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날 기획 특집

올 설 연후, 서울조선족교회 설날 큰잔치 한마당 행사는 예정대로 고유의 흥과 멋을 살리면서도 차분하고 실속 있게 치르러 졌다.

 첫날부터 동포들이 연속 찾아 들면서 설 기분은 차츰 풋풋하게 살아났다.

질서 정연히 줄을 서서 설날 선물을 받아 안는 동포들의 가슴에는 정든 고향을 떠나 부모자식과 갈라져 생활해오던 외로움과 고독, 모국에서 돈 버느라 쌓인 서러움과 스트레스가 조금씩 사그라져 갔다.

 

애를 데리고 온 젊은 색시의 웃는 낯과 연세 많은 노인들의 주름 펴진 눈귀에도 "이젠 정말 설이구나!" 하는 기분과 즐거움이 환하게 묻어 나왔다.

 

첫날 오후부터는 장기 시합, 윷놀이가 시작 되었다.

 

남성들은 그래도 장기 시합에 사활을 걸었고, 여성들은 두 줌에 꽉 모았다 던져서 운과 판을 가르는 흥겨운 윷놀이 마당에 모여 들었다.

 

김용길 목사 담담으로 진행된 윷놀이 마당에는 젊은이 늙은이 가리지 않았다. 오구작작 모여 앉아 '모-야!', '윷-이야!' 하며 윷가락 던지면서 함성을 질러댔다. 잡고 잡히고, 그래서 개탄과 환호가 연발하는 즐거운 오락마당이 되어갔다. 올 한 해도 행운이 윷가락처럼 쫙쫙 터져 나갔으면! 하는 바램 일 것이다.  

 

상품은 푸짐하지 못하나 받아 안는 마음들만은 푸짐해 졌다.

1등에 김춘자, 2등에 전점순, 3등에 이영자, 4등에 이재문, 5등에 강선자로 등급이 나왔다.

 

이튿날은 설날, 선물증정은 계속 되어갔다.

 

예배당에서는 오전 열 시부터 서경석 목사가 "깨끗한 양심과 믿음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해서 모두에게 깨끗한 양심과 삶의 믿음을 갖도록 감동을 불러 주었다. 

 

점심은 김 순애 집사를 도와 교회숙소 여성분들이 손수 빚은 물만두를 찾아온 동포들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장기대회는 귀한 동포연합회가 담당했다. 대방의 차를 떼고 포를 떼 가며, 여러 번의 판 승 끝에 1등에 남철화, 2등에 강송봉, 3등에 허용호, 4등에 김영일, 5등에 김민호로 우열이 가려졌다.

 

설 연후 3일 간, 오후 2시부터 저녁 6시까지 가슴 아픈 안타까운 사연을 안고 서경석 목사 사무실을 문을 두드리는 동포들이 연속부절했다.

 

서 목사는 불편한 몸을 애써 추스리며 민원사항들을 빠짐없이 컴퓨터에 기록해 넣고 당사자들과 유관 책임자들에게 즉시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해 주군 했다. 때론 너무나 피곤해 10분간이 나마  잠시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다시금 동포들을 접대하군 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동포들의 가슴에는 존경심과 안타까움이 사뭇 교착되어 갔다.

 

사흘간 서 목사를 찾은 민원은 무려 70여 명이 되였다.

 

탁구시합 담당은 운동과 가창에 끼가 있는 윤완선 목사가 맡았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좁은 공간에 탁구 판을 놓고 시합을 벌리자 흰 공이 번개같이 건너갔다 건너오군 했다. 다들 고향에서 익혀오던 솜씨 그대로, 옛 풍토와 지나온 삶의 풍경이 그들 몸짓에서 짙게 묻어 나왔다.

 

결국 1등은 남호길, 2등은 윤근환, 3등은 김현숙, 4등은 이길운, 5등은 하감용이 따냈다. 

 

설날 저녁, 누가 조직하지 않았는데도 여성숙소에서는 흥겨운 오락마당이 절로 벌어졌다. 노래하고 춤을 추며 제 가락과 자기 멋을 찾는 동포들은 잠시나마 삶의 고달픔을 잊고 건들어지게 아리랑을 넘기고 있었다. 생활에 대한 마냥 시들 줄 모르는 그들의 부푼 꿈과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중국 조선족사회는 흩어지지 않고 나름대로 오늘까지 단단히 지반을 다져가고 있는 것이었다.

사흗날, 즉 30일 오후 4시에 모두가 바라마지 않던 노래자랑 행사가 마침내 개최 되였다.

 

사회를 맡아보는 김사무엘 전도사의 끼와 능란한 말솜씨가 한결 돋보이었다.

 

장내가 기립 박수해서 북한의 인기노래 “반갑습니다”로 노래자랑은 막을 열었다. 이어 김순애, 이태복, 이철구 등 순번으로 “여자 여자 여자”, “너와나의 고향”, “이별의 부산정거장”이 불러지자 장내의 열기는 대뜸 화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피는 못 속인다고 했다. 노래가 있는 곳에 반드시 춤가락이 나오기 마련인 법, 그래서 중국에서는 조선족동포- 백의민족이 사는 곳을 일컬어 가무(歌舞)의 고향이라고 한다.

 

손발 제멋대로 놀리는 막춤들에 사교댄스, 지어 라틴댄스까지 등장해서 한껏 끼를 보였다.

 

예순을 넘긴 김민호 씨는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퉁소로 구수하고도 건들어진 “농부가', “라질가'를 연주해서 장내의 흥과 운치를 돋구어갔고, 박순금 씨는 유행가 “북경아가씨”를 불러 한중간의 우호를 열정적으로 노래했다. 

 

수더분하고도 마음씨 착하게 생긴 사십대 초반의 여인 서 해순 씨가 “미스터 유”를 부르자 가수 못지 않은 그녀의 가창력과 건들어진 음정박자에 모두가 일제히 박수를 치면서 감탄과 앵콜을 연발했다.

 

노래자랑 심사는 김용길 목사가 가창력을, 이용길 목사가 박자를, 윤완선 목사가 음정을 맡아 채점을 했고 세 항목의 점수를 합한 평균 점수로 아마추어 가수들의 우열을 가려냈다.

 

결국 1등에 서해순(미스터 유), 2등에 김덕철(꿈에서 본 고향), 3등에 권오금(봄바람), 4등에 함금식(가평아가씨), 5등에 함명연(꼬마인형) 순으로 평선 되었다. 1등 장금은 7만원이었다.

 

설날 잔치 한마당은 드디어 막을 내렸다.

 

하지만 동포들의 가슴에 물결치는 여흥과 받은 감동은 오래도록 가셔지지 않을 것이다.

 

병술 년 개띠 해에도 서로 간에 믿음과 신뢰를 쌓고 담벽을 허물면서 부지런히 뛴다면 조선족동포들의 앞날은 더욱 밝아질 것이다. 소망했던 바를 얻고 바라던 행운을 잡고 잘살 날을 하루 빨리 앞당겨 올 것이다.

 

명년 설날에는 조선족동포 여러 분들 앞에 반드시 행운의 꽃마차가 왕림하기를 삼가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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