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됨됨이 안 되면 반사회적人으로 전략할 수도 있어

▲ 길림주재 흑룡강신문 윤웅걸 기자
[서울=동북아신문]최근 중국관광객이 이집트에서 문화재에 낙서 하면서 세계여론의 말밥에 올라 화제로 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외교부는 “관광객들이 외국 여행을 할 때 반드시 현지 법률이나 문화를 지키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관광객들의 예의도덕 등 문명 관련 여러 가지 지침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런 개명치 못한 행실들이 실지 중국내에서도 하루 이틀사이가 아니고 고질화 되고 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 가도 샌다’는 속담이 있듯이 국내에서도 아무데나 낙서하고,아무데나 가래와 침을 뱉고 줄을 서지 않고,새치기 하고,큰소리로 떠들고,길을 갈 때에도 옆 사람을 전혀 돌보지 않고스스럼 없이 길 복판에서 활개치며 걷는 등 추태들이 일상화 되어 이젠 그저 ‘만성화’돼 보는 사람들의 ‘신경세포도 무감각 상태’에 들어선 것 같다.

 

연길공원에 세워진 윤동주시비의 낙서 흔적

81년도의 일이다.필자의 한 선배가 국비로 (개방후 첫 외국국비장학생) 일본에 가서 공부하게 되었다. 마침 북경대학 부속병원의 한 의사(여성)도 국비로 함께 일본땅을 밟게 되었다. 일본 도꾜에서 공공버스를 타게 되었는데 그 북경대학 부속병원의 국비생이 새치기로 먼저 버스에 올랐단다. 선배는 그래도 예의를 지키느라고 줄을 서서 차에 오르자 먼저 오른 동료가 중국어로 큰 소리치면서 자리를 마련해 놨으니 빨리 자기곁에 와 앉으라는 것이었다. 승객들의 눈총이 일제히 자기들한테 쏠리더라는 것이다.

선배는 귀국한 뒤 이 얘기를 들려주면서 당시 자기의 얼굴에 모닥불을 씌워놓는 창피감이 들어 차마 승객들을 마주 볼 수 없었단다.

필자가 2003년도에 취재차 일본에 갔을 때 일본인들의 예의를 피부로 직접 느꼈다. 일본인들에게 이런 예의범절이 고착화 된 배경은 어디에 있는가 물어보니 일본은 어린이 시절부터 철저한 예의범절 교육을 교과서의 주과목으로 설정하고 예의범절을 지키지 않으면 바로 엄한 벌을 준다고 했다. 또 예의범절은 일본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교육이라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이런 예의범절은 남을 배려하는 기본이다.

2002년11월에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조선과학원 창립 50주년기념행사차 조선 평양에 간 적이 있다. 방문단이 반도의 12대 명산중의 하나인 묘향산을 관광하게 되었다. 당시 중국관광객 30여명도 묘향산을 관광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관광객들의 매너였다. 깡통맥주에 소시지를 가득 갖고 올라가면서 길에서 맥주를 마시고는 이리저리 던지는가 하면 소시지도 껍질을 벗겨서는 마구 던지는 것이었다. 더욱이 꼴사나운 것은 조선인들이 보란듯이 큰소리치면서 떠들석하게 하는 추태였다. 일종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자존심이 울컥 하면서 그들한테 다가가 중국의 어디에서 왔는가 물으니 베이징에서 왔단다. 내가 당신들이 이렇게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되겠는가? 더우기 지금 한창 고난의 연대를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조선에 와서 이래서야 되겠는가라고 질타했다. 그러자 그들은 나한테 걸고 들 자세로, 나보고 누구냐고 하기에 내가 기자증을 내놓으면서 이미 당신들이 버린 깡통 등 쓰레기를 모두 카메라에 담았으니 버린 쓰레기를 다시 주으라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잘못을 인정하면서 버린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나의 한 친구 부부가 지난해(2012년)에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들이 박사학위를 취득했기에 아들 박사학위 수여식에 초청받았다. 한번은 길을 걷다가 친구의 부인이 한 흑인을 앞질러 가면서 그의 옆구리를 툭 다치게 되었다. 그러자 되려 그 흑인이 미안하다고 연속 사과하더란다. 그 광경을 뒤에서 본 아들이 조용히 길을 걸을 때 절대로 활개치면서 걷지 말고 더욱이는 앞질러 갈 경우, 좌우를 잘 살펴가면서 뭇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어머니에게 여쭈었다. 그러자 친구의 어머니는 대뜸 열 받아 하는 말이 이젠 네가 다 컸으니 어머니를 훈계하느냐 하면서 옥신각신 다투는 일까지 벌어졌단다.

이러한 추태들은 한국에서도 비일비재하다.

필자가 1989년과 1992년에 제주도에 갔을 때는 중국관광객이 없었지만 93년도에 갔을 때는 중국관광객들이 쌀에 뉘만큼 (물론 지금은 대부분 중국관광객) 있었다. 제주도의 한림공원에서 중국의 몇몇 관광객들이 벤치에 앉아서 팥빙수를 먹으면서 한 관광객은 웃통을 벗은 채 발톱을 깎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어이없어 뭐라고 말이 안 나왔다.

그런데 이러한 개명치 못한 행실이 조선족사회 특히 재한 조선족사회에도 만연되어 현지인들의 따가운 눈총 세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이미 한국 언론은 물론 조선족 언론에서도 대서특필하고 있다.

필자가 수시로 한국을 드나들면서, 지하철을 이용하며 살펴보면 재한 조선족들은 지하철을 이용할 때 누가 중국에서 오지 않았는가 이른바 ‘의심’할까봐 중국어로, 큰 소리로, 자리가 저기 있다고 외쳐대는가 하면 노인석에까지 스스럼 없이 털석 주저앉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무릇 한국에 다녀온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지하철이 아무리 붐벼도 청장년들은 노인석에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럼 왜 중국에서, 더욱이는 조선족사회에서 예절이 무색해지고 언어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남을 배려하는 미풍양속이 사라지고 있는가?

가장 근본적인 것은 교육이다. 즉 학교교육은 물론 가정교육에서 의식적인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더욱이 이미 이러한 행실들이 몸에 배어 무의식적으로도 자녀앞에서 그런 행동이 나오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을 살펴보면 어린이를 이끌고 공공버스에 오를 때 적지않은 부모들은 자리만 있으면 아이를 재촉해 빨리 앉으라고 하지 주위의 어르신을 먼저 앉으라고 권고하지 않는다. 한창 자라는 어린이들에게 바로 잘못된 것을 무의식적으로 가르쳐 준 것이다. 밥상에 앉아서도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어야 후손들이 수저를 든다는 예의범절, 맛나는 음식이 있으면 우선 나이 든 분에게 권해야 한다는 예의범절 등등은 현재 조선족사회에서 많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말에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조선족사회에서 예의범절이 급속히 사라지게 되어 우리의 후손들이 이른바 ‘양반’ 행실을 못하고 있는가? 필자가 분석하건대 이렇게 예의범절이 급속히 사라진 시기는 50년대의 반우파투쟁, 인민공사화 공산운동, 민족정풍 시기이며, 나아가서는 문화대혁명시기가 최절정이었다고 본다.

지금의 20대 30대 40대는 문화대혁명시기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의 자녀들, 즉 지금의 50대 60대 70대의 후손들일 것이다. 이들 50대 60대 더나아가서는 70대는 당시 한창 문화대혁명시기에 ‘네가지 낡은 것을 타파’하는 현장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면서 머리가 세뇌되기 시작했고, 그 여독으로 인해 후대들에 대한 최소한도의 인성교육을 시키지 못한데 있고, 더욱 중요한 것은 학교자체가 아예 이러한 예절교육을 홀시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람의 됨됨이가 안 되면 부모를 존중하기는커녕 이상을 존중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사회에 늘 불만이 생기면서, 자칫하면 반사회적인 인간으로 전락될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의학상으로 판명되었다. 이런 반사회적인 인간을 의학적으로 ‘인격장애’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예절교육, 공중질서지키기, 배려문화 등등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교육이 그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박하게 다시 거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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