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갑의 횡설수설

[서울=동북아신문]‘穷哆嗦’란 말이 있다. 북경 음은 ‘츙둬숴’이고 동북 음은 ‘츙떠서’다. ‘없는 자가 너덜대다’이다. 우리겨레는 한족(漢族)에 비해 너덜대기를 좋아하며 그러므로 돈이 마를 수밖에 없다.

필자의 고향은 조선족1/4, 한족3/4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조선족은 논농사, 한족은 밭농사, 그 소출은 논은 무당(200평) 500kg, 밭은 무당 200~300kg이다. 벼는 kg당 0.3원(元)이고 밭곡식은 kg당 평균 0.16원이다(1980년대). 조선족이 한족보다 퍽 잘 살아야 맞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족은 벽돌기와집에서 살고 조선족은 오막살이 초가집에서 산다. 무슨 군일(결혼 등)이 생기면 한족은 100~500원씩 척척 내는데 조선족은 10원이 없어서 벌벌 떤다. 조선족은 평시에 너덜대며 다 써버렸고 한족은 웬만한 일에는 너덜대지 않다가 요긴한 대목에만 쓴다. 조선족은 아침, 점심, 저녁에 다 술이며 결혼, 생일 등 잔치도 많고 구경거리도 많으며 놀이도 많고 내는 턱도 많다.

마을에 한족 양 과부가 사는데 찌들게 가난했다. 그런데 아들이 장가갈 때 삼간 벽돌기와집을 짓지 않겠는가! “어디서 돈 생겼나?” 과부 왈: “돈이 80전 있으면 20전 보태 지갑으로부터 궤안으로 옮겨 넣고, 8원이 생기면 2원 보태 궤안으로부터 저축소로 가져가기를 25년간 하였더니 삼간 벽돌기와집이 생기더라.”

북경인은 대부분 각종 잔치를 안한다. 이따금 이런 일을 목격한다. 직장 동료가 각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시탕, 시옌(喜糖, 喜煙)!”하며 사탕 열 아문 알과 담배 한 갑 놓고 나간다. “언제 결혼했나?” “서너 달 됐어.” “축하!” 이것으로 끝. 단 신랑, 신부 불알친구 열 아문, 두 집 사돈 열 아문이 모여 밥 한 끼 먹으며 그때 내는 부조는 보통 2천~1만 원이다.

필자는 북경의 직장에서 25년 근무하며 같은 편집실 동료의 결혼 두 차례에 선물용으로 52원 쓴 것이 전부다. 만약 연길에 살았다면 월당 군일에 두 번 참가했어도 25년에 600번, 책 몇 권 쓸 시간이 낭비되었을 것이며, 한 번에 200원씩 부조했어도 12만 원, 또한 술 때문에 간병에 걸려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인도 너덜대기를 좋아하기는 마찬가지. 필자가 사는 인천 모 3거리에 며칠에 한번씩 ‘☓☓축제’라는 현수막이 바뀐다. 한국에 대형 축제가 1년에 1,200여 번이라고 한다. 인구가 한국과 비슷한 중국 요녕성은 대형축제가 1년에 1백번도 되나마나한데 말이다. 축제 한 번에 1~5억 원을 날린다. 축제에 몇 번 가 봤는데 너덜댈 뿐 별 효과가 없는 듯.

혹자는 말한다: ‘사람이 살며 너덜댈 재미마저 없으면 무슨 멋인가?’ 필자도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한족 속에 끼워 사니 ‘너덜댈’ 기회가 적어 단조롭다. 그러나 최근 생각이 바뀌었다. 필자의 한족 동료들이 은퇴한 후에 부부동반으로 ‘작년은 유럽이다, 금년은 구 쏘련이다, 명년은 호주다, 후년은 미국·캐나다이다’라고 관광을 하며 유람기도 출판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족들은 고향나들이 한번 하려고 해도 경제력이 모자란다.

이제는 우리 겨레도 생활 패턴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에는 모여서 술 몇 잔, 노래 몇 수, 춤 몇 번의 식으로 ‘너덜대’는 삶을 사는 것도 괜찮았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 수준을 좀 더 고상하고 뜻 깊은 데로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즉 재테크와 취미추구의 패턴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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