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도 칼럼

[국적회복자 박병도선생의 다문화에 대한 인식전환 관련 칼럼을 싣는다. 독자 여러분의 토론을 기대한다. 편집자주]

 나는 동포 1세라는 명예를 두 어깨에 걸머지고 영예로운 감정을 억누르며 당당하게 꿈속에서도 그리던 나의 조국을 찾아왔다. 한반도 이 나라 산천은 아름답고 풍요로워 우리를 현혹한다. 여기는 우리의 조상들이 살아왔고 그들의 뼈가 묻혀있고 영혼이 감도는 곳이라 우리는 더더욱 이 땅을 숭배하고 사랑한다.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이 땅 이 나라의 주인이 되었으니 얼마나 영광일까?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여전히 “이방인”이다.

우리(중국 조선족)가 다문화?

다문화! 우리에게는 생숙하지 않다. 중국은 55개 민족이 살고 있는 다민족 다문화의 나라이다. 그중 우리는 소수민족-조선족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6~70년을 살아왔으니 우리는 도리어 단일민족, 한겨레, 동포애, 이런 조국이 무엇보다 그리웠다. 하지만 다문화 80만, 100만 시대를 맞으면서 우리는 도리어 난감하고 황당무계한 것들을 많이 느끼게 됐다.

다문화 100만 기실은 “진짜” 외국인은 절반도 안 된다. 그 이상은 모두 우리 중국조선족이다. 그런데 왜! 우리 조선족이 다문화지?

중국의 조선족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기 전만 하여도 대부분은 조선사람(朝鮮人)이라고 불렀다. 공식 소수민족―조선족이라고 호칭 한 것은 1952년 연변조선민족자치구 설립 하면서 부터이다.

만주땅에 조선사람은 부락을 만들어 집거하면서부터 학교를 세웠고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그 후 곳곳에 중학교가 일어섰고 1950년에는 연변대학 등 대학도 세워졌다. 이렇게 민족교육은 꽃이 활짝 필 지경이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풍속습관 마저 한국보다도 더 한국의 것을 지켜왔다. 상조문화, 결혼문화, 음식문화, 노래와 춤, 성격 흥미, 생활방식 그 어느 방면의 문화를 말하여도 옛 조선식 그대로 지켜왔고 발전해왔다. 그런대 이런 중국조선족을 “이민족” 다문화로 분류하니 7~80이 된 우리 1세대들이 어찌 그것을 그리 쉽게 접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우리 국적회복자, 혹은 중국조선족을 다문화로 분류하는 것을 극력 반대하였고 이런 대접에 섭섭함을 금치 못했다.

2010년 나는 중국동포정책에 관한 세미나에 여러 번 참석 하였는데 이런 불만을 표출하였고 우리 국적회복자들, 나아가 중국조선족을 다문화가 아닌 진짜 한(韓)민족 동족으로 분류해 줄 것을 역설하였다. 그뿐 아니라 우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단 돈 한 푼 없고 다문화에 지원하는 나라 예산이 몇 천 억 원(2011년)이 된다. 그렇다 하여도 나는 그 돈이 결코 탐나지 않았고 무관심 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2010년 초 수원 귀한동포단체의 등록을 위하여 경기도청을 찾았는데, 그때 책임자가 다문화과로 안내하였다. 또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다문화에 관한 회의에도 진짜 외국인은 볼 수 없고, 다수 앉아 있는 사람들은 “영등포 대림동 시냇가 경로당”의 중국에서 오신 국적회복자 노인들이었다.

2012년 4월30일 행정안전부 보도 자료에도 외국인 밀집지역 정밀 실태조사에서 중국조선족을 “중국계 한국인”으로 분류한다. 서울 구로구 국적회복자 노인들의 경로당은 “다문화 경로당”이 라고 호칭한다.

안산은 우리 1세대 국적회복자가 가장 많이 집거하고 있는 한곳으로 외국인 5만 명중 우리 중국조선족이 절반 이상 집중되어있는 고장이다. 정부는 이곳을 다문화 특수구역으로 확정하고 3층 1,800여㎡의 외국인 주민 센터 건물까지 세웠다. 그리고 외국인을 위한 보건소도 입주하여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다문화라고 하는 중국조선족 우리를 위한 예산으로 이 건물을 세웠지만, 정작 이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은 외국인 중 절반이 안 되는 소수의 사람들이다. 즉 다문화의 절반이 넘는 우리 중국조선족은 그 이용할 권리를 스스로가 포기하고 있고, 또 사실상 지자체에서도 우리를 배제하고 있다.

1세대들의 한국생활 10여년을 지나면서 우리는 조국-한국에 대하여 지성어린 충정으로, 소수민족으로 살아온 우리를 친자식이나 친형제처럼 한 가족으로 여길 것을 바랐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중국계’라는 고깔모자를 쓰고 다문화정책의 혜택들 받지 못하고 있다.

이쯤 되어서 우리는 진정 냉철하게 현실을 판단하고 우리들의 2세, 3세, 그리고 자손들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각성한다. 옳지, 우리는 다문화다! 우리는 당당하게 다문화의 1원으로 나서서 다문화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요청하고, 받아들이고, 향수하여야 한다. 우리가 왜! 바보멍청이같이 받아도 주지 않는 충정만 노래하고 있을 것인가!?

우리는 화교(華僑)이다!

우리는 다문화라는 호칭답게 우리 원래의 위치를 찾아가야 할 것이다. 정부에서 우리를 “다문화”, 혹은 “중국계 한인” 이라고 하니 우리는 ‘중국사람’이 틀림없다. 세계적으로 중국 사람이 외국에서 그 나라 시민권을 취득 하였을 때 그 사람이 바로 화교(華僑) 이다. 한국에도 화교들이 꾀 많이 살고 있고 화교 단체도 있다.

기실 우리 1세대들은 대한민국을 조국이라고 부르짖고 한국 국적을 회복하면서, 혹은 귀화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 하면서, 중국국적을 포기 할 때 모두가 서운한 감이 없는 게 아니다.

우리는 어릴 때 한국을 떠났거나 혹은 중국에서 태어나 7~80년을 중국 땅에서 농사짓고 가정 꾸리고 아이들 공부시키고 많은 인재 배출시키고 평생을 다 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조국이라고 한국을 찾아온 것과 같은 심정으로, 그런 중국을 우리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2010년 동포정책에 관한 세미나에서 어느 교수님은 “중국정부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중국조선족을 여전히 자기나라 국민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즉 중국의 화교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중국에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중국의 눈치까지 보면서 조국이라는 대한민국에 모든 충정을 다 받쳐 한눈팔지 않고 다만 한국국민으로서 살아오기를 원했다. 그러나 한국은 우리를 다문화로 내 몰았다. 섭섭하고 원통하기 짝이 없었다. 10여년의 배회 끝에 우리는 드디어 다시 제자리에 돌아올 것을 결심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중국동포-중국 조선족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다문화요! 중국의 화교이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결단을 하고 나니 중국의 눈치도 보지 않고 쓸 때 없이 대한민국에 충정을 받아 달라고 구걸 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우리는 다문화의 1원으로서 정정당당하게 다문화의 모든 혜택을 요구하고 또 누릴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화교로서 중국정부의 모든 지원을 요청할 수 있고 혜택도 누릴 수 있다. 이것이 나의 결론이다.

이제 누가 뭐라고 해도, 현시점 한국정부의 정책이 변하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다문화’인이고 외국인이며 이방인으로 남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진짜 한국인으로 되려면 역시 상당한 시련의 시간이 필요 할 것이란 것이다.(귀한동포 국적회복1세 박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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