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국적회복운동 헌법소원심판 청구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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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국적회복운동 헌법소원심판 청구서 전문
  • 려호길
  • 승인 2013.11.16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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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 일찍 동북아신문 편집부 기자로 뛰면서 '국적회복운동헌법소원심판청구서'에 관여를 했던, 연길에 계시는 려호길 선생이 당시의 귀중한 자료를 보내왔다. 이에 감사 드리며, 앞으로도 본지는 재한동포들의 역사를 회고하며, 귀중한 자료로 될만한 글이나 사진을 보내주시면 따로 섹션을 만들어 데이타를 구축할 예정이다. 성원을 부탁한다. 데이타의 저작권은 제공자와 본지에 속한다. <편집자 주>     

헌법소원심판청구서

청구인: 청구인 ***를 포함한 별지목록과 같습니다.
청구인들의 대리인: 법무법인 ***
주소: 서울 서초구 서초동 ****의* **빌딩**층 

1. 청구인들의 지위 

청구인 1 ***는 1938.2.28. 부산에서 출생한 후 일제 탄압과 착취로 인하여 가족들과 함께 중국으로 이주하여 흑룡강성 **현 **진 **촌에서 생활하다가 1992. 경에 한국으로 와서 현재에 이르고 있는 재중동포로서 2003. 11. 13. 자로 한국 법무부에 국적회복허가신청을 제출한 자이며, 나머지 청구인들도 청구인 1과 같은 지위에 있는 자들입니다. 

이에 대하여 법무부에서는 청구인들이 모두 중국국적자이며 현재 불법체류자의 신분이어서 국적회복을 불허한다는 입장이나 청구인들은 이하에서 상술하는 바와 같이 자진하여 중국국적을 취득한 바가 없으므로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의 지위에 있는 자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2. 재중동포의 법적 지위 

1945년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전까지는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주로 만주에 생활기반을 가지게 되었고 중국에서 출생한 조선인의 비율도 점차 높아졌지만, 이들은 중국 국적을 취득할 수 없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간도 협약을 통해 중국이 간도의 영유권을 갖도록 했지만, 만주의 조선인이 일본의 국적을 포기하고 중국 국적을 갖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일본국적포기를 인정할 경우 만주로 이주하여 중국 국적을 가지고 항일 운동을 하는 조선인들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정책에 따라 1945년 해방에 이를 때까지 조선인들 중에 중국 국적을 획득한 사람들도 일본국적을 유지한 채 이중국적자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조선인은 일본제국주의자의 강점에 따라 일본국적자로 편입되었지만, 별도의 민적을 통해 일본출신의 일본인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조선인으로 남아있었습니다. 

해방이후 미군정하에서 1945. 5. 11. 남조선과도정부법률 제11호로 제정된 국적에관한임시조례(이하 “위 임시조례”라 합니다) 제2조 제1호는 “조선인을 부친으로 하여 출생한 자는 조선의 국적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헌헌법은 제3조에서 대한민국의 국민되는 요건을 법률로써 정한다고 규정하면서 제100조에서 현행 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위 임시조례에서 조선인이란 대한제국 민적법에 따라 민적에 조선인으로 기재되었으며, 1923년경 일제 조선호적령에 의해 본토의 일본인과 구분하여 따로 관리되었던 조선인 민적에 기재되었던 자를 말하는 바, 상술한 바와 같이 재중동포들은 별도의 민적을 통해 일본 출신의 일본인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조선인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따라서 해방 전에 조선인을 부친으로 하여 출생한 재중동포는 위 임시조례의 규정에 따라 조선국적을 취득하였다가 1948. 7. 17. 제헌헌법의 공포와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한편 1948. 12. 20. 자로 제정된 국적법은 위 임시조례와 동일한 규정을 제2조 제1호에 두어 “출생한 당시에 부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자”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규정하였고 이러한 국민에 대한 규정은 현재 국적법 제2조 제1호에서도 그대로 승계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와 같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재중동포로부터 태어난 1948. 5. 10. 이후의 재중동포 또한 현 국적법 제2조 제1항 제1호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민이 됨은 명백하다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조선시대는 물론 일제시대까지 원칙적으로 국적이탈을 허용하지 않았고, 대한민국이 건국되기 전에는 이탈할 국적 자체가 없었다고 할 것이므로 현재의 국적법 제15조 제1항은 1948. 12. 20. 국적법이 제정된 후에 자진하여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에 한하며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1948년 이전에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해외로 이주한 재외동포들이 이주한 국가의 국적을 자진하여 취득한 것이라 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타당하다고 할 것입니다. 법무부의 유권해석 또한 이와 동일한 입장입니다.

그러나 법무부의 유권해석은 1949. 10. 1. 자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후의 재중동포에 대하여는 일률적으로 대한민국의 국적을 상실한 것으로 보면서 위 시점이후의 출생자들은 국적회복의 대상도 아니며 귀화의 대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본 헌법소원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논점의 하나로서 이론적, 실증적으로 규명되어야 할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우선적으로 검토할 점은 당시 국적관련 법령상의 국적상실조항으로서 위 임시조례 제4조는 ‘외국에 귀화한자 , 외국인의 처 또는 양자가 된 자’만을 국적이 상실되는 자로 규정하고 있으며 제정 국적법 역시 제12조에서 ‘자진하여 외국의 국적을 취득하거나 이중국적자로서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얻어 국적을 이탈한 자 또는 이에 준하는 자’들에 한하여 국적이 상실되는 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의 국적법 제15조 제1항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진하여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는 그 외국국적을 취득한 때에 대한민국의 국적을 상실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1949. 10. 10.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 재중동포들이 중국국적을 취득하였다고 하더라도 상술한 바의 국적법의 연혁적인 규정들을 살펴보면 결코 재중동포의 중국 국적의 취득을 “자진하여” 취득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재중동포들의 증언을 청취하여 보더라도 중국 정부당국에서 중국국적과 대한민국 국적 중에서 선택하도록 한 바가 전혀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중국 공민으로 편재되는 방식으로 중국 국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재중동포들의 경우에는 중국 국적을 자진하여 취득한 것이 아니며, 중국 공민자격이 일방적으로 부여된 것이라 할 것이어서 대한민국 국적법상 국적상실사유가 될 수 없다 할 것입니다. 또한 건국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우 국적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다가 1980년대에서 와서야 국적법을 제정하였다는 점에서도 재중동포들의 국적 취득은 법적인 의미보다는 정치적인, 역사적인, 체제적인 차원의 문제라 할 것입니다. 

이는 중국 당국에서도 인정하는 것으로 중국 정부당국도 재중동포, 조선족의 국적에 대하여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가 1950년대 티베트의 독립운동을 계기로 하여 1950년대 말경에 당시 수교관계에 있던 북한당국과 ‘조선족의 이중국적해소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여 재중동포들의 의사에 따라 중국국적과 조선국적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한 바 있었습니다. 

당시 냉전이라는 국제정세와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교류가 불가능하여 재중동포들이 대한민국국적을 선택할 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1992. 8.의 한중수교 전에는 재중동포들이 “자진하여” 중국국적을 취득한 것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1992. 8. 한중수교 전에 재중동포들이 북한의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대한민국의 정부가 아닌 불법단체에 불과하다는 것이 우리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므로 재중동포들이 북한 국적을 취득하지 않았다고 하여 재중동포들이 "자진하여" 중국국적을 취득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현재의 재중동포는 중국국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는 자진하여 취득한 것이라 할 수 없으므로, 제정 및 현행 국적법상 대한민국의 국적을 상실하지 않는 자로서 국적법 제12조의 이중국적자에 해당한다고 할 것입니다(동지의 논문, 갑제1호증 내지 갑제4호증, 우리 국적법상 최초 국민 확정기준에 관한 검토, 우리 국적법에 있어서 몇가지 문제점, 재중국동포들의 올바른 민족관 정립을 위한 이념, 제도적 방안, 재중동포와 한국의 대중국외교정책).

실제로도 1978년의 중국의 개혁과 개방 이후 1992. 8.의 한중수교 전까지 홍콩 등 제3국을 통해 우회적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하는 재중동포들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국적자로 취급하여 비자 대신 신분증명을 목적으로 하는 간단한 여행증명서를 발급하여 대한민국에 입국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시에 대한민국 정부가 재중동포들을 외국인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으로 취급하였다는 명백한 증거라 할 것입니다.

3. 입법의무의 발생 

입법부작위 헌법소원의 요건은 “헌법에서 기본권보장을 위하여 법령에 명시적인 입법위임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이거나, 헌법해석상 특정인에게 구체적인 기본권이 생겨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위의무 내지 보호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경우에 한하여 입법자에게 입법의무를 인정한다고 할 것이다(헌재 2000. 6. 1. 2000헌마18, 판례집 12-1, 733, 738-739; 헌재 2001. 6. 28. 2000헌마735, 판례집 13-1, 1431, 1437; 헌재 2001. 12. 20. 2001헌마484 참조)”라는 것이 우리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이 사건의 경우는 대한민국의 입법자가 재외국민들의 기본권 보장을 위하여헌법 제2조 제1항 및 제2항에서 법령에 명시적인 입법위임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라 하겠습니다. 

우선 헌법 제2조 제1항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외국과의 국적처리에 관한 조약등의 체결, 현행 국적법의 제, 개정 또는 특별법의 제정을 통하여 우리 국민이었던 자, 또는 우리 국민이어야만 하는 자들의 보호를 위한 법률을 제정할 것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난에 찬 역사에서 우리 국민들은 국가의 보호에서 방치되어 유랑과 강제이주의 역사를 걸어 와서 세계적으로도 이민이 많은 민족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조선족 200만, 고려인 40만, 재일동포 60만 등의 역사가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행 국적법은 우리 역사의 전형이었던 비자발적인 이민, 강제이민의 법적 처리 및 보호에 대한 규정이 전무한 상태로 자발적 이민, 국적변경에 대하여만 규정하고 있어 우리 국민이 되어야만 하는 자들, 우리 국민이 될 정당한 자격이 있는 자들에 대한 보호에 미흡한 상태입니다. 

국적에 관한 문제는 국가의 정체성, 주체성에 관한 문제로서 비자발적인 이민자들에 대하여 해당국가와의 ‘이중국적 해소를 위한 조약’ 내지는 현행 우리 국적법상 부칙조항의 설치를 통하거나 이것이 곤란한 경우 ‘재중, 재러시아 동포들의 국적취득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우리 국민이 될 의사가 있는 동포들의 국적취득을 법적으로 지원하고 계도할 의무가 헌법 제2조 제1항에 의하여 부여되어 있었음에도 우리 입법자들은 입법부작위의 위헌행위를 범하여 왔다고 할 것입니다. 

중국정부의 경우에는 화교의 보호를 위하여 세계 10여개국과 소위 ‘이중국적 해소를 위한 조약’을 체결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 정부의 입법부작위의 태도와는 대조된다고 할 것입니다(갑제5호증, 주간조선기사자료). 

또한 헌법 제2조 제2항은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여 재외국민의 보호를 위한 법률을 제정할 것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상술한 바와 같이 재중동포들은 대한민국의 국적이 상실되지 않는 자로서 재외국민이라 할 것입니다. 

한편 위에서 설명 드린 바와 같이, 1992. 8.의 한중수교 이전에는 이중국적자인 재중동포들은 당시 냉전이라는 국제정세와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교류가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이중국적자인 재중동포들이 대한민국국적을 선택할 수 있도록 1992. 8.의 한중수교 이후에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절차에 관한 법률 또는 중국정부와의 조약을 제정함으로써 헌법이 정한 국가의 재외국민 보호 의무를 이행하였어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의 계승을 명문화한 헌법 전문에 비추어 보더라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세금을 내는 등 물적, 정신적 지원활동을 직간접적으로 수행한 재중동포들에게 대한민국의 국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에 관한 법률 또는 조약은 1992. 8.의 한중수교 이후에 제정되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1992. 8.의 한중수교 이후에 이와 같은 법률 또는 조약을 전혀 제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1965년 한일협정 당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일본국에 거주하는 대한민국국민의 법적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 것 및 북한 당국이 중국 정부와 ‘조선족의 이중국적 처리에 관한 협약’을 체결한 것과 명백히 대조되는 것으로 입법부작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와 비슷한 민족관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분단과 냉전으로 인해 외국 국적을 취득할 수밖에 없었던 다수의 재외국민이 냉전이후 대거 귀국했다는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독일의 재외국민에 대한 정책은 우리에게도 상당한 시사점을 줄 수 있습니다. 수백 년 동안 구 소련과 동 유럽 국가들에는 수백만에 이르는 독일인들이 흩어져 살아왔습니다. 2차 대전과 냉전으로 인해 서독으로 돌아올 기회를 잃어버린 이러한 해외거주 독일인들은 동독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주지의 국적을 취득하고 2차 대전 이후로도 수십 년 동안을 살아 왔습니다.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통독 이후 국외 거주하던 독일인들이 독일로 귀국하였고, 독일은 통독으로 인해 여러 가지 정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헌법상 규정된 재외국민 보호 의무를 다하기 위해 귀국한 모든 독일인들에게 기존의 ‘귀환자를 위한 법’을 확대 적용하여 일괄적으로 독일 국적을 부여하는 조치를 취했던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귀국 독일인들의 대부분이 독일어를 사용하지 못할 만큼 본토의 독일인들과 문화적인 친화성이 적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독일정부는 1988년부터 1991년 사이에 100만에 달하는 독일인들에게 국적을 부여하는 조치를 단행한 것입니다. 이러한 독일 정부의 재외국민에 대한 조치는 재중동포들에 대해 재외국민보호의무를 방기한 대한민국 정부의 부작위와 대조된다고 할 것입니다.

가사 상기와 같은 헌법 조항들에서 명시적인 입법위임이 없었다고 할지라도 우리 헌법 전문의 해석상 재중동포들에게 국적을 선택할 천부적인 기본권이 생겨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위의무 내지 보호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것입니다. 

건국 헌법 전문에서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라고 규정하였으며 현행 헌법 전문에서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 계승하고”라고 규정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항일 전통을 계승하고 민족자주를 수호하여 나갈 것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건국 후 대한민국 정부 내지 입법자들의 헌법적 의무는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을 처단하고 일제 법률, 제도를 청산하는 것(일종의 ‘소극적 측면의 일제잔재의 청산’이라 할 것입니다)과 더불어 일제강점치하의 피해국민들을 지원하고 명예를 회복하고 물질적 보상을 제공하며 그들의 상실된 법적 지위를 회복하여 주는 것(일종의 ‘적극적 측면의 일제잔재의 청산’이라고 할 것입니다)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일제강점하의 피해자들은 전 국민들이라고 하겠으나 특별히 독립유공자, 정신대할머니들, 원폭피해자들과 함께 재중동포, 재러시아동포들과 같은 강제이민자들 역시 일제강점하에서 정겨운 고향을 떠나 타국 만리를 전전하고 해방 후에도 고국으로 귀환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피해자들이라 하겠습니다. 전자를 위한 법률로 소위 ‘반민족행위자처벌을위한특별조치법’이 제정된 바 있으며 후자를 위한 법률로는 ‘일제치하일본군위안부피해자에대한생활안정지원및기념사업등에관한법률’이 최근 제정되었을 뿐입니다.

상술한 바와 같은 대한민국 정부 내지 입법자들의 일제 잔재 청산 및 임시정부법통계승을 위한 헌법적 의무로 인하여 재중동포들에게는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 국적 선택권이라는 헌법상의 구체적인 기본권이 발생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권에서 파생하는 기본권이라 할 것이고 재중동포들의 경우에는 그 처지상 더욱 국가의 보호가 요청된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2003. 5. 15. 2000헌마192, 508(병합)의 소수의견에서도 표현되고 있습니다.

“... 광풍노도와 같은 시련의 시기가 모두 지나가면 그 와중에서 불운을 겪은 일부 국민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보상하여 주는 것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문명국가의 마땅한 의무이고 이러한 의무는 의회와 정부의 책임으로 귀속된다. 시련을 당한 사람들의 피해를 특정인의 개인적 차원의 불행이라고 치부하여 버리는 것은 결코 건강한 사회의 법이 아니다. 전쟁으로 위축되었던 헌정질서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의회가, 처참한 불운과 불행을 겪은 국민들을 구제하는 입법을 하는 것은, 국민을 다시 통합하고 국가를 전진시키기 위하여 의회가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기본적인 의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기본권 침해가 발생한 날로부터 이미 50여년 이상이 경과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의회가 아무런 특별입법이나 개정입법을 하지 아니한 것은 헌법이 요청하는 입법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입법자들은 재중동포들을 비롯한 일제 강점기의 강제이민, 비자발적 해외이주민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법적 지위를 회복하고 국적선택권을 비롯한 기본권을 보장하는 입법조치를 다하지 아니한 입법부작위가 있다 할 것으로 이는 위헌확인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할 것입니다.

4. “중국동포국적업무처리지침”의 위헌성

설령 재중 동포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였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의 계승을 명문화한 헌법전문과 재외국민의 보호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2조 제2항의 정신에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고자 하는 재중동포들에 대해서 조건없이 대한민국 국적의 회복을 허가하여야 할 의무가 대한민국 정부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무부는 “중국동포국적업무처리지침”(이하, 위 처리지침이라 합니다)이라는 내부 규정을 통해 재중동포들에 대하여 차별적인 별도지침을 마련하고 재중동포들의 국적회복의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1)독립유공자 및 그 친족(이 경우에는 재외공관을 통하여 국적취득을 신청할 수도 있다) 2)국가유공자 및 그 친족 3)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내에 거주하는 배우자, 직계 존, 비속과의 결합을 원하는 자 및 그 배우자와 미혼자녀 4)한,중 이산가족 재회사무처리규정등에 의해 대한민국 정부가 발급한 여행증명서를 소지하고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계속 체류중인 자 5)대한민국의 국민과 결혼한 자 또는 대한민국의 국민에게 입양된 18세 미만의 자로서 현재 국내체류중인 자 6)한중수교전에 적법하게 입국하여 체류중인자로서 중국 내 생활기반이 상실되어 중국복귀가 사실상 불가능한 자 7)상훈경력 또는 기능자격 등에 의하여 국익에 기여하였거나 기여할 것으로 인정되는 자 8)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중국으로 이주한 자로서 대한민국 호적에 입적되어 있는 자 및 그 배우자와 미혼자녀 9)인도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자 등의 하나의 요건에 해당하여야 하며 동시에 국내에 적법하게 입국체류중인 자에 한하여 국적회복절차로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갑제6호증, 한국체류 중국동포의 법률문제 중에서).

이는 재중동포들의 국적회복에 관한 선택권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위 처리지침에서도 잘 나아 있듯이 재중동포들은 재외공관을 통하여 국적회복신청을 하는 기회가 제한되어 있으며 또한 어렵게 단기체류비자로 국내에 들어 와서는 국적회복신청을 하기도 어렵거니와 하더라도 법무부당국의 무성의로 체류기간을 도과하게 되며 이렇게 체류기간도과로 불법체류자가 되면 위 지침에 의하여 국적회복신청을 불허하거나 심지어 서류접수조차 거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위 갑제5호증 참조).

이는 본말이 전도된 논리로서 재중동포들이 불법체류를 할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을 간과한 것이며 재중동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억지 논리라 할 것입니다. 재중동포들의 자유로운 출입국의 권리 및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보장하여야 헌법적 의무가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히려 재중동포들의 비자 신청단계에서부터 기본권을 제한하고, 국내체류단계에서도 재중동포들의 국적회복권을 적극 고지하고 이러한 절차의 진행을 지원하고 간소화하기는 커녕, 위 지침을 통하여 재중동포들에 대하여 차별적이고 기본권억압적인 정책을 일관하고 있습니다. 재중동포들에게 국적과 모국의 문제는 생과 사의 문제이며 기본권의 문제라고 할 것인데 과연 이를 합법체류와 불법체류로 구분하여 차별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인지 강한 의문을 제기하지 아니할 수 없으며 위 지침은 재중동포들의 국적선택권을 비본질적인 기준에 의하여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까지 침해하고 있으며 체류기간이 도과된 재중동포들의 국적선택의 기회를 박탈하여 인간의 존엄권, 평등권등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는 위헌적인 지침이라 할 것입니다.

2003. 11. 13. 5525여명의 재중동포들은 법무부에 국적회복신청을 한 바 있으나 위 지침에 의하여 불법체류자로 분류되어 일괄적으로 서류접수를 거부당하였는바, 이는 위헌적인 ‘중국동포국적업무처리지침’에 따라 재중동포들의 기본권을 침해한 위헌적인 공권력 행사라 할 것입니다.

5. 재중동포의 역사

가. 재중동포의 형성

청나라와 조선은 1885년까지 조선인의 월경을 엄격히 금지하여, 청 정부는 월경 조선인을 조선 정부에 인계하였고 조선 정부는 이들을 사형에 처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에 따라 1885년 이전에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현재의 재중동포의 뿌리는 1885년 이후에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885년부터 1910년까지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인은 약 26만으로 추정되며, 한일 합방과 토지 개혁으로 1910년부터 1928년에 이르는 짧은 기간에 48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 대규모 이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이민자들의 대부분은 일제수탈로 인하여 토지를 빼앗기고 농사지을 토지를 찾던 농민과 일제와 싸우기 위해 간도로 망명한 항일투사들입니다. 또한 일본 제국주의의 만주 침략이 시작된 1930년대 이후에는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강박이민이 추진되어 1930년부터 1945년까지 100만 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일제의 강점, 토지 수탈과 압박에 의해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은 상해임시정부에 세금을 내거나 기타 모금활동, 무장투쟁 등의 항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지원하여 대한민국의 수립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해방 당시 만주에는 약 216만 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해방 직후 100만 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고국으로 돌아왔으나, 100여 만 명에 달하는 만주의 조선인들이 남북의 분단, 중국에 사회주의 정권의 성립, 6.25 사변과 냉전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거쳐 만주에 남게 되었습니다.

나. 한중수교 전후 

재중동포들은 1992. 8.의 한중수교 이전에는 중국과 대한민국 간에 외교관계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냉전이라는 국제정세와 남북간의 대결적 자세로 인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대한민국과의 교류는 불법으로 처벌되었기 때문에 대한민국과의 교류가 거의 단절된 채 살아왔습니다. 

중국이 ‘개혁과 개방’이라는 표어로 요약되는 새로운 근대화 계획을 도입한 1978년 이후에는 중국인들의 해외여행이 부분적으로 가능해졌습니다. 이에 한중수교 전에도 몇몇 재중동포들이 이러한 변화의 바람을 타고 홍콩 등 제3국을 통해 우회적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재중동포의 입국은 자신들의 고향이자 모국인 대한민국을 방문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처벌의 위험을 감수하고 행해졌던 것들입니다. 이 경우 재중동포는 제3국의 대한민국 공관으로부터 대한민국 국적자로 취급되어 외국인의 대한민국 입국에 필요한 비자나 여권 없이 신분증명을 목적으로 하는 간단한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 대한민국에 입국하곤 했습니다. 즉 당시에 대한민국 정부는 재중동포들을 외국인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으로 취급하였던 것입니다.

그 후 1992. 8. 한중수교가 되자 중국과 대한민국과의 교류가 합법화 되어 많은 재중동포들은 자신들의 고향이자 모국인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고자 하였습니다. 당시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재중동포들의 대한민국 국적 회복 요구에 대해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눈물겨운 조국찾기를 돕는다는 입장에서 재중동포의 대한민국 국적의 회복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한 바 있었습니다(갑제7호증의 1내지2, 각 신문기사). 

그러나 대한민국정부는 한중수교시 상술한 바와 같이 재외국민인 재중동포의 보호의무를 방기하여 재중동포의 이중국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국과의 협정이나 별도의 법률을 제정하지 아니한 채, 한중수교에만 급급하였습니다.  

수교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되던 재중동포들에 대해, 수교이후에는 대한민국정부는 뚜렷한 이유 없이 외국인으로 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중국정부가 1980년대 국적법을 제정하면서 이중국적을 불허하는 입장 및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에 따른 동요를 막기 위하여 ‘조선족은 중국공민이고 한국정부는 조선족정책에 간섭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다’라는 논리에 굴복한 것으로 우리 정부의 비주체적, 사대주의 외교정책의 표본이라 할 것입니다(그러나 중국의 소수민족중에서 모국이 주권국가로 성립되어 있는 나라는 조선족뿐이라는 점, 일제 강점통치의 부산물, 남북분단으로 인하여 대다수 재중동포들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는 점등을 고려하면 이러한 중국의 논리는 부당하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정책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 또는 재중동포의 대량입국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교란 등의 이유를 들면서 재중동포들의 대한민국 국적의 회복 또는 선택을 선별적으로만 허가하는 행정편의주의적인 조치를 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당시에 중국국적을 가진 재중동포가 국적회복 신청을 하는 경우, 법무부는 명시적 법률적 근거가 없음에도 “중국동포국적업무처리 지침”이라는 내부 규정을 통해 독립유공자등의 특별한 경우에 한해 국적회복을 허가하여 대부분의 재중동포들은 국적회복절차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적을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나아가 당시에 대한민국 정부는 재중동포를 외국인으로 취급하여 대한민국 방문과 대한민국에서의 취업을 아주 제한적으로만 인정하였습니다. 따라서 재중동포들은 국적회복의 길을 포기하고 불법체류의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재중동포들에 대한 제한적인 국적회복 허가와 방문, 취업허가 조치에도 불구하고 재중동포들의 고향과 모국에 대한 열망을 잠재울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수의 재중동포들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하거나, 합법적인 입국 후에도 불법체류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국내 재중동포들의 처지는 같은 핏줄을 가진 동포임에도 불구하고, 대만국적을 가진 외국인인 국내 화교의 지위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것입니다. 국내 화교의 경우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영주권을 부여받아 자유로이 경제적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는 반면 같은 핏줄인 재중동포는 대부분 불법체류자로 전락하여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재중동포들은 고국에 가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에 중국에서는 평생 벌어도 갚지 못할 거금을 빌려 대한민국에 밀입국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러한 밀입국 과정에서 단속을 피하기 위해 수십명이나 되는 인원이 3-4평의 밀폐된 공간에서 수일간 갇혀 지내다가 질식사하기도 하였고, 선박 화물칸 냉동탑에 숨어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질식하는 등 수많은 재중동포들이 희생되게 되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에 합법적으로 입국하였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에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이 매우 짧았기 때문에 재중동포들은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재중동포들은 불법체류라는 약점 때문에 임금을 떼이거나 폭행을 당하고도 신고하지 못하는 인권의 사각지대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여성 재중동포들은 성폭행을 당하고도 불법체류라는 약점 때문에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되었습니다. 재중동포들은 내국인들이 취업하기를 꺼려 인력난이 심한 3D업종의 중소기업에 취업하여 대한민국의 국민경제의 발전에 한몫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대한민국 정부의 재외국민보호 의무 방기로 인해 불법체류자로 전락하여 조국에서 이등국민으로 취급되어 인권이 유린당해 왔습니다(갑제8호증의 1내지37, 각 신문기사).

이와 같이 대한민국 정부가 재외국민보호 의무를 방기함으로써 국내에 들어와 있는 재중동포들중 상당수가 불법체류자가 되어 인권의 사각지대에 몰릴 수밖에 없도록 하였음에도, 이제 와서는 법무부는 위 “국적업무처리 지침”에 따라 불법체류자인 재중동포에 대하여는 국적회복을 허가할 수 없다고 하여 재중동포들의 처지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6. 침해되는 기본권

가. 헌법 제11조 제1항 평등권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1992. 8.의 한중수교 이전에는 대한민국국적을 선택할 수 없었던 이중국적자인 재중동포들을 위해 1992. 8.의 한중수교 이후에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절차에 관한 아무런 법률이나 조약을 제정하지 않음으로써, 재중동포로부터 대한민국국적을 선택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중국동포국적업무처리지침’이라는 위헌적인 지침을 통하여 재중동포들의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법부작위 및 위헌적인 지침은 일제강점이라는 민족사의 불행한 시기에 미국등으로 자발적 이민을 선택한 국민들과 중국, 러시아등으로 비자발적 이민을 강요당하였던 국민들을 합리적인 이유없이 차별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또한 남북분단 및 냉전체제의 구축이라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소련, 중국 등 사회주의체제가 수립되어 상당기간 대한민국과 외교관계가 단절되는 지역에 거주하던 국민들과 그렇지 않던 지역에 거주하던 국민들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과 교류가 자유로운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이중국적자인 국민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국적법에 따라 자유로이 대한민국의 국적을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에 살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재중동포들을 합리적 이유 없이 다른 지역의 국민들과 차별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또한 한중수교 전에는 당연히 법리적으로 우리 국적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으로 보다가 한중수교 후에는 중국국적만을 가진 외국인으로 분류하고 처우하는 것은 재중동포들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수교 전과 수교 후로 나누어 차별하는 것으로, 수교 후에 국적회복신청을 한 재중동포들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은 1965년에 일본과 국교수립을 하면서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재일동포에 대해서는 법적 지위 및 대우에 관한 협정을 맺어 재일동포의 법적 지위 및 대우에 관한 협정을 맺는 등 재일동포의 보호를 위해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였으나, 재중동포에 대해서는 한중수교 이후 재중동포의 보호와 관련한 아무런 법률이나 조약을 체결하지 않아 재중동포들을 재일동포들과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정부당국의 시각에서 불법단체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는 북한 또한 1950년대 중국과의 조약을 통해 이중국적자인 재중동포들로 하여금 북한이나 중국국적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조치를 취했음에도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이 한중수교 이후 이중국적자인 재중동포들로 하여금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절차에 관한 아무런 법률이나 조약을 제정하지 않은 것은 국가의 중대한 의무 방기라 할 것입니다. 

설령 재중동포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였다고 하더라도 법무부는 “국적업무처리 지침”이라는 내부 규정을 재중동포에 한해 적용함으로써, 독립유공자등의 특별한 경우에 한해 국적회복을 허가하거나 불법 체류자는 국적회복을 허가할 수 없다고 하여 대부분의 재중동포들이 국적회복절차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적을 회복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적회복의 허가에 있어 다른 지역의 국민들과 재중동포들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고 있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또한 구비서류에서도 국적법 시행규칙을 통하여 호적등본등의 재중동포 본인으로서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망실된 서류들을 요구하여 국적회복신청자체를 극도로 봉쇄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고향이 이북인 재중동포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호적등본등의 서류를 구비하는 것 자체가 원시적으로 불능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는 이북출신 재중동포들에 대하여 합리적인 근거 없이 차별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에 대하여는 중국의 호구부에 조선족으로 등록되어 있는 재중동포들에 대하여는 일률적으로 국적회복을 허가하여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입니다.

1997년경에 언론에 널리 보도되었던 일제에 의해 군대위안부로 끌려가 캄보디아에서 50 여년 동안 살아오다가 귀국한 훈 할머니의 경우, 한국인임을 증명할 아무런 서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감식결과에 의해 한국인임을 입증하는 것만으로도 국적회복을 하여 주려고 한 법무부의 결정에 비추어 보면 국적회복의 허가에 있어 법무부의 재중동포에 대한 업무처리지침 및 제반 서류의 요구등의 조치는 재중동포에 대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임은 명백하다고 할 것입니다(갑제9호증, 신문기사).

나.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은 이중국적자인 국민이 대한민국국적을 선택하는 결정을 하여 대한민국의 영토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일반적 행동자유권과 자신이 태어났거나 자신의 선조들이 살았던 고향에 왕래할 수 있는 고향의 권리가 있는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1992. 8.의 한중수교 이전에는 대한민국국적을 선택할 수 없었던 이중국적자인 재중동포들을 위해 1992. 8.의 한중수교 이후에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절차에 관한 아무런 법률이나 조약을 제정하지 않음으로써, 국적법 제12조에 따라 1992. 8.의 한중수교 이전에 만20세가 넘은 재중동포들로 하여금 대한민국국적을 선택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채 대한민국의 국적이 상실되도록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재중동포들은 대한민국의 영토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일반적 행동자유권과 자신이 태어났거나 자신의 선조들이 살았던 고향에 왕래할 수 있는 고향의 권리를 침해받았다 할 것입니다. 

이러한 기본권은 보다 구체적으로는 국적선택의 권리라고 할 수 있는바, 세계인권선언 제15조에서는 “모든 사람은 국적을 가질 권리를 가진다. 어느 누구도 자의적으로 자신이 국적을 박탈당하거나 그의 국적을 바꿀 권리를 부인당하지 아니한다”라고 하여 자유로운 국적선택권 및 자신의 국적이 일방적으로 박탈당하지 아니할 권리를 천부적인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적선택의 자유 역시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재중동포들에게는 역사적으로 한번도 자유롭게 국적을 선택할 권리가 주어진 바가 없다는 점에서 기본권 침해의 정도가 중대하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국적선택의 권리를 재중동포에게 부여하는 것은 주권국가인 대한민국 정부의 헌법적 의무인바, 이를 방기함으로써 재중동포들의 국적에 관한 기본권이 침해되었다 할 것입니다.

또한 국적변경의 자유와 관련해서도 대한민국은 재중동포에 대하여 아무런 법적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결과 중국 당국에 의해 강제적으로 중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어 원시적으로 국적변경의 자유를 박탈당하였다 할 것이고 이러한 기본권침해상태는 한중수교이후에도 극복되지 않은 채 현재까지 기본권침해가 계속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다. 헌법 제14조 거주이전의 자유

헌법 제14조의 거주이전의 자유는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체류지와 거주지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바, 그 구체적인 내용은 국내에서 체류지와 거주지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국내에서의 거주이전의 자유와 체류지와 거주지를 국외로 정할 수 있는 해외여행 및 해외이주의 자유를 포함한다고 할 것입니다. 

재중동포들은 대한민국의 입법부작위로 인하여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받고 있습니다. 즉 재중동포들은 엄연히 대한민국의 국민임에도 중국 국민으로 분류되어 대한민국에서 불법체류자가 되어 대한민국의 국내에서의 자유롭게 거주이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한 때 재중동포들이 생활하였던 중국은 물론 해외를 왕래할 수 없습니다. 

라. 헌법 제15조 직업선택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는 공동체생활에서 물적 토대가 되는 가장 중요한 기본권 중의 하나로서, 직업선택의 자유에 의하여 자기가 선택한 직업에 종사하여 이를 영위하고 언제든지 임의로 그것을 전환할 수 있는 자유라 할 것입니다.

재중동포들은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대한민국에서 외국인으로 취급되어 원하는 직종에 관해서 종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원하는 직종에 종사하기 위해 필요한 전문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직업교육장을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재중동포들이 취업상의 불이익을 받고, 직업수행과정에서 다른 지역의 대한민국의 국민과 달리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등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받고 있다 할 것입니다. 

마. 헌법 제19조 양심의 자유

청구인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살아야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이를 희망하고 있는바, 청구인들이 대한민국의 입법부작위로 인해 중국국적을 강제적으로 취득하게 된 것은 자기 양심에 어긋나는 신념이나 행동을 강요당하지 않고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자유가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7. 재중동포의 국적 선택권에 관한 국내외적 정당성

가. 국내적 정당성

현재 대한민국은 3D업종을 중심으로 엄청난 인력난을 겪고 있는 바, 노동력을 제대로 공급하지 않으면 국민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외국인노동자를 대량으로 입국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으나, 이는 가족체류문제, 국적취득문제등의 여러 사회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외국인 노동자의 도입으로 인한 사회문제를 최소화하면서 국내의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같은 핏줄인 재중동포의 대한민국 국적 선택의 기회를 열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점점 중요해지는 중국과의 무역 및 교역을 위해서도 재중동포들의 도음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바, 재중동포의 대한민국 국적 선택의 기회를 열어 재중동포가 한국기업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야 할 것입니다.

또한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하고자 하는 재중동포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전부 준다고 해도 실제로 대한민국국적을 취득할 사람은 전체 재중동포의 3분의 1을 넘지 않을 것이고,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재중동포도 대부분은 어느정도 돈을 모으면 대부분 중국으로 돌아가 경제활동을 하게 될 것이므로, 대한민국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현상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 재중동포 내부의 사정 

현재 재중동포는 중국의 동화정책등 내외적인 사정에 의해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미 조선족학교자체가 급격히 격감하고 있으며 중국정부의 한족화정책에 의하여 조선족 아동들은 한족학교로 옮기면서 급속도로 우리 말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조선족의 미래는 길어야 20-30년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 요즈음의 전문가들의 공통된 예측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중동포들이 한민족으로서 당당하게 살도록 하는 방안으로 대한민국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민족적 주체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중국에서 살기 힘들면 한국인이 되면 된다는 식의 최후의 선택기회가 있는 사람은 그 기회가 없는 사람보다 훨씬 당당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갑제10호증, 서경석 목사, ‘조선족동포가 원하면 한국국적을 주자’)

또한 대한민국에 수년이상 거주한 재중동포들의 경우에는 중국에 돌아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이들은 고향 땅에서 경제적으로는 어렵더라도 문화와 정서가 맞는 곳에서 살게 되어 안도감과 작은 행복을 일구며 살아 왔는데 이제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하여 극도의 저항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 러시아 외무부의 입장

2003. 10. 경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조린 러시아 민족문제부장관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이중국적을 인정하고 있고 관련국가별 사안으로 별도로 해결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한국이 이 문제에 대해 협조를 요청할 경우 진지하게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한 2002. 12. 경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외무부의 무랍스키 아시아국 영사과장은 “다민족국가인 러시아내에서도 독립국가연합(CIS) 소속 국적의 국민들에 대한 이중국적과 시민권 부여문제가 하원에 계류중”이라며 “고려인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차원의 대책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갑제11호증의 1내지2, 각 신문기사).

이와 같이 재중동포와 비슷한 처지인 고려인들에 대해 러시아에서도 이중국적 부여문제에 대해 의회에서 심의하고 있는 현재에 대한민국도 이중국적자인 재중동포에 대해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법률이나 조약을 제정해야 할 것입니다.

라. 중국의 대화교정책과의 비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설립한 중국은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화교를 모두 중국국적자로 간주하여 해당국과 “이중국적 해소조약”을 체결하여 화교들에게 중국국적의 선택의 기회를 보장한 바 있습니다.

또한 중국은 1978년에 ‘개혁과 개방’이라는 표어로 요약되는 새로운 근대화 계획을 도입하였는데, 개혁 정책의 실행 과정에 해외 화교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이것은 화교들이 엄청난 자본과 고급 인력의 저수지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가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수탈당했던 경험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의 강대국과 자본에 대해서는 상당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화교’들을 중국의 근대화 및 산업화에 동원하기 위해 여러 가지 특권을 부여하는 입법을 단행했습니다. 중국은 화교들의 자본과 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1978년 이후 해외 화교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법률을 마련했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은 ‘화교, 홍콩, 마카오 동포의 투자 촉진법’을 제정하였는바, 이 법을 통해 중국은 시민적 권리, 사회적 권리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리까지도 화교들에게 제공했습니다. 미국처럼 이민자들에게 매우 관대한 시민권 정책을 펴는 나라들도 영주권자나 귀화자에 대해서는 정치적 권리는 부여하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도, 중국은 화교들이 귀국하는 경우 거의 완벽한 시민권을 보장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는 성문화되지 않는 방법으로 화교들에게 외국인에게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부여하지 않는 특혜를 제공했습니다. 

이와 같은 중국의 화교정책에 비추어 보아도 대한민국이 재중동포를 위해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절차에 관한 아무런 법률이나 조약을 제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8. 결 론

이상과 같이 청구인들은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수탈을 피하고자 중국의 영토로 이주한 자들로서 자진하여 중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이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일방적인 조치에 의해 중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입법부작위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즉 한중수교 당시 대한민국은 중국과 국교를 맺으면서 청구인들과 같은 중국 재외 국민들의 보호를 위해 법적 지위에 관한 어떠한 협정도 체결하지 아니한 결과, 청구인들이 대한민국의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결정권을 침해받았다 할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청구인들은 법적으로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하여 대한민국의 영토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받았으며, 자신이 태어났거나 자신의 선조들이 살았던 고향에 왕래할 수 있는 고향의 권리 및 평등권, 거주이전의 자유, 양심의 자유등을 침해받고 있습니다. 

수구초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짐승도 고향을 찾아 오는데 인간으로서 자신의 고향, 부모의 고향을 찾아 오고 정주하여 살 권리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천부의 권리라고 하겠습니다. 하물며 재중동포들은 일제시대에 나라를 찾기 위하여, 그리고 도저히 한국에서 살수가 없어 만주로 중국으로 떠난 사람들의 후손들입니다. 이들은 당연히 해방된 조국에 와서 살 권리가 있으며 우리 대한민국정부는 법률 또는 조약의 체결을 통하여 이들의 귀환을 적극 주선하고 지원할 헌법상 의무가 있었다고 할 것입니다. 이를 방기한 것은 민족사의 부정이며 고난속에 살아온 재중동포들의 인권의 유린으로 우리 헌법이 예정하고 있던 바가 결코 아니라 할 것입니다. 

아직도 고국을 믿고 따르는 재중동포들에게 국가의 존재의의를 알려 주는 역사적 고백의 판결이 될 것임을 믿으며, 마지막 화해의 기회마저 놓친다면 재중동포들을 우리 역사에서 영원히 잃게 될 것입니다.

이상의 이유로 청구취지와 같은 위헌결정을 하여 주실 것을 구합니다.

입 증 서 류

1. 갑제1호증, 우리 국적법상 최초 국민 확정기준에 관한 검토

1. 갑제2호증, 우리 국적법에 있어서 몇가지 문제점

1. 갑제3호증, 재중국동포들의 올바른 민족관정립을 위한 이념,제도적 방안

1. 갑제4호증, 재중동포와 한국의 대중국외교정책

1. 갑제5호증, 주간조선기사자료

1. 갑제6호증, 한국체류 중국동포의 법률문제 중에서

1. 갑제7호증의 1내지2, 각 신문기사

1. 갑제8호증의 1내지37, 각 신문기사

1. 갑제9호증, 신문기사

1. 갑제10호증, 서경석 목사, ‘조선족동포가 원하면 한국국적을 주자’

1. 갑제11호증의 1내지2, 각 신문기사


첨 부 서 류

1. 위 각 입증서류 각 1부

1. 위임장 1부

1. 담당변호사 지정서 1부

2003. 11. 14 .

위 청구인들의 대리인 

법무법인 **

담당변호사 ***
담당변호사 ***
담당변호사 ***

헌 법 재 판 소 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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