리중 제일 영어가 유창한 중국인 첸첸 할머니가 괴로운 입덧도 아기를 위해서 참고 견뎌내야 진정한 모성애라고 말해 앤을 쓴웃음 짓게 만들었다. 또 다른 중국인 신디할머니는 엄마가 기분이 좋아야 아기 건강에 좋은 법이라며 안쓰러운 듯 앤을 변호했다. 앤은 고개를 좌우로 살살 흔들며, 여러분은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를 조금 더 신뢰할 필요성이 있어요,라고 중얼거렸다.

“앤이 몸이 안 좋아서 못 나왔어요. 대신 크리스탈이 오늘 수업을 담당할 겁니다.”

코디네이터인 미스터 버코가 상황을 설명하자 중국 할머니들이 중국어로 쑤군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중국어를 모를 뿐더러 크리스탈이 미스터 버코한테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그들의 표정을 살필 겨를이 없어서 앤에대한 소문이 바로 그 자리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크리스탈은 두루마리 휴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스터 버코가 휴지를 가지러 간 사이 크리스탈은 이 방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모두 영어를 썼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곧 침묵이 흘렀다. 미스터 버코는 두루마리 휴지를 건넨 후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을 머금은 채 사라졌다. 크리스탈은 포장을 벗긴 후 휴지 몇 장을 떼어내더니 두루마리를 옆사람에게 넘기며 말했다.

“자 모두들, 화장실에서 볼일 본 후 사용하는만큼씩 휴지를 뜯으세요.”

의아해하는 표정이 모두의 얼굴에 번졌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나는 학생들이 휴지를 떼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놀랐다. 그들은 보통 5,6칸씩을 뜯어냈는데 정말 그만큼씩만 쓰는 지 의심스러울 따름이었다. 저들에게는 내가 가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내게는 치질이라는 질병이 있다. 분만 때, 오랜 시간 과도하게 힘을 주어 생긴 결과였다. 치질은 소문처럼 이렇다할 고충을 주지는 않았지만 사용하는 휴지의 양에 변화를 초래했다. 한번은 휴지때문에 변기가 막히는 일이 생겼다. 변기가 막혔을 때, 나는 망연자실한 느낌을 떨치지 못했다. 생애 처음 발생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퉁퉁 부은 눈두덩이로인해 쌍꺼풀 수술한 티가 생생해진 것과 동시에 포도알만큼 커진 유두가 아이의 입에 들어가지 않아 쩔쩔매는 중이기도 했다. 갑자기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주위를 돌아보니 낯설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후 나는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사람들이 산후우울증이라고 했다. 나중에 어떤 혜택이 생긴다는 건지 남편은 어차피… 란 말로 나를 꼬드겼고 임신 7개월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도미를 했다. 그리고 남편이 의도하던 바 대로 세라는 미국 시민이 되었다. 그리고 덕분에 나는 호된 산후 우울증을 치뤄야 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고민을 끝내야 했다. 그래서 휴지의 끝을 엄지와 검지사이에 끼우고 손목을 돌리며 휴지를 너댓번 손등에 감았다. 그 때 비데만 있었어도…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이 또 한번 미워지려고 했다. 크리스탈의 얼굴에 장난기 어린 웃음이 번졌다. 나의 이런 사정을 꿰뚫어 본 듯하여, 자격지심이 인도하는 대로 그녀의 웃음을 비웃음 혹은 자만심이라고 해석을 한 나는 그래서 기분이 산뜻하지 않았다.

“이제 한 칸씩 떼어내면서 자기 소개를 하는 거예요. 나부터 할게요. 내 이름은 크리스탈 아길레라. 남편과 세쌍동이 딸이 있고, 남편은 하버드 의학센터에서 일을 해요. 내 취미는 아이들 가르치기, 요가, 퀼트.”

크리스탈은 두번째 칸의 휴지를 떼어낸 후 계속 말을 이었다.


“나는 메릴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MA에서는 대학 때부터 살기 시작했지요. 제일 싫어하는 건 이곳의 겨울”

다섯 칸의 휴지를 떼어내는 동안 그녀에대해 알게 된 사실은 이런 거였다. 현재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재미있어서 육아가 희생이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독실한 크리스찬이며 어렸을 때 심하게 아픈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예수를 보았다, 대학 때 전공은 의상디자인이었지만 교육학을 공부했어야 마땅했다… 그녀는 여느 뉴잉글랜드 토박이처럼 빠른 어조로 이야기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어서 나는 조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에 이어 한사람씩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처음 바톤을 넘겨받은 첸첸할머니는 그럴줄 알았으면 휴지를 더 많이 떼어냈을테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다는 듯 한 칸에 열가지 이상의 사실을 이야기 했다. 아들 셋을 보란 듯 키워놓아 언제나 자랑거리가 많은 할머니였다. 셋째 칸을 찢은 후 셋째 아들에 관해 이야기 하려는 순간이었다.

“첸첸, 지금은 당신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이예요. 자신에 대해서만 말해 줄래요? 그리고 뒷 사람들도 이야기해야 하니까, 좀 간단하게 해 주세요.”


첸첸 할머니는 두툼하게 쌍꺼풀 진 눈을 한껏 치켜 뜨더니 급격히 냉정해진 어조로 “I’m done.”이라 말하고 손에 든 휴지로 코를 풀기 시작했다. 모두들 움찔하는 기색이었지만 크리스탈의 표정엔 별달리 변화가 없어 보였다. 나는 그녀가 냉정하고 손윗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건방진 인품의 소유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나는 휴지를 빠르게 조각내며, 한 칸에 한 문장씩을 이야기했다. 남편 유학때문에 미국에 왔다, 대학때 영어 교육을 전공했다, 네살된 딸이 하나 있다, 그 아이와 24시간 붙어 산다… 나중에 세어보니 휴지는 총 23장이었다. 첫 날, 나에대해 크리스탈은 23가지나 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필이면 한 겹짜리라 쓸데없이 더 길게 뜯었어,라고 말했을 때 남편은 최근 들었던 말 중 제일 재미있었다며 눈물까지 찔금댔다.


일주일 후에도 앤은 나오지 않았다. 언제나 일등으로 도착해 들어오는 사람들 모두에게 인사를 건네는 첸첸 할머니도 덩달아 보이지 않았다. 앤이 당분간 오지 않을 거라는 소리를 듣고 가버렸어, 라고 신디 할머니가 말했다. 이유를 묻자 그 ‘미세스 아이스’가 싫어서지 왜긴… 이라고 대답했다. 푸하하, 웃음이 터졌는데 그때 크리스탈이 들어왔다. 여전히 냉동실에서 막 나온 푸른눈의 바비인형 같았다. 수업중에 자꾸 빨간 립스틱을 바른 첸첸 할머니의 입술이 삐죽대며 ‘미세스 아이스’라고 비아냥대는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터지려고 했다. 이후로 크리스탈은 우리 사이에서 ‘미세스 아이스’로 통했다.

영어도 유창하고 미국에서 산 지 40년이나 된 첸첸 할머니는 천성이 쾌활하고 정보통 노릇하는 걸 좋아해서 존재감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결석했다는 사실이 다른 반까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3주째 되던 날, 옆 반 순정씨가 채플시간에 첸첸 할머니 소식에 대해 물었다. 첸첸 할머니가 중국 수다장이라면 순정씨는 한국인 대표였다. 나는 혹, 몸이라도 불편하신게 아니겠느냐고 시치미를 떼고 새침하게 말했다. 나는 순정씨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못들은 척 사마리아 여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그 교회 신자라는 백인 노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순정씨는 뭔가 있나보던데…,라고 중얼거렸다.


5주가 지나도록 앤이 돌아오지 않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나는 그 소문을 또 순정씨를 통해서 듣게 되었다. 채플시간이 되어 본당을 향하는데 먼저 온 순정씨는 자기 옆자리를 가리키며 멀리서 걸어오는 나를 향해 손짓했다. 못 본척 딴 데 가서 앉을까했지만 그렇더라도 쪼르륵 내 옆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 뻔해서 그냥 그녀가 손바닥으로 두드리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앤말이예요. 애가 잘못되었다며?”

이마에 서너겹 주름이 잡혔을 것이 뻔하도록 눈을 치뜨고서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중국 할머니들이 또 쑤군대시길래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물어봤죠. 앤이 무슨 약을 먹고 있었는데 그 약때문에 애가 잘못된 것 같다는 거예요. 쯔쯧. 임산부가 조심 좀 하지, 대체 무슨 약을 먹었대?”

“입덧 가라앉히는 약인것 같았는데… FDA에서 승인된 거고 태아에게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거라고 했는데…… .”

“그게 다 체질별로 다르지. 부작용이란게 누구한테 온다고 경고 하고 오나? 약을 복용을 해봐야 부작용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거 아녜요? 페니실린처럼 애초부터 테스트를 하는 게 아니라면 임산부가 알아서 조심을 했어야지...... . 그런데 그런 약도 있대요? 우리처럼 구식인 사람은 몰라서도 못먹겠네. 모르는 게 약이란 말이 딱 맞아. 쯔쯧쯧…”

교실문으로 들어오는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포옹을 하며 “Just say, congratulations!” 라고 요구하던 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호접란같은 미소를 내뿜던 앤은 학생들이 다 모이자 양 팔을 벌리면서 “Surprise!”를 외쳤다. 앤은 어리둥절해 하는 우리를 향해 “I’m pregnant.”라고 소리쳤다. 그녀의 비취빛 눈동자는 물기를 머금어 에머랄드 구슬처럼 보였다. 앤이 4년동안 임신을 시도했지만 아기가 생기지 않아 입양을 고려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우리들 중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학생들은 한결같이 제 일인양 기뻐했고 그 날은 온통 임신과 입덧, 출산의 무용담들로 수업은 프리 토킹으로 채워졌다. 채플이 진행되는 내내 그 날의 앤의 모습이 떠올라 내 위장에서는 빈 속에 알약을 삼킨 것처럼 매캐한 트림이 올라왔다. 순정씨는 고개를 살짝 돌려 시선을 내 무릎에 둔 자세로 이렇게 소곤댔다.

“근데, 첸첸할머니는 왜 계속 안 나오시는 거예요?”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날 밤 남편은 자정이 다 되어서야 데리러 오라고 연락을 했다. 여느 때처럼 손에 잡히는 대로 PG급 DVD를 틀어놓고 세라가 곤히 자는 것을 확인한 후 집을 나섰다. 혹 잠을 깨더라도 영화를 보고 있으면 엄마가 곧 올 거야. 절대 큰소리로 울면 안 돼,하고 손가락을 걸며 세라에게 다짐해 놓은 뒤로는 한밤중에 자는 아이를 들쳐업고 나가는 수고를 덜게 되었다. 그건 아이의 수면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부모의 삼고(三考)이기도 했다. 로마법이 고국법과 많이 달라서 다 따르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데 13세 이전의 아동을 집에 혼자 두면 안 된다는 조항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만에 하나인 확률의 기우때문에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거치적거리는 법이라면 알아서 준법하면 된다는 남편의 말을 반복해 듣다보니 그것이 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겉옷을 매일 바꿔 입으라는 것, 그렇지 않으면 외박했다고 오해한다는 것, 음료수든 음식이든 각자의 것을 주문해 따로 먹는다는 것 등도 그들의 문화중 우리가 반드시 지킬 수는 없는 조항이었다. 하지만 좌회전 깜빡이를 넣은 채 조금의 배려도 없이 길을 막고 있는 앞 차를 향해 클락슨을 울리지 않는다든지 느리터분한 계산대 점원에게 빨리빨리를 다그치지 않는 인내 등은 지키지 않으면 이 쪽이 저급한 시선으로 견제당하는 그들의 미풍양속이었다. 다각적인 상황으로 로마법에 접목할 줄 아는 눈이 생겼다는 사실은 타국생활에 꽤 노련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쭉쭉 뻗은 고속도로 대신 구불텅한 빈민촌 골목을 주행노선으로 선택한 것도 말하자면 그런 맥락이었다. 한 달치 자동차 가스비가 1/3쯤 절약되는 결과를 안겨 준 그 선택은 노하우로 터득한 나만의 필요악법이었던 것이다.


나는 ESL수업 중간에 마련된 채플시간에 하루빨리 그 빈민촌 골목을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십자가를 향해 기도를 하곤 했다. 그날따라 달도 별도 없어, 가로등 없는 마을을 밝히는 빛이라곤 드문드문 창을 통해 새어나오는 전기등불 뿐이었다. 어두웠지만 낮게 먹구름이 끼었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졌다. 사위가 그토록 어두컴컴한데 집집의 벗겨진 페인트와 늘어진 홈통과 낡은 주택 안에서 허옇게 피어오르는 입김과 벼룩들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렇지않아도 시린 팔다리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차에 탄 남편은 오늘 교회 수업은 어땠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앤의 가슴 아픈 사연이 떠올라 첸첸 할머니가 없으니 교실 분위기가 왠지 소금기 없는 감자맛같고, 달빛 없는 오솔길같고, 립스틱 칠하지 않은 영자씨같애,라고 부러 생뚱맞게 대답했다. 그러자 남편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역시 당신은 예술가야, 당신은 글을 써야 해. 봐, 표현력이 한껏 부푼 생크림같잖아,라고 말했다. 남편은 유학이란 명목으로 미국에 건너와서 공부는 설렁설렁하면서 틈만 나면 나보고 책을 써서 J.K.롤링처럼 대박을 터뜨리라고 추근댔다. 대학 때 학보사 기자생활한 것이 전부인 나를 예술가로 밀어부치는 이유도 불분명했지만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 치고 굳이 유학을 와서는 웬수같은 공부,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심보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시 캠퍼스 생활을 하니 재미는 있는데 그 놈의 논문만 안 쓰면 좋겠다고 말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나는 우리 앞 길에 놓인 징검다리의 디딤돌 간격이 자꾸 멀어지는 상상이 들었다. 결국엔 오도가도 못하고 한 자리에 짱박혀서 죽을거야… 앞 날이 불투명해서 숨이 막히면 내 입에서는 그 말이 튀어나왔다. 그렇지만 남편은 그 말의 의미를 모르는 듯 했다. 현재 학비는 TA(teaching assistant)해서 받는 돈으로 충당한다지만 아파트 렌트비에 생활비가 고스란히 잔고에서 빠져나가는 걸 생각하면 나라도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세라를 하루종일 싸구려 데이케어에서 뒹굴게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한인업소의 시간당 8불짜리 노동직에 불과할 터이니 결코 남는 장사는 아니었다. F2 (유학생 배우자 비자)는 취업이 불가능한 비자라서 그것도 불법 아르바이트 자리나 겨우 구할 수 있는 형편이었다. 내게 족쇠를 차고 있네,라는 말버릇이 생긴 것도 그 때문이었다. 미국땅에서 우리 가족이 살아갈 방법은 오직 한가지였다. 적게 먹고 적게 싸는 노선. 그래서 세라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다. 마을 도서관과 서점에서 하는 스토리 타임을 듣고 장난감 가게에서 여는 키즈 워크숖 등 무료 이벤트에 참가하는 것이 세라를위한 교육활동의 전부였다. 그래서 오늘 수업 후 크리스탈이 자기네 홈스쿨링에 조인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을 때, 나는 아주 잠깐 갈등이 일었지만 세라를 위해 쉽게 아집을 포기할 수 있었다. 미세스 아이스의 그 차가운 영역 안으로 발을 내딛는 일이 달갑지 않다는 생각은 사치였다. 게슴츠레해진 남편의 눈을 외면하며 그 소식을 전했을 때 남편은 어둑지근한 차 안에서도 느껴질만큼 황당하게 큰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슬쩍 돌려 쳐다본 남편의 얼굴은 꽤 기뻐하는 표정이었는데 이상하게 내 가슴엔 그의 건조하고 홀쭉해진 뺨이 잔상으로 남았다.


그래서 다음날, 큰 맘 먹고 소꼬리와 사골과 굴과 무를 사왔다. 소꼬리의 핏물을 빼는 동안 무를 큼지막하게 썰어 굴석박지를 담갔다. 그 날은 창문을 깨부술 듯 바람이 불어대고 전기가 오락가락해서 전자레인지에 부착된 디지털 시계에서 자꾸 삐삐 소리가 났다. 3월이 되었지만 날씨는 변함없이 한겨울이었다. 결국 다음날 새벽에는 강한 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일었고 이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나뭇가지들이 집과 전기줄과 자동차를 강타했다고 아침 지역뉴스는 전했다. 더불어 휴교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남편이 다니는 대학에서는 휴강 소식이 없었다. 남편은 이런 천재지변중에도 학교를 가야하다니… 라고 투덜댔다. 크리스탈을 만난 지 한 달하고 나흘이 지난 날의 아침이었다. 만약 그녀를 만난지 한 달하고 이틀 지난 날의 아침에 그 말을 들었다면 나는 상실감에 한숨을 쉬거나 어지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남편의 분투와 상관없이 세라의 미래에 새로운 관문이 열렸다는 사실때문에 눈폭풍이 세상을 덮쳤는데 나는 봄을 느꼈다. 혹시나 해서 크리스탈에게 전화를 하니 홈스쿨링은 예정대로 진행될 거라고 했다. 그 집 아이들은 가엾게도 날씨 혜택을 못 보는군, 이라고 남편은 말했지만 그건 그만의 식으로 봄이 도래했음을 표현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평상시보다 빨리 집을 나섰다. 세라가 수업에 늦지 않으려면 열악한 도로사정을 감안해서 시간계산을 해야 했다. 남편 학교로 가는 길 주변엔 스톰이 훑고 간 상흔이 적나라하게 남아있었다. 마을은 불빛 한 점 새어나오지 않아 흰 재로 덮힌 폼페이처럼 을시년스러웠고 타이어가 지나가면서 건드린 나뭇가지들때문에 여기저기서 틱틱 소리가 나거나 가지들이 튀어올라 우리를 놀라게 했다. 나무가 기울어지면서 늘어뜨린 전기줄은 그 옛날 빨래줄과 간짓대처럼 한 세트가 되어 길 옆에 너부러져 있었다.

“돌더라도 하이웨이를 타고 갈 걸 그랬다.”

남편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평시에도 이 곳을 지날 때면 마음이 심난했는데 오늘은 위산까지 분비되려고 하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겨우 밥끼나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에게서 이 엄동설한에 불씨를 빼앗아 가시다니…”

“무슨 소리야? 이 곳만 그런가? 엔도버지역도 피해를 입기는 마찬가지라는데…”

“돈 있는 사람들은 집이 이런 지경이면 호텔에라도 가지. 겨우 하루 세끼 챙겨먹고 지붕 아래 몸이나 뉘이는 사람들이 전기 나가고 난방 좀 끊겼다고 어디로 피신할 여유가 있겠어? 가까운데 친척이나 친구집이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이불 안에서 상대방 체온에나 의지하며 불 들어올 때까지 버티겠지… 이 꼴을 좀 봐. 하루이틀새 복구될 것 같지도 않잖아. 겨우 전선줄에 얹힌 나무나 비껴놓은 상태인데…”

남편 말은 사실이었다. 마을은 현재 아무런 복구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채 정적에 휩싸여 풍설마(風雪魔)에 할퀸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차를 천천히 모는데도 바닥의 미끄러운 느낌이 타이어를 타고 운전대로 전달되었다. 온 세상은 눈얼음으로 덮혀 있고 드라이 아이스에 들러붙은 혓바닥처럼 출입문과 창문이 창틀로부터 분리될 것 같지 않게 단단히 닫혀 있었다. 평상시 심심치 않게 이어지던 차량 행렬이 끊겨 고적하다 못해 으시시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을을 통과하는 내내 무채색의 풍경이 이어지다가 겨우 남편 학교 근처에 다다랐을 때야 신호등에 불이 들어오고 네온 사인이 반짝였다. 남편은 차에서 내리기 전에 눈꼬리에 솔나뭇가지같은 주름이 잡히도록 웃으며 세라의 뺨을 어루만졌다.

“오늘 학교가서 공부 잘 하고 와!”

하이웨이 타고 가지. 남편은 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그렇게 덧붙였다. 남편의 손바닥이 닿은 자리에 따스한 여운이 감돌았다. 고속도로로 가기는… 기름값이 충천하려는 판국에… 라고 대꾸하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남편의 뒷모습은 아침에 먹은 곰탕덕인지 그다지 을시년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탈이 살고 있는 집은 엔도버중에서도 고급주택이 모여있는 곳에 위치했다. 흔히 ‘three car garage’는 대유법으로 호화주택을 의미한다는 앤의 말이 생각났다. 그 동네 집들은 세 개의 차고와 수영장이 구비되어 있었다. 차고 앞의 드라이브웨이(drive way)에는 눈과 얼음으로 밑동이 덮혀있는 농구대가 드물지 않게 눈에 띄였다. 페인트가 완벽하게 칠해져 있고 홈통들은 반듯했으며 창을 통해 청결하고 따스한 기운의 불빛이 스며나오고 있었다. 17번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얀색 울타리 안으로 눈에 덮힌 풀이 보였다. 다이빙대와 자쿠지도 어슴푸레 드러나 있었다. 그 옆으로 그네와 미끄럼틀세트가 북극나라 놀이터처럼 놓여 있었다. 세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여기 수영장이야, 학교야?”

나는 이 곳은 학교도 수영장도 아닌 크리스탈이란 선생님 집이라고 설명했다.

“엄마가 말했지? 세라는 여기서 영어랑 산수랑 또 성경공부도 할거야. 처음엔 알아듣기 힘들겠지만 도서관이나 장난감 가게에서 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크리스탈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하라는대로 하면 돼. 알았지?”

세라는 또렷한 선을 가진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더니 오케이라고 매우 야무지게 대답했다. 오랫동안 막혀있던 코머리가 뚫렸을 때처럼 정신이 시원해지는 대답이었다.


집 안은 잡동사니가 별로 없어서 더 넓게 보였고, 적재적소에 가구가 배치되어 있어서 단정하면서도 안락하게 느껴졌다. 세라가 와! 부자집이다,라고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크리스탈은 세 쌍동이를 차례로 소개했다. 아이들은 판박이였다. 달걀형 얼굴에 10센트만한 크기의 파란색 눈동자와 부푸러기가 이는 세사(細絲)같은 금발머리를 가졌고 표정이 해맑았다. 세라보다 한 뼘씩은 키가 커서 네살박이 같은 또래들로 보이지 않았다. 셋이서 한꺼번에 달려들어 세라의 손을 잡으려는 통에 싸움이 나자, 크리스탈은 교실로 들어가서 각자 원하는 자리를 맡으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앞다투어 프렌치 도어의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갔다. 크리스탈은 나와 세라에게 교실을 안내해 주겠다고 말한 후 아이들이 들어간 방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세라가 재빠르게 내 손을 잡아쥐더니 방 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실내는 아담했지만 제법 교실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한 쪽 벽엔 하얀 보드와 매직펜이 놓여 있었고 그 아래 색색들이 플라스틱 상자 안엔 보드 지우개, 미술도구와 여러가지 보드게임 등등의 교구들이 보였다. 천장으로부터 세 뼘정도 내려온 지점에 벽과 벽을 연결해 노끈이 매달려 있었는데 거기에 집게로 집어놓은 아이들 그림이 걸려 있었다. 키가 크지 않으면 손이 닿지 않을 높이였지만 크리스탈한테는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방 가운데엔 목제로 된 직각 테이블과 여덟개의 아동용 의자가 놓여있었고 보드가 걸려있는 맞은 편엔 어른용 책상과 회전의자, 서랍장 한 개가 놓여 있었다. 크리스탈은 그 회전의자에 앉아서 일단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
는지 지켜보라고 했다.


내가 기쁨을 머금은 미소를 내보이며 막 의자에 앉았을 때 교실 안으로 두 명의 사내아이들이 뛰어들어왔다. 둘 다 동양아이였다. 머리를 더벅머리로 깎아놓은 게 언뜻 보기에 중국아이들처럼 보였지만 서로 닮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익숙한 태도로 비어있는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그 아이들이 세라를 향해 새로 왔느냐고 묻자 세라가 응,하고 대답했다. 영어로 대답해야지 세라야,하고 말하는데 또 누군가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갑자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영애?라고 묻는 그 사람은 바로 첸첸할머니였다. 서로 깜짝 놀라는 우리 둘을 당연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크리스탈이 첸첸 할머니는 3주 전부터 여기서 중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내애들은 첸첸할머니의 이웃집 아이들이라고 했다. 크리스탈을 볼 때마다 입술을 삐죽거리며 미세스 아이스,라고 빈정대는 첸첸할머니를 떠올리곤 했는데 바로 여기, 그녀의 집에서 할머니를 맞딱뜨리게 되다니… 나는 조금 어안이 벙벙했다. 할머니는 한 쪽 눈을 찡긋해 보였는데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겠지만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어,라는 암시로 느껴졌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첸첸할머니는 아이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서 보조 교사 역할을 했다. 아이들은 크리스탈이 지시하는대로 따라하다가 잘 모르는 것이 나오면 할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수업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다양한 교구들을 사용해 진행되었다. 읽고 쓰기도 했지만 노래도 부르고 찰흙이나 색종이를 이용해 공작도 하고 노란 식용색소를 혼합한 물에 백장미를 꽂아 두면 잎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를 예측하게 하고 실험으로 증명해 보이는 식의 생물공부도 했다. 간식 시간 후엔 첸첸할머니가 중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삐뚤빼뚤 한자를 받아쓰며 할머니가 읽어주는 중국어를 메아리처럼 되뱉었다. 한시도 주위를 흩뜨리지 않고 선생님을 따라 야무진 입술을 동그랗게 모았다가 일자를 만들었다 하는 세라를 바라보면서 처음엔 기특한 생각이 들었는데 갑자기, 난데없이, 눈에 눈물이 고여들었다. 순간 앞에 있는 크리스탈이 의식 속으로 들어왔고 나는 재빨리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다행히 눈물은 동공 안에서 잦아졌다. 여러 날동안 배곯은 아이가 정신없이 음식을 주워먹는 모습을 대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 건 자격지심이었다. 크리스탈로부터 합류 제안을 받았을 때 잠깐이나마 갈등을 일으켰었다는 사실이 더욱 감상을 부추겼다. 나는 자꾸 동요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위해 세라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이목구비가 똑같이 생긴 금발의 여자아이들이 서로 큭큭대며 중국어를 배우는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두 사내아이들이 매우 자신있는 얼굴로 목청을 한 껏 돋우자 쌍동이들은 귀를 막으며 시끄럽다고 항의를 했다. 나는 선택된 아이들의 혜택이란 이런 것이란 상념에 빠져 멍하니 그 아이들의 모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 크리스탈은 내게 정식으로 합류하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이런 기회를 주어 고맙다고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돕겠다는 말을 덧붙였을 때였다. 크리스탈은 상아빛이 도는 치아를 내보이며 온화하게 웃었다. 그녀의 표정이 너무 따스해 보여 자칫 놀란 기색을 겉으로 드러낼 뻔 했다. 미세스 아이스라는 닉네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정…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차갑지 않은 내면의 소유자라는 깨달음이 스멀거렸다. 그러자 그녀가 어렸을 때 꿈에서 만났던 예수는 성경을 통해 많은 감화를 주었고 그 가르침대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첫 날 자기소개 때 했던 말을…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제서야 첸첸할머니가 이 곳에 있는 연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고, 원수는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적의를 품은 할머니에대해 그녀가 기꺼이 화해의 제스츄어를 취했을 거라는시나리오가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 세라를 홈스쿨링에 조인시켜 준 것도 나의 23가지 사정을 듣고 난 그녀의 배려였던 것처럼…

”간식시간 이후, 첸첸할머니가 산수와 중국어를 가르칠 때 보조교사를 해줄 수 있겠어?”

나는 그녀의 제안을 기꺼이 수락했다. 그러자 크리스탈은 이제부터 그 시간동안 자신은 자유를 즐길 거라고 왼쪽 눈을 슬몃 감았다 뜨며 선언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세라는 엄마, 재밌었어. 나, 메기, 클라라, 애슐리네 집에 가서 또 공부할래,라고 말했다. 그렇게 재밌었어? 얼만큼? 하고 묻기가 무섭게 하늘만큼 따앙만큼,하면서 세라는 양 팔을 한껏 벌렸다. 아이의 가느다란 팔이 꽤 길게 늘어지는 걸 보면서 볶음 냄비 안의 야채들처럼 여러가지 상념들이 뒤섞였다. 삶의 궤도에서 우왕좌왕하는 부모 밑에서도 아이는 쉼없이 자라네... 아이는 또래집단 안에서 혹은 호기심이 충족되는 배움의 장 안에서 어른이 상상하는 것보다 큰 행복을 느끼는구나... 학교에 가고싶은 열망은 아이들의 사회적 욕구이고, 그것이 부모의 무능력때문에 채워지지 못했구나... 이런저런 생각때문에 내 안에 꾹꾹 눌러놓은 자책이 익은 물만두처럼 퐁퐁 솟아 올랐다. 곧 눈 앞의 사물들이 어룽대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눈동자를 들어 위를 쳐다보자 뒷거울로 부스터 모서리에 머리를 기댄 세라가 놀이공원에서 목마를 탈 때처럼 황홀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밤에 남편을 데리러 가는 도중의 그 험상궂은 마을은 평시보다 어둑졌지만 창문으로 어룽한 빛이 새어나와서 칠흙같은 어둠은 없었다. 전기가 나갔으므로 촛불을 켜놓은 집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촛불빛이 냉랭하게 느껴지는 공기까지 감싸주지는 못했다. 여전히 심난했고, 틱틱 소리를 내며 튀어오르는 나뭇가지들때문에 놀라기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차에 올라 문을 닫기도 전에 이미 들었으면서 낮에 있었던 일들에대해 다시 묻기 시작했다.

“낮에 들었으면서 뭘 또 물어?”

“그래도 홈스쿨링은 어떻게 하는 지 궁금하기도 하고, 세라가 하도 좋아하니까 나까지 덩달아 신이 나서…... . ”

내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남편은 할 수 없다는 듯 화제를 돌렸다.

“고속도로로 왔어?”

“아니”

“길이 어땠는데? 전기는 들어왔어?”

“아니”

그러자 남편은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사거리를 가리키며 저기서 좌회전 하지,라고 말했다.

“뭐하게… 기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리고 그냥저냥 다닐만 해.”

나는 좌회전하는 대신 직진을 해 평상시 다니던 길로 차를 몰았다.

“엔도버지역은 어땠어? 아침 뉴스에서 거기도 스노우 스톰때문에 전기가 나갔다고 했잖아. “

나는 그때서야 엔도버도 피해지에 속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곳은 재해가 있었다는 생각을 망각했을만큼 말끔했고 신호등이 꺼진 곳도 없었다고 말하자 남편은 혀를 끌끌 두어번 찼다.


“텍스 내는 순으로 복구작업을 해주겠다 이거지. 그렇다면 모르긴 몰라도 이 쪽 지역이 최종 대상이 되겠군. 아무래도 삼일 안에 복구는 어렵겠는걸. 어디가나 그 놈의 돈이 사람을 잡지… 나 같으면 돈 있는 놈들은 호텔 가라하고 이 하꼬방집들 먼저 복구시켜 주겠구먼… 쯔쯧, 전기 스타터로 점화되는 보일러는 켜지지도 않을텐데. 정전에 냉방까지… 가스레인지가 안 되면 음식도 못 해 먹는다는 소리잖아… 참, 라이터로 불을 붙이면 되나?…”

남편은 역시나 오지랖 넓게 이런 저런 걱정으로 혼자 자폭한다. 너나 잘하세요! 빨간 립스틱을 바른 영자씨처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걸 참느라 양 한마리 메~, 양 두마리, 메~메~, 양 세마리, 메메메~~~…를 속으로 되뇌였다. 남들은 디펜스다, 졸업이다, 취업이다를 염려할 적에 반정부 동아리에서 수장노릇 했을 때처럼 선량한 무산층에대한 염려로 땅이 꺼지게 한숨이나 쉬니… 나는 어깨를 한껏 솟구었다 보란 듯 늘어뜨리며 길게, 아주 길게 날숨을 뱉어냈다. ‘와! 부자집이다’라고 소곤댔던 세라의 목소리가 다시한번 가슴에서 알싸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차가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지더니 무언가 우지직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정적때문인지 유난스레 크게 들리면서 낮은 바위를 타고올랐다 내려 앉은 듯 차체가 덜컹거렸다. 놀란 탓에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남편과 나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 지다가 뒤로 급히 제껴졌다. 아마도 날카로운 무언가에 올라탔던 모양이었다. 사방이 어두워서 몸으로 느끼는 진동이 더욱 컸다. 내 소리때문에 더 놀랐다는 남편이 운전을 바꾸자고 해서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보니 차는 확연히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먼지들은 전조등 불빛 안에서 난무를 추었고 사방은 주둥이를 틀어막은 뱀처럼 음산하고 고요했다. 바닥이 미끄럽고 발에 걸리는 장애물들이 많아서 걸음을 뗄 때마다 아래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남편은 빵구났네,하고 중얼대더니 트렁크에서 공구와 스페어 타이어를 꺼냈다. 하지만 무엇을 어찌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는 의문을 온 몸으로 발산하는 듯 보였다.


“우선 왼쪽 앞 부분을 들어올려야 할텐데… 젠장, 이걸 어떻게 끼워야 하는 거야…” 남편은 쇠로 된 접이식 줄자처럼 생긴 도구를 이리저리 쳐다보다가 결심했다는 듯 쪼그리고 앉아 그것을 땅바닥과 차 밑동 사이에 끼워 넣으려 했다. 생각대로 잘 안 되는 지 한참을 씨름하는가 했는데 내 귀에 조그맣게 고속도로로 갔어야 했는데… ,라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바퀴가 터진 걸 안 순간, 두려움 보다는 남편한테 미안한 감정이 앞섰다. 이후 그 줄자같은 것을 들고 한참 궁리하는 모습을 대하는데 슬슬 미안함이 답답함으로 변했고, 일은 진척시키지 못하면서 투덜대는 소리나 듣게되자 울컥 분노가 솟구쳤다.

“지금 날 원망하는 거야? 고속도로로 안 갔다고?”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남편은 아이고 깜짝이야,하며 땅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왜 그래? 사람 간 떨어지게…… 그냥 그랬으면 좋았겠다는 거지…”

“누군, 이 비렁뱅이 소굴 같은 곳으로 다니고 싶어서 다녀? 기름값이 천정부지니까 돈 아끼려고 그랬던 거지… 대체 언제까지 이러…… .”

까지 말한 순간, 나는 갑자기 나타난 검은 실루엣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물러서다가 쭈그리고 앉아있는 남편의 어깨 위로 주저앉았다. 남편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나를 자신의 등 뒤로 밀친 후 손에 들고 있던 연장을 가슴께에 올려 방어태세를 취했다. 검은 실루엣은 걸음을 멈추고 놀란 목소리로 자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니 안심하라고 말했다. 영어에 심한 억양이 섞여 있어서 그도 외국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은 카센터에서 일하는 정비공인데 차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서 도와주러 온거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때서야 남편은 엉거주춤 쳐들고 있던 연장을 슬몃 내려놓았다.

“그 말을 어떻게 믿어? 진짜 강도면 어쩌려구? 그냥 가라고 해.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워도 강도를 당한다는데 인적도 드문 깜깜한 길인데다 이런데서 나타난 사람을 어떻게 믿고…”

“자동차 정비공이라잖아. 우리를 도와주러 왔다는데… 그리고 이런데서 나타난 사람이 뭐 어떻다고?”

“어쨌거나, 그냥 괜찮다고 혼자 한다고 해. 남자가 되가지고 자동차바퀴 하나 못 바꿔 달아?”

“내가 미케닉이야? 인문학전공자가 자동차에대해 어떻게 알아? 그리고 손이 곱아서 잘 펴지지도 않는데다 바닥은 얼마나 미끄러운 줄이나 알아?”

우리가 투닥거리는동안 그 사람은 슬그머니 다가와 불빛아래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동남아시안계같기도 히스페닉같기도 혹은 어메리칸 인디언같기도 한 외모를 하고 있었지만 자동차 전조등빛으로는 정확히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놀라게 했다면 미안해요. 전기가 나가 TV도 안 나오고… 사방이 고요해서 밖에서 나는 소리가 더 잘 들리더라구요. 창을 통해 보니 도움이 필요하신 것 같아서…”

라고 심한 엑센트가 섞인 혀 짧은 영어발음으로 그가 설명했다. 그가 손을 내밀자 남편은 스스럼없이 들고있던 공구를 건냈다. 그는 잘 다듬어진 목탁처럼 매끄럽고 둥글둥글한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타이어를 교체했다. 그가 쇠줄자같은 것으로 차 앞 쪽을 들어올리고 터진 타이어를 고정시킨 몇 개의 볼트를 제거한 후 자그마한 스페어 타이어를 끼워넣는 동안 콩닥대던 내 가슴은 밤공기처럼 차갑고 또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런데서 나타난 사람을 어떻게 믿겠느냐는 한국말을 그는 분명 못 알아들었을 테지만… 하지만 그가 알아들었든 못 알아들었든 그 말은 내 사고를 대변했고, 아무 조건없이 아무 상관없는 타인을 위해 곱는 손마디를 허연 입김으로 녹여가며 애쓰고 있는 이 사람을 향해 나는 심한 모욕을 자행했다. 빈곤과 부도덕과 불신은 당연히 비슷한 말군에 편성되어 있다는 것처럼… 부모로부터 혹은 교육으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한 삶이 쳇바퀴처럼 빚어내는 궁핍함, 그건 단지 이 마을에 사는 이 사람의 모습만은 아니었다. 낮에 보았던 세라 역시 쌍동이들과 비교하면 별반 다를 바 없는 입장이었다. 나는 갑자기 커진 유두와 막힌 변기를 바라볼 때처럼 자신이 낯설어서 옴싹할 수가 없었다.

그가 연장을 건네며 다 되었으니 조심해서 가라는 말을 하는 동안 남편은 지갑에서 지폐를 꺼냈다. 그는 한사코 사양했다. 그리고 당분간 이 쪽 길을 피해 다니라는 조언을 남긴 채 어둠 속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자동차 뒤 쪽으로는 불빛이 없어 전체적으로 까만 그를 짙은 어둠이 홀딱 삼켜버린 듯 보였다. 남편은 손에 남은 지폐를 바라보며 이런, 이런… 이라고 반복적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한자리에 붙박힌 채 남편과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둘에게 묶인 동지애같은 감정의 기류가 그 둘을 여전히 연결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감정의 여운이 짙게 나를 감싸 안았다.


크리스탈은 스낵시간을 포함해 2시간 정도 집을 비웠다가 12시 30분에 맞춰 돌아왔다. 그런 일과가 규칙적으로 진행되자 첸첸할머니는 아이들이 스낵을 먹는동안 내게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크리스탈로부터 아이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줄 수 있겠냐는 연락을 받고 처음엔 주저했지만 보수도 괜찮고 또 가르치는 일을 좋아해서 수락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크리스탈의 남편을 본 적이 있는데 키가 작고 눈이 얼굴의 반을 차지할만큼 크다는 이야기, 이제는 세쌍동이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중에 애슐리가 가장 똑똑하다는 이야기, 크리스탈이 영어 가르치러 교회에 가는 날에도 자기가 아이들을 봐주고 있어서 영어교실에 못 나간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 끝에 나는 순정씨가 전에 말한 적이 있었던 앤에대한 소문을 다시 듣게 되었다.

“앤은 그러니까, 그런 약을 먹지 말았어야 해. 오죽 상심이 컸을까…”

첸첸할머니는 커다랗게 쌍꺼풀진 눈을 손등으로 훔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노인성 반점이 피고 심줄이 툭 불거지고 주름이 꽤 잡혀있는 손으로 한동안 가슴을 살살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빨간 립스틱을 칠한 입술을 오른손으로 반 쯤 가리고 이렇게 속삭였다.

“그런데 미세스 아이스는 2시간동안 어디 가서 무얼하다 오는걸까?”

뭐라 대답할 지 몰라 멈칫거리는데 쌍동이중 하나가 자신의 팔을 쳐서 과일시럽쥬스를 흘렸다며 다른 쌍동이를 미는 바람에 소란이 시작되었다. 첸첸 할머니가 아이들을 떼어놓느라 애쓰는 동안 나는 키친타올로 테이블과 바닥을 닦으며 쥬스를 쏟아주어 고맙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 드디어 앤이 돌아왔다. 교실에 들어선 앤은 여느 때보다 밝게 굿모닝을 외쳤는데 볼이 훌쭉해져서인지 코 양쪽으로 없던 팔자 주름이 보였다. 모든 학생들이 그녀의 배 언저리와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응시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녀의 배는 그녀의 뺨처럼 홀쭉해 보였다. 시끌벅적한 교실의 소란이 차츰 누그러지자 누군가 그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앤은 그동안 입덧이 너무 심해서 침대에 벌레처럼 늘러붙어 지냈다는 말을 화통하게 내뱉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신디 할머니가 약을 복용했는데도 입덧이 그렇게 심하더냐고 호기심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앤은 쾡해진 눈동자에 살짜기 웃음을 담더니 조금 격해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도 모성애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약을 안 먹고 죽자사자 견뎠지요. 보시다시피 내가 이겼어요.”

앤의 고백에 중국 할머니들은 박수를 쳤고, 옆에 앉은 미미할머니는 앤의 어깨를 반복해 토닥거리며 너는 아주 훌륭한 엄마라고 칭찬했다. 앤은 타일처럼 맨질맨질한 치아를 내보이며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앤이 돌아온 이후로 크리스탈은 제 일상을 되찾았고 덕분에 첸첸 할머니가 수업에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정씨는첸첸할머니는 크리스탈이 싫어서 안 나왔던 게 틀림없어요,라고 내 귀에대고 소근댔다. 그날 밤이후 나는 조금 달라졌다. 더이상 그 빈민촌 골목이 싫지 않았고, 불결함이나 오소소함 따위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런 심경의 변화처럼 여느 때 같으면 눈을 질끈 감아버렸을 순간에 나는 눈을 홉뜨며 찬찬히 심호흡을 들이켰다. 세라를 타이르려는 때에 나오는 버릇이기도 했다. 검붉은 메니큐어때문에 꽤 도발적으로 보이는 그녀의 손 위로 내 손을 살포시 포갰다. 이제껏 한번도 그녀를 동포애를 품고 대한 적이 없었다는 자각이 들어서 가슴이 더 애잔해 졌다.

“순정씨, 오해하지 말고 들어요. 이건 정말 순정씨를 위해서 하는 말이예요. 확실하지 않은 일에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추측은 맞을 때도 있지만 틀릴 때도 있잖아요. 순정씨는 인정도 많고 마음도 따스하니 그 점만 고친다면 더할나위없이 좋은 사람이 될 거예요.”


순정씨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녀는 밑에 포개어진 자신의 손을 위로 올려 내 손을 거칠게 털어냈다. 화가 그득한 그녀의 눈동자가 내 얼굴을 사납게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 내 눈에는 눈물이 고여들었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나는 그 순간, 오지랖 넓은 남편과 그에게 끈끈한 동지애를 나누어 준 검은 실루엣과 냉동실에서 막 나온 바비인형같은 크리스탈의 따스한 눈 빛을 떠올리는 중이기도 했다. 재외동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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