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올해 9월 3일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60돐이 되는 날이다. 1952년 9월 3일에 고고성을 울린 연변조선족자치주(설립당시 연변조선민족자치구, 1955년 자치주로 변경)는 초대주장이었던 주덕해주장을 비롯해서 현임 리룡희주장에 이르기까지 도합 13명의 자치주 주장 계보를 이어왔다.

초대주장 주덕해 억울함 품고 서거

초대주장 주덕해는 중국조선족사회의 제반 기틀을 마련한 분이다.

원명 오기섭(吴基燮)인 그는 1911년 3월 러시아 연해주 우쓰리스크에서 태여났다(원적은 함경북도 회령군 팔을면 복색동). 8살 되던 해 아버지를 비적들한테 잃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그는 1929년 화룡현 수동촌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31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1937년 소련동방로동대학에서 2년간 학습했다. 이후 연안으로 돌아온 그는 1943년에 연안조선혁명군정대학 총무처 처장으로 되였다. 1945년 11월, 조선의용군 제3지대 정치위원으로 임명되었다가 동북국 민정부 민족사무처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사이 주덕해는 교육으로 민족부흥을 일으킬 것을 호소하고 각지에 학교부터 세웠다. 조선인들이 집중된 고장은 중학교까지 꾸렸다. 주덕해의 건의로 1949년 4월 1일 동북조선민족인민대학이 건립되었는데 바로 오늘날 연변대학의 전신이다.

주덕해는 “동북의 벼농사는 조선인이 개척했고 항일과 해방전쟁의 승리에는 조선인의 피의 대가가 크다”면서 재중국 조선인에 중국국적과 토지소유권을 줄 것을 건의했다.

1952년 9월 3일 연변조선족자치구인민정부가 성립되면서 주덕해는 정부 주석에 당선되었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참혹한 정치적 박해로 연변을 떠났고 1972년 7월 3일 무한에서 억울함을 품은 채 서거했다. “4인방”이 분쇄된 후 중공중앙은 그의 명예를 회복해주고 역사적 공적을 인정해 주었다.

연변이 고향인 자치주 주장 도합 7명

오늘까지 총 13명으로 계보를 이어내려 온 연변의 주장들 가운데 연변에 고향을 둔 주장은 도합 7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로는 제5임 주장으로 계셨던 최림(훈춘), 제6임 주장으로 계셨던 리덕수(왕청), 제8임 문진섭(룡정), 제9임 전철수(룡정), 제10임 정룡철(화룡), 제11임 남상복(돈화), 제12임 김진길(연길) 등 도합 7명이다. 이들 가운데 룡정에 고향을 둔 주장이 두 분이 계셨는데 그들로는 1944년 연길현(지금의 룡정시) 광신촌에서 출생한 제8임 문진섭과 1952년 연길현(지금의 룡정시) 개산툰진에서 출생한 제9임 전철수이다.

연변이외 지역이 고향인 주장은 도합 6명으로 그들로는 초대주장 주덕해(러시아 연해주 우쓰리스크), 제2임 김명한(흑룡강성 목란), 제3임 조남기(영길현), 제4임 조룡호(교하시), 제7임 황재림(조선 강원도 위진군) 제13임 리룡희(매하구시) 등이다.

연변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왔던 이들 중 안타깝게도 일찍 우리의 곁을 떠난 분들이 계셨는데 이들로는 주덕해(1972년7월3일), 김명한(1999년12월30일), 최림(1992년 10월16일), 황재림(1999년6월28일), 문진섭(1990년12월7일) 등 5명 주장이다.

성과 중앙의 지도자로도 우뚝

조선족의 제반 사업을 위해 분투했던 우리의 주장들은 연변뿐만 아니라 성(省)과 중앙의 지도자반열에 우뚝 올라선 분들도 많다.

특히 주덕해, 조남기, 김명한, 조룡호, 리덕수 등 분들은 주장담임기간 주위서기를 겸하면서 연변의 당정생활을 이끌었다.

자료에 따르면 주장임기 만료 이후 성급지도자 직을 담임했던 주장들로는 모두 7명이었는데 이들로는 조남기(길림성 부성장, 중공길림성위 부서기, 성위서기), 김명한(길림성정협 부주석), 최림(길림성인대 부주임), 리덕수(길림성 부성장), 전철수(길림성 부성장, 길림성위 부서기, 길림성사회과학련합회 주석 력임), 정룡철(길림성정협 부주석), 남상복(길림성인대 부주임), 김진길(길림성 부성장, 현임 길림성정법위원회 서기)등 7명이다.

주장직에 이어 중앙 지도자로 계셨던 주장들로는 조남기(중국인민해방군 총후근부 부장, 총후근부 당위서기,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해방군군사학원 원장,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 리덕수(국가통전부 부부장,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 전철수(현임 국가통전부 부부장 겸 전국공상련합회 당조서기, 제1상무부주석)등 3명이다.

임기 가장 긴 주장은 초대주장 주덕해

중화인민공화국 자치구역법에 따라 자치지역을 대표하는 제1책임자는 반드시 그 본 민족의 대표여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연변의 주장들은 모두 조선족이다.

자치주 주장 담임기간이 가장 긴 주장은 초대주장 주덕해였다. 그이는 1952년 9월부터 1967년 3월까지 주장을 담임했는데 해수로 15년에 달했다.

2임 주장 김명한은 1977년 1월부터 1978년 4월까지, 3임 주장 조남기는 1978년 4월부터 1980년 2월까지, 4임 주장 조룡호는 1980년 2월부터 1982년 9월까지, 5임 주장 최림은 1982년 9월부터 1984년 1월까지, 6임주장 리덕수는 1984년 5월부터 1984년 12월까지, 7임주장 황재림은 1985년 4월부터 1990년 1월까지, 8임주장 문진섭은 1990년 1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9임주장 전철수는 1990년 12월부터 1993년 12월까지, 10임주장 정룡철은 1993년 1월부터 1997년 12월까지 11임주장 남상복은 1997년 12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12임 주장 김진길은 2002년 12월부터 2007년 4월까지, 13임 주장 리룡희는 2007년 4월부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리랑 주간 신철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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