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사 - 예동근 국립 부경대학교 교수

▲ 고 이광규 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향년 81세로 10월23일 영면에 든 고인은 인류학자로 평생을 재외동포 연구에 전념했고, 재외동포 관련 인재 양성에 힘썼다.
[서울=동북아신문]제가 기억하는 이광규 선생님의 모습은 자상한 노인이면서, 열정이 넘치는 청년의 모습입니다. 선생님은 만년에도 꾸준히 학술저서들을 쏟아내며 왕성한 활동을 함으로써 재외동포에 대한 연구가 하나의 학문분야로 발전하게끔 주춧돌을 놓으셨습니다. 선생님은 재외동포 청년 세대에 관심을 갖고 그들과 함께 숨 쉬면서, 지성을 자극하고 실천을 하는 영원한 청년이셨습니다.

선생님이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기셨기에, 제가 서술하기는 벅차지만 오늘 중국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중국동포 유학생들과의 인연을 중심으로 선생님을 추모하고, 한국에 체류하는 중국동포 유학생들이 선생님의 뜻을 계승하고, 차후 사회각분야로 진출하여 중국동포, 나아가서 모든 재외동포의 지위향상을 위해 노력하기를 바라면서 ‘영원한 청년’으로서의 선생님의 모습을 그리고자 합니다.

저와 선생님의 첫 만남은 선생님이 동북아평화연대 이사장으로 계시던 2003년 늦가을쯤이었습니다. 그 때 동평의 사무실은 매우 작았고, 어린이도서들이 방을 꽉 채워서 발도 들여놓기 힘들었습니다. 동평에서는 당시에 중국연변으로 어린이도서 보내기 운동을 벌였지요. 선생님은 저녁 늦게까지 어린이 도서들을 분류하고, 묶는 작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때 중국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박사과정 공부를 하러 왔는데, 저도 모르게 재외동포 연구의 첫 강의를 동평 사무실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제게 동포에 관해 첫 강의를 해주신 스승님이 바로 선생님이셨습니다. 석학으로 존경받는 분이 동포 어린이들에게 보낼 어린이도서를 직접 정리하는 모습 그것은 제게 크나큰 감동이었고, ‘동포애’를 몸으로 보여준 특강이었습니다.

그 후 선생님은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으로 계시면서 매우 바쁜 일정을 보내셨습니다. 2005년 연말 모임에서 선생님이 외교부로터 징계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이유가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이라는 고위직으로서 중국동포 농성장을 방문하고 재외동포 전담기구가 필요하다는 소신 발언을 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분노가 일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전 세계 재외동포를 대표하는 정부기구의 수장으로서 동포의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고, 저 또한 700만이라는 많은 수의 재외동포를 체계적으로 지원․관리하기 위해서는 정책수립과 집행, 합리적 예산 편성 등을 위해서 동포전담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선생님의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중국동포에게 2005년은 피와 눈물의 한해였습니다. 강제추방으로 사건사고가 터졌고, 농성과정에서 얼어 죽은 동포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고 해결이 되지 않자, 선생님은 고위공무원이란 신분으로가 아니라 저녁 6시 퇴근이후 민간인의 신분으로 추위 속에 떨고, 마음이 얼어붙은 중국동포들을 방문해 위로의 말씀을 전하셨던 것입니다. 학자이든, 관료이든, 시민운동가이든 ‘동포를 온몸으로 사랑하라’시며 ‘동포애’의 모범을 보여 주신 것, 그것이 제게는 선생님의 두 번째 특강이었습니다.

2006년 선생님이 공직에서 나온 후, 저는 선생님을 여러 번 ‘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 학술모임과 각종 기념행사에 모셨습니다. 행사에 함께 참석한 어떤 교수 한 분이 “KCN(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 참 대단하다”며, “한국 인류학계의 태두 이광규 선생, 한국사회학계의 태두 권태환 선생을 동시에 모실 수 있는 단체는 KCN밖에 없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선생님은 동포 유학생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이셨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결례가 될 수도 있었지만, 동포유학생들에 대한 특별한 사랑으로 ‘형식보다 사랑’을 선택한 두 학자님께 중국동포 유학생들의 존경심은 더욱 커졌습니다.

▲ 예동근 교수
2012년 초에 ‘조선족3세들의 서울이야기’ 출판기념식을 가졌을 때 선생님은 80 고령에도 서문을 써주셨고, 기념행사에서 한 시간 반 동안 재외동포 차세대에 대하여 특강을 해주셨습니다. 그것이 유학생 단체에서의 선생님의 마지막 특강이 될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그날도 선생님은 “각국의 대통령들이 정상회담에서 하는 첫 번째 인사가 ‘당신네 나라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를 잘 보살펴줘서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이라면서, “동포는 황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존재”라고 몇 번이고 강조하셨습니다.

2013년 7월 ‘재외동포의 이해교육’평가회에서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뵈었습니다. 선생님은 지팡이를 짚고, 떨리는 손으로 조규형 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에게 “내년에는 전 세계에서 재외동포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초대하여, 서로 얼굴을 맞대고 교류하면서 동포 연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자”고 간곡히 부탁하셨습니다.

앞으로 오래도록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싶었는데 이렇게 황망히 돌아가시니, 마음이 후비지고, 눈물을 멈출 수 없습니다.

재외동포, 특히 아직도 차별을 받고 있는 CIS지역의 동포와 중국동포들의 지위가 향상되고, 다른 동포들과 평등한 권리를 향유하게 되고, 재외동포기본법이 제정되어 전세계 재외동포들이 내국인과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재내동포, 재외동포가 따로 없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이제 제가 선생님께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꿈꾸시던 ‘재내외동포가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비록 작은 힘이지만 성심껏 노력하겠습니다.

이광규 선생님! 이제 하늘나라에서 편히 잠드십시오. 삼가 명복을 비옵니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