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 칼럼

[서울=동북아신문]서울시에서 에너지 절약의 일환으로 공무원들에게 반바지 차림에 샌들을 신는 것을 허용하였다. 규격에 찌든 관가에 모처럼 들려오는 신선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동방예의지국의 신사들이 반바지 차림에 샌들을 신고 사무실과 회의실을 오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대단한 파격(破格)이 아닐 수 없다. 넥타이와 검정 구두를 고집하는 점잖은 분들은 못마땅해 할 지도 모르겠다.

공무원들도 한 때는 뒷머리를 군인들처럼 짧게 자르고, 앞 머리는 7대3으로 가르마를 타서 ‘포마드’를 바르고 다녔다. 짧은 머리에 단정하게 가르마를 탄 모습들을 지금 회상해보면 우습기 짝이 없다. 그 시절, 서민들 눈에는 공무원들의 그 모습이 파격으로 비쳤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파격이나 기행을 일탈로만 몰아세우지 말고 너그럽게 봐주는 아량도 필요하다. 중국의 ‘선비’, ‘요조숙녀’들이 머물고 있는 대학사회의 지도자(서기)들의 출근 복장은 어떠한가.

중국에서 ‘서기’라는 호칭은 각 행정 단위, 교육기관 그리고 기타 모든 공공기관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서기는 각 기관의 최고 지도자를 지칭하며 중국 사람들은 흔히 이들을 ‘링다오(領導)’라 부른다.
 
예를 들면 각 성의 성장은 부서기로서 제 2인자이며, ‘당위원회 서기’가 성의 1인자로서 실질적으로 성을 대표한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하부조직인 단과대학에도 ‘서기 중심체제’가 존재한다. 곧 ‘서기의, 서기에 의한, 서기를 위한’ 서기 만능 사회인 것이다.

우연히 몇몇 대학의 당위원회 서기(대학 서열 1위)와 교류할 기회를 가졌다. 우선 이들의 모습은 검박(儉朴)하기 이를 데 없다. 당위원회 서기나 단과 대학 서기 등 ‘영도자’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매우 소박한 옷차림을 하였다. 어느 대학은 상당수가 청바지 차림이었다. 청바지 차림으로 학교 현안 등 무거운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옌청(鹽城) 사범대학 외국어 학원 서기이자 영문학 교수인 중년의 바오(包)여사도 출근 복장이 늘 청바지 차림이다. 이 대학의 부총장을 겸직하고 있는 장친(張勤, 여, 54세) 부서기도 편안한 바지 차림에 단발머리를 하고 출근을 한다. 화장기라곤 전혀 없는 맨 얼굴에 하나 같이 실무형 차림이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인력시장’으로 출근하는 우리 여성 노동자의 옷차림과 다름이 없다. TV에 비친 양복 차림 일색인 전인대 대표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뤄양(洛陽) 외국어대학의 한족출신 한국어 학자로서, 이 분야 최고의 권위자로 알려진 장광쥔(張,光軍, 60) 교수에게 들은 일화 한 토막이 떠오른다.

꽤 오래 전에, 성균관대에서 봉직했던 국문학자 강신항(姜信沆) 명예교수가 이 대학에 초빙돼 일 년간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뤄양의 무더위는 견디기 힘들다. 양복 상의를 벗고 강의하도록 권하는 장 교수의 손길을 뿌리치고, 코리아의 노 교수는 삼복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맨 채 강단에 올랐다. 강 교수는 동방예의지국의 신사로서 노령에도 불구하고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 시종일관 흐트러짐 없이 강의에 임해, 중국 학생들의 ‘기이한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편한 복장으로 강의하는 중국 선생들과 지극히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작년 여름 잠시 들렀던 뤄양은 섭씨 42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맹위를 떨쳤다.

중국 대학에서 정장 차림으로 강단에 오른 중국인 선생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대학 총장도 편한 청바지 차림에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에 가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재학생 수 5만 명 규모의 허난(河南)사범대학 당위원회 서기와 오찬을 하며 담소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딱 달라붙는 흰색 반팔 티셔츠에 헐렁한 청바지를 입고 몇 명의 손님들을 맞이하였다. 소탈한 차림의 이 사람을 잠시 비서실 직원 정도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부드러운 자태와 사교적인 제스처에 익숙해지면서 ‘무례함’ 같은 언짢은 기분은 곧 수그러들었다. 윈난성 따리(大理)시에 위치한 따리대학 서기 역시 소박한 청바지 차림이었다.

중국대학 여교수들의 ‘무례한’ 옷 모양새를 두고 옌청시 한인회 부녀회장을 역임했던 손숙이(68) 여사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중국 교수들은 옷차림이 제멋대로여서 선생인지 노무자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어요. 이들처럼 옷을 입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우리 한국 사람들은 때와 장소에 따라 옷을 잘 갖추어 입는 예의 바른 민족이란 생각이 들어요.”

동방예의지국의 여인다운 일갈이다. 겉으로는 손 여사의 견해에 동의하는 척했으나, 효율성이나 생산성을 따지는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꼭 그리 나무랄 것만은 아니다.

출근 복장과 관련한 일간지 기사를 떠올려 보자. <세계일보> 2010년 8월5일자의 세계 각국 사람들의 출근 복장과 관련한 기사가 주목을 끈다. <로이터통신>이 전세계 24개국 1만2500 명을 대상으로 직장 출근복장에 대한 인식 차이를 조사했다. 출근할 때 정장 등 격식을 차린 복장을 가장 많이 입는 나라는 인도이며, 한국은 2위를 차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만일 우리나라의 지엄하신 ‘대학 총장님’이나 ‘학장님’이 청바지 차림으로 외국 손님을 맞이한다면 두고두고 여론의 도마에 오를 것이다.

아더 핸더슨 스미스(Arther Handerson Smith,1845~1942)의 <중국인의 특성>등 중국인의 의식구조를 분석한 대다수의 책들에 의하면, 원래 중국인은 체면을 중시하는 민족이라고 한다.

지금도 내적으로는 여전히 체면을 중시하기는 하나 복장 등 외양 면에서는 이미 수수한 차림으로 바뀐 지 오래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측면에서 볼 때 이들의 투박한 옷차림이나 ‘볼품없는 단발머리’를 무례한 것으로 치부하여 거부 반응을 일으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서울시가 오랜 획일적 복장문화를 지양하고 파격을 택한 데 대해 박수를 보낸다. 복지부동, 관료주의, 무사안일주의를 청산하는 정신문화차원에서의 파격도 병행해주기를 학수고대하면서. (아세안기자협회)

강성현

중국 섬서성 웨이난(渭南) 사범대학 객좌교수, 저서 '21세기 한반도와 주변 4강대국', 역서 '차이위안페이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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