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김선녀 특약기자= 올해 연초에 내가 세웠던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자신을 오픈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사회와 어울리기”였다.

그동안 저녁이면 기업체 출강 때문에 사람들과 만나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은 핑계일 뿐이었다. 외국인으로서 살면서 알게 모르게 누군가를 만나고 어울리는 것을 많이 싫어했던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한국 온지 몇 년 됐어요?"

"벌써 10년도 더 됩니다."

"와~오래됐네요, 그럼 한국국적이겠네요”

“아니요, 영주권입니다.”

“한국인과 결혼한거 아닌가보네요.?"

“네.”

"10년 전엔 결혼 아니면 한국 오기 힘들었겠는데 어떻게…?"

"일 땜에 몇 번 왔다가 후에 투자해서 사업체를 운영하게 되면서 머르게 되였습니다."

"그래요? 어쩐지 당차 보인다 했더니, 대단하시네요."

그랬다. 나도 나 자신이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게 사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면 늘 이런 "대질심문" 같은 것을 받아야만 하는 것을 마음으로 거부했거나 아니면 힘들어 했던 것 같다.

모든 욕심 버리고 건강하고 맘 편하게 항상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살려고 하는 것이 내 인생목표였는데, 이런 질문을 받는 것은 나의 소심한 성격과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될수록 피하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만 살면서 즐겁게 보내려했던 것이다. 그동안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게 살았던 거 같지만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나도 모르게 아픔으로 안고 살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최근에 몇 차례 공식적인 행사에 참가한적 있다. “은둔생활 종결짓고 드디어 수면에 떠오르기 시작했네요.” 지인분들은 이런 농담으로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물론 새로운 사람 소개받을 때면 “한국온지 몇 년 되였어요?"라는 똑같은 질문을 받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상처라도 받을까바 될 수록이면 피하려 했던 것을 지금은 마음껏 부딪히면서도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고정욱 박사남과의 만남이다. “들이대! 아니면 말고!”

고 박사님을 만나게 되면서 더불어 사는 사회는 남이 아닌 내가 만들어가야 된다 것도 깊이 알게 되었다. 고 박사님은 장애1급이지만 200여 편의 책을 출판했고 여러 학교를 다니면 강연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억5천이나 되는 인세를 기부까지 했다. 어쩌면 타인의 도움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 중의 한 한사람일수도 있는 그는 사회에 도움 되는 사람으로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힘과 꿈을 주는 존경받는 사람으로 되었다. 동포들도 150여만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 대한민국에서 다문화에 대한 혜택이나 정책을 바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립하고 적응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무시와 편견은 내 스스로가 줄이고 없애야 한다 것이다. 고 박사님의 가르침은 나로 하여금 “문화는 달라도 사람 사는 것은 똑같다”는 주제로 중국문화특강을 하면서 자신감과 즐거움이 주는 기쁨도 배로 되게 하는 거 같다.

“한국 온지 몇 년 되었죠?”

“그럼 한국국적이겠네요.”

 

이런 질문은 앞으로 살면서 계속 받을 것이고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내가 받아야 할 질문일지도 모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중국국적인 한국인입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한국을 더 많이 사랑하니까,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려고 그 누구보다도 솔선수범하고 있으니까.

   악플 없는 세상-善플을 만들어가는 女자(김선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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