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요즘 우리사회는 속도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핸드폰은 LTE, 기차는 KTX, 배달은 총알오토바이로 달리는 속도사회에 살고 있지만 시간이 남아 있다는 강한 느낌은 별로 없다. 오히려 더 시간에 쫓기면서 어학, 일반지식마저도 네이버지식을 통해 숙성시키고 있다.

하루 24시간 꽉꽉 차 있어야 시간의 무게감을 느끼며, 그 무게감에 눌려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 이 24시간에 빈틈이 있으면, 괴로움을 당한 것 같다. 적지 않은 젊은 세대들은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뉴스검색, 게임을 하면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고 있다. 어떤 대학생이 지하철이 한강대교를 지날 때, 작은 시집을 들고 있을 때 우아하다고 느끼기보다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확률이 더 높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일상을 살펴보면, 아침 7시부터 일어나서부터 유치원, 태권도,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 저녁 6시에 들어오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아빠 놀아줘, 심심해!”이다. 이런 아이들을 일요일에 한 시간 동안 혼자 남겨주면, 하는 말이 “심심해 죽겠어!”이다. 그러면 대부분 아빠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편하게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공간은 공원, 어린이 놀이터, 어린이 박물관 등 만들어져 있는 시설을 찾는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창밖의 해돋이를 보면서 기지개를 펴고, 밖에 있는 멍멍이가 달려와서 꼬리를 한들한들 흔들고, 살짝 미소를 짓고 함께 산책을 할 때 담담한 행복감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시간의 느림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됐다. 시간의 느림을 찾기 위해, 매년 1월1일 새해의 해돋이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견디면서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찾는 것이다.

우리한테 100년 하면 너무나 오래된 과거이다. 하지만 100년의 과거가 현재의 지속으로 느껴질 때 그 시간의 무게감은 다르다. 얼마 전에 중국의 서북정북대학교의 교수 한 분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한국을 따뜻하게 느끼는 다른 하나의 이유는 100년전에 그의 증조할어버지가 청나라를 방문한 조선사신과 교류를 했기 때문이라며 그 조선사신을 찾고 싶어 하였다.

그의 증조할어버지는 당시 정1품의 양강총독으로써 지금의 부총리급에 해당하는 고위직이었다. 그런 위치에 있는 증조할아버지가 당시 조선사신의 시집에 서론을 두 편을 썼기 때문에 그는 확실하게 당시 조선사신은 문학재능이 탁월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시집을 찾기 위해 서안에서 북경도서관으로 다니면서 100년의 희열을 느꼈다고 고백하였다.

후에 우리 부경대 역사학과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그 조선사신이 천재이신 녕재 이건창이라는 확인하여 주었다. 그때 그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처음 밟은 한국 땅이지만 친근하고 익숙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두 집안이 다 명문귀족이 아니고, 현재 그의 신분이 교수가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면 나는 그의 미소를 보고 진정으로 희열을 느낀 것을 내 몸으로 감지하지 못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냇물처럼 잔잔하게 내 몸속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경상도 사투리를 볼때 나의 증조할아버지가 한국 땅에 살았던 조선인이었다는 것을 확신하지만, 나는 서북정북대교수처럼 큰 희열을 느끼지 못하였다.

시간은 모든 딴딴하고 굳은 것을 연기처럼 사라지게 한다. 우리가 무겁다고 느낀 추억들은 하나의 가랑잎처럼 가볍게 날아가 버릴 수 있다. 또 역으로 우리옆으로 가볍게 스쳐지나 간 만지면 부스러기로 변할 수 있는 가벼운 가랑잎도 100년, 그 이상의 시간이 무게감을 줌으로써 존재의 의의를 밝혀 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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