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시 부문 심사평』

“작품성과 대중성 두루 갖춘 작품 없어 대상 선정 안 돼”

정성수 심사위원장/시인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 온 작품들 증에서 최종적으로 윤하섭의 "중국식품 가게" 림금산의 "쓰러진 옛말" 박수산의 "나무의 이사" 고석의 "제목 없이 쓴 시" 장경매의 "굴욕" 등 5편이 남았다. 이들 중 대상, 금상, 우수상을 가려낸다는 것은 심사하는 사람으로서도 고충이 크다. 시의 효용을 문학성(작품성)에 두느냐 독자성(대중성)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게 평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문학성과 독자성을 두루 갖춘 작품이라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 신인들에게서 이런 요구는 무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대상은 선정을 하지 않고 금상과 우수상만을, 상종賞種을 정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아래와 같이 선選했다.

■ 금상으로 선정된 윤하섭의 ‘중국식품 가게’의 마지막 연 “고달픈 코리안 드림에/몸과 맘의 배터리가 바닥나면/나는 중국식품의 품으로 달려가/희망과 인내와 오기를 재충전 한다”는 화자의 힘든 하루를 한 순간에 날려버린다. ‘중국식품 가게’에서 몇 잔의 빼갈을 만나거나 아니면 고향 맛이 나는 식품들을 고르면서 향수에 젖어 단 걸음에 고향으로 달려가는 정경이 가슴을 파고든다. ‘중국식품 가게’에는 “아내의 맛이 있고 부모님의 향이 있고 빼갈처럼 독한 친구들의 우정이 있고 아들딸의 기다림이 있다”고 중국식품 가게를 매개로 하여 중국동포의 삶의 애환을 잘 표현한 윤하섭의 손이 번쩍 들려졌다.

■ 또 금상인 림금산의 ‘쓰러진 옛말’은 한줌의 식은 재로 나를 빤히 내려다본다는 부모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선하게 보인다. “하늘기둥 무너지듯 한 창자 끊는 진통 뒤/내 혼은 날아오르는 검은 연기 속에 기혼 한다”는 화자야 말로 불효자인 듯 효자다. “화장터로 가는 차머리는 흔들흔들/내 머리도 핑글핑글” 돌 때 아버지 일갈 하신다. “이눔아, 좀 꿈을 갖고 살거라, 꿈을!!” 부디 꿈을 가지고 악착같이 살아가기를 당부한다. 림금산씨 화이팅!

■ 우수상으로 선정된 세 작품은 박수산의 ‘나무의 이사’ 고석의 ‘제목 없이 쓴 시’ 장경매의 ‘굴욕’으로 좋은 시작품들이다. ‘나무의 이사’는 가정의 해체다. 어린 아들을 남편한테 넘겨주고 여행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집을 나온 철이 엄마는 어딘가에 심어질 ‘여자 하나’란다. 박수산이 조경원이 되어 거름 주고 영양주사 꽂아 주기를……. 고석의 ‘제목 없이 쓴 시’에는 삶에 대한 결의가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화자는 “알몸으로 왔다가 옷 한 벌 얻어 입고 가니, 죽을 때 해가 넘어 가듯 스스로 혼자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오기를 보이고 있다. 그게 미안해서인지 시 제목을 ‘제목 없이 쓴 시’라고 명명했나 보다. 장경매의 ‘굴욕’에는 아이의 이를 닦아주고 사지가 멀쩡한 주인영감 바짓가랑이를 벌려 옷을 입혀주며 잔소리 군소리를 들을 때의 화자의 심정이 눈에 보인다. 어쩌랴 그게 사는 일인 것을. 4연 3행에 “온몸으로 돈을 줏는 나는'의 ‘줏는’은 바닥에 있는 것을 집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줍다’이다. 옛날에는 ‘줏다’라고 했다. 줍는 모양을 가리킬 때 쓰는 ‘주섬주섬’이라는 말은 ‘줏다’와 관련이 있다. 남에서는 ‘줍다’를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고, 북에서는 ‘줏다’를 문화어로 인정하고 있다.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도 ‘줏다’를 주로 쓴다는 것을 밝힌다.

(심사위원 : 정성수 시인(위원장), 류경일 문학평론가, 강대환 시인)

 정성수 시부문 심사위원장
정성수 심사위원장 프로필

․ 창조문학신문 “되창문” 신춘문예 시 당선

․ 한국교육신문 “콧구멍 파는 재미” 신춘문예 동시 당선

․ 전북 도민일보 “배룡나무꽃” 신춘문예 시 당선

․ 「시집」 아담의 이빨자국 외 「동시집」 할아버지 발톱 외

․ 「시곡집」 인연 외 「동시곡집」 참새들이 짹짹짹 외

․ 「산문집」 말걸기 외 「실용서」글짓기, 논술의 바탕 외 49권 출간

․ 수상 : 제2회 대한민국교육문화대상, 08년12년전라북도 문예진흥금수혜,

제18회 세종문학상, 09대한민국베스트작가상, 대한민국황조근조훈장. 대통령상 등 다수

 

<시부문 금상 수상작>

 

중국식품 가게

-윤하섭-

 

건축 현장에서 지친 삭신이

미치도록 고향이 그리워 울 때

이름도 성도 H2인 나는

중국식품 가게로 달려간다

 

그곳엔

여자의 행복을 땅에 다 묻고

바보처럼 나만 섬겨 온

땅콩같이 고소한 아내의 맛이 있다

 

그곳엔

이 못난 아들을 위해

평생의 고생을 안으로 곰삭혀 온

썩두부 같이 진한 부모님의 향이 있다

 

그곳엔

잠깐 실의失意에 내가 휘청거릴 때

어께를 툭 치며 등 밀어 주던

빼갈처럼 독한 친구들의 우정이 있다

 

정녕 그곳에 가면

해바라기 씨 같은 까만 눈으로

해바라기 꽃이 되여 나만 쳐다보는

십년 묵은 아들딸의 기다림이 있다

 

고달픈 코리안드림에

몸과 맘의 배터리가 바닥나면

나는 중국식품의 품으로 달려가

희망과 인내와 오기를 재충전 한다

 

<시부문 금상수상작>

 

쓰러진 옛말

림금산

 

아버지가 마른 강대처럼 쓰러진 순간

온 머리에 뻥-하게 총알 받아 구멍 뚫린다

 

불효로 빚어진 후회가 왈칵 피를 토했다

 

화장터로 가는 차머리는 흔들흔들

내 머리도 핑글핑글

 

길 양쪽의 코스모스는 화사하게 웃어주지만

눈앞엔 파란 귀신불빛만 휘휘 휘돌아간다

 

반도에서 안고 온 옛말

 

쓰러진 그 옛말이 싸늘히 식어가는 때

달아오른 눈물은 볼을 태우고

 

하늘기둥 무너지듯 한 창자 끊는 진통 뒤

내 혼은 날아오르는 검은 연기 속에 기혼 한다

 

한줌의 식은 재로 나를 빤히 내려다보며

아버지는 허리 굽혀 사설 하신다

 

이눔아, 좀 꿈을 갖고 살거라, 꿈을!!

 

 

<우수상> 3편

  

나무의 이사

 -박수산-

아파트 출구

몇 달 전에 심은 몇 그루의 침엽수

살았는지 죽었는지

 

큰 병 앓고 있는 사람처럼 누르끄레하다

그 옆

아예 말라죽은 향나무 한 그루

뿌리째 뽑아버리고

측백나무를 심는 조경원

 

이번에는 죽지 말고 잘 살라고

웅덩이에 물을 붓고

거름까지 준 것도 부족해

영양주사를 꽂는다.

 

출구 맞은편

싸움소리 잦던 102동 철이네

오늘 철이 엄마는

어린 아들을 남편한테 넘겨주고

여행용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집을 나왔다

 

헤어짐이 또 다른 삶의 출구라면

떠나면서 가슴에 심어지는 것은

 

뿌리를 꺾는 아픔일 것이다

 

어딘가에 심어질 여자 하나

가방을 들고 지나간다.

 

 

제목 없이 쓴 시

 -고석-

태어날 때 해 솟듯

훌쩍 튕겨 나왔다

인생살이 수수께끼 풀어 보려고

 

알짜 가짜 온갖 괴짜들

잡것들 꼴값들 온갖 깃털들

아지랑이 물안개 흠뻑 젖는 세월

나도 그 속의 짧은 꼬리가 되어

분주히 괘씸하게 뛰어 다녔다

 

피곤한 눈언저리 얼음덩이 나뒹굴고

땀 돋은 콧등에 가을바람 선선할 때

차가운 눈물만 있는 게 아니었다

끓는 피가 회오리치는 바다였다

 

죽을 때 해가 넘어 가듯

스스로 혼자 죽지 않을 것이다

주름살에 뱅뱅 꼬인 그 사연

빈자리 수표에 꼼꼼히 적어

세금 없는 하늘 은행에 저축할 게다

 

알몸으로 왔다가

옷 한 벌 얻어 입고 가니,

 

살았었다는 느낌 물씬 젖어든다

아쉬움이 발바닥 간질이는 한생

옆구리에 힘을 주니 허리 쭉- 펴지는 세상이다

 

 굴욕

 -장경매-

일곱 살 아이 입에

밥을 넣어주며

 

차례로 애들 이 닦아주며

전생에

자식한테도 해보지 못한

"사랑"

해 본다

 

사지가 멀쩡한 주인영감님께

바지가랭이 벌려 입혀주고

잔소리 군소리

죽은 듯이 들어주며

전생에 시부모님께도 해보지 못한

"효도"

해 본다

 

잘근잘근 굴욕을 씹으며

꼬깃꼬깃 자존심을 구기며

온몸으로 돈을 줏는 나는

오늘도 고향하늘만 쳐다보다

잠이 든다.

 

[수필부문 심사평]

 

“한국사회와 관계 맺는 진실한 시선, 우리 의식세계 일깨워”

 정유준 심사위원장/시인

  정유준 수필부문 심사위원장
수록된 동포문인 수필 19편과 유학·구학작가 작품 중에서 좋은 작품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장윤우(시인-성신여대 명예교수), 이동희(소설가-단국대학교 명예교수), 정유준(시인-한국현대시인협회 상임이사)는 3차에 걸쳐 會議를 하며 당황했습니다. 모든 분들이 이미 기존 작가로서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고, 작품수준 또한 우리가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하고, 낯선 대상을 섬세한 눈으로 바라보며 가슴으로 삭히는 동포 작가들의 우수한 작품을 자리매김한다는 것이 모순 같았기 때문입니다. 선정의 기준을 문학성과 함께 진솔한 삶의 감동에 포커스를 맞추고 아래의 작품들을 올립니다.

정연씨의 ‘아버지의 집’(대상), 김홍화씨의 ‘내 인생의 멘토’(금상), 엄정자씨의 ‘감나무에 담긴 정’(우수상, 이하), 조은경씨의 ‘연애와 결혼 사이, 그 아슬함의 경계 허물기’, 훈이씨의‘저는 거짓말쟁입니다’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함과 동포문인들이 한국사회와 관계를 맺는 진실한 시선으로 우리들의 의식세계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인정이 메말라 가는 각박한 현대사회 속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해 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인간 본연의 정신과 고귀한 가치를 각성시켜주는 진솔한 이야기는 우리들이 무의식중에 팽개쳐두었던 생명의 귀중함 까지도 한 번 더 생각하게 합니다.

수상을 축하드리고 아쉽게도 제외된 분들께도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심사위원 : 정유준(위원장), 장윤우, 이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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