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의 높이와 생존 공간 구성한국

[서울=동북아신문]담장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고 안전한 생활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탄생되었다. 외부의 위협은 자연과 인간 두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 자연으로부터 강요되는 위험은 다시 인체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기후적요소와 (특히 풍수설에 의해 부각된 문화) 인체상해와 직결되는 맹수의 위협으로 분류된다. 담장은 바로 이 정화되지 않은 외부기류의 엄습을 차단하고 맹수의 기습을 방지하는 안전장치이다.

사람이 위험요소가 된다함은 빈번한 전란으로 인해 도처로 유랑하는 이방인들의 절도와 군대의 약탈을 의미한다. 이방인들은 전란이나 기아를 피해 타 지역으로 이동한 난민들로 군인도 이 범주에 속한다. 그런데 화북지역은 평야지대로서 맹수들의 서식이 불리한 반면 인간의 이동은 상대적으로 용이하여 중원에서 이방인의 위협은 무시할 수 없는 인소로 된다. 그와는 반대로 한반도는 산악지대여서 맹수들의 활동이 유리한데 비해 사람의 이동은 불편하여 인간보다 동물이 더 큰 위험요소로 부각될 수밖에 없는 지형적구조이다. 사람들의 이동이 적다는 건 마을공동체 안에 위협이 될 만한 이방인의 도래가 적고 구성원 거의가 친지나 지인들로 유대를 이루어 위험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의 경우 이방인에 대한 방비가 담장의 주요 기능이라는 사실은 사합원의 높은 담장이나 만리장성을 예를 들어도 금방 이해가 간다.
한옥의 담장이 낮다는 것은 상술한 담장의 제 기능들이 약화 또는 상실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기류의 흐름도 원활하게 조절할 수 없고 맹수의 위협이나 인간의 시선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없다. 문제는

▲ 사진 4) 한옥 담장 (김해한옥체험관) 사진 출처: 한국관광공사
  낮은 담장은 내외차단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시선도 개방되어 있다. 이는 담장의 높이가 온돌 좌식생활의 시선에 맞도록 담장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 사진 5) 북경 골목의 사합원 담장

가옥내부와 외곽을 높은 담장을 설치하여 철저히 폐쇄하고 있다. 담장의 차단기능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자연의 원시적인 기류가 산에 막혀 어느 정도 순화되었다는 천연풍토여건이 담장의 전통적 기능을 퇴화시키는데 일조한 점도 없지 않을 것이다.

민가는 어떤 특정한 건축가의 개성이 중요시된 건축으로서의 주택이 아니라 지역마다 그 지역의 풍토에 조화되는 풍토건축으로 이는 토속적인 것이다.

한국의 민가는 굴곡이 심한 산세와 계곡이 이미 천연 담벼락의 작용을 대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평야지대에 있어 환경적으로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주택을 폐쇄적으로 구축하는 반면, 우리는 산야가 이미 영역 감을 주므로 집을 훨씬 느슨하게 배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단 김홍식 뿐만 아니고 여타의 학자들은 이와 유사한 의견을 제시했다. 즉 평야가 많은 중국에서는 자연지형을 방어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없었기에 마을이나 각 주택이 방어적인 보호 장치를 할 필요성이 있었지만, 우리는 지형의 변화로 인해 능선으로 이루어진 방어의 길목이 많아 마을이 주택에 비교적 개방적인 공간구성을 적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주택에서 담장은 방어적인 목적에서라기보다는 외부공간의 구획을 위한 수단, 시각적 보호, 경계의 표시, 가축의 관리 등을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주택의 담장은 낮은 주택 내의 각 건물은 개방된 마당을 통해 유연하게 연결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산야와 계곡이 방어수단으로 대용된다는 것은 그것이 이방인들의 침투와 간섭에 장애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경우 마을은 친지, 지인들로만 구성된 혈연공동체공간일 수밖에 없다. 지형의 산악화로 인하여 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원인이 이동반경을 마을주위로 축소시킨 것이다. 음성적 지형을 통한 위험요소의 배제는 방어적인 효과는 획득함으로써 닫힌 공간을 낮은 담장으로 개방하려는 의도가 한옥담장에서 엿보인다.

한옥담장의 이러한 기능퇴화는 지정학적 또는 지형적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만은 아니다. 결정적 원인은 주거 내에서의 생활방식이다. 입식생활일 경우 한옥담장은 기능상실일 수 있지만 좌식생활을 할 경우 일정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옥담장의 낮은 원인을 좌식생활의 결과라고 단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을 마당에 끌어 들인다.”는 “한국인의 지혜”라는 허울 좋은 “자연친화론”의 포장을 해체하면 물리적 이동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담장 밖의 세계를 실내에 앉아서 시각으로 만나려는, 숨겨진 안일함이 금시 드러난다. 시각영역 화는 본질적으로 걷는 행위에 대한 거부와 포기를 의미하며 궁극적으로는 게으름, 편안함의 추구로 이어진다. 외계와의 시각적 소통은 운동정지와 기타 감각들의 휴면상태를 유발한다. 앉은 상태를 지속하려는 욕구는 고정된 장소에 자신을 묶어두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다.

한 편으로는 내부시선개방은 필연적으로 외부시선개방도 동반하게 되는데 이는 담장의 차단으로 모처럼 주어졌던 사생활공간의 은밀함을 스스로 타인에게 노출시키는 꼴이 되고 만다. 이리하여 지형적 방어로 개방된 외부세계는 타자의 시선개입으로 사생활 공간 침해라는 새로운 위험공간으로 환원된다. 심할 경우에는 스스로의 시선은 폐쇄하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일상을 타자에게 공개하는 기현상도 나타나게 된다.

개인의 사생활은 외계와의 단절과 차단으로 보장된다. 타자의 개입과 시선이 배제된, 진공 상태에서의 자신과의 만남, 모든 창조는 이러한 공간에서 자신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할 때 사생활공간의 의미는 결코 간과할 수 없다. 한국인은 개방된 주거공간에서 타자와의 만남을 지속하고 타인의 개입과 시선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상실하고 말았다. 타인의 시선에 노출된다는 건 타인을 의식하고 타인의 요구에 부합되는, 타인의 구미에 맞게 만들어지고 길들여진 나 아닌 나가 될 뿐 진정한 자아로 태어날 수 없다. 한국인의 삶은 개방된 주거공간으로 인해 타자의 소지품, 공동체의 부분품으로 그 생존의미가 축소되고 말았다. 창조의 고갈, 자신의 욕구와 의지가 결여된, 내 삶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아야 만 했다. 담장의 폐쇄기능은 타인의 시선과 감시의 폭력으로부터의 탈피를 가능하게 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사는 내가 아닌, 타인의 의지에 의해 제작되고 변질된 내가 아닌,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개성을 가진 인격체를 수립하기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폐쇄에 의한 사생활공간이 필요하다. 열린 공간에서는 나의 모든 욕구와 의지는 타자에 의해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이라는 누명을 쓰고 봉인되어 연금된다.

중국의 사합원은 높은 담장으로 기승을 부리는 황토고원의 모래바람을 막을 뿐만 아니라 외부와의 완벽한 폐쇄를 통해 타인의 시선에서 자신을 철저히 은폐한다. 그들은 격리된 외부세계를 건물영역 안으로 끌어들여 정원을 만드는 것으로 자연과 소통한다. 자연과의 만남과 사생활공간이 동시에 이루어짐을 볼 수 있다.

낮은 담장이 한국인의 좌식생활에서 기인한 것이고 그로 인해 위축된 활동영역을 시선으로 확보했다는 사실은 시각의 예술인 미술을 보고서도 쉽게 타진할 수 있다.
안휘준은 한국화의 특징에 대해 아래와 같이 귀납한다.

답답하고 번거로운 것을 피하고 확 트이고 시원한 공간과 여유를 추구…… 큰 것을 추구하고 작은 것을 되도록 생략하는 대의성 또는 대범성大汎性을 띠고 있기도 하여 그것은 천진성 등 복합적인 개념으로 말할 수 있다.

그 “답답함”은 뜨거운 온돌과 낮은 천장이며 그 “번거로움”은 체력소모를 수반해야만 하는 보행을 의미한다. “확 트이고 시원한 공간과 여유”는 시야를 작동해 확보한 외부세계일 것이다. “대의성 또는 대범성”은 시선과 피관물被觀物과의 거리감에서 유발된 모호함의 표현이다. 중국화의 치밀함과 빈틈없는 완벽성이 물리적인 이동(보행)으로 오감을 통한 자연과의 직접적인 만남(사합원에서의 입식 생활은 직접 갈아나가 자연과 오감을 통해 만나고 교감하고 대화를 나눔으로서 치밀한,
완벽성이 보장된다.)의 예술적결과라면 한국화의 대체大體성과 추상성

▲ 사진 6) 김수철金秀哲(생몰년 미상. 조선후기 화가) 『송계한담도』간송미술관소장
  온돌좌식생활의 낮고도 먼 시선에서 포착한 자연의 모호한 모습이다. 아무것도 똑똑히 보이 는 것은 없다. 확실하지 않은 이미지는 여백으로 처리하고 있다.

은 시선만으로 (시각 외의 감각생략과 원거리에서 파악한 어렴풋한 이미지)만난 피관물에 대한 예술적처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화가 철학, 논리, 이성주의를 추구하는 반면 한국화는 감성적이다. 감각과 피관물의 관찰거리가 가까울수록 이미지는 구체적, 이성적, 철학적, 과학적이다. 반면 감상적인 것은 동시에 문학적이며 종교적이다. 한국화는 시각 외의 4감이 생략됨으로 인해 구멍 난 시각의 한계를 마음의 눈으로 극복하려는 의도에서 추상적인 경향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한국화의 또 다른 특징들은 선과 여백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여백은 원거리에서 포착된 시각적대상물의 모호함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의 하단부와 상단부의 여백은 아래로는 담장에 막힌 부분과 백토를 깐 마당, 위로는 텅 빈 하늘이 이미지화 된 결과이다. 선은 모호한 이 미지를 포착하는 대체적인 윤곽이다. 농 담과 평면적인 느낌은 고정된 장소에서 바라 본, 입체성이 배제된 사물의 반영 일 것이다. 온돌에 앉아서 바라본 자연은 서선의 방향이 ↗형태로서 피관물은 공 중에 부양하고 담장에 시선이 단절된 하 단부는 잘리고 여백으로 처리된다. 감필 법은 원거리로 인해 모호해진 피관물을 생략하는 기법이다.
이밖에도 한국화의 특징들인 원근법 무 시, 다多시점, 상호비례관계 무시도 이런 관점에서 해석 가능하지만 본서에서는 진일보의 논의를 자제한다.

한옥담장이 낮은 원인은 좌식생활뿐만 아니라 온돌과도 관련이 있다. 온돌은 항 상 뜨거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여름에 는 더 덥다. 방안의 가열된 기체를 유동 할 필요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계선 또 는 경계에 의한 안전감은 산야가 이미 방어역할을 분담하고 있음으로 담장은 별 부담 없이 자신의 방어기능을 포기하 고 통풍을 위해 낮아진 것이다.

▲ 사진 7) 南山积翠图 王时敏(1592—1680) 요령성박물관 소장

여백처리가 없이 경물의 모습이 선명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고려시대 초 또는 중기에 온돌이 보편화되고 좌식생활이 시작되면서 담장이 생겼을 것이다.
한옥담장이 온돌에 의해 가열된 실내공기를 통풍을 통해 발산시키는 구조물이라는 주장은 유달리 많은 한옥의 창들에서도 입증이 된다.

한옥은 정면의 거의 전부가 벽체 대신 창호로 구성되었다. 벽체 구성은 측면과 배면이다. 호로서만 사용되는 것으로는 판장문, 골판문, 맹장문, 도듬문, 불발기이고 창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살창, 교창이며 창과 호로 혼용되는 것은 띠살창, 띠살문, 용자창, 아자창, 만자창, 정자창, 수대살창, 빗살창, 소슬빗살창, 귀자창, 귀갑창, 꽃살창이다. 하나의 창호 속에 여러 종류의 창호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있다.

그야말로 창호의 천지이다. 물으나마나 창호가 많은 것과 담장이 낮은 것은 보온보다는 환기를 목적으로 설치한 구조물임을 알 수 있다. 담장이 높을 경우 창호가 많아도 신선한 공기의 유입이 어려워진다.

 한국인은 원래 유목민족이어서 이동이 잦았기에 담장이 필요 없었다. 담장은 농경정착 후 생긴 것이다.  

한옥구조가 온돌로 인한 통풍환기가 위주라면 사합원의 구조는 반대로 방풍, 보온이 위주이다. 평야지대에서는 지형적 경계가 모호하다. 인간은 경계에 의해서만 안정감을 느끼는 동물이다. 높은 담장은 경계를 표시할 뿐만 아니라 황사가 심한 황하주변의 바람을 막는 역할도 겸한다. 시합원의 담장이 높은 원인을 학자들은 북방호족의 침입, 내전 빈발, 들끓는 도적떼, 교통의 발달과 전쟁으로 인한 인구이동의 편리(이로 인해 이방인들이 증가)정착농경 등의 원인들을 열거하지만 필자는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외침과 내란이 높은 담장의 원인이 된다면 무려 900여차나 되는 외침을 당한 한국의 담장도 당연히 높아야 할 터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정반대이니 말이다. 인구이동의 편리로 급증한 이방인들에 의한 위험과 도적떼의 방비와 함께 방풍은 높은 담장의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담장이야기가 나온 김에 마당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담장의 형태는 마당의 폐쇄성과 개방성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중국의 합원식 주택에서는 우선 마당의 형태가 사변형을 취하면서 대칭”을 이루고 “주택과 마당의 관계가 매우 긴밀하여 마치 하나의 공간”처럼 형성되었다. “양국의 주택은 공간의 중심에 마당을 두는 방식에 있어서는 일치하지만 중국이 우리나라에 비해서 마당과 건물이 더욱 일체화하는 동시에 마당은 폐쇄적으로 구성된다.”

또 하나의 특징은 한옥의 정원은 개방된 공간에 주로 과수를 식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살림집에서는 예전부터 안마당이나 앞마당에는 나무나 꽃을 심어 정원을 꾸미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집안에는 감나무를 많이 심는데 주로 뒤 곁에 배치시켰으며 대추나무는 앞마당에 많이 심었다. 집안에는 과실수를 많이 심었는데 배, 복숭아, 살구, 호두, 자두, 앵두나무 등이 있다.  

▲ 사진 8) 소주 중국 전통 사가私家 원림

기암괴석, 기화요초와 연못으로 조성된 중국전통원림은 정서적 감상을 목적으 로 하고 있다.

한국의 정원에 주로 과수나무를 식재하는 반면 사합원 정원에는 주로 관상수나 꽃들을 재배한다. 이는 중국인들의 관심사가 정서적 감상이고 한국인들의 최대관심사는 먹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과수는 식욕을 자극하고 위장과 교감한다. 관상수는 심리를 지극하고 정서와 교감한다. 관상수의 이미지는 미적 감각을 자극하여 이름다움으로 인지되지만 과수의 색깔이나 향기는 미적 감각보다는 과일의 성숙정도를 확인하는 단순한 기호작용을 할 따름이다. 적어도 굶주린 사람에게는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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