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는 내 생에 喜,怒,哀,樂과 함께 동행한 愛機이다. 부피가 크지 않아서 소지하고 다니기에 간편해서 좋고, 애수적인 음색이 좋다. 회오리 바람같은 삶 속에서 외롭거나 힘겨울 때, 고뇌와 번민으로 밤을 지새울 때가 더러 있다.그 때 하모니카의 선율은 미묘한 영혼의 소리로 실려 잡다한 생각들을 떠나보낸다.

하모니카 소리는 부모님의 애간장을 태우던 나를 위하여 흐느끼며 기도하던 어머님의 소리 같고, 옛 추억의 향기와 아련한 사랑의 기억을 더듬게 하기도 한다. 하모니카는 금전적으로도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게 다룰 수 있는 매력적인 악기이다. 하모니카는 어린 아이에서부터 노년층 까지 쉽게 배우고 공감할 수 있다. 요즘은 다른 악기에 밀려 하모니카 소리를 듣기가 흔한 일은 아니지만, 하모니카를 불고 있으면 추억을 퍼올려 주기도 한다.

하모니카의 유래는 기원전 3000년에 중국에서 쉥(sheng)이라고 부르는 관현악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악기는 대나무로 만들어 졌는데, 공명에 의해 소리가 난다고 한다. 18세기에 '마르고 폴로'가 이 악기를 유럽에 소개하여 그 악기의 영향으로 풍금, 아코디온, 섹스폰, 하모니카가 만들어 졌다는 자료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1940년 일본의 '야마하' 하모니카 합주단이 평양 YMCA에서 연주회를 가지면서 친숙한 악기로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연주용 하모니카의 종류는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위 아래의 구멍이 두 개씩 있는 복음(트레폴로 하모니카)가 있다. (우리가 흔히 부는 하모니카) 이 하모니카는 그냥 불어도 떨리는 음이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왠지 청아하고 구슬프게 들린다.

크로매틱(반음계) 하모니카는 오른 쪽의 작은 버튼으로 반음과 온음을 낼 수 있다. 주로 유럽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다이아토닉 하모니카는 구멍이 10개이고, 크기가 작으면서도 3옥타브를 커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런 악기들을 10개를 소유하고 있지만, 그 중에 복음 하모니카로 연주를 하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내가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할 때는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이었다. 밤마다 앞 산에서 들려오는 하모니카 소리는 나를 몽유병 환자처럼 끌어내고 있었다. 하모니카 소리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었다. 고등학생 정도의 형이 하모니카를 불고 있었다. 멋있었다. 그 형에게 한 번 불어보자고 했다. 그 형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내일 저녁에 심부름을 해 주면 하모니카를 주겠다고 했다.

다음 날 저녁에 하모니카 소리를 듣고 형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 형은 편지 한 통을 나에게 건네주며, 빨간 대문집 누나에게 건네주고 오라고 했다. 편지를 그 누이에게 건네주고 하모니카를 받았다. 행여 달라고 할까봐 하모니카를 거머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뛰어갔었다. 그 후 하모니카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그 형의 모습도 볼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사랑의 세레나데를 연주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형은 사랑을 이루었을까? 연서를 전달하고 받은 이 빠진 하모니카를 밤낮으로 불었다. 집에서는 시끄럽다고 꾸중을 해도 학교에 다녀오면 공부는 뒷전이고 하모니카를 불곤 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호남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어린이 백일장에서 동시로 장원을 했었다. 어머니는 기뻐하시면서 하모니카를 선물로 사 주셨다. 뛸 듯이 기뻤다. 그 때부터 하모니카는 중년이 되어 있는 나와 함께 동행하고 있다.

사우디에서 생활할 때의 일이다. 몰아치는 砂風, 용광로처럼 뜨거운 열기는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향수병鄕愁病은 치유할 수 없었다. 하늘을 수 놓은 수 많은 별 속에서 자식들 아내의 별을 찾아 헤메이고, 그리운 모습을 둥근 달에 그려보곤 했었다. 그래도 못 견디게 그리우면, 하모니카를 연주하곤 했었다. 하모니카 소리는 바람에 떨며 내 마음 싣고 바다 건너 국경을 넘어 가족들의 가슴에 전해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으리라.

'사랑하는 나에 고향을 한 번 떠나 온 후에...' '해는 저서 어두운데/ 찾아 오는 사람 없고/ 밝은 달을 쳐다보니/외롭기 한이 없다/...'등을 연주하고 있으면 어느 사이 내 주위에는 동료들이 모여 흐느끼고 있었다. 외로움은 그리움의 씨앗일까.

K문우의 초청을 받고 충북 영동에 갔었다. 한국문학도서관에서 만난 문우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별빛 쏟아지는 뒷뜰에 모닥불을 지펴 놓고 감자를 구워먹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맞추어 합창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모니카 소리를 듣고 있는 초등학생 철우와 철민이의 모습은 소년시절 내 모습과 흡사했다. 나는 하모니카를 하나 더 가지고 갔었다. 그 하모니카를 선물로 주었더니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헤어지던 날 산골 소년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며칠 후, 하모니카 두 개를 구입하여 소포로 보내주었다. 기뻐할 아이들의 모습이 눈망울에 그려지며 집으로 가는 내 발걸음은 내 유년시절로 가고 있었다. 작은 선물이지만, 영동의 개울물처럼 맑은 소년들에게 꿈으로 이어지는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여름에 여행을 다니다 보면, 생각지 않게 하모니카는 즐거움을 선물하기도 한다. 여객선에는 관광객들이 갑판 위에 많이 있었다. 나는 하모니카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더니, 하모니카 소리에 따라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는 모자를 벗어들고 돌아다니며 하모니카를 연주했다. 금새 모자 안에는 지폐가 가득했다. 매점에서 술, 과일, 과자, 음료수...등을 사서 갑판에 내어놓고 나누어 먹으며 하나가 되어 있었다.

가을에 하모니카는 나와 함께 바쁜 일정을 보낸다. 출판 기념회, 시 낭송회, 백일장...등에서 하모니카도 한 몫을 한다. 가을이면 밤이 지새도록 울고 있는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흘러간 세월을 아쉬워하며 울고 있는 사람도 있으리라. 내 하모니카 소리로 인하여 누구에겐가 생활의 작은 행복과 위안이 될 수 있다면, 실력은 미숙하지만, 그들을 위해 나는 하모니카를 연주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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