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

8장 눈물 젖은 38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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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전황은 인민군 측으로부터 유엔군과 한국군 측에 유리하게 전환되었다. 그 결정적 계기는 유엔군 사령관인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었다. 맥아더는 극동군사령부 참모장 알몬드 소장을 상륙작전부대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9월 15일 미 10군단 예하의 미 1해병사단, 미 7보병사단, 한국군 1해병연대, 한국군 17연대를 주력부대로 하고 미 2특수공병연대, 73전투공병대대, 50항만건설 중대, 65병기탄약중대, A수륙양용중대, 96포병대로를 지원부대로 삼고 새벽만조시간을 이용하여 상륙작전을 성공시켰다.
작전 당시 인천과 서울 지역을 방어하던 인민군 병력은 거의 낙동강전선에 투입되다보니 월미도에는 226독립육전연대 소속 400여명과 918해안포연대 예하부대와 인천시가지방어에 배치된 9사단 87연대 병력 2000여 명 그리고 서울 지역의 5500명을 합쳐 1만 명도 채 되지 않았음으로 유엔군과 한국군은 쉽게 상륙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유엔군은 제공권과 제해권까지 장악하고 있어 인민군의 지원부대까지 유효하게 차단했다.
드디어 서울은 점령당한지 90일 만에 인민군의 수중으로부터 탈환되었다. 이리하여 낙동강방어선 전투에 투입된 인민군은 병참선이 차단되고 군수물자보급이 끊어지게 되어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이미 낙동강전투에 투입된 최초 인민군의 병력은 30%가량 감소되었으며 그 보충수단으로 북쪽에서는 인민군을 징집하고 남쪽에서는 의용군을 모집했지만 전투력은 하강될 수밖에 없었다. 인민군은 왜관 동쪽에 제2군단 예하 7개 사단(5, 12, 15, 8, 1, 13, 3사단) 5만 4천여 명과 왜관 남쪽에 1군단(10, 2, 4, 9, 7, 6사단) 4만 7천여 명, T-34탱크 100여대를 보유한 지원부대인 105전차사단과 16, 17전차연대를 투입했지만 18만 명에 달하는 병력과 600여 대의 탱크를 보유한 유엔군의 병력에 비하면 열세에 처해있었다. 제공, 제해권까지 유엔군이 장악한 상황에서, 그것도 방비가 아닌 공격을 해야 하는 인민군은 병력이나 화력 면에서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유엔군은 9월 16일부터 돌파작전을 감행하여 22일에는 낙동강방어선을 돌파했다. 마산지역에 투입되었던 인민군 6사단과 7사단은 부득이한 상황에서 9월 18일 밤부터 철수하기 시작했다. 남부저지선에 투입된 미 25사단은 한국군 수색중대를 앞세우고 9월 25일부터 반공격을 개시했다.

한종수가 산곡리마을 소식을 알게 된 것은 여동생 영화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지 이틀만이었다. 이틀 동안 그는 꼼짝 못하고 산속에 숨어있었다. 산열매 같은걸 따서 굶주림을 달래며 어서 유엔군이 밀고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이 다르게 포성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제발 좀 빨리 와 줘야 할 텐데 덕구, 덕재놈과 향란이 년이 멀리 도망치기 전에 말이다.
아침에 계곡으로 세수하러 내려온 종수는 우연히 지게를 메고 땔나무를 하러온 마을주민을 만났다.
“머시냐, 인민군은 폴쌔 달아나비렜제라우. 바닥빨갱이들도 도망쳤응께. 동생 덱꼬 여그 이라고 숭켜 있들 말고 어여 마슬로 내려가게라우.”
“빨갱이들이 증말 다 도망쳤어라우?”
“틸림없어라우. 남원시내엔 폴쌔 국군수색대가 입성혔다던디.”
“그래요. 그럼 어여 내려가야디. 진즉 알아사 쓰는 건디. 국민학꼬에 있던 북괴군 부상병들과 덕재 놈, 향란이년도 폴쌔 도망친거란 말이디요?”
“으매 그렇탕께로.”
나무꾼은 거듭되는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주었다. 그래도 종수는 경거망동할 수가 없었다. 좀 더 신중하게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주민이 제공한 정보를 믿을 수가 없었다. 덕구나 덕재 놈의 유인전술이나 음모궤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난 그로서는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직 원수도 갚지 못했는데 덕구, 덕재 손에 잡혀죽을 수는 없었다. 그와 여동생 영화까지 죽으면 종수네 집안에는 서울의 숙부네 집으로 공부하러간, 막내 동생 종학이와 (그마저 생사가 불명하다) 덕구를 따라 월북을 하겠다고 자진해 나선 둘째 동생 종철이 뿐이었다. 종철은 뜻이 다르고 길이 다르니 핏줄은 같아도 적이나 다름없었다.
하늘은 맑게 개고 숲 속에서는 뭇 새들이 귀청이 아프도록 요란스레 우짖고 있었다. 영화는 바위틈으로 돌돌 흘러내리는 계곡물에 종수가 금방 따온 산열매를 씻고 있었다. 그녀의 등에 업힌, 종수 아들 철수는 배가 고파 울던 나머지 지쳐서 잠이 들었다. 영화가 열매를 입으로 씹어서 먹여주었기에 망정이지 그 애는 진작 죽었을 것이다.
종수는 턱수염이 더부룩한 얼굴을 한동안 샘물에 비춰보다가 허리를 폈다.
“영화야. 암래도 오라비가 함번 마슬에 내려가 보고 와사것다. 넌 철수를 델꼬 오라비가 올 때까장 깐딱 말고 숭겨 있거라. 해이나 어둡기 아래 돌아 오들 않으면 너 혼자서락도 이곳을 떠나 남쪽으로 가거라.”
“안 돼요. 오빤 위험해요. 그러잖아도 그 사람들은 지서장인 오빠를 잡으려고 하고 있어요.”
“난 폴쌔 죽은 사람이잖여. 살아났닥꼬는 생각도 못할 거야.”
“얼굴만 보면 알건데요 뭐. 차라리 내가 다녀올게요. 난 그래도 인민군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간호해주었으니 잡혀도 죽이지는 않을 거예요.”
영화는 아기를 등에서 내리워 종수의 품에 안겨주었다.
“정말 괜찮을 겨?”
“괜찮다니까 그래. 금방 돌아올게.”
영화는 골짜기를 타고 산곡리마을 쪽으로 내려갔다. 우거진 숲이 금시 그녀를 삼켜버렸다.
영화는 약속대로 점심때가 되기도 전에 마을에서 돌아왔다. 급한 걸음을 다녀와 얼굴에 땀까지 흘렀다.
“오빠, 그 사람 말이 틀림없어요. 마을엔 인민군이나 인민위원회간부들이 하나도 없어요. 큰할아버지와 오빠를 학살한 그날 밤에 모두 도망쳤대요.”
“앙기 덕구캉, 덕재캉 몬타 도망을 쳤뿌렛당 말인가? 마슬 빨갱이들이!”
“네.”
“제기랄 것! 내가 함발 늦었구나. 지 방귀에 놀라 산속에 숭겨 있다봉께…… 어서 내려가자.”
벌써 이틀이나 지나갔다. 그 시간이면 얼마든지 멀리 도망쳤을 것이다. 눈 뻔히 뜨고 그놈들을 놓치다니!“
“그러나 덕재네 식구는 그대로 집에 있대요.”
“그랴. 다행인 겨.”
“그 사람들을 어떻게 할 거예요? 죽일 거예요.”
“빨갱이들과 내통했거나 북괴군을 도와준 통비분자, 부역자들도 처단했간디. 비메니 빨갱이가족을 용서할 수 없제.”
“단지 빨갱이가족이라는 이유로 죽이기까지 한다는 건 너무하잖아요. 제발 이젠 좀 그만하세요. 이렇게 서로 죽이기를 한다면 복수는 끝이 없을 거예요.”
“복수가 앙기야. 악에 대헌 당연한 징벌이디.”
“그 쪽에서는 또 우리를 반동분자라고 하며 악의 세력으로 규명하고 있어요.”
“암튼 넌 잠자코 있어. 북괴군 부상병을 치료해준 너도 통비분자, 빨갱이 죄명을 벗들 못헐 처지란 걸 폴쌔 잊었냐? 오라빙께 봐줘서 그라지.”
산곡리마을은 며칠 전과는 달리 천하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인민군 통치시기엔 그림자도 볼 수 없이 자취를 감추었던 우익단체성원들인 대한청년단원, 호국단원, 교사들과 경찰, 지방 유지들이 나타나 거리를 휩쓸고 다녔다. 마을에 걸렸던 인공기 대신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국민학교에서는 《김일성장군의 노래》나 《빨치산의 노래》대신 《애국가》노랫소리가 울려나왔다.
동네 사람들은 종수를 보자 모두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가 인민군과 마을 노동당원들에 의해 《인민의 심판》을 받고 처단된 줄로만 알고 있던 주민들은 그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종수는 재빨리 수하경찰 한 사람과 청년단원 네 사람을 데리고 마을을 샅샅이 뒤지며 빨갱이 가족, 의용군 가족, 통비분자, 인민정권협력자, 부역자들을 색출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들이 은폐하거나 도망치기 전에 손을 써야 했다. 후퇴하는 인민군을 집에 재웠거나 음식을 제공한 사람은 물론 인민위원회의 동원에 응해 교량이나 도로수리부역에 참가한 촌민까지 빠짐없이 잡아들이라고 명령했다.
종수는 직접 사람들을 데리고 덕재네 집부터 달려갔다.
“오빠, 제발 살인극을 그만해요. 그들은 죄가 없어요.”
영화가 앞을 막아 나서며 간청했지만 종수는 동생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쩌리 비켜! 그리구 사램들은 니도 용서하들 않을 것잉께 철수를 업고 싸게 산곡리를 떠나가 뿌리라. 그 길만이 니가 살길이락 카이.”
덕재네 집에서는 늦은 아침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하루아침에 천하가 뒤바뀌자 빨갱이가족이 된 덕재네는 어느 때 어떤 보복이 들이닥칠지 몰라 일가친척들이 최복구네 집에 모여 공포에 우들우들 떨고 있었다. 그날 물길을 알아보러 떠난 덕구와 덕재 일행을 기다리다 못해 날이 밝자 다시 귀가하긴 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눈길에서 노골적인 적의를 발견하자 집안이 뒤숭숭해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 덕구의 권고를 듣고 그냥 물을 건너 북상했던 걸 하는 후회의 탄식까지 터져 나왔다. 최복구네 집에는 그의 마누라와 두 딸, 사위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어르신, 맏아들 덕재와 조카 덕구는 어디로 빼돌려버린거랍디여?”
평소 늘 얼굴에 웃음을 짓고 여유를 부리던 종수도 요즘 들어 성미가 그자신도 몰라보게 거칠고 난폭해졌다. 생매장을 당해 죽었다가 살아난 다음부터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렸음을 그 자신도 가끔 느끼곤 했다. 전쟁이 던져준 극도의 충격과 자극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이다. 그래서 교양이나 예의 같은 건 많이 증발되었고 대신 단도직입적이고 악의적인 성분이 증폭되었다.
“거시그 즈그들은 몬타 북쪽으로 휘퇴했당께.”
“어르신은 머땜시 항께 도망가들 않고 여그 남았습디여?”
“조나 구지나 내 고향이 산곡마슬인디 개긴 어일 개긴당가.”
최복구의 태도는 의연하고 태연했다. 죽음까지도 각오한, 모든 걸 체념한 사람의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구석에 앉아 떨고 있는 최복구의 마누라와 두 딸과 사위의 기색은 다가오는 불행을 예감한 듯 불안과 공포에 질려 사색이 되어있었다.
“암래도 즈그들캉 항께 쬐깨 가볼데가 있어라우. 머하구들 섰어. 싸게 끌어내!”
종수는 뒤를 따라온 사람들에게 낮으나 분명하게 지시했다. 그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나 모두 손에 M1소총 한 자루씩 들고 있었다.
반나절이나 걸려 마을을 샅샅이 뒤지며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아는 사람까지 빠뜨리지 않고 연행했다. 국민학교마당에 집결한 연행자는 70명도 넘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죄다 총살할 수는 없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앞으로 불러내어 심문하는 것으로 죄의 경중을 가르기 시작했다. 맨 먼저 호명당한 사람은 최복구였다. 최복구는 40대의 중년인데 제 이름자도 쓸 줄 모르는 무식한 농군이었다. 반평생 그의 유일한 재간은 농사일이었다. 고지식해서 누구와 농담 한마디, 싫은 소리 한마디 안 하고 자기 할일만 부지런히 해왔다.
“아들이 노동당에 입당하고 이 인민위원장이 되었간디 지비는 머땜시 막들 않았지라?”
“고마 자식도 머리가 넘으면 즈가베 말을 듣들 않는 법인디 아벤들 어떡하라는 겨.”
“그래두 압씨가 돼가지고 자식이 나쁜 질을 가는디 막았어사 쓰디.”
“지가 시킨 건 아닌 겨. 즈그찌리 헌 일이제. 거시기 노동당이 먼디 인민위원장이 먼디 즈그들이 알간디.”
최복구는 태연하게 곰방대만 뻑뻑 빨아댔다.
“노동당이 머꼬 인민위원장이 머지라 빨갱이디. 지비는 빨갱이도 모르당가?”
“즈그들 눈깔엔 몬타 같은 조선말을 허는 조선 사램으로만 보이드랑께.”
“그렁께 지비도 빨갱이 물이 든기 틀림없당께.”`
최복구네 가족전부가 종수의 지시에 의해 왼쪽으로 격리되었다. 식구들은 자기네가 왜 사람들 속에서 딴 곳으로 격리되는지 모른 채 어리둥절한 표정들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으로 불려나온 사람은 허리가 구부정한 늙은 내외간이었다. 머리카락은 물론 눈썹과 수염까지 하얀 할아버지는 땅바닥을 기어 다니듯 겨우 걸음을 옮기는 할머니를 부축하여 앞으로 걸어 나왔다.
“듣장께 하납씨 내외간은 북괴군 놈들에게 양식을 제공했다던디 그게 사실입디여? 하납씬 그놈들이 빨갱인 줄을 몰랐습디여?”
“머라꼬예? 귓구머이 잘 들리들 않아서 머라꼬 허는디 통 들리들 않는 겨.”
노인은 종수의 턱밑으로 귀를 바싹 들이댔다. 퀴퀴한 냄새가 확 풍겨 종수는 양미간을 찌푸리며 손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하납씬 도망치는 북괴군에게 묵을 걸 줬담시로요. 빨갱이들을 도봐준 죄가 얼매나 큰디 몰랍습디여?”
“으매, 거시기 그 일 땜시로 이 늙은일 잡아 왔능 겨? 총구녁 아케서 눈들 묵을 걸 주들 않을 수 있지라. 지비도 그 경우에 맞딱드리먼 나 맹키로 혔을 겨!”
“오른쪽으로 가서 기다리이다.”
종수는 귀찮아졌다. 숱한 사람들을 잡아들이긴 했지만 정말 엄단할 만큼 죄질이 무거운 사람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40대의 중년아낙이 끌려나왔다.
“아줌닌 빨갱이들을 도봐 대릴 곤치러 나갔담시로? 야학꼰디 먼디에 나가서 먼 장군의 노래도 배우고. 떡을 맹길어가꼬 북괴군야전병원에 위문도 갔담시로?”
“지만 그란 게 앙기그먼유. 온 마슬 에펜네들이 몬타 그란 겨. 반동으로 몰려 죽기보담 살질을 찾아사 쓰것응께로.”
아낙네는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는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험악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랴. 그 배웠다는 노래를 어이 함번 불러보구랴.”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국. 이 노래 말인 겨. 마슬 에펜네들이 몬타 안당께로. 코흘리개 머시마, 기이나들까장 안당께로. 그라고 산곡리에 삼시로 질이나 대리 곤치러 나가들 않은 사램이 어이 있는 겨. 함번 내 아케 나서 보랑께로.”
아낙이 돌아서서 손가락으로 사람들을 가리켰지만 한 명도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쩌기 덕재즈가베 내외간을 냅두고는 하마 몬타 나갔을 거라우. 지하고 만 묻들 말랑께요.”
“아줌니는 왼쪽에 가 서이소.”
오른쪽에는 대체로 인민위원회간부가족과 노동당가족, 의용군가족들을 분리해냈다. 그들도 당사자는 죄다 도망가고 가족들만 남았을 뿐이어서 저마다 억울하다고 항변이 분분했다.
“집에서 누가 즈그들더러 노동당에 들락꼬 시키기락도 했는 겨. 식구들도 모르게 은근슬쩍 입당혀 쌌는디.”
“나이만 되면 델고 가는 의용군이 아닌 겨. 그게 우리 가족들학꼬 먼 상관이 있습디여?”
그러나 종수는 부역자나 협력자들은 몰라도 빨갱이 직계가족까지 용서할 수는 없었다.
죄의 경중에 따른 심사분류가 끝나자 종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단을 내릴 때가 온 것이다. 망설임도 없지 않았지만 덕구와 덕재의 만행을 생각하며 모진 마음을 가다듬었다. 핏 값은 피로 받아내야 한다.
“오른쪽에 선 사람들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집으로 돌아 가이소.”
그것은 종수가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자비였다. 여동생 영화의 경우를 봐서 그만큼 관용을 베푼 것이었다.
그렇게 최종 선별된 사람들도 20여 명이 넘었다. 더 이상의 용서는 있을 수 없었다.
“나머지 놈들은 몬타 비국민잉께 신성한 대한민국정부를 반대하여 북괴를 도봐준 불순분자들잉께 처단을 받아 당연하다. 이놈들을 몬타 마슬 밖으로 끌어내어 총살할 것을 대한민국의 한 경찰관으로서 명령한다.”
그러자 갑자기 군중들 속에서 울음소리와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울부짖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유독 최복구만은 한마디 말도 없이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고개를 거연히 쳐들고 있었다. 사실 종수는 최복구가 살려달라고 애걸한다면 구해주고도 싶었다. 그는 인민군이 들어와도 그들을 도운 적이 없고 군중집회나 부역에도 한 번 참가하지 않았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아들이 인민위원장이 아니었다면 그는 진작 반동으로 몰려 처단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분명 빨갱이가족의 연장자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억울하다는 하소연 한마디 하지 않았다.
“지발 목숨만 살려 주이소. 즈그들이 머신 죄를 지따꼬 죽인답디여.”
“즈그들은 집 구석에 들어박혀 농사만 지었는디 머땜시 죽인닥카노. 지발 이래싸치 말고 쬐깨 함번만 용서해줌세.”
덕재 누이와 매부들이 종수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울고불고 사정을 했다. 그러나 종수는 사실은 덕구와 덕재를 향한 원한의 분풀이를 그들에게 하려고 앞장서서 불순분자들을 색출해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살려주다니? 어림도 없는 소리다. 덕구, 덕재란 놈은 죄 없는 우리 식구들을 죄다 살해하지 않았는가?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온 가족이 단죄 받는 건 먼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이 나라의 전통이다. 화근의 뿌리를 자르기 위해선 그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
총칼로 군중을 밀어낸 다음 불순분자들을 끌고 마을 밖으로 나갔다. 마을 뒤편에는 가을을 끝낸 논이 있었다. 사형수들을 논바닥 가운데 일렬횡대로 등을 돌려세웠다. 등을 돌리고선 사형수들은 일반 주민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굶주리고 수척한, 남루한 옷차림의 백성들이었다. 그 모습만으로는 그들이 대한민국정부를 반대한 빨갱이들이라는 걸 전혀 식별할 수 없었다. 평소 산곡리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하면서 밭을 갈고 농사를 짓던 평범한 농부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무엇 때문에 자기가 살던 고향과 고향사람들과 대한민국을 배반하고 북쪽체제를 지지하게 되었을까? 사실 그들 전체가 북쪽제도를 지지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 가족 중의 일부가 의용군에 참가했고 노동당에 입당했고 인민군을 도와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들을 전부 죽여 버려야 하는가? 그것은 빨갱이들이 대한민국경찰이나 군인, 우익단체장들과 그 가족을 살해한데 대한 응징일 뿐이다.
“사격!”
명령을 내리는 순간 종수는 두 눈을 감아버렸다. 사형수들이 죽어가는 모습에서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낄까봐 두려워서였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비명을 지르며 거꾸러지는 주민들이 아니라 서쪽 하늘을 질퍽한 핏빛으로 물들인 저녁노을이었다. 점점의 불꽃으로 타오르기 시작한 지리산자락의 단풍이었다. 반쯤 수확된 가을의 누런 논배미들이었다. 그 뒤의 화면은 덕구와 덕재로 바뀌었다.
“개자식! 네놈이 감히 우리 식구들을 죽여! 어디 두고 보자!”
이를 가는 그들의 모습이 두려웠다. 몸서리가 쳤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저만큼 앞에 서있던 빨갱이들은 논바닥에 이리저리 너부러져 있었다. 주위에는 붉은 저녁노을이 핏물처럼 흐르고 있을 뿐 무시무시한 정적에 깔려있었다.
“숨이 끊어 졌나 한 사람, 한 사람 확인해봐. 아주 죽들 않은 자는 확실히 죽여 비려!”
주위사람들에게 간단하게 지령을 내린 다음 돌아서서 마을로 내려왔다.
“시신들은 어떻게 할까요?”
“기양 내비려 둬.”
종수는 며칠 전 폭우가 쏟아지던 날 밤 마을 빨갱이들에 의해 생매장을 당하던 비참한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에 비하면 자신의 결단이 조금도 잔인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동네에는 연 며칠 개들이 사람고깃덩이와 뼈를 물고 다녔다. 주민들은 너무도 끔찍하여 진저리를 쳤지만 연루될까 두려워 누구도 시체를 거두어 땅에 묻기를 꺼려했다.
산골짜기에 매장되었던 『반동분자』들의 시신은 식구들에 의해 발굴되고 성대하게 장례식들을 거행했다. 종수도 큰할아버지, 할머니와 아내 그리고 고모네 식구들의 시신을 파내어 지리산기슭에 장례를 지냈다.
“하납씨, 함씨, 걱정 말고 맘피게 눈을 감으이다. 이 손자가 반드시 원수를 갚아 드릴팅께. 그라고 여보. 지비도 이 남편을 믿고 맘 피게 잠드소.”
무덤 앞에서 종수는 재삼 복수를 다짐했다.
며칠 뒤 미군부대 선발대인 한국군 수색대가 남원으로 들어왔고 뒤를 이어 28일에는 마산지역에서 인민군 6사단과 대치하고 공방전을 벌이던 미 25사단 35연대 주력부대가 남원으로 진입했다.
산곡리 마을에도 미군이 주둔했다. 그날 오후에 갑자기 마을노인 한분이 황급히 종수에게로 달려와 구원을 청했다.
“지서장. 미군장교가 지 손녀딸을 델꼬 병영으로 들어갔는디 이 일을 어쩜 좋습디여?”
“노인장의 손녀딸은 머달라고 병영으로 델고 갔답디여?”
“머시냐 끼고 잘락꼬 델꼬 갔당껴.”
“머라꼬예? 백주에 어찌 그런 지꺼릴!”
“미군은 지집만 보먼 델꼬 잘락칸다 하들 않습디여.”
노인은 안타까운 나머지 발을 동동 굴렀다.
“말이 그라제 군대가 어떻게 그락헐 시가 있습디여.”
종수는 부랴부랴 노인을 따라 미군부대가 주둔한 국민학교 언덕으로 달려갔다. 인민군대가 왔을 때도 마을부녀자들을 희롱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우방이라는 미군이 어찌 이런 추태를 벌일 수 있단 말인가!
학교정문 앞에 이르자 두 명의 미군 보초병이 사정없이 그의 가슴에 총부리를 들이대며 진입을 차단했다.
“당신들 부대는 군법도 없는가? 장교가 함부로 양민부녀자를 겁탈해도 군법으로 처벌하지 않는가?”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지만 한국말을 모르는 미군 보초병은 시끄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무작정 대문 밖으로 떠밀어냈다.
“느그놈들이 날 몰아낸닥꼬 내가 주저 않을 것 같으노. 나 이래 뵈두 당당한 대한민국경찰관이여. 여그서 느그 상관 놈들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거야!”
종수는 뱃심을 부리며 대문 앞에 주저앉았다. 잎담배를 굵직하게 말아 불을 붙여 물었다. 미군 보초병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껌을 질근질근 씹으며 종수를 흘금흘금 건너다보았다.
미군장교는 대위계급장을 달았는데 무슨 장한 노릇이라도 한 듯 의기양양해서 훌쩍훌쩍 울고 있는 노인의 손녀를 문밖까지 바래주었다. 대문을 나가는 그녀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 주며 히죽이 웃기까지 했다.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미군장교의 그런 거만한 행동이 종수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
“개새끼! 무릎을 꿇고 빌어도 시원찮을 건디 웃고 있어! 내 네놈을!”
종수는 저도 모르게 허리춤에서 권총을 쑥 뽑아들었다. 정말이지 그의 성격은 이번 전쟁으로 인하여 스스로도 놀랄 만큼 거칠고 난폭해지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는 거듭되는 분노를 삭일 수가 없었다. 전쟁은 사람의 성격마저 변하게 했다.
뒤늦게야 소식을 듣고 달려온 한국군 수색대의 소위가 다급히 그의 손목을 잡으며 일촉즉발의 사고를 제지했다.
“경찰관, 왜 이래요? 저분은 미군장교요. 우리나라를 도와주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우방군대 장교란 말입니다. 죽고 싶어요!”
“도와주러 왔다는 놈들이 양민부녀자들이나 우롱합니까.”
“전쟁이 아닙니까. 나라가 망하는데 고만한 희생이 무슨 대숩니까. 저들은 해방자입니다.”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종수의 가슴에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해방자라는 말도 그랬다. 정말이지 미군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은 진작 인민군의 천하가 되고 말았을 것이 아닌가. 그러면 종수도 덕구나 덕재의 손아귀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인민군과 빨갱이들은 북으로 도망치지도 않았을 것이며 종수와 같은 지주와 경찰들은 청산, 숙청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결국 종수를 구해준건 우연이 아니라 미군의 도움 때문이었다. 미군이야말로 종수를 구해준 은인이었다.
종수는 슬그머니 권총을 내리우고 발길을 돌렸다. 다행히도 미군장교는 그의 방종과 무례를 탓하지 않고 말없이 병영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미군에 대한 종수의 종래의 호감에 먹칠을 하는 역작용을 놀았다. 미군의 정의성은 인정하더라도 도덕성은 비난받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마치도 소련군이 북한에 들어와 행한 행위와 너무나도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이 모든 게 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약하기 때문에 대국의 수모를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왜 대한민국은 미군이나 유엔군의 도움이 아니면 북한군을 이길 수 없단 말인가. 그것이 한스러웠다.
종수는 갑자기 경찰관이라는 신분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산곡리에 남아서 그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국군에 입대하여 북으로 도망친 덕구와 덕재 그리고 향란을 추격해 손수 체포하여 복수하고 싶은 일념뿐이었다.
처음에는 남원으로 올라가 미군부대소속의 한국군 수색중대에 입대할까도 생각했다. 미군 부대와 협동작전을 하고 있는 국군 1사단에 입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 미군부대가 싫어졌다. 강력한 거부감 때문에 끝내는 고향을 떠나 멀리 다른 국군부대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했다.
중부전선으로 북진하던 6사단에는 사촌형님 종국이가 복무하고 있었다. 중위인지 대위인지 무슨 장교라고 들었다. 그를 통한다면 6사단입대가 가능할 것 같았다. 6사단은 이미 25일에 함창을 점령하고 27일에는 문경을 점령하였다고 하니 오늘쯤은 충주나 원주까지 진격하여 전과를 확대하고 있을 것이다.
고향을 떠난다고 하지만 누구하고 작별할 사람조차 없었다. 여동생 영화마저 그날 오빠의 당부대로 조카 철수를 업고 산곡리를 떠나 어디론가 피신하고 없었다. 홀로 남원으로 올라와 북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엔 태반이 군인들이었다. 경찰관 증명을 제시하고서야 겨우 승차가 허락되었다.
충주에서부터는 북상하는 군용트럭에 사정해서 올라탔다. 포탄을 실은 트럭 위에 앉아 원주로 달렸다. 기온이 낮은 북쪽으로 이동할수록 산들은 어느새 단풍이 들어 붉은 빛깔이 완연했다. 치악산이 가까워지자 고산지대의 날씨는 유달리 쌀쌀한 느낌이 들었다. 이놈들은 도대체 어디쯤 도망갔을까? 미군과 국군의 추격과 포위망을 피해 산속으로만 걸어갔을 테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 같기도 했다. 아니, 이젠 그들이 떠난 지도 벌써 열흘이나 된다. 그 동안이면 걸어서도 38선에 거의 이르렀을 것이다. 어쩌면 38선을 넘어갔는지도 모른다. 종수는 하루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마음이 초조해졌다.
원주에 도착해서야 사촌형 종국이를 만날 수 있었다. 원주를 점령한 사단주력은 잠시 그곳에서 휴식하고 있었다. 사실 인민군은 도망가기에 바빴음으로 추격하는 국군부대는 별 저항 없이 무난히 북진하고 있었다. 인민군이 버리고 철퇴한 도시들은 전투도 없이 그냥 입성만 하는 것으로 점령이 가능했다. 그래서 국군부대의 북진속도는 예상외로 빨랐다. 물론 소규모의 저항도 있었지만 그런 전투들은 국군의 진격속도를 늦출 만큼 효과적인 저지는 아니었다. 국군의 북진은 전투가 아닌 단순한 군사이동이나 다름없는 강행군이었다.
“네가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냐? 경찰관이라는 사람이 서를 비우고 군부대까지 말이다.”
사촌형 종국은 반가움보다 의문이 더 큰 모양이다. 어깨에 중위계급장을 달고 있는 그는 제법 어엿해보였다. 이젠 전라도방언도 쓰지 않아 시골티도 말끔히 벗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닌 무사하시냐? 어머니와 동생들도?”
종국은 온 집 식구가 학살된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긴 전쟁 중이라 서신교환도 불가능했음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은 이제 전쟁이 끝나야 알게 될 것이다. 종수는 그 참혹한 소식을, 사촌형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을 불행한 비보를 전해주자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 말이 없어? 무슨 불상사라도 생긴 거니?”
“그게 저…… 긍께 말이제……”
“우물거리지 말고 어서 말해보라니까.”
“덕재란 놈 알제?”
“알지. 최복구네 맏아들 아냐. 그 놈이 도대체 어쨌다는 거냐?”
“덕재 사촌동생 덕구란 놈도 알구? 머시냐 전에 만주서 우리 집의 소작농을 살던 최복만의 아들 말이야.”
“그래 안다. 네가 늘 형한테 말해주었잖아.”
“그놈들이 큰할아버지와 큰할머니 그라고 성네 식구들과 내 아내와 누이를……”
“도대체 어찌 됐다는 거냐? 속 시원히 말해 보거라.”
“그놈들이 구덩이 속에 생매장해 죽였당께.”
“뭐라고? 아니, 너 지금 뭐라고 했니? 생매장을 했다고!”
“그랴. 나도 함께 생매장혔다가 요행 영화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어.”
“그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생매장 했다는 거니?”
“빨갱이새끼들이 죄가 있고 없고를 가리나. 큰할아버진 이승만 괴뢰정부의 이장이고 성은 국군이고 난 반동경찰잉께 그 가족이락꼬 죽인거제.”
“저런 금수 같은 놈들을!! 그렇다고 생매장을 하다니!”
“덕재랑 본바닥 빨갱이들이 한 지껄이락꼬 허디만 덕구 놈이랑도 그 자리에 있었당께. 그놈은 소작농인 주제에 중위계급장까장 받고 인민군 대대장까장 지내고 있었어.”
“그래 그놈들은 다 어떻게 했냐?”
“북으로 도망쳤지라.”
“덕재란 놈도?”
“응. 그러나 그놈의 아베캉 식구들은 미처 도망하들 못했는디 내가 몬타 잡아내다가 죽여비렜어라.”
“뭐야? 그렇게 해도 되는 거니?”
“즈그놈들이 우리를 반동으로 몰아 죽였응께 우리도 핏 값을 혀사 쓰지.”
“그렇기도 하다만……”
무언가가 석연하지 못한 듯 종국은 양미간을 찌푸린다. 그러나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전쟁인 만큼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쟁마당에서 적아쌍방의 군인들만 서로 살상을 감행하고 있는 게 아니라 민간에서도 살상이 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고 조금은 놀란 표정이었다. 종국의 걱정은 금시 가족의 불행에 대한 슬픔으로 변했다. 그러나 혹독한 전쟁은 사람들에게 친인의 죽음을 슬퍼할 시간적 여유마저 주지 않았다.
아무튼 종수는 사촌형 종국의 도움으로 국군 6사단 7연대에 파격적으로 입대하게 되었다. 워낙 경찰관 출신이었음으로 신병훈련도 거치지 않고 직접 최전선 전투부대에 투입되었다. 종수는 비로소 덕구와 덕재 그리고 향란을 추격하여 원수를 갚게 되었다는 안도감을 가지게 되었다. 어서 빨리 38선을 넘어 북진하기를 고대했다.
6사단은 종수의 그런 조급한 심정을 이해하기라도 하듯 계속 북진을 하여 10월 2일에는 춘천을 점령했다. 이제 38선은 지척에 놓이게 되었다. 덕구, 덕재 이놈들! 향란이 이년! 네놈들이 도망치면 어디로 도망쳐. 네놈들의 끝장은 눈앞에 다가왔다! 난 기어이 네놈들을 내 손으로 잡아 아버지와 가족들과 친척들의 원수를 갚고야 말테다!
부대가 춘천에서 며칠 휴식하는 동안 종수는 거의 매일같이 사촌형을 찾아가 언제쯤이면 38선을 돌파하여 북진하느냐고 물었다.
“조만간일 거야. 대통령께서 북진을 강력히 주장하고 계시니까 우리 국군만이라도 38선을 돌파하여 북진할 것이니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봐.”
종수에게는 하루가 10년 세월처럼 지루하게 느껴졌다. 자꾸만 그사이 덕구와 덕재 그리고 향란이가 추격이 불가능한 아주 먼 곳으로 영영 도망쳐버리고 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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