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허영섭 cn008@hanmail.net = 1991년도부터 지금까지 사업차로 17번이나 북한 평양과 지방으로 출장을 다니면서 북한물품수입을? 계속해왔지만 오래가는 아이템은 없었다. 오로지 북한예술품 거래만 지금까지 20여년을 줄곧 멈추지 않고 이끌어왔다. 제일 실력 있는 북한 예술가 몇 십 명 씩 중국심천으로 여러 차례 초청을 하여 평양에서는 한 점도 구경 할 수 없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손자수 작품이라고,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자수작품을 수백점 창작하기도 했다.(더 많은 수백 점의 훌륭한 손자수작품은www.artembroidery.net에서 참조 가능)

 나는 처음 평양문턱을 넘어선지 20년 째인 2011년11월경에 우리 옥공장장과 함께 열여덟 번째로 북한방문 길에 올랐다. 아래는 방문 내용들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다.(★표기는 이전보다 발전한 내용, 개방의 조짐이 보이는 사례들이다.) 

 ● 2011년11월2일 베이징 북한대사관에서 비자 신청과 발급은 30분에 끝냈다.
대사관에 아는 지인을 통해 평양행 국제열차표를 샀다. 요금은 위안화1150원/인
북경?평양 비행기표 요금과 거의 맞먹었다. 왜서일까??

●11월3일 오후5:30분 국제열차로 북경에서 출발, ?2등급 기차표는 한 룸에 4인석인데 1등급보다? 30센치 좁을 뿐 나머지는 다른 점이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국제열차에 식사실이 없다.

모두 식사꺼리를 준비하여 기차에 오르는 줄 우리는 몰랐다. 그리고 매실마다 짐으로 꽉 찼다. 4인이 앉을 자리도 없이 짐이 많았다. 나는 기차표가 왜서 비행기 표 맞잡이로 비싼지를 알았다. 이 많은 짐을 비행기로 끝고 가려면 매인당 몇 천 원은 실히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에 신의주 도착하여 3시간 입국 수속을 하였다.
일단 핸드폰은 모두 꽁꽁 봉해 인을 박은 후 본인이 가지고 평양으로 가돼, 올 때까지 뜯지 말아야 한다고 신신 당부했다. 노트북도 세밀히 검사하는데 주로 동영상, 화면 사진 등을 중요시하고 사진기도 검사하였다.

무얼 그리 검사하느냐, 고 물어보니 이상한 건 지워버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녹음기, 카세트, 라디오, 등은 전혀 가져 갈 수 없었고, 북한인은 중국 핸드폰을 못 가지고 가게 되어 있었다. ★ 검사원들의 태도는 너무도 겸손하고 친절했다. “북한도 변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11월4일 오후7:23분 평양도착
마중 나온 사람들로는:
재외동포사업국 안내원
초청사 옥돌 수출입담당자
초청사 안내원 겸 통역
초청사 부사장
초청사 상급회사 대표
마중 나온 승용차는 2대,? 나는 깜짝 놀랐다. 벤즈600!링컨찦차!
우리 일행은 직접 초청사 사무실 빌딩에 도착하였다.
1층 회사 전시장
2층 직원식당
3층 면담실
4층 사무실
 

2층에 올라가니 초청사 총사장님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 끝나고 샘플장인 1층으로 내려가니 많은 견본들이 질서 있게 진열되어 있었다.?대다수가 대리석, 화강석 견본이고? 옥돌도 종류가 많았다.

옥은 주로 단천옥이고? 색상으로 분류하면 여러 가지였다. 그런데 흰점이 들어 있어 깨끗한 걸로 골라 수입하자면 힘들 것 같았다.

단천옥외 보석, 반보석, 연옥, 벽옥 종류도 있어 나는 너무도 기뻤다.  좀 지나니 중국에서 온 무역팀이 또 한 팀 들어 왔는데 광동 산두에 살고 있는?형제간이었다.(★ 아하, 한꺼번에 두 팀을 초청하여 경쟁을 시키는구나.) 나는 알아 차렸다. 상술을 쓰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인사만 하고 호텔로 가 버렸다. 

밤 10경 우리일행을 환대하는 ?식사가 벌어졌고 간단한 공연도 있었다.
공연이란 접시 나르는 접대원들(실지는 회사직원임)이 옷을 갈아입고 나와 춤추고 노래하는데 악기도 엄청 잘 다루었다. 그리고 모두가 명가수다. 이런 인재들이 왜서 접시 나를까?
그러나 물어 보지는 않았다.

식사 끝난 후 우리일행을 고려호텔까지 데려다 주었다.  내일 아침 일찍 총사장님이 고려호텔에 와서 업무상담할 것이라고 담당자인 박 선생이 말했다.

우리는 옥돌 광산보고 샘플 골라 중국으로 보내며 검사 결과 오면 한 콘테이너 싣고 가는 것이라고, 이미 짜놓은 스케줄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이전과 같이 우리의 스케줄은 그 동네에서는 먹혀들지 않았다. 그들 일정에 무조건 맞추어야만 하였다.
 

5일날
오전 10시경 총사장님이 도착했노라 하여 호텔1층 상담실로 들어가니 중국 산두에서 온 형제도 와 있었다. 오후에 중국으로 출발하기에 먼저 면담한다고 한다. 나는 옆에서 듣고만 있었다.

총사장님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당신들이 선택한 대리석 종류는 6개, 중국회사에서 서로 투자하여 광산을 개발하겠다고 하는데 만약 당신들이 투자하면 우선권을 주겠다. 투자금액은 300만 달러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광동 산두 사람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나는 대리석 구입하러 왔는데 왜서 광산개발 투자 이야기를 하나? 내가 선택한 품종이 아직 생산되지 않는다면 다른 종류를 구입 하련다. 그리고는 다른 품종을 가리켰다.

총사장님의 이야기,
이것도 100만 달러 투자가 필요하다. 이미 4개 회사가 투자하겠다고 하는데 당신이 투자하면 우선권을 주겠다,

광동 산두 사람은 입을 딱 벌렸다. 광동말로 귀에 거슬리는 욕을 했다. 나는 알아들었으나 북한 통역직원은 알아듣지 못해 나의 눈치만 살폈다. 면담 결과는 뻔했다.

면담이 끝난 후 총사장님은 마음이 기분 나쁜지 어디론가 가버렸다.
초청사 부사장님과 우리 일행, 광동 산두 사람, 그리고 초청사 통역과 직원들이 함께 고려호텔 옆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점심시간이라 식당 안은 사람들로 꽉 찼다. 음식메뉴를 보니 음식 값이 엄청 비싼데 심천에 비해 3배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이 비싼 음식을, 평양 사람들이 먹겠다고 붐빈다는 건 도저히 믿어 지지가? 않았다. 혹시 식탁마다 외국인이 앉아 있어 그들이 돈 내는 거 아닌가 싶어 슬그머니 살폈는데 그것도 아니다. (★ 이젠 평양사람들도 이정도 식사 할 수 있는? 수준급의 계층이 생겼다 걸 알게 되었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보다는 엄청 달라진 점이다. 

 식사 후: 

어젯밤, 고려호텔이 너무 추워 내가 데리고 간 공장장이 감기에 걸렸다.?온돌방이 있는 데로 옮기자 하여 평양호텔로 옮겼다. 결산할 때 보니 고려호텔 룸은 일당 2인실에 한 사람이 주숙하면 위안화 685원, ?2인이 주숙하면 940원이었다. 달러로 약 152$. 평양호텔은 2인룸이 90달러인데 초청사 안내원이 무어라하니 80달러로 수정해 주었다.

이전에는 호텔비용을 항상 초청사에서 지불하기에 이번도 그런가, 했더니 계약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초청사에서 부담하지 않는다고 한다.(★이전과 다른 점이다. 발전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아무리 국가 돈이라고 무조건 호텔비용을 대 주는 건 옳지 않다고 나는 생각했다.)

고려호텔 정문

평양호텔로 옮긴 후 초청사에서 누구도 오지 않아 그대로 하루 지났다. 오늘은 아무 일도 못할 것은 뻔했다.  

고려호텔에서 내려다 보면

 
 

평양호텔 1층 식당의 식사비는 엄청 저렴하다.
3인이 실컷 먹어야 위안화 15원 안팍이다. 왜서 이렇게 쌀까? 이해되지 않았다. 방값을 많이 받아 그 속에 식사비를 포함해 넣은 거 아니냐는 추측도 해 보았다.

그런데 호텔2층 커피점은 또 너무 비싸다. 알고 보니 호텔2층 커피솝은 평양호텔에서 직접 경영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개인한테 운영을 맡겼다 한다. 장찌개 하나 놓고 밥 먹어도 위안화 100원 정도 나온다. 중국보다 3 배이상 비싼 격이다.(★ 일단 이것도 개방의 시작이라 나는 생각했다. ★평양에서 중국 전화요금은 이전에 비해 엄청 저렴해졌다. 이전에는 분당 10~2미불)

고려호텔 정문

호텔에서 중국 돈을 북한화로 바꾸면 위안화 1원에 북한돈 100원을 준다. 시장에서 바꾸면 위안화 1원에 북한돈 600원이다.

호텔 1층은 가게로 찼고 없는 물건 없다. 거의가 중국 물건이다. 혹간 일본제도 있었다.
북한 돈으로 상품단가 표기하였으나 중국 위안이든, 미국 달러, 유로, 일본 엔 모두 환율을 쳐서 직접 지불할 수 있어 손님 입장에서는 엄청 편했다.(외국인한테서는 바꿈 돈만 받던 세월은 지나갔다. 단, 환율이 시장에 비해 너무도 차이가 많았다.)

저녁, 초청사 통역이 찾아와서 내일 아침 6시에 단천광산 보러 간다고 전달했다.

단천에 가면 우리가 볼 수 있는 옥이 어떤 것이냐, 고 물었더니 흰점 없는 황옥, 우리가 찾는 연옥, 우리가 가지고 온 샘플과 같은 청옥과 벽옥이 있다고 하였다.

우리 둘은 너무 좋아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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