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이면, 나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한적한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고독한 나그네처럼 외롭고 청승맞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여행은 자연 속에서 얻어지는 감흥을 방해받지 않아서 좋다. 함께 있는 사람이 없어도 자연은 친구가 되어 준다.

인생은 여행이라고 한다. 인생의 여행길은 되돌아 올 수 없는길이다. 내가 어머니 품속을 떠나 지금까지 흘러온 인생길이 한없는 동경(憧憬)과 아쉬움에 잠긴다. 세파를 헤쳐 나가기 위하여 걸음마를 배우듯, 나는 지금 혼자 떠나는 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나는 경관이 좋다는 산과 바다를 찾아 다녔다. 그런 산과 바다는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고 있었다. 그 뿐이 아니다. 차에서 내리면서부터 즐거워야 할 여행은 짜증스럽기만 하다. 찰거머리 같은 호객꾼, 바가지요금, 음식 쓰레기의 악취, 버려져 있는 쓰레기, 야경 속에서 무질서하게 난무하고 있는 모습들이 이마를 찌푸리게 했다.

인적이 드문 조용한 곳을 찾으려고 지도를 펼쳤다. 마침내 서해안 일대를 돌아보기로 하고 목포 여객선 터미녈에서 '가사도리'로 가는 연락선에 승선하였다. 잠시 후에 연락선은 고동을 울리며 달려간다. 흰 구름이 흘러가고 있는 모습을 갑판 위에 않아 바라보면서 지나온 내 인생을 더듬어 보았다. 지금 내 인생은 어디쯤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니, 지나온 날들이 허무하기만 하다.

구릿빛 얼굴에 밀짚모자를 쓰고 내 옆에 않아 있던 사람이 저기 보이는 섬이 사자 섬이라며 말을 건넨다. 나는 그 섬을 바라보았다. 사자가 물위에 않아 있는 것 같았다. 섬이 보일 때마다 그 사람은
"저기 보이는 섬은 손가락을 펴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손가락 섬이고요, 저기 보이는 섬은 상투를 하고 있는 모습 같아서 상투 섬이고 합니다." 라고 하며 이곳이 서해안 해상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인간과 자연이 노래하는 서정 시(詩)이다. 자연은 인간과 달리 아름답고 추함이 없다. 자연 앞에 나서면, 힘겨운 삶의 애착이나 고달픔, 서러움조차 부질없이 느껴진다. 나는 배낭에서 하모니카를 꺼내어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찬송가를 연주해 보았다.

어느 사이 '가사도리'에 닿았다. 이 섬은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은 절해(絶海)의 고도이다. 나는 굴 껍데기가 닥지닥지 달라붙어 있는 바위를 짚고 내렸다. 나무들이 우겨져 있는 사이로 한 사람이나 지나갈 수 있을 좁은 길이 있었다. 이런 섬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우거진 잡초를 헤치고 오솔길을 따라 인가(人家)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흰 연기가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그 연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들었다.

인기척을 내며 그 집으로 들어서자 점심 준비를 하느라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우던 아주머니는 나를 보는 순간, 반가움과 경계의 눈빛이 교차했다. 그러나 여행을 왔다는 내 말에 마루에 앉으라고 하면서 시원한 물을 한 대접 권한다. 잠시 후에, 주인인 듯한 남자와 열댓 살 정도의 여자아이가 망태기와 그물을 어깨에 둘러매고 집으로 들어섰다. 예상대로 주인남자와 딸아이는 아주머니의 설명을 듣자 사람이 그리워서인지 나를 반겨주었다.

점심 식사 후에 우리는 바다로 나갔다. 바닷가에 조약돌과 은빛 모래가 아름답다. 돌을 주워 보았다. 조약돌에 새겨진 무늬는 신이 아니고는 그릴 수 없는 예술품이었다. 나는 예쁜 조약돌 몇 개를 주워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는 보트를 타고 앞에 보이는 작은 섬으로 갔다. 나는 팩 소주 하나를 주인 남자에게 건넸다. 그는 노를 딸아이에게 건네주고 뱃면에 손을 넣어 미역, 톳, 등을 손안에 한 웅큼 따내어 놓는다. 소주 한 잔을 마시고 안주 삼아 미역, 톳을 먹었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풍요로움은 형언할 수 없었다.

혈도(血島)라고 하는 섬에 도착했다. 섬 전체는 핏빛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혈도(血島)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유배지였던 이 곳으로 귀양왔던 사람이 고향으로 가고싶은 한(恨)이 섬을 핏빛으로 물들였을까. 혈도의 중앙에는 두어 명이 들어갈 정도의 굴이 뚫려 있다. 아마 억만년의 세월 속에 모진 풍랑이 만들어 놓은 것 같다.

나는 부녀(父女)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텐트를 쳐 놓고 바위에 앉았다. 해풍에 시달려 꾸불꾸불한 소나무가 바위를 뚫고 등나무처럼 햇빛을 막아주고 있었다. 바위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보니 삶이 힘겨울 때 좌절했던 지난날들이 부끄러웠다. 송림사이로 물결이 출렁거린다. 생활 속에서 부식되어 있는 마음의 찌꺼기들을 말끔히 씻어주는 느낌이다. 나는 이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나이, 욕심, 괴로움, 번뇌 등을 모두 벗어 버렸다.

노을이 섬을 핏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까치 노을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버리고, 대지는 회색으로 물들면 별빛이 미소를 보낸다. 다른 곳에서 보는 것 보다 더 밝은 별들이었다. 별들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외로움이 파도를 타고 밀려온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쳐다보지 않아도 달은 물 위에 어려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달을 보며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놓으면, 파도가 지워버리곤 한다. 떠나는 연습을 하려면 그리웠던 얼굴을 하나 둘 지워야 하나보다.

다음날 아침, 주인 남자가 나를 데리러 왔다. 그가 오지 않았다면 나는 어찌 되었을까. 영원히 혼자가 되어 태고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니, 문명의 세계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 그가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나는 떠나기 전에 워크맨을 소녀에게 선물하고 통통배에 올랐다. 아주머니와 딸아이는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들은 언제까지 인생을 고도에서 그 소박함과 순수함을 간직할 수 있을까.

나는 아저씨에게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수 있도록 혈도를 자랑해야겠다고 했더니
"그런 말을 하려거든 당신도 오지 마시오. 도시 사람들이 다녀가면 쓰레기 밖에 남는게 없소."하며 퉁명스럽게 내 뱉는다. 그런데도 그 말에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왜일까. 혈도가 지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인지 모른다.

생활이 인생의 사업이라면, 여행은 인생의 즐거움이다. 생활이 인생의 산문이라면, 여행은 인생의 詩다. 라고 말한 사색의 노트가 생각난다.
짜여진 생활 속에서 혼자 떠나는 여행은, 인생의 여정에 휴식과 위안을 주어 삶의 여유를 느끼게 한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