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한국 땅에 도착해 짐을 풀고 외국인등록증 신청하고 벼룩시장신문을 이 잡듯이 찾아가며 일자리 구하는 경험은 아마도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설레는 마음에 전화를 해보면 왕초보라 안 되고 비자 때문에 안 되고 연변사람이라서 싫고 한국 실정을 몰라서 안 쓴다는 말도 들어봤을 것이다. 한국에 온 것은 똑같은 행운이겠지만 도착해서 시작되는 길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일자리에 어떤 사장을 만나느냐가 관건인데 월급을 밀리고 인간적인 무시를 일삼는 악덕업주가 있는가하면 귀천의 차별이 없이 똑같은 눈빛으로 대해주는 인심 좋은 사장들도 있다. 내가 한국에서 몇 년을 일하면서 몸 아프고 마음이 힘들어도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한 이유는 내가 만난 사장님들 덕분이라 생각한다.

처음으로 같이 일하게 된 사장님은 경희대근처에서 “고기 굽는 사람들”이라는 간판의 고기집을 운영하는 74세의 할머니였다. 긴장에 눌린 나를 보며 “안경은 서빙이 착용하기엔 조금 부담스러워 안 쓰면 좋겠어.”가 면접의 전부였다. 집에서 오냐오냐 예쁘게 자란 나는 밥상에 수저 놓을 줄도 몰랐다. 사장님이 하나에서 열까지 쫓아다니며 가르쳐주었지만 깜빡깜빡 까먹기도 하고 마음은 급한데 손발이 서툴러 손님 앞에서 그릇을 엎지를 때도 종종 있었다. 그래도 짜증한번 안 내고 조용조용 타일러주었고 “한국 와 돈독 오르면 젊은 애들 다른 길로 들어서더라.”는 옆 가게사장들 말에 “쟤는 안 그래. 저 이마를 봐봐. 몇 년을 살아도 변함없을 애야”라고 편들어주시기도 했다. 2개월 일하고 회사일 찾아서 안산에 내려간다고 했을 때도 “한국에 있는 동안 꼭 날 보러 와라” 그러면서 송별식으로 고기까지 구워주셨다. 벌써 5년이 지났건만 내 삶이 바빠 아직까지 찾아뵙질 못하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내심 기도드린다.

두 번째로 만난 사장님은 “화로본가”의 갈비집 사장님이다. 작고 통통한 몸집에 40대중반의 여자 분인데 교회 집사였다. 직업소개소에서 나한테 핸드폰부품회사를 소개해주어 안산으로 내려갔다가 워낙 작은 하청공장이라 일이 없어 쉬는 날이 과반이라 그만두고 식당일을 했던 것이다. 이 분은 일산을 개발하는 기회를 잡아 20대 어린나이에 공사장 사장님들을 찾아다니며 식사주문을 받아내 함바집을 차렸는데 몇 년 사이에 10억을 번 굉장한 여인이다.

지금은 가게하나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교포와 한국 사람의 차별을 두지 않고 아프면 약 챙겨주고 급하면 선불도 해주고 술 한 잔에 산전수전 겪는 인생사를 이야기하며 힘든 마음도 풀어주는 엄마 같은 분이었다. 남몰래 지체장애인에게 일 년에 한 번씩 무료급식도 해주는데 매체에 알려서 지명도를 높이는 상업적인 수단이 아닌 순수 베풀며 살자는 좋은 뜻에서였다.

더 존경심을 자극한건 세 번째 지희천 사장님이다. “북경”이라는 중국요리집을 운영하는 분인데 체인점만 세 개가 된다. 내가 회사입사를 목적으로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 불경기인데다 시화나 반월공단은 외국인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라 자리하나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여서 또다시 식당일을 하게 되어 만난 분이다. 지사장님은 중국요리집 사장인 만큼 중국음식을 즐기고 중국문화도 좋아하고 일 년에 몇 번씩 중국에 여행도 다닌다. 일하는 직원도 직접 중국현지에 가서 면접을 보고 초청해오고 정당한 대우와 보살핌을 주신다. 중국어공부도 틈틈이 하고 직원과의 벽이 없어 농담도 잘하고 편하게 대하면서도 아침마다 직원들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겸허하고 품격 있는 분이기도하다.

매년 가계체육대회를 주최해 직원과의 통합과 우정을 쌓기도 하고 매월 마지막토요일마다 고아원사생 60여명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해주고 고향에 있는 사회복지센터에도 향우회 분들과 함께 매월 지원봉사로 나가신다. 동남아 빈곤학생들을 보고 와서는 눈물을 보이며 동정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워낙 사업적 안목이 탁월하여 사회적으로도 바쁘신 분이지만 직원 하나하나의 어려운 가족사까지 귀담아듣고 같이 마음 아파하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어야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사신다. 사장님은 늘 “물설고 낯선 한국 땅에 나를 믿고 왔는데 내가 몰라라하면 쟤네는 누굴 믿고 살겠냐?”며 든든한 아버지처럼 큰형처럼 지켜주신다. 아마도 이분 같은 사장님이 있어 우리 동포들이 한국이란 나라를 좀 더 살맛나게 바라보고 인간적이라고 느끼지 않나 싶다. 모두가 어우러져 사는 세상, 누군가에게 베풀고 사랑을 주는 따듯한 사장만이 존재하는 그날이 오면 세상은 더 아름답고 우호적인 지구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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