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두만강 여울소리 마주 들려오는 서쪽기슭, 주렁주렁 오얏이 무르익은 언덕에 남향하고 앉은 오붓한 마을이 있다. 이 마을 동구 밖을 마주하고 나의 집이 있는데 토담으로 둘러진 동쪽절반에 해마다 할머니께서 박을 심으셨다. 지금은 어머니께서 소담하게 피어난 하얀 박꽃 속에 할머니의 염원을 기리며 박꽃을 가꾸고 계신다.

내가 온다는 기별을 받고 하루 종일 동구 밖에서 눈을 떼지 않으셨을 어머니, 어느 사이 먼 발치에서 나를 알아보고 하얗게 센 머리에 쓰셨던 흰 머리 수건을 벗어 쥐고 엎어질듯 달려오신다.
《어머니―》
《아니, 이 고열에 일도 바쁜데 오기는 왜 오느냐.》
이제나 저제나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시고도 겉으로는 이런 애매한 말씀을 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읽노라니 가슴이 짠해난다. 피땀으로 키운 자식들을 멀리 떠나보내시고는 매일 하얀 박꽃과 같이 토담 너머로 애타게 기다리시는 것이 어머니이란 이름을 가진 이들의 숙명인가?

쨍쨍 내리쬐는 해빛아래 토담위에 오른 박 넝쿨이 나의 시야를 당긴다. 엉킨 넝쿨사이로 피어 오른 하얀 박꽃이 청초하게 웃는다.
《어머니, 올해도 박꽃이 곱게 피였슴다.》
《그래, 곱게 폈구나. 지난 밤에는 니가 온다구 해서 그런 꿈을 꾸었나. 니 할머니와 생전 보지도 못한 니 큰 아버지가 오셨더라... 이 봐라. 해빛을 싫어하는 꽃이니깐 벌써 시드는구나.》
아니나 다를까 어떤 꽃은 어느 사이 앙증스레 꽃잎을 오무리고 신음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무더운 여름이라 오전 팔구시경의 해빛은 벌써 빨갛게 단 송곳 같은 해살로 박꽃을 마구 찌른다. 그 송곳질에 아픈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아가는 박꽃의 모양새가 민망스럽게 안겨온다. 앙증스레 시든 꽃이 지루한 기다림에 지친 할머니의 비애에 찬 얼굴로 방불히 바뀐다.
《이 꽃은 어머니 꽃이고 이 꽃은 할머니 꽃임다.》
철부지시절에 박을 가꾸시는 할머니와 어머니사이에서 뛰놀며 하던 말이 생각나 되뇌었다. 늙으셨어도 청각만은 예민하신 어머니는 어느 사이 내말을 들으시고 한숨을 내쉬신다.
《후유― 그래 할머니 꽃이지…》분명 어머니도 할머니 생각을 하고 계셨나 본다. 아니, 한시도 잊지 않고 계시리라.
어찌 잊을수 있을까? 수십년, 피와 뼈만이 아닌 영혼 깊숙이 배인 그 운명의 기다림을 어찌 잊는단 말인가?

내가 세상을 알아서부터 우리 집 토담위에는 그 어느 한해도 박꽃이 피지 않은 해가 없었다. 동네 노인들의 말씀에 의하면 옛날부터 할머니는 해마다 이 토담 밑에 박을 심으셨기에 동네에서는 우리 집을 《바가지 집》이라고 불렀단다.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잘 열린 크고 작은 박을 허기영차 켜서는 친척들과 이웃에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런데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해부터 비닐바가지의 충격으로 박 바가지는 시장에서 팔리지 않았다. 친척들도 이웃들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의연히 박을 심으셨다.
《할머니, 누구도 박 바가지를 왼눈으로도 보지 않는데 왜서 박은 자꾸 심슴둥?》

할머니는 나의 말은 못들은 척 하신다. 할머니는 여전히 변함없이 박을 가꾸셨다. 할머니는 늘 토담너머로 박꽃을 보시면서 사념에 잠기군 하셨다. 그리고 근근득식으로 지우는 살림에도 보잘것없는 음식이라도 박 바가지에 담아가지고 《행여나... 불쑥 들어오겠는지―》하시면서 고간에 감추어 두는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께서 타향살이 하시는 나의 아버지를 기다리시는 줄로만 알았다. 십년이 지나 아버지의 귀가와 함께 할머니의 고달픈 기다림이 끝난 줄로만 알았었는데 예전의 행동은 습관이 되어버린 듯 계속 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하루, 그때도 박꽃이 한창 피는 때였다. 팔십고령도 훨씬 넘기신 할머니는 나의 손에 의지하여 두만강이 굽이치는 산언덕까지 가셔서 이마에 손을 얹고 강 너머 상봉땅을 하염없이 바라보시면서 누군가를 찾으셨다. 그리고는 산 너머 남쪽하늘을 넋 잃고 바라보시는 것이었다. 눈물도 말라버린 비애만이 꽉 찬 할머니의 두 눈은 얼마나 처량하였던지 지금도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는다. 그때는 가정의 수난의 역사를 어린 나로서는 알지 못하였다. 황천길을 밟으시기 전에 보고 싶은 자식들을 찾고 계시는 할머니의 그 마음을 더 더욱 알지 못하였다.

할머니는 국경너머에 살고 있는 큰며느리와 큰 손녀, 그리고 남쪽나라 고국에 있는 생사를 알길 없는 큰 아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해방이 금방 되자 남쪽나라 고향땅에 가면서 후에 부모처자 데리러 오겠다고 떠난 큰 아들은 오늘까지 종무소식, 어린 아들 둘을 할머니에게 부탁하고 젖먹이를 업고 남편을 찾아 떠난 큰 며느리는 남으로 철조망이 막히고 북으로 국경선이 놓여 다시 돌아 올수 없는 몸이 되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부모 없는 손자들을 맡아 키우시면서 세 동강난 이 가정의 상봉을 그 얼마나 고대하셨던가. 그러면서도 자라나는 손군들에게 그 어떤 연루라도 있을까 봐 한마디도 이야기 하지 않으셨다.
《할머니, 큰 오빠네 아버진 어디 있슴둥? 큰 어머니와 큰 언닌 어째서 조선(북한)에 있슴둥?》
《이런 걸 물어보면 나쁜 애다. 알았냐?》
할머니의 기색은 여간 근엄하지 않으셨다. 남조선(한국)에 친척이 있다면 봉변을 당하기 일쑤인 그 시대, 고국에 있는 큰아들로 하여 다른 자손들에게 루를 끼치게 할 수 없어 할머니는 암장에서 흐르는 용암 같은 피를 홀로 가슴깊이에서 말리우면서 깊은 밤이면 눈물로 베개를 적시 군 하셨다. 내가 어렸을 때 새벽녘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눈물로 주고받던 이야기가 오늘도 나의 기억 속에 새록새록 새겨져 있다.

《올해도 박꽃이 잘 피었수다. 미자 어미 지난번에 조선(북한)에 갔다가 큰며느리한테서 가져온 박씨가 종자가 좋은 것 같수.》
《큰며느리두 해마다 박을 심는다지 않슴둥?. 한뉘 올수도 없는 남편을 기다리는 것 두 어이 없는 일 같은데 차마 옮겨 앉으라는 말도 못하고.이제라도 좋은 사람 만났으면...후유―》
《그래도 모르지. 어느날 통일이 되어 막 다 통하는 날이 올지...그러면 제 식구들 다섯이 오붓이 만나 세상 부럽잖게 살텐데...》
《꿈같은 소릴...》
《…큰 사람 떠날 때두 이맘 때였습지. 박꽃이 한창이였재임둥. 오늘까지 딱 서른두해째꾸마. 그해도 박꽃이 잘 폈재임둥. 떠나면서 제 아낙네 떠주는 냉수 한 사발 마시구는 남은 물을 박넝쿨에 부으면서 박꽃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이 하얀 박꽃은 흰머리수건을 두르신 어마이같수꾸마. 그래서인지 어디가나 박꽃만 보면 어마이 생각이 나재임두. >하던 말이 잊혀두 안 지꾸마...... 》
《죽으무나 잊혀지겠는가...끄끄...》
《죽기전에 얼굴 한번이라도 봤으면 원이 없겠수꾸마. 》
《휴유―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이나 알아두 얼마나 좋겠수.》
그 누가 들을세라 늙은 양주는 살붙이에 대한 그리움마저도 밤에만 토하셔야 했다. 그리움이 피는 밤. 필경 박꽃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밤마다 피우신 그리움의 화신(花神 )이리라.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혈육의 피, 그 무엇으로도 끈을 수 없는 육친의 정이다. 천리만리 떨어져있어도, 철조망이며 국경이 가로놓여도 박꽃은 해마다 피어나고 혈육의 정을 있고 있는 뉴대로 되고 있다. 하기에 할머니께서는 해마다 박꽃을 피우셨고 언제나 박 바가지만을 쓰셨다. 조선(북한)의 큰 어머니도 해마다 박을 심으시면서 남편과의 상봉을 고대하고 계신단다.,
하얀 전수건을 하얀 머리에 두르시고 꼬부라진 허리도 펴시지 못하면서 담 너머로, 강 너머로, 산 너머로 그리움 날리면서 기다림에 지치신 할머니, 오늘은 흩어진 혈육의 정한이 서린 이 자리를 어머니께서 할머니의 염원을 기리며 메우고 서계신다. 내일은 이 자리가 또한 나의 자리가 될 것인가? 아서라!!
하얀 빅꽃이여, 어서어서 열매 맺어라.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기다림으로 이루어진 숙명의 완성을 위하여, 피맺힌 수난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혈육의 만남을 위하여…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