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장혜영

 녀자.

아니, 너무 위대해서 나에게는 신이나 다름없는 그 녀자를 향해 천리타향에서 달려왔었다.

신설급행렬차도 초음속으로 달리는 내 마음을 운송하기에는 버거운지 굼벵이마냥 꿈지럭거리기만 했다.

달려와 얼싸안고서 웃고 떠들며 환락의 축제를 벌리려고 했었는데…

그런데 이 경사스러운 날에 꿈에서라도 만날가 두려워하던 그 징그러운 난봉군, 도적놈이 불쑥 나타나다니?!

게다가 사람까지 살해한 무시무시한 흉범이 되여서 말이다.

《내 아들 장하다 장해! 여보시오, 우리 학도 좀 봐요. 우리 막내아들이 박사가 됐어요!》

철부지 어린애처럼 내 손목을 잡고 이웃이며 그녀가 짠지 장사하는 재래시장이며 동네방네 안면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지칠 때까지 자랑했을 어머니였고 그런 사랑을 독차지하고 어리광이라도 부리고싶었던 나였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오늘인가.

불청객이 나타나 남의 다된 밥에 재를 뿌리는가.

찬물을 끼얹는가.

아니, 이건 찬물이 아니라 똥물이다.

혼자서 힘들게 돈을 벌어 자식 셋을 대학공부시키고 나까지 두명의 박사를 길러낸 어머니한테 이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알리고싶었다. 《내 아들 장하다.》 그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받을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였기때문이다.

자식들은 모두 공부시켜 번화한 대도회로 내보내고 당신만은 아직도 편벽한 시골소도시의 루추하고 허름하고 찌그러드는 빈민가의 어두컴컴한 쪽방에 거처하고있다. 좁은 골목길이 끝나는 곳에 당신의 초라한 쪽방이 나타났을 때 내 가슴속에서는 벌써 북소리가 둥둥 울리기 시작했다. 이제 곧 쪽문이 빠끔히 열리고 짠지를 버무리던중이라 고추가루양념이 묻은 고무장갑을 낀채 그대로 달려나오며 《내 아들 왔구나!》 그러실 어머니.

흥분으로 떨리는 음성을 가까스로 진정하며 《어머니.》하고 불렀지만 의외로 방안에서는 응대가 없다. 아까 골목으로 들어설 때는 분명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그것도 사내의 거친 음성이 웅얼웅얼 들렸던것 같은데 갑자기 뚝 그쳐버린것이다.

주위는 한동안 무덤처럼 무시무시한 적막감에 깊숙이 묻혀있었다. 게다가 굵직한 불안의 가지를 치는 그 두툼한 적막은 례사롭지 않은 초조와 긴장을 길게 거느리고있어 불길한 예감마저 불러일으켰다.

그런 느낌은 그녀와 나만의 육적인 뉴대감에서 소통되는 거의 동물적인 텔레파시인데 경험에 의하면 십중팔구는 정확성을 갖고있었다. 어머니에게 무언가 불길한 일이 생긴게 분명하다.

내 기억에 입력된 정보에 의하면 저 무덤같은 쪽방안에는 어머니와 누이동생 옥희, 그리고 눈에 든 가시처럼 밉살스러운 두 불청객 해미, 영남이 두 아이뿐일것이다.

《얘들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끌어안고 고생하십니까? 제 친척들한테 보내지 않고…》

명절이나 방학에 집에 올 때마다 권고했지만 어머니의 고집을 꺾을수가 없었다. 언제나 말이 없이 조용한 성격이였지만 마음에 한번 결단을 내린 일은 누구도 꺾을수가 없는 외유내강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의지가지없이 불쌍하잖니?》

그것이 어머니의 유일한 리유였다.

《불쌍하긴 뭐가 불쌍합니까. 아빠가 없습니까, 엄마가 없습니까. 낳은 부모도 나 몰라라 외면하는데…》

《모두 한국 가서 그렇지.》

《우리 한미라녀사는 다 좋은데 그게 흠이라니까. 애증이 없는거. 털끝만큼이라도 촌수에 걸리면 다 품에 껴안으려고 하잖아. 그건 사랑이 아니라…》

차마 동물성이라는 표현은 입밖에 내던질수가 없었다.

《사돈지간이라도 된다면 또 모르겠어요. 피는 고사하고 물 한방울 섞였나요?》

《왜 안섞였어. 네 조카들이 아니냐.》

새 아버지가 데리고 들어온 자식들에게서 생긴 아들딸을 나더러 조카라고 부르라고 한다. 어머니와 겨우 3년을 살고는 한국에 나간 뒤로 다른 녀자를 만나 살림을 차린 이붓아버지, 계부의 자식들도 애들을 어머니에게 팽개치고는 한국 나가더니 2년째 전화 한통 없이 소식이 끊겼다. 그 애들을 왜 어머니가 맡아서 길러야 하는가. 짠지장사만 해도 무척 힘드실텐데. 게다가 선천성소아마비로 운신을 못하는 막내딸 옥희의 병시중까지 들어야지. 할머니가 타계하시기전인 작년까지만 해도 시어머니까지 모셔야 했었다. 일년 365일 병상에 누워 앓기만 하던 남편이 8년전에 돌아가자 느닷없이 엄마의 인생에 끼여든 새 남편은 술주정과 도박으로 세월을 허송하는 알건달이였다. 다행이도 한국에 나갔으니 망정이지… 이제는 그 모든 부담을 활활 털어버리고 거뿐하게 당신의 삶을 살아도 되련만 한사코 유효기한이 지난 안해로서의, 엄마로서의, 할머니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스스로 떠안으려고 하는것이다.

새 남편의, 지금은 다른 녀자와 살림을 차린 배신자의 자식, 그 자식들의 아들딸이라는 빌미가 그 애들을 기르는 리유가 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다만 여태껏 어머니가 선택한 인생에는 틀린것이 없었다는 전례를 믿을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경찰은 무슨 경찰… 우리 학도야. 내 아들이 왔어.》

드디여 어머니의 낮고도 부드러운 음성이 두터운 정적의 벽을 넘어 간신히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러면 그렇겠지. 어머니는 내 발자국소리만 듣고도 아들임을 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쪽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엄마의 손에는 빨간 고추양념이 묻은 고무장갑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안개처럼 차분하고 유연하던 거동의 균형은 헝클어지고 언제나 여유롭던 표정에도 전에없이 불안한 공포의 그늘이 짙게 어른거린다. 뿐만아니라 그녀의 눈길은 고대했을 아들의 신변을 무심히 지나 내 등뒤의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더듬는다.

《혼자니? 뒤에 누가 안왔지?》

《누굴 기다리세요?》

자칫 혀끝에서 굴러떨어질번한 《이 아들 말고》라는 표현을 가까스로 말아들였다. 혹시라도 그것이 립증될가봐 두려웠다. 나 말고, 내 어깨넘어로 나보다 더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실망의 깊은 수렁에 처넣을것이기때문이다.

경찰?!

방금전 어머니가 경찰이라는 표현을 썼던것 같은데… 저 공포의 표정과 경찰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러나 의미의 맥은 여전히 나한테 와서 끊기는데…

《어머니, 저 이번엡》

《밖에 서있지 말고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박사학위소식으로 소학교때 100점 맞은 시험지 들고 엄마앞에 달려와 뽐내던 그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자랑 한번 해보자던 나의 은근한 소망이 어머니가 전에없이 서두르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고말았다. 그녀는 종래로 아들의 말허리를 이렇게 무심하게 자른적이 없다. 그림처럼 조용히 앉아 아들의 말을 경청했었다. 어머니는 워낙 있는듯없는듯 안개같이 조용한분이신데 오늘은 무슨 일이 있기에 이처럼 당황해할가?

의혹의 그림자는 급속도로 팽창되며 내 마음의 하늘을 꽉 덮었다.    

《경찰은 무슨 경찰. 어서 나오너라. 네 동생 왔다. 우리 학도가.》

어두컴컴한 방안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안방을 향해 누군가에게 말을 던진다. 무언가에 놀라 숨을 죽이고있던 식구들도 그제야 얼굴의 긴장을 풀고 안도의 표정을 짓는다.

《어머니.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경찰은 왜…》

그때 방안에서 불쑥 나타난 사람의 모습은 나를 놀라게 했다.

송기태!

아니, 도적놈, 망나니, 사기군… 이 세상의 나쁘다는 모든 호칭은 죄다 독점한 인간쓰레기다. 《네 동생》이라는 말에 나는 갑자기 발작하는 구토를 참느라 한참 애먹어야 했다.

《그래도 형인데… 그런 말하면 못쓴다. 배운 사람이…》

어머니는 늘 나의 이런 거친 표현에 못마땅해하지만 난 사실 이런 말들도 기태의 인간됨을 표현하는데는 그 강도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선과 악을 분별해야지요. 혈연이 모든 악과 잘못을 덮어감싸는 명분이 되여서는 안된다고요.》

어머니가 유식한체 건방을 떨며 먹물냄새를 슬슬 풍기는 내 오만을 리해했을가?

《열손가락을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이 없단다.》

어느 교과서에도 없는, 길가는 어떤 시골아낙네라도 다 할줄 아는 그 간단하고 평범한 말이 내 유식한 공격에 대한 반론이였다.

엄마가 페수술을 하려고 장만해둔 치료비를 몽땅 훔쳐다가 도박과 유흥에 날려버린 자식이 사람인가.

《사람이 살다보면 이럴때도 있고 그럴때도 있는거란다.》

엄마의 무한한 관용앞에서는 세상 그 어떤 견고한 불화의 장벽도 물먹은 모래성처럼 붕괴된다.

그러나 이번만은 문제가 다르다. 기태의 느닷없는 도래의 뒤에는 경찰이란 단어가 튕겨나올만한 상황에 맞먹는 사건이 반드시 있을것이니 말이다.

《학도구나. 난 또 누구라고. 하하하.》

그 호탕한 웃음소리, 세상을 달관한듯한 여유로움과 유머, 절도와 박력으로 넘치는 사내의 풍도… 빛 좋은 개살구, 비단보에 개똥이라더니 그런 멀쩡한 외모가 사람을 더구나 짜증나게 한다. 난봉군이면 난봉군답게 행색도 그에 어울려야 할것이 아닌가. 정상인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저 소탈함과 너스레는 위장속의 시큼털털한 음식물마저 역류시킨다.

《여긴 또 뭘 하러 왔어요?》  

나는 구태여 내 얼굴에 번졌을 경멸과 저주를 감추려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사람에게는 모욕과 축객으로밖에 들리지 않았을 무례한 언사였는데도 기택은 분에 넘치는 찬사라도 들은듯 도리여 껄껄 웃기만 한다.            

《학도야!》

어머니가 형제간에 박혀드는 철책을 해체하느라 없는 수선을 떨며 내 손에서 빽을 받아내리며 손을 잡아 방구들에 앉힌다.

형인데 례를 갖춰야지 그게 무슨 무례한 언사냐는 무언의 충고다. 어머니는 나더러 기태가 형이라는 그 하나의 사실만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것이다. 그밖의 송기태의 모든 더러운 과거와 불쾌한 기억들을 잊으라고 한다. 사실 나는 어머니의 충고를 거절할만한 용기가 없었다. 늙은 시부모를 모시고 병석에 누워 운신도 못하는 남편 병간호를 하며 혼자서 짠지장사를 해서 세자식을 대학공부를 시키고 박사를 둘씩이나 길러낸 어머니의 명령은 나에게는 신의 지령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느낌이 이상하다. 어머니의 안면을 봐서 그냥 지나치기에는 문제가 너무 심각해보인다. 강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아니, 호기심이라기보다는 불의에 마주쳤을 때 생기는 정의감 같은것이라고나 할갉

이제는 박사학위수여소식을 전하고 칭찬을 들으려던 흥도 모두 깨여지고말았다.

《형이 지금 어려운 일을 당해서… 엄말 찾아왔구나.》
당사자 송기태는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태연하게 책상다리를 틀고 다시 술상에 마주앉아 유유하게 잔을 드는데 죄없는 어머니가 아들 대신 난색을 지으며 화를 불러올 불씨를 꺼보려고 전전긍긍한다.

《엄만 좀 가만있어요. 그쪽에서 말해봐요. 무슨 얼굴로 이 집에 또 발걸음을 했냐고요?》

형이 아닌 그쪽…

화를 버럭 낼만도 한데 기태는 그따위 호칭쯤엔 관심이 없는듯 히물히물 웃기만 한다. 3년전에는 엄마의 수술비를 훔쳐가더니 오늘은 또 뭘 훔쳐가려고 왔냐고 따지는걸 모를만큼 미련한 위인은 아니다. 이 사람이 나타나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건만 어머니는 위기의식이 하나도 없다.

송기태는 천정만 말끄러미 쳐다보며 고기안주를 질근질근 씹어댄다. 후리후리한 키, 너부죽한 이마, 균형 잡힌 이목구비, 거기다가 소탈한 성격… 얼핏 외모만 봐서는 호인처럼 보인다. 분명 저 얼굴이 사기군의 밑천이 되여주었을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항상 불신과 경계, 위선과 기만의 음흉한 빛이 번뜩이는 여우눈에서는 교활한 까만 눈동자가 유리공처럼 재빠르게 로획물을 찾아 굴러다닌다. 무엇이든 일단 그 시선에 포착되기만 하면 절대 놓치지 않는다. 부처님 같은 한없이 자애로운 어머니한테서 어떻게 저런 자식이 태여났을가 의심된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밉다하니까 어느새 해미와 영남이는 려행백을 방구석으로 끌고가 개평을 시작하고있었다.  

《다치지 마!》

나는 저도 모르게 무식한 시골아낙처럼 역정을 버럭 긁어냈고 본의 아니게 터져나간, 그 째지는듯한 악청에 스스로도 놀랐다. 아마 그 목소리에는 기태를 향한 질타까지 추가되여 더구나 날카로웠을것이다.

애들은 깜짝 놀라 백에서 움찔 손을 떼고 비실비실 구석으로 물러났다.

《애들이 놀래잖니. 무슨 소리를 그렇게 모질게 지르니.》

어머니는 슬그머니 애들을 당겨다가 당신의 무릎에 하나씩 앉히더니 백에서 과자며 과일을 주섬주섬 꺼내준다.

《소리치기는… 우리 예쁜 강아지들 먹으라고 맛있는거 한가방 사오구선… 지금은 삼촌이 화나셨으니까 잠자코 있어.》

물러터지기는?!…

사랑에도 원칙이 있고 조건이 있고 차별이 있거늘…

난 늘 어머니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그건 내가 어리고 리성적인 분별력의 결여에서 생겨난 그릇된 판단이였는지도 모른다. 대학을 다니고 박사가 되고 세상리치를 깨닫게 되니까 어머니의 부족한 점들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한걸가?

《빨리 내려. 할머니 다리 아프시잖아. 다 큰 애들이 눈치도 없이…》  

《삼촌 밉지? 삼촌 미워!》

어머니는 애들을 품에 꼭 껴안더니 당신의 몸으로 뻗쳐오는 내 손길에 견고한 방어벽을 친다.

《크…크…큰 오…오…오빠…》

선천성소아마비로 육신을 운신 못하고 말도 똑바로 못하는 누이동생 옥희가 뭔가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려는듯 손이며 얼굴을 안쓰럽게 비틀어대며 입을 열었다.

《사…사…사람…으…으…을…주…주…》

《뭐라니? 사람을 어떻게 했다고?》

심증은 앞서는데 확증이 따르지 않아 나는 답답해났다. 설마 하면서도 두려움부터 륜곽을 드러낸다.

《주…주…주…》

《죽였다는거니, 뭐니?》

《어.》

순간 안전(眼前)에서 번개가 번쩍했다.

불길한 예감은 들었었지만 살인까지 했을줄은 미처 몰랐다.

《당신… 당신 정말 사람을?!…》

《꼭 죽이려고 한건 아닌데… 어찌어찌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별로 놀랄만한 일도 아닌데 야단법석이냐는듯 도리여 능청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도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수갉》

《학도야. 목소리를 좀 낮춰라. 남들이 듣겠다.》

어머니는 급급히 손으로 나의 입을 틀어막는다. 손이 거칠다. 게다가 짠지장사에 절어 손등이 퉁퉁 부어있다. 어머니의 인자하고 차분한 얼굴에 초조와 긴장과 근심으로 구름이 꽉 덮여있었다.

《남들이 듣는게 문젭니까. 이런 살인범을 집안엡》

《제발 조용히 좀 해라. 며칠만 숨어있겠단다. 너도 알다싶이 형이 여기 말고 어딜 갈 곳이 있냐?》

《살인범을 집안에 숨겨두다니요. 공범자가 되고싶어요? 이런 범인은 당장 경찰에 신고하여 체포해야 합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곰같은 기태의 황소힘을 당할만한 체력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정의가 있고 정의는 꼭 승리한다는 신념이 용기를 주었다.

그러나 어머니도 덩달아 일어나 내앞을 가로막았다.

《학도야. 이러면 안된다.》

차마 어머니의 가슴을 떠밀수는 없었다. 피덩이던 나를 이렇게 훌륭하게 길러준 따뜻한 가슴이 아닌가.

《잠시 바람쐬고 올게요.》

구실을 대고 밖으로 슬쩍 빠져나왔다. 내발로 달려가서라도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그런 얕은 속임수에 넘어갈 어머니가 아니였다. 그림자처럼 금방 뒤를 묻어나왔다. 나와서는 골목으로 빠지려는 내 손목을 살그머니 잡는다.

《어딜 가려고? 경찰서에 고발하려고?》  

《예.》

《이러면 못쓴다.》

《살인범을 숨겨두면 어머니도 같은 범죄자가 됩니다.》

《되면 어떠냐. 난 무섭지 않다.》

《저런 못난 자식때문에 왜 어머니가 불공정한 대우를 받습니까. 왜요?》

《내속에서 떨어진 자식이 아니냐. 네 형이란 말이다. 엄마 얼굴을 봐서 한번만 참아라. 형 대신 어미가 빌게.》

《누가 자식이고 누가 형인데. 엄마 정말 왜 이래. 우리 엄마 맞아? 설령 친자식이고 친형이라고 하더라도 살인범은 신고해야 되잖아. 이번만은 아들 말을 들어. 그게 저 자식을 돕는거라고. 내가 그래도 법학을 전공한 사람인데…》

《안된다. 정 고발하고싶으면 이 어미부터 잡아가도록 해라. 잘못이 있으면 저런 못난 새끼를 낳은 어미한테 먼저 있을게 아니더냐.》

늘 인자하기만 하던 어머니의 얼굴에 어떤 비장한 각오가 번뜩이는걸 보고 난 놀랐다. 그것은 어떠한 대가라도 지불하려는 결심을 내린 사람에게서만 볼수 있는 그런 표정이였다.

일은 자기가 벌려놓고는 모자간이 밖에서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리는데도 당사자인 송기태는 도리여 방안에 틀어박힌채 요지부동 태연한 자세이다. 커-커- 독한 소주만 물처럼 마셔대며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악용하는 재미를 만끽하고있었다.

《엄마… 여보시오, 한미라녀사님. 한번만 아들의 뜻을 따라줘. 엄마가 왜 뼈빠지게 돈을 벌어 날 공부시켰어? 저런 나쁜놈들 모조리 잡아서 심판하라고 공부시킨거 아니였어? 그러니까…》

《제 형을 잡으라고 공부시키진 않았어.》

《엄만 저 인간이 자식이라고 생각돼? 벌써 지난일 다 잊었어?》

《미워도 내 아들, 고와도 내 아들이지. 넌 어미가 미우면 어미라고 안할거냐?》  

말문이 덜컹 닫힌다. 박사학위까지 받은 지식인이 무식한 아낙네의 말에 대답이 궁해지다니! 비참한 기분마저 갈마들었다.

정말이지 이 한미라녀사는 송기태와의 그 넌덜머리나는 악연을 벌써 말끔히 잊었단 말인가. 자식이라는 명분 하나로 쉽게 잊혀질만한 악연이였단 말인가.

송기태의 과거사에 대해 내가 아는것이라고는 작년에 타계한 할머니한테서 귀동냥한 에피소드 몇토막이 전부이다.


1958년. 대약진의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던 그 해 한미라는 18살의 꽃다운 나이였다. 촌에서는 밤에도 사원들을 동원해 인력으로 논갈이를 강행했다. 가축 대신 사람이 멍에를 메고 쟁기를 끌었고 바줄을 감은 수레바퀴를 돌려 견인하기도 했다. 한미라도 그들속에 섞여 멍에를 지고 가대기를 끌었다.

휴식시간이 되자 말라버린 배수로 웅덩이로 소변보러 가는 한미라는 누군가 암암리에 자신의 뒤를 밀행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줄곧 그녀의 터지도록 익은 몸매에 침을 흘리던 생산대의 회계 송광민이 독수리처럼 와락 덮쳐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위험으로부터 탈출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꼼짝 말고 내가 시키는대로만 해. 남들이 알면 손해보는건 너야. 난 유부남이니 장가갈 걱정이 없지만 넌 시집갈 처녀잖아. 잠간이면 끝나니까 조금만 참어.》

그렇게 미처 손써볼 사이도 없이 당하고말았다. 신음소리가 새여나갈가봐 옷자락으로 입까지 스스로 틀어막고 광민이 하는대로 몸을 내맡겼었다.

그러나 광민의 말처럼 일은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는것이 아니라는걸 썩 뒤날에야 알았다. 한번 짓밟힌 정조는 조용한 기회만 생기면 남자에게 몸을 허락해야 하는 빌미가 되였고 그런 불륜의 악순환은 결국 임신의 불행을 초래하기에까지 이르고말았다.

배가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자 한미라는 당황해났다. 표적을 가리느라 애써 헐렁한 옷을 골라입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더이상 임신사실을 숨길수 없게 되였을 때 뒤늦게야 상황파악을 한 어머니는 급기야 딸을 도시에 사는 언니네 집으로 피신시켰다. 공사병원에서 락태수술을 하면 온 동네가 다 알것이기에 시선이 못미치는 먼 곳으로 보낸것이다.    

그런데 한미라는 주위사람들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배속의 피덩이를 지워버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미 톡톡 발길질까지 하는 어린 생명은 그녀의 육신과 하나로 이어진 불가분의 존재였다. 그래서 엄마와 언니의 강요에도 무릅쓰고 그 생명을 지켜냈던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출산하고나서야 그녀는 문제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심각함을 느꼈다.

낳기는 했는데 어떻게 기를것인가?

《아이없는 집에 줘버리자. 한족들이 많은데… 두고가면 내가 알아서 양자로 들여보낼테니 걱정마라.》

한미라는 말없이 고개만 살래살래 가로저었다.

《그럼 어떻게 할거니? 좋은 방법이라도 있냐? 말이나 시원시원하게 하는가. 어우, 속터진다.》

여전히 묵묵부답. 그때부터 침묵은 그녀에게 가장 유력한 언어였다. 자신의 의사표시를 묵언으로 대신하였다.

《차라리 저기 버들방천에 내다버리자. 거기에는 너처럼 이렇게 낳은 애들을 버린게 수두룩하단다.》

한미라는 기겁을 하며 아기를 품에 안고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이것도 저것도 싫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거니? 처녀가 아기를 기르기라도 하겠다는거니? 시집을 안갈거라면 모를가.》

《…》

《그럼 할수 없다. 아길 나한테 맡기고 내려가거라. 언니가 길러줄테니.》

《싫어. 언니도 못믿어.》

결국 한미라는 아기를 등에 업고 마을로 내려왔다.

동네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밤중에 집으로 들어왔지만 어머니는 딸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아기를 강변의 숲속에 던져버렸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는지 한미라는 그 밤으로 강변에 나가 아이를 찾아냈다. 아예 집에서 나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담배건조실바닥에서 일주일을 지냈다. 어머니는 이러다가 딸을 잡을가봐 할수 없이 그녀를 집으로 불러들이고야말았다.

부녀회에서 그녀를 불러다가 비판을 하고 아이의 생부를 대라고 족쳐댔지만 한미라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옷을 발가벗기고 매질을 당하면서도 치욕과 릉욕을 침묵으로 버텨냈다. 결국 부녀회쪽에서 먼저 지친 나머지 포기하고말았다.

그 시절은 먹고 살기가 힘든 때라 한미라는 애를 업고 늘 공사소재지로 이사간 송광민이네 집에 창피를 무릅쓰고 구걸을 다녔다. 식권이건, 돈이건, 부표이건 주는대로 받아왔다. 그러다가 운이 나빠 송광민의 마누라한테 발각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머리카락이 한줌씩 뽑히고 구정물을 온 몸에 뒤집어쓰고 만신창이 되도록 구타를 당한 뒤 축객당하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화냥년, 오입쟁이… 온갖 더러운 욕설을 다 들어야 했다. 그런 수모와 학대를 당하면서도 며칠뒤면 또 찾아가곤 했다.

기태가 3살나던 해 광민의 아들이 기차역에서 놀다가 통나무가 무너지는 바람에 즉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외독자를 잃은 송광민은 어느날 갑자기 한미라네 집에 들이닥쳐서는 무작정 기태를 빼앗아갔다. 한미라는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기태를 놓지 않으려고 최후발악을 했지만 결국은 무도한 광기에 투항하고말았다.

그 이듬해 그녀는 결혼을 했지만 불결한 과거가 불리한 조건이 되여 자기보다 열살이나 년상인데다 지병으로 투병생활을 하는 환자에게 시집을 가야만 했다.

한미라는 결혼을 한 뒤에도 기태가 보고싶어 기회만 있으면 향소재지의 학교로 찾아갔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부유한 가정에서 호의호식하던 기태는 거지행색을 하고 나타난 그녀를 모른다고 외면했다. 뿐만아니라 어디서 나타난 거지냐며 애들을 휘동해갖고 돌총질까지 해댔다.

그렇게 세월은 또 몇해가 흘러갔다.

영악스럽긴 했지만 기태를 예뻐했던 양모가 병사하자 송광민은 새로 안해를 맞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안해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보게 되자 기태는 하루아침에 개밥에 도토리신세가 되여 새 엄마한테서 축객당했다. 그때부터 기태는 도시로 올라와 소매치기, 도적질, 사기협잡, 도박, 주색잡기 등 난봉을 일삼으며 인생을 무의미하게 탕진하기 시작했던것이다. 발길을 끊다싶이 했던 생모네 집에도 뻔질나게 드나들며 돈이며 재물을 사기치고 훔쳐가고 후벼갔다. 소매치기, 건달 죄로 구치소콩밥도 세번이나 먹은 건달, 깡패로 타락하고말았던것이다…


이렇듯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의 사이에서 생겨난 원치 않는 생명!

낳아주고 길러준 은혜에 보답은 못할망정 자기가 잘살 때는 거지라고 엄마를 향해 돌총질하던 배은망덕한 녀석!

엄마의 수술비를 훔쳐다가 도박과 주색잡기에 날려버린 난봉군!

사기, 협잡, 절도를 일삼다 못해 이제는 살인까지 한 흉수!

어디를 봐서 집에다가 숨겨둘 명분이나 가치가 있단 말인가.

아들, 자식이라는 그 하나의 리유가 이 모든 구린내 풍기는 과거와 부덕(不德)을 사면할수 있는 명분이 될수 있단 말인갉

결국 어머니한테 이끌려 집안으로 다시 들어오고말았다.

《내가 죄없는 사람을 죽인건 아니다. 네가 법학을 전공했다니 어디 내 말 좀 들어봐라. 이놈이 네 형수의 한국수속을 해준다고 돈 6만원을 받아가지고는 꿀떡 삼켜버렸단 말이야. 2년이 넘었는데도 줄 생각을 안하고 슬슬 피해만 다니는거 있지. 다문 몇푼이라도 주든가 죽을죄를 졌습니다, 돈이 생기면 꼭 갚을게요 하고 빌어도 내가 흉기까지 휘두르진 않았을텐데… 자식이 뭐라는지 알아. 죽일테면 어디 죽여봐. 나한텐 동전 한푼 없으니까 갖고싶으면 내 목이라도 따가라고. 이러며 피를 채우는데 열이 확 받쳐서 어디 참을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그만 울화통을 못참고… 한번 혼줄 내준다는게 그만… 그렇게 싱겁게 뒈질줄 누가 알았니.》

벌써 기태는 주기가 올라 얼굴이 불그레하고 혀가 꼬이기 시작했다.

《그런놈은 죽어 마땅해. 그지? 내 말 맞지 학도야.》

나는 자꾸만 구토가 발작했다. 똥묻은 개 겨묻은 개를 비웃는다더니!

《그래 네 말이 맞다. 나쁜짓을 한건 그쪽이 먼저니까…》

어머니는 옆에서 기태의 동을 달기에 여념이 없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아들의 죄를 경감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있는것이다.

불쌍한 녀인!

나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더이상 들을수가 없었다.

《또 어딜 가려고?》

《화장실에요.》

공용화장실은 골목을 나가 한참 걸어가야만 한다.

어머니가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필경은 배우지 못한 무식한 녀자다. 그분의 어리석은 판단마저 묵인해서는 안된다. 법은 감정이 아닌 원칙과 정당성을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우리 모두가 감정이라는 명분아래 무지의 진흙탕속에 빠져들어서는 안된다. 어머니도 사람이니까, 사랑도 인간의 감정이니까 정의에 저촉될 때가 있다.

나는 골목길을 나서자 다급히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뒤를 돌아봤으나 마침 아무도 따라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아들이고 동생이라는 혈통적뉴대감을 믿는게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혈통보다는 원칙과 정의와 법을 더 믿는다.

아니, 이게 아니야. 휴대폰보다는 그냥 주변에 있는 파출소로 찾아들어가 경찰을 대동하고 오는게 더 빠를것 같다. 범인이 눈치채고 도주하기전에 손을 써야 한다.

마침 얼마 안가니 도로변에 파출소간판이 보인다.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다. 영문도 없이 전신이 화들화들 떨렸다. 악에 대한 선의 징벌! 지금까지는 책에서만 읽어왔지만 오늘 처음으로 몸소 체험하고있다는 긴장감때문일것이다. 어머니도 조만간 이 아들의 선택이 옳았다는것을 깨달을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현실은 책에 씌여진대로 단순한것이 아님을 나는 잠시뒤에 목격할수 있었다.

부랴부랴 경찰을 대동하고 집으로 들이닥쳤으나 범인은 마술사라도 되는듯 감쪽같이 자취를 감춰버렸던것이다. 그 시간이 불과 10여분밖에 안된다. 게다가 빠져나갈 통로도 골목 하나뿐이다. 훨훨 날아다니는 홍콩영화에서처럼 지붕우로라도 도망한걸가?

경찰의 직업적인 빈틈없는 기술적수사로도 종적을 찾을길이 없었다.

어머니는 능청스럽게 김치를 버무린다. 아직 기태가 마시던 술상도 그대로 장판구들우에 놓인채로다.

《부지도우. 쉐예메이라이궈.》

발음이 엉망인, 완전 조선말식 중국말 몇마디만 반복할 따름이였다.

나는 졸지에 경찰한테는 허위신고를 한 나쁜 의미지로 비쳐졌고 어머니에게는 부모형제를 배신한 의리없는 자식으로 락인찍히고말았다.

배웠다는 사람이 거짓말이나 하고 다니며!

나를 바라보는 경찰관의 시선에 로골적인 비난과 조소가 실려 따갑다.

잠시뒤 경찰은 돌아갔지만 집안 분위기는 여전히 무거웠고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저녁상을 마주했지만 달그락거리는 수저소리만 유난히 생동하게 들릴뿐이였다.

상을 물리자 어머니는 다시 짠지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본의 아닌 악역으로 난감해진 나는 려행에서 적치된 피로를 구실로 날이 어둡기전부터 잠자리에 들었다.

느닷없는 송기태의 출현으로 박사학위경축이고 뭐고 죄다 물건너가고말았다는 아쉬움도 컸지만 그보다는 어머니한테 배신자로 락인찍혔다는 사실이 내 량심을 더욱 괴롭혔다. 정의의 편에 섰다는 확실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정과 법 사이에서 량심의 고문을 회피할수 없었다. 어떻게 량심과 법이 대립될수 있는가?

자리에 눕긴 했지만 잠을 청할수가 없었다.

송기태는 어디로 갔을가?    

시간을 봐도 아직 그는 주변 어딘가에 숨어있을것이 분명한데…

기태의 은신처를 알 사람은 오로지 어머니뿐이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무슨 범죄행위를 저지르고있는지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어머니에게는 그 어떤 설명도 설득도 귀에 들리지 않을것이 틀림없다.

이불만 뒤척이다가 밤늦게야 가까스로 잠을 청한 나는 주위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여났다.

어머니가 무언가를 손에 들고 방에서 나가는것이 창문으로 흘러드는 어슴푸레한 달빛에 륜곽이 드러나보였다.

송기태?!

나는 순간 뇌리를 치는 예감에 살며시 이불속에서 빠져나왔다. 옷을 걸칠 사이도 없이 속옷착용 그대로 문을 열고 어머니가 사라진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는 헛간으로 들어가더니 안에 방치했던 리어카를 밀어내고 땅바닥에 깐 널빤지를 들어내기 시작했다.

저기 언제부터 밀실이 있었지?

명절이나 방학 때면 늘 들리곤 했지만 저기 저런 은밀한 공간이 있는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엄마. 왜 인제야 와. 나 배고파 죽는줄 알았잖아.》

지하실에서 들려오는 웅글진 목소리는 분명 송기태의것이다.

《쉿-목소리를 낮춰. 학도가 깨나겠다. 배고프지?》

나를 의식한 어머니의 음성은 앙금처럼 찰싹 가라앉아있다. 나라는 존재는 벌써 어머니의 마음속에 불신의, 경계의 대상으로 분류된것인가.

《어서 먹어라.》

《경찰들 갔어?》

《간지 한참 됐다.》

《그런데 왜 인제야 먹을것 갖고와.》

《학도가 잠들기를 기다리다보니…》

《학도, 그 망할놈이 제 형을 고자질할줄은 정말 몰랐어.》

《말을 함부로 하면 못써. 걘 직업이 그거잖아. 어미라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그랬을거다. 그러게 죄는 왜 지었냐? 형이란게 동생 볼 면목도 없이.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밥이나 먹어라. 여기 이삼일만 잠자코 숨어있으면 학도가 북경으로 돌아갈거니 그때면 밖으로 나와도 돼.》

자식, 넌 인젠 독안에 든 쥐 신세야. 꼼짝 못하고 잡히고말았어.

난 살금살금 뒤걸음질쳐 헛간에서 나왔다.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엄만 이런 내가 밉지도 않아?》

쪽-하는 술잔 빠는 소리뒤에 거친 기태의 음성이 꼬리를 단다.

이상하게도 그 물음에 대한 어머니의 대답이 궁금해져 나는 잠시 퇴장하던 발걸음을 멈췄다.

《아니.》

《왜 안미워?》

《왜는 왜니. 내 아들이니까.》

《다른 아들들은 다 대학 졸업하고 박사, 교원이 됐는데 난 건달에다 나쁜짓만 하는데 그래도 안미워?》

《길고 짧고 잘나고 못나고일뿐이지 모두 내 손가락이야. 깨물면 다 아파.》

저도 모르게 목구멍에서 뜨거운 불덩이 같은것이 불쑥 치밀었다. 마른 침을 삼켜 가까스로 아래로 눌렀다.

엄마의 말은 언제 들어도 시골의 어떤 아낙네나 다 할수 있는 그 흔하고 흔한, 평범하고 단순하고 무식한 말인데도 이상하게 들을 때마다  내 가슴에 알수 없는 심오한 의미들로 던져지며 파도를 일으킨다. 그 수수한 말이 그처럼 엄청난 충격을 줄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하기만 할뿐이다.

《난 엄마가 미워. 누구도 내 마음을 흔들지 못하는데 유독 엄마만 나더러 자신을 미워하게 만드니까. 차라리 날 죽일놈, 뒈질놈 하고 욕하고 때려라. 이 짐승 같은 놈, 불효자식, 하고… 엄마가 이러는건 날 나쁜 길로 가도록 도와주는거랑 다른게 뭐야?》

《좋고 나쁜거는 내가 알바가 아니야. 엄마한테는 단지 네가 내 새끼라는 사실이 중요할뿐이야.》

《또, 또… 그딴 말 지겨워. 난 눈물 같은건 질색이니까. 그런데 이 굴 누가 팠어?》

《내가.》

《엄마가 이 깊은 굴을? 뭣에 쓰려고?》  

《니가 숨으러 올줄 알고.》

《어떻게 알았지?》

《전번에 왔을 때 그 자식 돈 안주면 죽여버릴거라고 말했잖니. 넌 한다면 하는 애니까. 밤이면 애들 다 잠들기를 기다려서 한달 넘어 팠더니 되더라. 이왕 파는걸 좀 더 깊이 팠을걸. 좁아서 불편하지?》  

《…》

나는 서서히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의식할수 있었다. 뜨거운 액체가 커튼처럼 망막을 가리며 눈앞이 흐릿해왔다. 세상리치를 다 알고 선악을 분별할줄 아는 유식한 어머니를 두지 못한것을 후회한적은 한번도 없다. 그런거 다 없어도 어머니는 평범한 사랑 하나만 가지고도 하늘을 대신해 자식을 거느릴수 있는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엄마의  사랑은 어디까지인가.

누이동생 옥희의 소아마비를 치료해주겠다고 엄마는 못해본것이 없다. 병치료에 효과가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서슴치 않았다. 소문난 병원을 다 돌아다녔지만 효험이 없자 어머니는 주변사람들의 권고로 점도 치고 령험한 신령께 치성도 올리고 지어는 깊은 산골에 숨어사는 90이 넘은 무당을 찾아가 굿판까지 벌렸다. 무당이 주문을 외우며 누이동생의 어깨우에 오색무기(巫旗)를 꽂고 오곡을 뿌리며 악귀를 쫓는 굿을 할 때 어머니는 하얀 베천을 갈기갈기 찢으며 연신 절을 했다. 두눈에서는 간절한 소망의 눈물이 비오듯이 흐르고 콩크리트바닥에 짓찧은 이마에서 선혈이 철철 흐르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에 멋모르고 따라나섰던 나는 겁에 질려 전신을 파들파들 떨었고 옥희는 불편한 육신을 처량하게 비틀며 꺼억-꺼억- 울었다. 내 눈에 그때 어머니의 모습은 사람이 아니라 경외감이 넘치는 신령처럼 보였다.

물론 그번 행차가 탈당과 부녀주임직에서 파직되는 리유가 되였지만 그로 인해 내 인상속의 어머니의 가치는 결코 삭감되거나 퇴색하지는 않았다. 자식의 병을 치료하고싶다는 어머니의 소망은 어머니를 우러르게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내 엄마 아들 할 자격 없다!》

송기태의 음성이 전에없이 축축한 물기에 젖어있어 순간 나를 당황하게 했다.

《부모자식간에 자격 있고없고가 어디 있니. 학도가 내 자식인것처럼 너도 똑같은 내 자식이야. 어서 먹어라. 식기전엡》

나는 목이 메여 더이상 두사람의 대화를 엿들을수가 없었다. 그처럼 평범한 대화인데도.

그냥 돌아서서 집안으로 들어와버리고말았다.

머리우에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는 입을 틀어막았다.

어떤 원칙도 법적 근거도 없는 단순한 본능앞에서 법대박사학위까지 따낸 지식인의 지조와 신념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지다니?!

나는 원칙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할지언정 경찰서에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자신을 저주할뿐 다른수가 없음을 깨닫고 절망했다.

날이 밝으면 가자.

모자간에 저렇듯 애틋한데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주자…

그러나 새벽녘에 깜빡 잠이 든 나는 경찰에 신고는 고사하고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잠을 깼다.

《학도야, 형 간다. 잘 놀다 가라. 박사학위받은거 축하해서 형이 한턱 쏴야 하는데…》

간다는 말에 나는 그제야 정신을 번쩍 차리고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이렇게 가버리면 범인을 놓칠수도 있다.

《가지 말라니까 고집이구나. 저 안에 있으면 쥐도새도 모른다는데…》

어머니가 한사코 기태의 팔소매를 잡아당기고있었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한채 두사람만 번갈아볼뿐 감히 끼여들지 못했다.

《학도야, 엄마 좀 도와다오. 네 형이 지금 경찰서에 자수하러 간단다. 거기 가면 옥살이를 하고 콩밥 먹고 죄인 취급을 당하고… 사람을 죽였으니 얘도… 안된다. 안돼. 어미가 눈 뻔히 뜨고 널 죽으러 가는데 보낼순 없어. 학도야, 뭐하냐. 어서 형을 붙잡지 않고.》

늘 조용하기만 하던 어머니였다. 오늘처럼 당황해하며 횡설수설하는 모습은 처음이다.

거쿨진 기태는 손쉽게 어머니의 손을 떼여내고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그 모습이 여느때없이 어엿하다.

《형…》

나는 느닷없이 내 입에서 튕겨나간 낯선 호칭에 경악했다.

형이라니?! 누가 내 형인가.

《엄마 잘 모셔라. 우리 엄마 보통 녀자가 아니니까. 잘 있어. 엄마 나 간다.》

벌써 전화로 자수를 한 모양인지 경찰 대여섯명이 마당안으로 우르르 쓸어들어왔다.

기태는 반항을 포기하고 순순히 손을 내밀어 수갑을 받는다.

《안된다. 안돼. 차라리 어미가 대신 가마. 아니면 어미랑 같이 옥살이를 하든 죽든…》

애들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봉변에 놀라 엉엉 울고 나는 엄마의 허리를 껴안아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그녀의 월권행위를 제지하는 사이 경찰은 기태를 압송하여 골목을 무사히 빠져나갔다.

《형, 동생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부르시오. 내 있는 힘껏 도울테니까.》

《자식, 고맙다. 형 괜찮아. 하하하.》

사내는 사내다. 기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고 서글서글한 얼굴에 통쾌한 웃음마저 출렁거린다. 무슨 영웅도 아닌데 죄인이 저렇듯 기품이 도도할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적이 놀라기까지 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나는 불과 몇분사이에 벌어진 사건의 영문을 알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골목으로 사라지자 드디여 실신하여 그대로 땅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병원으로 이동하여 응급치료를 받고서야 의식을 회복했다.

《지금 몇시냐?》

《11가 넘었어요.》

《내 정신 봐라. 내가 이러고 병원에 한가하게 누워있을 시간이 어디 있는데… 날 부축해다오. 어서 따판댄으로 가자.》

《따판댄엔 왜 가요?》

《우리 아들 박사된거 축하해야지. 이 어미가 한턱 내려고 짠지장사아줌마들이랑 고향마을 사람들이랑 오늘 따판댄에 모이라고 기별해놓았거든.》  

어머니는 비틀거리며 침상에서 일어나 신을 신는다.

《엄마, 아직 몸도 불편하고… 형도 방금…》

《형은 형이고 너는 너지. 지금은 네 일이 더 중요해. 하나씩 해결해야지. 어서 가자. 사람들이 다 모였겠다. 가서 내 아들 자랑 실컷 해야지.》

나는 송기태가 벌려놓은 이 복새통에 박사학위수여기념잔치 같은건 다 물거품으로 지나간줄 알았다. 무슨 경황이 있어서…

《엄마!》

나는 한미라녀사를 와락 품안에 껴안았다.

엄마의 가슴은 뜻밖에도 따스하지 않았다. 홀쭉하게 꺼지고 왜소하고 랭랭했다. 특별한, 《위대한》데라고는 어디서도 찾아볼수 없는 그저 평범한 60대의 훌쩍 늙어버린 한 녀자였다. 언제라도 거리에 나가면 흔하게 만날수 있는 그런 할머니에 불과했다.

《그거 알아? 엄만 내 진정한 박사지도교수라는걸.》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도, 박사까지 됐는데도 난 아직도 어린애처럼 엄마랑 야자타입이 더 편하고 신난다.

《무슨 소리 하는거니? 엄마면 엄마지 엉뚱한 소릴…》

어머니는 소녀처럼 얼굴을 살짝 붉힌다. 안개처럼 남실거린다. 한없이 유연하고 소박하다 못해 시시하기까지 한, 하찮은 존재로 자꾸만 축소된다.

《그래. 엄만 엄마야.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야.》

이 녀자에게는 새끼를 거느린 어미면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법전 하나가 있다.

한미라법전!

본능적이고 동물적이기까지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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