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어릴 적부터 나는 코가 예민했다. 한번 맡아본 냄새는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냄새나 향기를 떠올리며 나는 그때 그 시절의 달콤한 추억에 빠지곤 한다.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고 있는 냄새는 아마 엄마 몸에서 나는 체취였으리라. 젖 먹던 기억은 없었으나 젖내에 가까운, 부드러운 살결 사이로 은은히 풍겨 나오는 그 냄새는 아마도 나를 낳아준 어머니에 대한 최초의 기억일 것이다. 막내여서 그런가. 언니오빠 들이 다들 어려워했던 무뚝뚝한 성격의 아버지에게 칭칭 매달리기 좋아했던 나는 그래서 아버지 몸에서 나는 담배냄새, 땀냄새, 발냄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느 책에서 그랬다. 이 세 가지 냄새를 적당히 섞은 게 남자냄새라고. 자식들을 위해 부지런한 일생을 다 바친 아버지의 남자냄새는 언제 떠올려도 구수하고 정겹다.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 좋은 냄새에 대한 기억은 너무 많다. 밥 지을 때 아궁이에 쑤셔 넣는 볏짚 타는 매캐한 연기냄새, 난로 위에 양은도시락 데울 때 뿌지직 장작 타는 냄새, 향긋한 고구마 굽는 냄새, 한밤중에 손전지를 들고 오빠의 꽁무니 따라다니며 돼지우리에서 포획한 참새고기 굽는 냄새는 지금 생각해도 침이 고인다.

땅속에 깊이 묻어 새큼하게 잘 익은 김치냄새, 구수한 시래기 된장국 냄새, 붕어 한 사발에 고추 한 바가지 넣고 조린 붕어조림냄새, 어느 하나 나의 유년 시절을 풍요롭게 했던 냄새가 아닐 수 없다. 

 고등학교에 다닐 땐 돼지족발이 너무 먹고 싶었다. 공부에 지친 몸으로 시장골목을 지나다가 냄새만 맡아도 행복했다. 기숙사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있어 족발을 하나 사려면 며칠 식비를 다 날려야 하는지라 쉽게 손이 내밀어지지가 않았지만 족발냄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학교 뒤에 숨어서 몰래 게걸스럽게 뜯어먹던 기억이 난다. 기숙사에 들어갔다간 고기보다 늑대들이 더 많았으니까…

 대학을 마치고 무차별한 경쟁으로 얼룩진 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의 코는 더욱 예민해졌다. 물질적인 세상은 점점 더 좋아지는 이면에 어두운 구석구석에서 풍겨오는 동전 비린내와 부패한 냄새 그리고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에 찌든 퀴퀴한 냄새들은 순수하기만 했던 나의 후각을 자극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경쟁사회라는 거대한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골소녀는 자극적인 냄새와 타협부터 배워야 했다. 

 정글에서 상처받고 울적할 때, 위축될 때 제일 많이 찾는 곳은 숲이나 바닷가였다. 해초내음 가득한 바다는 답답했던 마음을 확 트이게 해주었고 푸른 숲 속의 싱그러운 흙냄새와 풀냄새는 나에게 풋풋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향기든 악취든 세상에 어떤 냄새를 맡아도 구역질이 나는 때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내가 엄마가 된 징표였다.

내 몸 속에 새로운 생명이 생겼다는 것, 엄마가 된다는 것 세상에 이보다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한 큰일은 없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30여 년간 한 번도 질린 적 없이 일심으로 좋아했던 붕어조림과 시래기국 냄새만 맡고도 눈과 속이 뒤집어져 토악질을 해댈 수가 있겠는가.

 배가 눈에 띄게 불러오면서 나는 애초 가지고 태어난 순수한 후각을 다시 찾은 것 같았다. 세상엔 실로 맛이 없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었다. 구수한 커피, 고소한 삼겹살 구이 그리고 길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도, 강아지 고양이도, 그냥 스치는 낯선 사람들이 휘감고 다니는 바람냄새도, 그냥 내 안에 품고 있는 생명으로, 모성으로 인해 나에겐 모두 아름다운 풍경과 향기가 되어버렸다. 

 아가야, 어서 빨리 나왔으면 좋겠구나. 보드라운 살결 사이로 풍겨 나오는 포근하고 향긋한 아기냄새는 세상의 그 어떤 것과 맞바꿀 수 없다는 걸 엄마는 잘 안다. 젖을 먹으려고 가슴 속을 파고들 우리 아이는 봐도봐도 사랑스럽겠지. 너도 엄마의 체취를 가장 먼저 기억하겠구나. 내가 태어날 때 그랬던 것처럼. 네가 커서 험난한 세상을 사는 내내 그리워하고 위로가 되어줄 소중한 보물로 남겠지. 돌아가신 엄마가 내게 그래 주신 것처럼. 

 요즘 발달한 세상에 모든 것을 글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남길 순 있어도 유독 냄새나 향기만큼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것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고 소중하다. 한 인간이 제 한 몸으로 직접 살아보고 체험해보지 않으면 도저히 맡고 느낄 수 없는 삶의 향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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