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은실 같은 가느다란 보슬비가 하얀 배꽃을 간질이다 연두색 새싹들에게 살짝 쿵 가벼운 키스를 날린다. 이렇게 실실이 은색의 봄비가 내릴 때면 그 사람과의 로맨스를 추억 속에서 스크랩하게 된다.

고2,한창 꿈 많던 소녀시절, 방긋 피였다 초라하게 시드는 꽃잎을 보아도, 비온뒤 하늘에 예쁘게 걸려있던 아롱다롱 무지개가 전설속의 선녀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아도 서글퍼 한참이나 애처로이 눈물짓던 감성이 뛰어난 여고생이었다. 그 시절, 큰 키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쓰신 자상한 목소리를 가지신 시크하신 총각 선생님을 만났다. 글 솜씨 있고 공부도 잘하는 여학생인 나는 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선생님은 가정환경이 어려워 일찍 철이 든 나를 봄날의 따스한 햇살로 늘 감싸 주셨다. 선생님은 학습, 생활에서 암초에 부딪쳐 힘들어 할 때면 신선처럼 그 모든 것들을 제거해 주셨다.

우울해 할 때면 선생님은 따스하고 웅글진 목소리로 하이네의 ‘내 마음아 울적해마라’를 읊어 주셨다. ‘겨울이 너에게서 빼앗아 간 것을 새봄이 너에게 되돌려 주리라’

‘앞을 바라보면서 생활의 노를 힘차게 저어 간다면 언젠가 아름다운 섬이 나오지 않겠니? 힘내자! 힘!’

나는 학창시절 항시 슬픔에 젖어 묵묵히 공부에만 최선을 다 하는 학생이었다. 공부만이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이런 나였기에 선생님의 존재는 생활의 활력소였고 보금자리였고 정신적 기둥이셨다. 그 이는 내 생활의 전부였다. 다이어리에 선생님에 대한 소녀의 마음을 빨간 꽃잎으로 조심스레 적었다.

19xx년 9월 20일, 유난히 맑음

선생님의 존재는 외롭고 여린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열대바다의 난류처럼 따뜻해서 꽁꽁 얼어 있던 내 가슴이 온기를 느낀다. 나의 온 몸이 열정으로 끓어 번진다. 이 세상에 두려운 것 그 무엇이랴? 아?! 그일 사랑 하나봐? 라일락향기처럼 조용하고 은은하게, 예쁘게.

고2, 2학기 때 연분홍빛 진달래꽃잎이 가득 뿌려진 내 생활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도도하시고 매력적이시고 글도 잘 쓰시는 지성미가 넘치시는 여선생님이 오셨는데 내 마음속 연인을 앗아갔다.

뒤엉킨 실타래처럼 정리되지 않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어 두 분이 예쁜 사랑 나누기를 축복하며 새 배움터를 찾아 떠났다. 그날 차디찬 가을비가 처량한 내 마음을 하염없이 적시며 끝없이 내렸다. 나는 많을 것을 이루어야 할 앞날을 그리면서 쿨 하게 소녀의 첫사랑을 접었다.

‘선생님, 빨간 꽃잎처럼 예쁜 저의 첫사랑으로 남아 주세요. 부디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전 인생에서 꼭 성공할거예요···’

그 후 한 번도 그일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하늘거리는 봄비가 얼굴을 간질일 때면 마음속에 간직했던 ‘빨간 꽃잎’을 꺼내본다. 아, 어쩜 완벽한 꽃송이가 아니고 꽃잎이어서 더욱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는지?

유치하면서도 달콤하고, 달콤하지만 때론 쓰디 쓴 첫 사랑의 러브스토리. 누구든지 살아오면서, 한번쯤은 경험했을 ‘미숙아’같은 사랑이야기. 예로부터 ‘첫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속설 때문에 더욱 애절하고 세월이 흐를수록 가슴을 파고드는 것은 아닌지? 사람들은 라이브 속 랭킹1위를 사랑으로 꼽는다. 그래서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고, 사랑에 올인하고 사랑에 지치고, 사랑에 충실하고 사랑에 배신당하며 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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