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손호연 시인의 10주기를 기리며 -

[서울=동북아신문]한국인 단가(短歌) 작가로서 일본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고(故) 손호연 시인의 10주기 추모행사가 지난 22일에 ‘손호연 시인의 집’에서 있었다. 일본 황실에 초대되어 갈 만큼 일본 단가를 통하여 한일 간의 우정을 쌓고 신뢰를 승화시키는 것을 노래했던 고(故) 손호연 시인의 단가 101편을 골라 고인의 딸인 이승신 시인이 4개 국어로 번역한 ‘손호연 시집’을 출간해 헌정하는 기념식이 있었다.

본 연구재단의 문화협력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는 이승신 시인은 평소 짧은 단가이지만 ‘한 줄 시(詩)의 힘’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고(故) 손호연 시인의 뜻을 따라 자신도 한일 양국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지역에 사랑과 평화를 전하는 메신저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히며 활동하고 있다. 특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소재로 2권의 시집을 펴내며 일본인들을 위로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이번 추모행사에서 나카니시 전 교토 예술대 총장은 “손호연의 시에는 국경을 뛰어넘는 사랑과 평화의 간절한 바램이 있다. 이것이 인류의 미래를 열 것이다”라며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손호연 시인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 인사말에 전했다.

2005년 한일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는 고 손호연 시인의 시구인 '절실한 소원이 나에게 있지, 다툼 없는 이웃이 되라'는 시구를 인용하며 양국 관계의 회복을 강조하기도 했었다. 이처럼 고인이 남긴 단가에는 한일 양국 관계의 회복을 강조하는 평화정신이 깃들어 있다. 현재 냉랭한 한일 관계를 풀어가는 해법으로 우리가 고인의 뜻을 기억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 연구재단은 고 손호연 시인의 10주기를 기리며 고인이 불렀던 사랑과 평화의 노래에 담긴 뜻을 따라 한일 간에 우정을 쌓고 신뢰를 승화시키는 일을 앞으로도 계속 전개해 나갈 것이다. 
  
(사)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정책기획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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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신의 시로 쓰는 컬쳐에세이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 마음을

몇 분이 효녀 딸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게 아닙니다

시작은 이랬습니다

미국에 오래 있는 동안 조국을 찾으면 가지고 온 한국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구미의 책들을 번역해 책으로 내며 구상 조병화 선생을 찾아가 일본이 감격해 하는 시인 어머니의 ‘무궁화’ 제목의 시집들을 번역해 주십사 여러 해 부탁을 드렸습니다

이 짧은 시를 외국 어휘로 바꾼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하시어 의미라도 좀 전달했으면 해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저 누구에게 의존만 하려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 가시기 전 일어는 다 모르지만 시인의 마음을 좀 알기에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겨우 한 줄, 누가 좀 도와주면 석 달이면 될 줄 알았습니다

첫 책이 번역되어 나오기까지 4년이 걸렸습니다

한 줄에 긴 장편 소설이 들어 있어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도 사랑하는 조국의 독자들의 반응을 몹시 궁금해 하였습니다

많은 분이 그 뜻을 다 표현 못한 번역임에도 진한 반응을 보였고 시인을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했습니다

그렇게 생전에 한 것이 이어져 이번 시집이 어머니의 모국어로 4번 째, 한국과 일본 독자들의 반응에 감동되어 영어와 불어까지 4 언어를 조심스레 시도해 봅니다

손호연 시인을 사랑과 평화의 시인이라고 하지만 생각해 보면 사랑과 평화는 다른 것이 아니겠지요

동아시아 끝자락에 살아 온 나 오로지 평화만을 기원하네

동북아시아 끄트머리 한 작은 여성이 깊고 커다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침략과 식민지와 해방, 민족의 전쟁과 피난과 군정의 근현대사와 역경을 온 몸으로 받으며 오로지 평화만을 기원했고 그 기원을 63년 한 줄의 시로 기록했습니다

가족과 자식을 내려놓고 시에 몰두하고 싶다는 시를 보며 가족에 헌신하신 것만 보았던 제가 그런 순간의 어머니 마음을 시를 통해 만나기도 합니다

그 깊은 사랑을 농축하고 절제하여 지은 시 2000여 수 중 101수를 어머니 詩作 멈춘 지 10년 만에 골라 보았습니다

버릴 수 없는 가슴 저미는 주옥같은 시들을 버렸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요 환경이지만 아시아 끝에 숨겨진 보석 같은 정신을 드러내어 누구나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애국이요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해방 후 반세기 너머를 애국자라면 단가를 그만 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로 매일 온종일고뇌했으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은 17살 동경 유학에서 만난 시성 사사끼 노부쯔나의 ‘중도에 포기하지 마라 일본을 흉내내지 말고 조선의 아름다움을 쓰라’던 스승과의 결연한 약속을 택한 것이요 인류애를 택한 것이며 그것은 결국 나라와 민족을 택한 것입니다

1979년 단가 연구로 다시 한 동경 행에서 만엽집 연구 제 1인자인 나카니시 스스무 선생이 단가와 만엽집의 뿌리는 1400년 전 백제라는 것을 알려주어 민족시의 유일한 후계자로서의 사명을 더했기 때문입니다

그 험난한 과정에 특허 발명 지적재산권의 한국의 선구자인 이윤모 박사의 외조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것으로 같은 때 30주기를 맞으시는 아버지를 기리며 동아시아 끝, 분단된 한 작은 나라에 살아 온 시인의 가슴에 품어 온 한없는 평화의 일념이 시공을 넘은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기를 그래서 그 시심이 평화의 밑거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손호연 가집"을 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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