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북한에서 찍은 달력에 4월 4일이 붉은 글씨로 씌어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곤혹스러워 하였다. 김정일, 김정은과 관계되는 날인지 하며 말이다. 사실은 김정일, 김정은과 별 관계가 없다. 4월 4일은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휴식하는 한식절(寒食節)이다.

한식절은 어떻게 생긴 명절인가?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헌공(獻公)은 서방에 있는 여융(驪戎) 부족을 점령하고 절세의 미녀 여희(驪姬)를 데려와 부인으로 하였으며 그가 해제(奚齊)를 낳았다. 헌공은 여희의 꼬임에 빠져 해제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하였으며 태자 신생(申生)을 죽였다. 이에 둘째 아들 중이(重耳)는 내란을 피해 서쪽 적지(狄地)에 피신해 있다가 19년 만에 진목공(秦穆公)의 도움을 받아 진나라의 임금이 되었다.

그가 바로 춘추오패(春秋五覇) 중의 하나인 이름난 진문공이다. 권좌에 오른 진문공은 19년간 자기를 따라다닌 가신을 하나하나 등용하였으며 공로가 가장 큰 개자추(介子推)를 맨 나중에 등용하려 하였다. 그러나 개자추는 급류용퇴(急流勇退)의 미덕으로 면산(綿山)에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진문공이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자 ‘산에 불을 지르면 나오겠지’하며 불을 질렀다. 그러나 개자추는 끝내 나오지 않고 큰 나무를 껴안은 채 불에 타 죽었다. 진문공은 너무 비통한 나머지 그가 타 죽은 4월 4일을 기념하여 불을 지피지 못하게 하였다. 그 날에는 불을 지피 지 못하게끔 돼 있어 찬 밥을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한식절의 유래이다.
전통적으로 한식절이나 그 이튿날인 청명절에 산소(묘소)에 가는 습관이 있다. 북한에서는 한식절에 산소 가며 이날 전국적으로 하루 휴식한다. 문제는 하루 쉬는 정도가 아니라 장관을 이루는 아주 대단히 큰 명절이며 김일성, 김정일 생일 다음으로 가는 명절, 전통 명절 중 가장 큰 명절이다.

필자는 1985년 친척방문차 평양에서 한식절을 체험한 적이 있다. 그날 평양 버스회사, 각 기관, 단체, 사업체의 차는 물론이고 중앙당과 국무원차까지 총 동원되어 평양 시민을 평양시 주변 묘소로 나른다. 아마 150만 평양시민의 절반 이상은 묘소에 가는 듯하다. 평양시 도처에서 사람들이 차를 기다리며 그 줄이 보통 1킬로 정도 길다. 물론 산소마다 사람들로 온통 덮여 있고 오후 3시쯤이면 돌아오는 인파가 더욱 인산인해를 이룬다.

북한에서 왜 한식절이 이렇듯 큰 명절일 수 있을까? 세습제로밖에 풀이할 수 없다. 북한 고위층 간부의 대부분은 만경대학원 졸업생들이다. 필자가 방문 갔던 1985년의 경우 1930년대부터 김일성과 같이 항일 빨찌산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의 후손만이 만경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니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대권뿐만 아니라 모든 고위층 간부가 다 혈연관계로 세습되는 셈이다. 조상을 중요시하는 성묘가 혈연관계로 세습하는 권력 승계 간에는 일맥상통하는 내재적 무엇이 있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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