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경제 문화 연구소 수석 연구원 카사이 노부유키

1. 머리말
  
[서울=동북아신문] 1. 이주민들은 자신이 새롭게 이주한 국가에서 자기 나름대로 다양한 「민족개성」과「민족문화」를 구사하면서 정착을 도모해 왔다. 최근에는 인터넷의 보급에 따라 이주민들도  지역과 시간을 초월한 정보와 행동 그리고 사상의 공유 등을 강화하면서 매우 다양한 「민족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일본에서의 중국 조선족 이주역사와 민족네트워크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중국조선족의 일본 이주 역사를 간단히 개괄한 후 그들이 일본 정착 과정에서 어떠한 민족개성과 특성을 발휘해 왔는가를 분석하기 위해 조선족 네트워크의 특징을 분석한다. 그리고 조선족 네트워크의 특징을 다른 민족네트워크와 비교함으로서 그 특징을 분명히 살펴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향후 일본 정착에 있어서 조선족 네트워크가 가지는 의미를 살펴본다.

2. 중국 조선족의 일본 이주 개요

  조선족은 언제쯤 일본에 온 것일까?  1980년대 중반부터 중국은 대학교원들의 일본 해외 연수를 허용하였는데 그 당시 연변대학의 중국조선족교원들이 이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전후 중국조선족으로서는 처음 일본생활을 시작한 집단인 셈이다. 그 후부터 중국 개혁개방정책의 진전에 따라 중국조선족의 해외진출도 점자 증가하였다. 당초에는 한반도나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혈연・지연을 찾은 이주가 많았는데 점차 미국, 일본 등 교육 선진국에 유학 나가는 젊은 유학생이나 사업을 좇아오는 노동자 등이 진출하게 되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1989년 입관법 개정을 계기로 체류 외국인수가 급증하였고 1990년대에는 유학생 입학규제가 완화되면서 대졸자, 고졸자 유학생 등도 증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일본 IT관련 기업이 중국동북지역에서 조선족 IT기술자를 스카우트하는 방식을  통해 조선족의 일본기업 취직기회도 확대되었다. 현재 일본의 조선족 거주자는 가족까지 포함해 8~10만 여명에 이르며 특히 수도권에는 5만 여명이 거주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수는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다.
  조선족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정착하면서 일본적으로 국적을 변경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경향은 일본 이주의 역사적 경위가 조선족과는 다른 재일 한국인이나 재일 조선인과는 분명히 차별되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일본에 귀화한 한국계 일본인도 증가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에게 일본 거주와 국적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한국인이라는 자부심 넘치는 민족의식과 모국 의식이 강한 재일 한국인이 많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재일 조선족의 의식은 다르다. 이들은 과거 이미 중국 이주로 인해 국적변경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일본적으로 변경하는 것에 대해 재일 한국이나 조선인보다 정신적 저항이 적다. 오히려 일본 체류생활에서 중국적을 고집하는 것보다도 일본적을 변경하는 것이 여러가지 면에서 편리하기 때문에 중국 조선족에게는 합리적인 이민인 셈이다. 이러 까닭에 일본인과의 혼인자는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생활이 안정된 사람, 기업 경영자, 10년 이상의 장기 정주자등의 중국 조선족 중에는 국적 변경자가 많다.

3. 민족 네트워크의 실상

  우선 네트워크의 의미를 정리해 보자. 원래 네트워크라는 것은 「망상의 장치」를 의미하며 방송국 전국 방송망을 가리켰다. 그 후 그것을 수송업계에서는 자전거 차륜에 비유하여 「허브& 스포크」라고 불러 공항이나 항구 등의 중심거점(허브)에서 각 지역거점(방사상으로 퍼지는 스포크)으로 노선을 전개시켜, 허브사이에 대량 수송을 할 수 있는 기간 노선을 설치 운영하는 수송방법을 일컫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게다가 정보・ IT산업의 발전과 함께 조직 및 단체 내 이용자를만이 폐쇄적으로 사용하는 한정된 인트라넷이나 네트워크와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인터넷 등을 지칭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그런데 네트워크를 지배하고 관리하는 주체는 말할 것도 없이 개인이지만 네트워크 종류에 의해서 그 외 참가자가 정해지는데, 이들은 회원, 직원 또는 가입자등으로서 각자가 특정 영역(인트라넷)을 지배한다. 또한 불특정 다수가 참가하는 대규모 인터넷에서는 국가, 국민, 민족을 초월하여 네트워크의 지배영역이 국경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면 조선족 네트워크란 한반도를 출신지로 하는 한민족 중에 중국에서 이주한 조선족들이 형성하는 민족네트워크의 속칭이다. 이렇게 정의를 내리면 조선족 네트워크는 특정 영역의 민족인트라네트워크인 것이다. 이러한 민족단위에서 형성되는 네트워크는 조선족뿐만이 아니다. 그러면 이하에서는 대표적인 민족네트워크를 개괄하여 조선족과 비교해 보기로 한다.

  ① 유태인 네트워크

  현재 유태인은 1,480만명으로 전세계의 인구 69억명의 0.21%에 불과한 민족이다. 그러나 5천년간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이 유태인이다. 피카소, 에디슨, 아인슈타인, 베토벤, 르크스, 예수 그리스도 등이 모두 유명한 유태인이다. 역사적으로 그리스도를 죽였다고 해서 박해를 받아온 유태인이지만 그들은 최종적으로 돈이 있는 자가 사회를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정신적 유산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유명한 세계적 대기업이 이들에 의해서 경영되고 있다. 예를 들면 남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왕이며 세계 최대 금융재벌 로스차일드,데・비아스 창시자인 Oppenheimer를 비롯하여 석유 산업의 엑슨( 구스탠다드・오일), 모빌, 항공기의 보잉, 전자기기의 필립스(네델란드), GE, 정보・통신에서는 IBM, 증권회사의 골드먼・삭스, 몰간・스탠리, 메릴린치, 은행분야에서는 체이스・맨하탄 은행, 시티・뱅크, 로스 차일드 은행, J・P・모간은행, 매스컴 분야에서도 월・스트리트・저널,  AP사, 뉴욕 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로이터, ABC TV, CBS TV, 뉴스위크등 하나하나 매기려면 끝이 없다.
  해외 이주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태인이 왜 세계 제일의 기업자로서 군림하고 있는지에 관한 연구는 수없이 많다. 예를 들면 「유태상법」저자인 유태인 마빈・트케이야는, 유태인의 성공에 있어서 근원적 힘은 「어려운 역경 속에서 업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유태상법」이란 유태 5000년의 엄청나게 길고 게다가 지극히 특이한 역사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우리 유태인은(중략) 그 토지에 있어서 옛날에는 노예나 천민으로 사는 것을 강요 당했으며, 중세에 이르러서도 언제나 부당한 멸시와 차별 속에서 유태 민족이라는 이유로  간신히 모은 재산을 전부 박탈당하여 오래동안 정착한 토지에서  쫓겨나는 박해를 계속 받아 왔다. 말하자면 유태민족 그 자체가 언제 지구상에서 소멸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박해를 받아 추방될 때마다 새로운 낯선 토지에서 자신의 힘 만에 의지하여 업을 일으켜, 강하게 민족으로서 살아남아 왔다. 말하자면 「유태상법」의 본질이란 유태인이 가지고 있는 무서운 역경 속에서 업을 일으킨다고 하는 근원적인 힘을 말하는 것이다. (트케이야: 2000)

  유태상법의 특징으로서는 그들이 숫자에 극단적으로 강하다는 것이다. 항상 세금 등을 고려한  다음, 이익을 올리는 것을 제일 우선으로 생각한다. “장사는 「여자」와 「입」을 노리라는 것이 철칙이다.” 세상에서 돈을 버는 것은 남자, 이에 대해 실제로 소비를 하는 것은 여자이므로, 「여자」를 타겟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한다. 이것은 마케팅의 기본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한편「입」이란 식품이라는  없어질 수 없는  수요제품을 가리킨다. 또 그들의 상법 중에 “유행은 부자들에게 유행시키라”고 말하는 가르침이 있다. 부자 상대의 장사는 박리가 되지 않는 데다가 수년 후에 일반 소비자한테도 유행시키므로 이중의 이익을 낳는다. 그리고 가격경쟁이 시작될 무렵에는 빨리 손을 떼는 것이 유태인이다.
  그들이 기업하는 경우, 철저한 이치와 논리로 신규 사업의 가설을 구축해, 그것을 기본으로 비즈니스 모델이나 사업을 만든 다음, 도입・테스트・개량을 거듭하면서 완벽한 시스템을 단기간에 완성시켜 버린다고 한다. 그리고 유태인은 의리를 소중히 하고 인정가이기도 하며 기본적으로 매우 근면한 민족이다. 유태인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특히 성실하게 부지런히 일하는 것과 대담하게 행동하는 것에 있다. 객관적이며 합리적으로 리스크를 철저히 관리하는 한편 현실주의에 근거하여 비즈니스를 진행시키는 우수한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세월 박해 속에서 민족이 살아남기 위한 지혜로서 축적되어 온 이러한 비즈니스 능력이 유태인 네트워크에서 볼 수 있는 연대 의식이며 비즈니스 네트워크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세계적으로 널리 확산된 유태인의 평면적 확대형 네트워크와 정착지에 깊이 뿌리를 내린 기능적 구축형 네트워크의 특징을 형성하고 있다. 이 민족망이 기업의 인트라넷에서는 코퍼레이트 통치로서 기능하면서 유태인의  착실함과 성실함이 어울려 세계적인 규모의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형성해 온 것이다.

  ② 화교・화인 네트워크(인제망락)

  화인 네트워크는 3연으로 연결되여 있다고 한다. 3연이란 혈연, 지연 그리고 업연, 즉 사업관계로 연결되는 인연이다. 3연 중에서 가장 강도가 높은 인연은 혈연이며, 패밀리 비즈니스로 대표된다. 다음은 지연이며, 동향, 동성의 아는 사람, 동료를 대상으로 한다. 마지막으로 사업상의 네트워크 업연이다. 업연은 개혁개방 이래 민간기업의 발전과 함께 급속히 확대, 강화되고 있어 혈연, 지연과는 동렬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화인이 만들어 내는 네트워크의 형상은 소용돌이 모양이며 한 개인으로서 전개되는 것이 특징이다. 소용돌이에는 원심이 있으며 그 원심이 중심인물이다. 그 인물은 다른 장소와 시기에 한층의 또 다른 동심원을 촉발시킨다. 그리고 개인의 힘이나 매력에 따라 몇 개의 소용돌이 모양의 원심으로부터 동심원이 생겨 새로운 원을 만들어 낸다. 화인 네트워크는 이렇게 무한하게 확대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의미하고 있다.
  그 확대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 중심인물이 가지는 3연이다. 그리고 그 인물이 소용돌이로부터 새롭게 소용돌이를 형성했을 경우 개인의 역량도 충분히 발휘된다. 그러나 그 인물이 조락하면 그 네트워크는 수축되여 버리는 약점이 있다. 화인 네트워크는 3연을 맥으로서 개인을 지배자로 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흥망성쇠가 많은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③ 코리안 네트워크

  코리안 네트워크 형성의 기점은 일제 시대의 재외독립운동에 있다. 일본은 한반도를 제국 영토로 점유했지만 제국 밖에 한민족이 있었기 때문에 한민족 전체를 제국 신민으로서 끌어 들일 수는 없었다. 제국 신민이 아닌 한민족의 존재는 한반도의 지배를 근간으로 하는 일본제국의 발판을 흔드는 것이었다.
  여기에 일본 지배의 물리적 장치로서 식민지에 확장된 철도, 해운, 우편 등의 인프라와 제국의 통치권력 등이 원래 의도와 달리 일본의 대항 네트워크를 수반하게 되었다. 이러한 대항 네트워크는 재외 한인사회를 연결시켜 사람과 정보의 유통경로가 되었다. 이것을 통해 반일 운동이나 독립 사상이 한반도에 파급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 과정에 나타난 대항 네트워크는 전후 재외동포 코리안 아이덴티티에 근거한 모국과 해외 코리안을 잇는 비즈니스 네트워크로 전개되었다. 해외에 이주한 한인은 단지 근대의 소용돌이에 말려 들어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근대의 시스템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모든 형태로 조국건설에 많은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해외 한민족의 내셔널리즘은 한반도 사람들과 해외에 이주한 사람들이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서 구축해 낸 것이다.
  이처럼 코리안 네트워크는 화인 네트워크와는 달리 경제분야를 초월한 정치적(또는 시민사회) 네트워크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화인 네트워크는 3연을 기초로 하는 patriotism(동향 사상)을 정신축으로 하는데 대해 코리안 네트워크는 해외 국민이라고 하는 내셔널리즘(국민주의)을 정신축으로 하는 특징이 있다. 일본의 중간 조직 블록형과도 달라 가족단위로도 관계가 강하고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능력도 발휘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가족이란 가족 친족만이 아니고 화인 네트워크의 3연에 가까운 것을 포함하고 있다. 시간축으로 보면 코리안 네트워크는 당초는 patriotism이 강했지만 국가, 해외 민족의 발전과 함께 지금은 내셔널리즘이 강한 네트워크가 되어 있다.


  재외국민이 형성하는 코리안 네트워크의 특징은 강한 조국애에 의지하고 있다. 조국애란 애국심의 하나의 형태로서 애국의 대상은 조국(조상의 나라), 모국(출생국) 본국(국적국) 거주국(현주국)으로 나뉘며 이 중에 어느 것을 사랑해도 애국심이다. 애국심은 내셔널리즘과 patriotism으로 대별되어 내셔널리즘(국수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이란 국가 형성과정에서 거기에 귀속하는 국민으로서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며 그 국민에게 귀속하는 것이 스스로의 최대 가치인 것이다. 다른 한편, patriotism은 국가 형성 이전부터 존재한 것으로 사람들은 국민으로서의 의식은 없으나 출신지나 특정 향토의 일원으로서 지역민에 대해 애정, 애국주의・애향주의・조국애・향토애를 느끼는 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향후 코리안 네트워크의 발전 방향은 국가의 벡터(크기와 방향을 고려하는 양)와 함께 유태인 네트워크에 볼 수 있는 정착지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기능 구축형의 네트워크일 수도 있다.

  ④ 일본인 네트워크

  한국인이 국가와 가족에게 강한 관계를 나타내는데 대하여 일본인은 중간 집단에 강한 관계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전후 고도성장 이래  불리워진「기업전사」는 일본인 회사인간을 일컫는 대표적인 언설이다. 즉 일본인 네트워크의 특징은 조직, 집단이 기초 단위가 되고 있어 개인이 핵심으로 되어 형성되는 화인 네트워크와는 성질이 다른 것이다.
  조직, 집단이 단위가 되는 일본인 네트워크는 꼭 겹쳐 쌓은 벽돌의 벽이나 돌담의 담과 같은 블록형 구조로 되어 있기에 완강한 네트워크가 구축된다. 또 정보공유의 결정은 기본적으로 합의성(의견일치)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개인에 의한 톱 다운 결제와 같은 즉효성은 없지만 결정사항은 전원 책임자로서 끝까지 참가해 결과를 낸다. 즉 결정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결제되면 결과로 반드시 이어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본형 네트워크는 안정적이다. 중간 조직이 강한 관계를 특징으로 하는 일본인의 블록형 네트워크에서는 그것을 지지하는 정신축이 코리안 네트워크에 보여지는 patriotism이나 내셔널리즘은 아니고 조직・집단의 귀속 의식이다. 따라서 항상 집단 내부에 참가하는 것이 네트워크를 짜는 전제가 된다.
  그러나 최근에 인터넷의 보급으로 조직 블록형의 일본인 네트워크는 변화하고 있으며 그 대신에 블록을 넘어 공통목적, 공통이익을 실현시키는 신블록이 형성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와 길어지는 경제불황, 불안정한 정치 체제 등의 원인으로 국민의 사회생활 지혜가 정치・경제적 침체를 극복하는 힘을 낳았던 것이다. 이러한 신블록형 네트워크가 진전된 사례로 2011년 3월 11일에 동북지방을 덮친 대지진・큰 해일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부흥・복구 과정에서 「토호쿠 지원」을 내세우는 많은 민간 자원봉사 단체, NGO, 의료복지 팀등 목적형 신사회적 네트워크가 등장한 것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고찰해 온 4민족의 네트워크의 형상을 도시해 보자.

 

4. 조선족 네트워크의 상대화

조선족 네트워크의 원형은 한반도에서 간도이민의 혈연을 축으로 한 상호 부조적 결합으로 보인다. 가족 친족을 핵으로 망향 정신에 의지한 코리안 아이덴티티를 공유한 집단이 형성되어 그 후 지연관계가 추가되어 조선족 네트워크의 정신축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루트를 가진 현대 조선족 네트워크는 어떠한 것일까. 여기에서 재일 조선족 네트워크를 사례로 고찰해 볼 때, 그들의 네트워크에서도 화인 네트워크와 같이 중심되는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완수한다. 중심인물은 자금, 사회적 신용, 리더십 등 집단을 통괄하여 인솔하는 능력이 필요하고 이러한 능력이 일정한 집단 네트워크를 만들어 낸다. 의사결정은 톱 다운형이 많으며 중심인물의 판단이 그 네트워크의 결정사항이 된다. 이 형태는 화인 네트워크에 극히 유사한 타입이다. 따라서 이 네트워크는 중심인물이 인솔하는 집단이며, 중심인물의 힘이 그 네트워크의 영역이 되며 또한 한계로도 된다.

  조선족 네트워크의 형상은 중심인물을 핵으로 하여 patriotism에 근거한 3연에 의해서 연결된다. 그리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조선족 내에서 확대되는 민족네트워크가 된다. 그러나 적은 민족규모를 벗어나 강한 국제 지향을 보이면서 다른 네트워크나 타민족의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보다 한층 더 확대되어 가는 경향을 보인다. 이 점이 조선족 네트워크 형성의 특징이다.
  예를 들면 1981년에 창립된 세계한인무역협회: Word OKTA(61개국, 113지회)는 한국에서 세계로 이민한 해외 코리안 비즈니스네트워크이지만 일본의 5개 지회 중에 중국조선족에 의해서 구성된 치바지회가 있다. 동 지회는 2006년에 OKTA의 일본지회(5지회)의 하나로서 설립되었고 그 전까지는 재일 조선족기업가들은 개개인의 3연에 의해서 연결되는 네트워크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치바지회 창설에 의해 소규모의 개개인 네트워크는 팽창하여 지금은 재일조선족 전체에 확대된 것이다.

  그리고 재일 조선족 네트워크는 하나의 인트라넷 워크를 형성하면서 OKTA의 다른 지회 본부와의 제휴를 강화하여 선행하고 있던 재외 코리안 네트워크와 연결되었던 것이다. 또 이 네트워크는 차세대교육 프로그램을 OKTA의 활동으로서 진행하고 있으며 그 프로그램을 통해 세대를 넘은 중층적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다. 이 연장선에는 아직도 1세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직도 2세의 규모가 적은 짧은 이민 역사의 재일조선족이 머지않아 3세, 4세로 세대를 거듭해 가면서 향후에는 새로운 미래 네트워크의 기점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치바 OKTA는 연변대학교우회, 조선족연구학회, 조선족여성회, 조선족사이트 SHIMTO 등 다른 재일 조선족 네트워크와 제휴하고 있어 각각이 인트라넷이 되어 일본에서 강한 민족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그렇지만 향후의 조선족 네트워크의 확대를 위해서는 여러가지 과제를 안고 있는 것도 틀림없다. 여기에서는 그것들도 포함해 재일 조선족 네트워크의 특징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① 재일 조선족 네트워크의 형상은 화인 네트워크형에 가깝지만 한층 더 일본식 조직형이 융합한 네트워크의 안정성을 지향하는 민족 네트워크이다.
② 중심인물에 의해서 네트워크 규모가 정해진다. (인맥 중시형)
③ 중심인물의 쇠퇴는 네트워크의 쇠퇴(조직 동향보다 인물 동향: 네트워크의 불안정성)
④ 의사결정이 빠르다(톱 다운형).
⑤ 네트워크 조직이 완만함(규율보다 현장주의)
⑥ 네트워크 정보는 사인정보까지 유통(네트워크내의 비공식성)
⑦ 인구규모가 작으므로 중심인물로 되는 인재가 한정된다. 그것은 새로운 네트워크에 같은 중심인물이 관련되는 화인 네트워크과 유사하다.
⑧ 인적 제약은 네트워크 확대의 저해 요인으로서 작용하고 있어 이 해결은 세대를 쌓아 많은 인재를 낳는 미래 네트워크에 기대해야 할 것이다.
⑨ 현재 일세가 중심이기 때문에 거주 역사가 짧고 네트워크 구축보다 개개인의 안정된 생활의 확립이 우선과제이다. 기존의 재일 조선족의 조직집단, 네트워크 담당자는 이미 20년 이상의 거주 경험을 가진 초기 이주자가  담당하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 증가하고 있는 조선족은 유학생이 대부분이고 그들의 생활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5. 맺는 말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다른 외부의 사회적 영역과 관계를 가지고 있는 집단은 보다 넓은 범위의 정보에 액세스 할 수 있다. 하나의 네트워크에 많은 연결을 가지는 것보다도 다양한 네트워크에 연결을 가지는 것이 개인・민족이 무엇인가를 완수할 때 보다 유익하다.

  재일 조선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다언어 우위성이다. 동아시아에 있어서 이 정도로 민족 단위로 언어 우위성을 갖고 있는 것은 중국 조선족뿐이다. 50대에서 30대 후반의 1세들의 상당수는 일본어 기초가 되어 있는 사람이 많아서 일본에서의 일본어 습득이 다른 민족에 비해 매우 빠르다. 일본어 교육이 필요가 없을 만큼의 언어 능력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을 정도이다.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최근에 도래한 이민자는 영어도 우수하다.

  이러한 다언어 우위성을 네트워크의 입장에서 보면 애무 큰 장점이 된다. 국적이 다른 경우 공통언어(프로토콜)가 없으면 네트워크는 연결될 수 없다. 또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달라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민족은 모국어와 국제어인 영어가 프로토콜이 된다. 그러나 조선족은 다언어 우위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지 언어로 연결이 가능하다. 그 때문에 조선족 네트워크는 어디서라도 연결될 수 있는 뛰어난 네트워크인 것이다. 이러한 우위성은 다른 대규모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소규모 네트워크의 단점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민족 네트워크에 여러가지 정보가 공급되는 우위성을 지닌다.

  소규모로 일중 융합형 즉 3연을 기초로 하는 소용돌이형과 조직적 블록형이 융합한 재일 조선족 네트워크는 후발성 이익 다언어 우위성을 발휘해 네트워크의 확대와 강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연후에 미래 네트워크에 정보공유, 행동공유 그리고 사상공유를 어떻게 연결하는지는 다음의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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