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리아폭포 앞에서
[서울=동북아신문]지난 8월 14일부터 9월 13일까지 나는 손자가 미국 뉴욕대학에 붙은 덕분에 난생 처음으로 미국을 유람하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14일 저녁 나는 대련에서 한국 아시아나여객기에 올라 한국 인천에 도착했다가 거기에서 다시 미국비행기에 오르게 됐다. 한국에서 미국까지 소요되는 비행시간은 13시간 30분이였다. 그 13시간 30분 뒤 내가 탄 비행기가 미국 뉴욕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그곳은 역시 14일 저녁이었다. 미국이 우리 중국보다 12시간이 늦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미국이란 나라는 동쪽으로 태평양과 마주하고 있고 서쪽으로 대서양과 접근하고 있었으며 북쪽은 카나다와 남쪽은 메히꼬와 인접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은 900만평방킬로미터의 땅덩어리에 2억 85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나라로 과학기술령역의 대국(세계적으로 노벨상수상자가 가장 많음)이고, 군사 및 경제에서도 세계제1의 강국이었으며 행정적으로 보면 무려 50개 주로 구성된 대아메리카합중국이었다.

 발달된 교통 

미국은 비행대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미국에서는 1903년에 벌써 인류력사상 제일 처음으로 동물을 실은 비행기가 하늘에서 날게 했다. 그때로부터 100년이 지난 오늘 미국에는 통용항공기가 1800여대나 되여 국내의 각 도시와 세계 여러 나라로 오간다. 그중 뉴욕에는 미국에서 가장 큰 공항이 있어 뉴욕의 하늘은 마치도 가을날 잠자리가 분주히 날아다니는것 같았다.

 그리고 지하에는 100년전부터 지하철을 건설하기 시작, 뉴욕의 땅속에는 마치 큰 도시를 방불케 하는 지하철망이 구성되여 6 – 12갈래의 차도가 뻗어있으면서 24시간동안 지하철운행이 계속되고있었다. 지하철은 속도가 빨라 기다리는 시간도 매우 짧아 편리했다.

 그런가 하면 지상에는 공공버스가 달렸고 교통감시망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있었다. 그리고 거리마다 노란색 택시들은 자주 볼수 있었으며 주요 거리의 한켠 세를 주는 자전거들도 있어 교통편리를 위해 크게 한몫 하고있었다. 

미국은 우측통행을 하는 나라였다. 차량과 행인 모두가 붉은 색 혹은 록색의 신호등에 따라 행동, 차량은 물론 보행자들도 록색등이 켜져야만 행동했다. 언젠가 “연변일보”를 통해 “중국식 길건너기”란 문장을 본 기억이 났다. 우리 중국인들의 교통지키기의식이 미국인들과 비하면 한참은 뒤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 워싱톤에서  

워싱톤은 미국의 심장이며 장엄하고도 옛스러운 색채가 농후한 도시였다. 거리의 공공건물마다 그 권력중심의 자호감과 웅장함이 빛을 발산하는것 같았다. 그중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은 특수보호구역이여서 경계가 자못 삼엄하기도 했다. 그리고 수도 워싱톤에는 각종 박물관 및 기념관이 밀집되여있어 이 도시의 숭고함을 더해주었다.

 어느 날 우리는 유람코스에 따라 워싱톤에 있는 천년동국을 참관하였다. 이 동굴은 1300년전 지진이 일어나면서 만들어진것이였다. 300년전에 처음 발견된 이 동굴은 후에 나라에서 유람지로 계획하며 층계를 만들었고 전기도 가설하였다. 료해에 따르면 지진당시 지진열량에 의해 흑과 돌이 녹으면서 여러가지 조형이 만들어졌는데 신기한것은 돌이 녹아 국수발처럼 길게 드리운것이 아주 멋스러웠다. 해설원은 그 국수발은 만지면 자란다고 하면서 우리더러 그것을 만지지 못하게 했다.

 그날 우리는 이 동굴의 제일 깊은 곳까지 돌아보느라 1시간 가량 소모했다.

 워싱톤이란 미국 초대대통령이였던 워싱톤의 이름에서 따온것이다. 미국 남북전쟁당시 걸출한 군사가였던 워싱톤이 그 전쟁을 승리에로 이끌면서 1776년 7월 4일에 미국의 독립을 선포함과 아울러 당시 그의 이름을 기리며 수도 이름을 워싱톤으로 명명했던것이였다. 미국에서는 워싱톤을 기념하여 워싱톤이 군마를 탄 구리동상을 워싱톤기념관 및 맨하탄 광장 등에 세웠었다. 다음 미국 제16대 대통령이였던 링컨은 나라에서의 노예제도를 페지한다고 헌법에 넣으면서 흑인들한테도 백인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도록 했다. 후에 링컨대통령은 암살되였지만 미국에서는 그를 기리여 링컨기념관 링컨극장 등을 만들었었다.

 미국에서는 건국 200주년을 기념하면서 1976년에 항공항천박물관을 세웠다고 한다. 거기에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미국, 영국, 프랑스와 일본의 비행기들이 전시되였고 그 비행기들을 설계한 과학자와 비행기의 조종사들의 사진 및 이름들이 밝혀져있었다. 미국은 또 조선전쟁에 참여한 나라였기에 6.25전쟁 전람관도 세웠다. 거기에는 조선전쟁에서 전사한 장병 19명의 조각상이 세워져있었다. 철갑모를 쓰고 군외투를 입고 총을 든 모습이 산군인처럼 동작하고있는듯 했다. 미국의 조각예술의 경지를 보여주는것 같았다.

 우리는 또 미국에서 제일 크다는 쵸콜렛공장을 참관하기도 했다. 지하에 있는 이 공장은 그 규모가 엄청 크기에 우리는 기차를 타고 그 생산라인을 돌아보았다. 한편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쵸콜렛의 모양과 색갈 그리고 맛이 각양각색, 천차만별이여서 어느것부터 맛보았으면 좋을지 모를 정도였다. 별수 없이 우리는 공장측에서 선택해주는 쵸콜렛을 맛보았는데 과연 맛이 일품이였다.

 세계최대의 도시 뉴욕

 뉴욕 ㅡ 과연 세계의 최고라는 수식어가 가장 어울리는 도시가 분명했다. 뉴욕에는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금융과 예술 및 음식, 디자인과 외교에 이르기까지 역시 세계의 으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뉴욕에는 각양각색의 여러 인종이 모여살고있었고 수풀을 이루는 고층빌딩사이로는 별의별 풍경을 다 볼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을 다 돌아보기에는 시간적으로 판부족이였다. 할수 없이 우리는 한국인가이드의 안내하에 관광전용차를 타고 선택관광을 할수밖에 없었다. 워싱톤광장, 차이나타운(中国人街) 그리고 5번거리, 유엔본부, 맨하탄의 명소 등을 돌아보고 나중에 제국호텔에 이르렀다. 제국호텔은 102층이 되는 어마어마한 마천루였다. 제국호텔에서 제일 높은 층으로 올라가려면 스카이라이트(SKYRIDE- 天空乘车)에 탑승해야 했는데 1분에 366미터의 속도로 옥상의 전망대에까지 오르려면 1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전반 뉴욕의 동서남북을 다 볼수가 있었다. 뉴욕은 하나의 큰 섬으로 풍경이 화려하고도 독특했다. 아름다운 해변가나 멋진 빌딩이 보일 때마다 유람객들은 카메라를 들고 그러한 풍경들을 렌즈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제국호텔은 1930-0932년 사이에 지은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80년이 지나도록 건물이 낡았거나 시대적으로 뒤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소개에 따르면 제국호텔은 6만 톤의 강철, 6500개의 창문, 그리고 1000만장의 별돌 등으로 구성되였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건축 속도로 보면 매주마다 4층 반씩 올라갔다고 하는데 이 또한 미국건축사상 하나의 기적(410일에 거쳐 준공)이였다고 한다.

 이어서 우리는 세계적으로 소문난 쌍탑식빌딩인 원 세계무역청사박물관으로 가보았다. 세계무역빌딩은 원래 104층으로 높이가 451미터였다. 이 건물은 지난 2001년 9월 11일에 테로분자들에 의해 큰 화재가 발생하면서 그대로 무너졌었다. 당시 온도가 어찌도 높았는지 건물내의 모든 것이 다 녹아내리면서 사무실용품, 가게의 복장과 사치품 등이 뒤죽박죽 엉켜졌으며 무려 33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무고하게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911”테로사건박물관에서 모든 실황을 보든 순간 우리는 죄 없는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심정을 금할 수 없었으며 테러분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북받쳤다. 실로 눈물이 없이는 못 볼 장면들이였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해변가에 우뚝 서있는 자유녀신상을 보려고 유람선에 올랐다. 자유녀신상은 미국독립100주년 즈음하여 프랑스에서 미국에 선물한 것이었다. 녀신상은 오른손에는 홰불을 들고 있었고 왼손에는 “독립선언서”를 쥐고 있었다. 93미터의 높이로 우뚝 서있는 자유녀신상은 “헐벗고 굶주리는 자는 자유를 찾으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후에 남미의 흑인들이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대거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외 뉴욕에는 세계에서 유명한 연방저축은행이 있었다. 이 은행에는 각 나라들의 화폐가 있었고 각 나라 그러고 여러 부자들의 금고도 있다고 한다. 또한 뉴욕에는 미국국적을 가진 중국인이 20만 명에 달하고 이에 따라 중국레스토랑이 4000-5000개나 되며 주로 당지의 화교와 중국인유람객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성업을 이루고있었다.

 나이가리아 폭포

 세계에서 유명한 나이가리아폭포는 미국과 카나다 국경에 위치해있다.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에 인류한테 처음으로 발견됐다는 이 폭포는 말발굽형으로 3분의 1은 미국 쪽이고 3분의 2가 캐나다 쪽이라고 한다. 그날 유람선에 올라 폭포가 있는 쪽으로 다가갈수록 높이가 62미터나 된다는 이 폭포는 물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굉장했다. 그리고 물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하늘에 물구름이 생기고 아래로는 나이가리아강을 이루는 풍경이 아주 장관이었다. 순간, 우리는 저도 몰래 야 ㅡ 하는 감탄소리가 터질 수밖에 없었다. 유람선에서 우리한테 비옷 한 벌씩 나눠주었지만 폭포 쪽으로 다가가면서 폭포가 날리는 물갈기에 옷이 젖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런 풍경 앞에서 옷이 젖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겁기만 했다.

 사람들은 미국에 다녀가면서 나이가리아폭포를 못 보면 평생 한이 된다고 했는데 그것이 실말이었다. 기실 그날 나는 장장 12시간동안 버스를 타면서 멀미도 했기에 얼마간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정작 오고 보니 내가 진짜 오기를 잘했구나 하고 절로 자아칭찬을 하고 싶었으며 딸도 내가 잘 견지했다고 “표양”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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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달간의 유람에서 나는 우리와 다른 세계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또 감수해보기도 했다. 가보지 않고서는 진짜 상상도 할 수 없는 그쪽의 세계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미국유람, 그 행운을 나한테 준 딸과 사위 그리고 사랑하는 손자한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김철균 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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