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편집자 주 : 이 글은 중국조선족 표기법으로 된 것을 한국식으로 바꾸지 않았음을 양지 바란다.> 

1

내가 태여나던 해 삼촌은 군부대에서 복원해 고향에 돌아왔다. 그해는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기전해였다. 삼촌은 이름이 영규였고 우리 파평 윤씨가문의 셋째이자 막내였다. 아버지형제는 모두 셋이였는데 아버지는 항렬로 둘째였고 큰 아버지는 광복후 마을 자위대대장으로 있다가 마을에 잠입한 강건너로 도망갔던 지주잔여세력들의 보복으로 총에 맞아 사망하고 기실은 아버지가 여직껏 큰 아들 큰 형노릇을 해온 셈이다. 아버지는 이름이 순규였고 큰 아버지 이름은 봉규였다. 삼촌은 아버지보다 여덟살이나 어렸지만 늘 형이 하는 일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다투기가 일수였다. 삼촌는 어릴 때 크게 앓았는데 할아버지가 민간료법을 쓴다면서 영규의 다리에 숱한 뜸을 떴다. 그래서 그의 다리에는 뜸자리가 희뜩희뜩하게 가득 남아있었다. 삼촌이 어릴 때 마을사람들은 그의 다리에 난 뜸자리를 보고 얼룩 송아지라고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래서 삼촌의 어릴 때 별명이 《얼룩이》였다. 삼촌은 어릴 때 공부를 제대로 못했지만 후에 부대에 입대해서 보고 듣고 배운 지식도 많았다. 그리고 책보기를 무척 즐겼는데 책에서 배운지식을 응용한 덕인지 머리굴리기를 잘해 린근사람들은 《얼룩이》라고 하면 삼촌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머리를 잘 굴린 덕에 남못지 않게 여유있는 생활을 누리고있었다. 성격이 좀 우락부락해서 늘 아버지와 의견분기로 작은 다툼이 잦게 일어나군 했다. 하지만 삼촌네는 우리보다 더 잘살았다.

▲ 이승국 : 중국 연변 조선족소설가. 연변작가협회 회원. 수설, 수필 수십편. 수상 다수.
나의 아버지는 온순한 편이였지만 우격이 세였고 판가름이 명백한 사람이였다. 그래서 삼촌의 일거수일투족을 늘 마땅잖게 여기면서 형으로서의 의무감으로 훈계아닌 훈계를 하군 했다. 나의 아버지는 순수하고 투박한 시골 농사군이였지만 마을과 린근에서 《장인(상례나 장례를 치러주는 사람)》으로 유명해 아버지를《신선》이라고 불렀다. 동네나 이웃마을에 상사가 나면 어김없이 아버지를 청해 상례와 장례행사를 돌보게 했다. 아버지가 언제부터 《장인》이 되였는지는 알수 없으나 내 어렸을적 기억으로는 아버지가 늘 이웃집 제사나 장례에 다니는것을 많이 보아왔던것 같다. 아버지가 제사나 장례에 갔다오면 깊숙한 호주머니에서 사탕이나 색과자(과자에 물고기나 짐승모양을 낸후 색을 올린 과자 일종)같은 당과류를 꺼내 나에게 주고는 귀신을 대하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하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할머니는 내가 스무네살 먹던 해,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세상떠난지 20년후에 돌아가셨다. 내 어린시절 기억속의 할머니는 머리가 하얗게 서리내린듯 했고 늘 흰저고리를 입고 있었으며 흰 고무코신을 신고 다니셨다. 그 당시 그런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로인들이 더러 있긴 했지만 극히 드물었다. 할머니는 남들이 명절에만 입는 한복을 평소에도 입었는데 한복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할머니가 세상뜨자 아버지와 삼촌사이에 또 다툼이 벌어졌다. 원래 할머니한테는 반지가 하나 있었는데 할머니가 아까워 잘 끼지 않고 궤짝에 넣어두고있던 금반지였다. 꽤나 값이 갈듯한 반지였지만 여태껏 할머니가 생전이여서 누구도 그 반지를 넘보지 못했다. 그 금반지는 할머니가 시집올 때 할아버지가 약지에 손수 끼워준 반지라고 하면서 할머니는 생전에 우리앞에서 그 금반지를 꺼내 베천으로 윤기나게 문지르는것을 여러번 봤었다.

아버지는 《장인》이였던만큼 사람이 죽으면 치러야할 일, 갖추어야 할 물건같은 이런저런 조목들을 일일이 알아서 처리했지만 삼촌은 그런 귀신놀음에는 흥취가 아예 없는듯 아버지의 의사에 따르려고 하지 않았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좀 그만 하오. 죽은 사람이 뭘 안다고 이걸 지켜라, 저걸 조심해라 그러오. 참 답답하오.》
하지만 아버지의 신념은 굳었다.
《안되면 안되는줄 알아라. 고인이 쓰던 물건에 욕심을 부리면 액운이 닥칠것이니 사욕을 버리고 내 말에 따르거라.》
아버지는 금반지가 든 나무함을 손안에 꼭 쥐고 삼촌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삼촌의 얼굴은 금시 돼지간처럼 검푸르게 변하더니 맘대로 하라면서 손을 허공에 내젓고는 문을 박지르고 나가버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러는 삼촌을 거들떠도 보지 않고 웃칸으로 올라가 이미 염습을 치른 칠성판에 누워있는 할머니의 옷깃을 들고 베천에 싼 금반지를 품속에 꽁꽁 밀어넣으면서 혼자소린지 누굴 들으라고 하는 소린지 중얼거리듯 말했다.
《액이란 멀리 있는것이 아니라 내가 경계를 늦추면 어느새 내 곁에 와 있는거야.》
시골의 장례는 옛식대로 사흘장례를 치르게 되여있었다. 하지만 간편하고 산 사람이 손쉽게 하는것이 도리라고 불필요한 례법을 없애고 주요한 행사만 치르고있었음에도 아버지는 한사코 자신이 알고있는 장례법에 따라 장례를 치르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이 미리 봐두었던 묘자리에 개토하게 했고 남들이 잘 나서지 않는 상사라 먼 친척되는 할아버지를 모셔 죽은 사람의 이름을 세번 부르는 복(復), 즉 초혼을 하는것부터 시작을 해서 입관을 하고 성복을 일구고 운구, 하관, 위령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맡겼다.
이튿날 령구를 싣고 묘지에 도착해서 하관했는데도 삼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얼굴은 많이 굳어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면서 산아래에 눈을 주었다. 하지만 삼촌의 그림자를 나타나지 않았다. 례의대로라면 이것은 최대의 불효였다. 아버지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한참 있더니 어금이를 부드득 소리나게 으깨물더니 먼 친척되는 할아버지한테 시작하자고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러자 로인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호주머니에서 종이장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간신히 글자를 확인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유세차 을축년 5월 20일, 학생…》
《잠깐…》
이때 갑자기 언덕아래에서 삼촌이 손사래치며 헐레벌떡 뛰여올라왔다. 삼촌의 출현에 모두의 얼굴에는 안도의 기색이 비꼈고 아버지의 찌프려졌던 량미간도 서서히 펴지더니 손을 내밀어 헐떡거리는 삼촌을 자기옆에 끌어당겨다 세웠다. 어느새 삼촌의 큰 눈에서는 닭똥같은 눈물이 뚤렁뚤렁 떨어지고있었다. 아버지는 그러는 삼촌을 흘깃 건너다보고는 먼 하늘을 한참 우러르더니 다시 고개를 깊숙히 숙였다. 그렇게 성분을 만들어 장례는 무사히 마무리가 되였고 금반지 풍파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조용히 가라앉았다.

2

아버지는 금반지로 인해 삼촌의 비위가 많이 상해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어느날 아버지는 아침밥상에서 어머니한테 홍두깨같이 불쑥 한마디 했다.
《집에 있는 송아지를 영규네를 주기오.》
《송아지는 왜?》
어머니는 밥을 입에 문채 아버지의 수염이 더부룩한 얼굴을 의뭉스레 쳐다보았다.
《전번에 금반지때문에 걔한테 좀 안돼서 그러오.》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손에 들었던 숟가락을 상우에 내던지더니 발딱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뭐 부잠두. 생원(삼촌)네는 땐삥썅(电冰箱),세탁기, 없는게 없이 우리보다 더 잘사는데. 안돼꾸마. 》
《형제간이 그런 의리로 살지 뭘 그러오. 그리고 서로 잘 살면 좋지.》
《서로 잘산다구? 당신은 신선이 아니라 보살입꾸마. 죽은 형님의 무휼금도 혼자 해먹은 사람이 형제간의 의리는 무슨 개떡같은 의리?》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버지의 얼굴은 금시 굳어져버렸다. 그 일만 입에 올리면 아버지는 할 말을 찾지 못했고 모진 상처를 입은 모양으로 암담한 기색까지 지었다.
나는 아버지가 그 일로 인해 마음속에 모진 상처를 입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의 사심을 뼈저리게 느꼈을테지만 아버지는 그후에도 동생을 크게 탓하지 않았고 다시는 그 일을 입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다.   
삼촌의 머리는 정말 총명하다고 해야 할것 같다. 돈에 관련되는 일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어떻게 머리를 굴려서라도 꼭 그 돈을 손에 넣고야 마는 돈 집착이 대단한 사람이였다.
호도거리를 시작하기전해 봄이였다. 삼촌은 향정부의 민정조리로 사업하는 친구를 찾아가 문화대혁명시기에 끊겼던 렬사유가족무휼금를 다시 지급해줄수 없는가고 탐문했다. 삼촌의 이 생각은 노다지 그 자체였다. 삼촌은 이 일을 아버지한테 알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때 아버지가 할머니를 모시고있었기때문에 이 일이 성사되여 아버지가 알게 되면 자기한테는 한푼도 차례지지 않을것임을 불보듯 빤히 알고있었다. 친구가 힘써 보겠다고 하자 삼촌은 그 친구한테 소문을 내지 말라고 천당부만당부하면서 닭 두마리까지 가져다 주고는 친구의 입을 막아놓았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가 일을 성사시켜주었다. 그 당시 돈으로 백여원에 달하는 무휼금을 가로채 자기 호주머니에 넣고말았다.
워낙 순박한 농군인 아버지는 그런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고 또한 그렇게 해도 되는지도 모르고있었다.
국경절이 다가오는 어느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산너머 금곡마을로 칠순을 훌쩍 넘긴 외가집 할머니 생신이라 외삼촌집으로 갔다. 그런데 아버지가 외할머니 생신술자리에서 문화대혁명때 박해받은 사람들한테 무휼금이 내려왔다는 말을 얻어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인차 렬사칭호를 받은 큰 형님을 머리에 떠올렸다. 그럼 할머니도 렬사유가족무휼금을 받을수 있을것이 아닌가?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인차 삼촌을 찾아갔다. 아버지의 말에 삼촌의 얼굴은 금시 파래지더니 손사래를 치면서 오리발 내밀듯 딱 잡아뗐다.
《큰 형님의 렬사무휼금은 문화대혁명때 끝났는데 뭘 그러오. 나도 알아봤소. 아니, 아니라니까.》
《렬사탑에 큰 형님 이름이 떡하니 새겨져있는데 무휼금을 안주다니 말이 안되지.》
《나라에서 하는 일을 우리 촌놈들이 알도리 있소?》
《글쎄다, 그전에 받았으니 괜찮다마는…》
순박했던 아버지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삼촌의 그 말을 믿어버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어머니는 삼촌을 잘 아는지라 여기에 꼭 삼촌의 꿍꿍이가 있을거라고 여기고 아버지 몰래 향정부로 찾아가 끝내 삼촌의 속내를 밝히고말았다.
어머니의 말에 사실을 알게 되자 아버지의 얼굴은 퍼렇게 독이 올라있었다. 어머니는 성난 암펌처럼 삼촌을 욕해댔다. 나는 그러는 어머니를 처음 보았다.
《살다 살다 별 꼬라지 다 보겠네. 어마이, 아들 하나 잘 뒀습꾸마. 가서 그 잘난 아들한테 물어봅소. 그 돈을 가지고 얼마나 잘 살겠냐구?》
어머니의 성난 암소모양에 할머니는 도대체 무슨 감투끈인지 몰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돈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그 놈 자식이 어마이앞으로 내려온 큰 형님의 렬사무휼금을 가로 챘다꾸마.》
할머니는 세상에 벼락맞을 놈이라고 삼촌을 욕하더니 구들을 내려갔다. 그러는 할머니를 아버지가 말렸다.
《어마이, 관둡소. 엎지른 물인데 욕해봤자 소용없읍꾸마.》
아버지는 옆에서 삼촌을 욕하는 어머니도 제지시키더니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동네에 나가 술에 취해 들어왔는데 바깥 마루에 걸터앉아 혼자 하염없이 락루했다. 원래 말수가 적은 아버지는 술로 자신의 마음을 위로 받으려고 했고 눈물로 삼촌을 용서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일찍 저 세상에 간 큰 형님을 원망했다. 큰 형님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던들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것이 아닌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와 나까지 그 일에 대해 모르는척 해온지 한달이 지난 어느날 저녁, 삼촌은 숙모와 함께 풀이 잔뜩 죽어 후줄근해진채 우리 집에 들어섰다. 나는 십상팔구 짐작이 갔다. 아니나다를가 삼촌은 연기하듯 할머니와 아버지앞에 무릅을 꿇으면서 울음부터 터뜨렸다.
《엄마(삼촌은 할머니를 그렇게 불렀다), 형님, 아주머니. 내가 정신나간 사람이오. 날 맘껏 패주오.》
어머니는 말도 없이 앵돌아져 앉았고 할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은 무표정한 채 굳어져있었다.
《정말 볼 면목이 없슴다.》
숙모가 간신히 한마디 뽑았다.
《볼 면목이 없으면서 왜 왔냐? 보기도 싫으니 날래(어서) 내 앞에서 꺼지거라.》
할머니는 부들부들 떨리는 소리를 겨우 내밷았다.
삼촌은 그저 눈물만 훔칠뿐 한마디 말이 없었다. 보매 엄청 후회하며 뉘우치고있는듯 했다.
한참후 아버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늘을 기다리느라 한달이 걸렸구나. 그래도 네 발로 이렇게 찾아와서 참 다행이다. 돈을 누가 쓰던 상관없지만 사람은 량심으로 살아가는게 아니냐? 너도 자식있고 나도 자식있는데 이런 일이 자식들한테까지 련루가 될가봐 그게 더 근심이다.》
《형님, 미안하오. 흑흑》
삼촌은 울음을 터뜨리며 아버지 무릅을 끌어안았다. 아버지도 삼촌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러는 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지고있음을 나는 보았다.
그때 숙모가 호주머니에서 십원짜리 묶음을 꺼내 할머니앞에 내놓았다.
《그때 받았던 그 무휼금임다.》
돈을 보자 아버지는 허구프게 웃으면서 돈을 도로 숙모의 호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제수, 내가 그 돈때문에 영규를 나무라는게 아니오.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할가봐 그게 가슴에 맺쳐 그러는거요. 제수도 이번 일을 가슴에 손얹고 잘 생각해보기 바라오. 그 돈은 두었다가 조카 학교갈 때 학비에 보태오. 그놈 아버지 닮아서 머리가 좋던데.》
그리고는 태연하게 미소까지 보였다. 난생처음 이렇게 생소한 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3

큰 아버지는 아버지와 삼촌과 많이 달랐다. 큰 아버지는 우리 집안에서 유일하게 일제강점시기 중학을 마친 사람이였다. 큰 아버지는 16세 나이에 그 시기 룡정에 주재해있던 간도일본총령사관에 들어가 잡일도 해보았고 일본이 투항하고 일본군이 개복자결하는 모습도 보았으며 일본군이 던지고 간 군담요도 덮어보았다. 그리고 1947년에 시작된 토지개혁에도 적극 참가해 공산당에도 가입했다. 큰 아버지는 그렇게 집단적인 생활을 즐겼기에 23살에 촌의 자위대대장이 되였다. 그때 자위대 임무는 마을을 순라하면서 토지개혁때 청산맞은 지주잔여세력이 강건너에서 강을 건너 마을에 들어와 보복하는것을 막는것이였다. 원래 마을에는 지주가 한호였고 부자집이 두집이였다. 그들은 집과 재산을 청산맞자 강을 건너가 여러곳에서 쫓겨온 지주, 부자들과 세력을 모아 항상 두만강변의 여러마을에 들어와 소란을 피우며 안전을 위협하고있었다. 광복을 금방 맞은 때라 세상이 뒤숭숭했으며 곳곳에 토비와 지주무장세력이 둥지를 틀고있었기에 마을에는 자위대대원 30여명이 번갈아가며 순라를 했고 밤이면 촌지부 보초실에 모여 항상 대기하고있었다.
1947년 늦가을, 밖에서는 차가운 가을비가 구질구질 내리고있었다. 어둠이 깔린 마을은 지척을 분간할수 없을 정도로 칡흑같이 어두웠다. 밖은 비소리뿐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마을은 깊은 잠에 빠져 정적속에 잠겼다. 문틈새로 처마에서 떨어지는 락수물소리가 낮잠자는 나그네의 코고는 소리마냥 고르롭게 비집고 들려왔다. 촌지부보초실에는 큰 아버지를 비롯한 자위대원 다섯명이 순라를 마치고 돌아와 석유등불밑에서 두런두런 한담을 나누고있었다. 그들은 서로 귀신이야기부터 시작해 마을에 처녀가 몇명이고 총각이 몇명인데 비례가 맞지 않는다는둥 요즈음 누구와 누구가 눈치가 이상하다는둥 하면서 잡담을 늘여놓고있었다.  그렇게 자정이 가까와 오자 큰 아버지는 래일 일밭에 나가야하겠기에 자위대원들을 자게 하고는 소피보러 웃옷을 머리에 쓰고 밖으로 나왔다. 비는 좀 누그러든듯 했으나 빗발은 차갑게 몸을 엄습했다. 큰 아버지는 몸을 움츠리고 울바자 가장자리에 나가 숫총각의 기세로 한배짐 갈겼다. 큰 아버지가 몸을 으스스 떨며 바지를 추슬리는 순간 얼핏 눈결에 열대여섯메터쯤 떨어진곳으로부터 커쿨진 검은 그림자 여러명이 이쪽으로 다가오는것이 보였다. 찬찬히 여겨보니 행동거지가 이상했고 손에 무언가 긴 물건이 들려있었는데 이쪽을 향해 가리키고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친 큰 아버지는 몸을 돌려 집으로 달려들어가며 소리질렀다.
《놈들이다!》
《따땅…!》
총소리와 함께 큰 아버지는 문고리를 잡은채 마루우에 쓰러졌다. 이때 집안에 있던 자위대원들이 큰 아버지의 고함소리와 총소리에 총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들은 마루우에 쓰러진 큰 아버지를 보자 대뜸 사태의 엄중성을 알았는지 너도나도 어둠속에 대고 눈먼 총을 쏘아댔다. 그 사이 그 검은 그림자들은 자취를 감추고말았다. 마을뒤쪽에서 개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총소리가 마을을 깨운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큰 아버지는 영문도 채 알지 못한채 누군지도 모를 자객들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두고 말았던것이다. 그때 큰 아버지 나이가 23살이였다.
이 사건은 전 현을 들썽케 했고 린근 마을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더구나 죽음을 경험한 우리마을은 인심이 뒤숭숭해 누구도 해만 떨어지면 밖으로 나가지 못했으며 문도 두겹세겹으로 잠궜다. 촌의 자위대는 밤낮으로 순라했고 력량도 증가해 마을을 지켰다. 그렇게 공포의 나날들이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사람들은 차차 경각심이 뒤쳐졌고 큰 아버지의 죽음도 점점 잊혀져갔다. 그해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닥쳐오자 한통의 희소식이 마을로 날아왔다. 강건너에 있던 지주잔여세력들이 그곳의 정부제도에 맞서다가 여러명 사살되고 더는 발붙일곳이 없자 남쪽으로 도망쳐버렸다는것이였다. 그 소식에 마을사람들은 또 한번 광복이라도 맞이하듯 들끓었다. 온 마을은 축제의 기분처럼 사람마다 기쁨에 겨워 즐거워했다. 우리마을뿐아니라 린근의 여러마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큰 아버지 사살사건은 한통의 소식으로 일단락 지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이게 끝이 아니였다. 큰 아버지의 후사처리문제였다. 많은 사람들이 큰 아버지의 죽음을 잊고있었지만 할아버지만은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고있었다. 태여나서부터 흙에 묻혀 살아온 할아버지는 봄에 씨뿌리면 가을에 수확하듯 모든것에 명백히 하며 순박하게 살아온 농부였다. 그래던만큼 정부에 대한 믿음도 컸다. 할아버지는 정부에서 큰 아버지에 대해 후사처리를 해주기바랐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정부에서는 가타부타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자기의 아들이 이렇게 피를 헛되게 흘리게 할수 없다고 생각했다. 전쟁마당에서 전사한 사람들도 위대하지만 자기 아들도 그들만 못지 않게 위대하다고 여겼다. 정부의 의도는 알수 없지만 따질것은 따져야 한다는것이 할아버지의 도리였다. 일단은 할아버지의 의사를 정부에 전달하는것이 첫보조였다.
어느날 할아버지는 열살도 채 되지 않은 삼촌을 데리고 십여리길을 걸어 구공서로 찾아갔다. 할아버지가 삼촌을 데리고 간데는 리유가 따로 있었다. 첫째는 삼촌이 나이가 어렸기에 아무말을 해도 크게 해가 될게 없었고 다른 하나는 그때 삼촌은 어린 나이에도 머리가 잘 돌아 말을 어른처럼 사리에 맞게 곧잘 했기때문이였다. 그러니 삼촌의 머리는 날 때부터 총명했던것이 분명했다.
구공서에 이르자 할아버지는 도대체 누구를 찾아야 할지 마음이 당황스러웠다. 집에서 떠나올 때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으나 정작 위엄스레 앞을 가로막은 구공서 나무간판을 마주하자 위구심이 서서히 마음한구석으로부터 괘여올라왔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게 아닌가하고 생각을 다시 해봤으나 그래도 해결책은 꼭 있을거라고 여겨온 할아버지였던만큼 신심도 컸다.
구공서 대문에 들어서자 총을 든 누런 군복을 입은 보초병이 앞을 막아나섰다.
《누굴 찾습니까?》
어정쩡 그 자리에 서버린 할아버지는 금시 대답을 못하고 두눈이 초롱초롱해 누런 군복의 보초병 손에 잡힌 보총을 호기심 가득차 바라보는 삼촌을 툭 건드렸다. 삼촌은 인차 할아버지의 의사를 알아차렸는지 오돌차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오봉촌에서 왔슴다. 우리 형님은 놈들 총에 맞아 죽었슴다.》
삼촌의 말에 보초병은 인차 태도를 바꾸며 알흔체했다.
《몇달전에 반동파 총에 맞아 희생된 오봉촌의 그 동무 가족입니까?》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보초병은 할아버지와 삼촌을 구장사무실로 안내했다. 구장은 할아버지 나이와 비슷해보이는 구레나룻을 한 사람이였다. 좀 거칠어보이긴 하지만 첫 대면인데 많이 친절했다. 들은바에 의하면 구장은 항일련군에서 소대장으로 있던 항일투사였고 고향은 함경도 길주라고 했다.
구장은 푸접좋게 웃으며 할아버지와 삼촌한테 자리를 권한후 마주앉았다.
《미안합니다, 우리가 일에 너무 라태해진것 같습니다. 그런데 봉규동무의 사망은 전사가 아니라서 아직 렬사로 비준되지 못한것 같습니다. 우리도 여러모로 알아보고있는 중입니다만…》
《그럼 우리 봉규가 그렇게 피를 헛되이 흘려야 된다는건가유?》
《그런 뜻이 아니라 아직 명확한 규정이 없어서 그럽니다.》
구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삼촌이 자리에서 발딱 일어섰다.
《어르신님, 우리 형은 마을을 지키다가 놈들 총에 죽었슴다. 전장에서 싸우다가 죽은 사람이나 우리 형이나 다 같은 놈들 총에 맞아죽었는데 왜 전장에서 죽으면 렬사구 후방에서 죽으면 렬사가 못됨까?》
구장은 놀란 얼굴로 삼촌을 한참 내려다보더니 삼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잘 말했다. 참 담차구나. 이 아저씨가 너의 소원을 꼭 풀어주마.》
구장은 할아버지한테 큰 아버지의 렬사칭호문제를 꼭 상급에 제기해 유가족의 소원을 풀어줄것을 약속했다.
삼촌의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효과가 있을줄은 할아버지로서도 생각지 못한 일이였다. 할아버지는 속으로 삼촌을 데리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으며 막내아들에 대한 대견함으로 마음이 즐거워지기까지 했다.
구공서를 나오자 할아버지는 삼촌한테 시골에선 쉽게 먹을수 없는 꽈배기를 하나 사주었다. 그것은 삼촌이 태여나 난생 처음 먹어보는 별미음식이였다.
그해 겨울 정부에서는 큰 아버지한테 렬사칭호를 수여하고 우리 가족을 렬사유가족으로 칭해주었다. 우리 가족은 친인을 잃었지만 그만큼 지위와 대우가 높아졌고 할머니앞으로 무휼금까지 내려왔으며 명절이면 정부에서 구장을 비롯한 어르신들이 위문을 왔다가군 했다.

4

오봉산 산허리를 얼싸안고 간신히 빠져나온 콩크리트길은 넓은 개활지를 만나서야 비로소 허리를 펴며 두만강기슭을 따라 곧게 쭉 뻗어갔다. 그 길은 무자비하게 우리 마을뒤 공동묘지를 바로 꿰지르고 지나갔다. 원래 마을앞으로 흙길차도가 있었는데 후에 길을 곧게 편다면서 큰길이 마을뒤로 지나기때문에 마을뒤 공동묘지를 모두 옮기라는 이묘통지가 마을에 내려왔다. 정부의 지시이니 할수 없이 응해야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놀랜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다.
《귀신을 놀래우면 액운이 따른다고 했다. 무슨 란리도 아니구…》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의 정책은 무조건 관철하고 실천에 옮겨야 했다.
아버지의 말에 삼촌은 허구프게 웃으며 아버지를 시까스렀다.
《형님, 귀신도 사람처럼  놀래오? 허참, 당의 정책이 좋아 흙길도 콩크리트길로 고치는데 뭐가 불만이오?》
《불만이 아니라 고이 잠자는 혼을 건드리면 사람한테 해가 올가봐 그러는거지.》
아버지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비껴있었다. 하지만 묘는 이장을 해야 했다.
이묘통지가 와서 며칠후 마을에서는 묘지임자들을 동원해 통일적으로 이묘를 시작했다. 임자없는 무덤은 정부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마을뒤 공동묘지에는 30여기의 무덤이 시루안에서 쪄진 만두처럼 옹기종기 모여있었는데 그 가운데 큰 아버지 무덤도 끼여있었다.
면례(묘지이장)하는날 나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지꿋게 따라나섰다. 삼촌은 웃으면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지금부터 배워두거라, 이후에 아버지뒤를 이을지 누가 알겠니?》
그리고는 아버지와 나를 번갈아보며 알수 없는 웃음을 얼굴에 띄웠다.
《알아두면 랑패없지 않소? 아버지 없으면 삼촌 장례 누가 치러주오. 내가 해야지.》
《짜식.》
삼촌은 나의 엉덩이를 악의없이 차면서 웃었다.
아무튼 나는 호기심에 의한 충동으로 무덤파는것을 직접 내 눈으로 똑똑히 보려했던만큼 결심을 단단히 다졌다. 무서울게 없었다. 혼자도 아니고 아버지와 삼촌이 있었기에 마음은 든든했다. 다만 파낸 유골이 어떻게 생겼을가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할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나까지 셋은 소달구지에 앉아 마을뒤 공동묘지로 갔다. 가기전 아버지는 엄마를 시켜 유골를 부위별로 쌀 백지와 염습할 때 쓸 광목천, 그리고 유골을 모실 칠성판과 제사 지낼 술과 음식을 간단하게 준비시켰다. 어머니는 이런 큰 일에 대해서는 항상 아버지의 의사에 무조건 복종했다. 아버지도 어머니한테 당부하는것을 마치 응당한듯 여겼기에 모든 일이 자연스레 진행되였다.
묘지에 다달으자 아버지의 얼굴은 대뜸 근엄해졌고 몸가짐새를 흐트러지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것이 력력히 알렸다. 아버지는 웃음기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당부했다.
《엄마가 준비한 제사음식은 어딨냐?》
나는 대뜸 달구지에 실은 음식보자기를 내려 아버지한테 건넸다.
아버지는 음식보자기를 묘옆자리에 내려놓았다. 삼촌은 아버지가 하는양을 묵묵히 바라보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어딘가 비웃음이 가득 차 넘치고있었다.
아버지는 산신제를 지낸후 묘앞에 다시 음식을 차려놓고 우리더러 묘앞에 둘러서게 한후 술을 부어올리고 절을 세번 했다. 아버지는 우리가 알아들수 없는 말을 입속으로 념불외우듯 계속 중얼거렸다. 말은 알아들을수 없지만 그 뜻만은 분명히 알것만 같았다.
제을 끝내자 아버지를 비롯해 우리셋은 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나는 묘를 파헤치는 순간 이름할수 없이 심장이 두근거리고 이상하게 가슴이 세차게 설레임을 어쩔수 없었다. 그때 내 나이 열여덟살이였다. 세상물정에 어섯눈이 뜨기 시작한 때라 이 순간이 나의 인생에서 삶과 죽음의 도리를 깨우쳐주는 인생과업을 수행하는 가장 엄숙하고 숭엄한 순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봉분을 파헤치고 관이 묻힌 자리를 짐작해서 파내려가기 시작하자 삼촌의 얼굴에는 점점 긴장감이 내비치기 시작했다. 마치 묻힌 관속에서 정말 귀신이라도 뛰쳐나올것 같은 예감때문인지 자주 아버지한테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경계심을 가지고 삽질하기도 했다. 한참 파내려가던 삼촌이 갑자기《이크!》하며 무덤속에서 튕기듯 기여올라왔다. 삼촌의 얼굴은 흙빛이 되여있었고 두다리가 심하게 떨리고있었다.
《왜?》
아버지는 삼촌의 공포에 질린 얼굴을 바라보더니 다시 무덤속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우습깡스런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아버지는 삼촌손에서 삽을 빼앗아 들고 무덤속으로 내려갔다.
《난 또 형님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기라도 했는가 했지. 허참, 군대생활을 했다는 놈이 담이 작기는…》
《형님이 자꾸 귀신귀신하니까 신경 쓰이지 않소?》
삼촌은 무안했는지 얼굴이 뻘개지며 변명했다.
《이게 귀신이냐?》
이때 무덤을 파던 아버지가 뭔가를 삼촌발아래로 올리던지며 한마디했다. 그것은 붉은 천쪼각이였다. 삼촌은 덴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 모양에 아버지와 나는 한바탕 웃어제꼈다.
아버지는 여기저기 찢겨진 붉은 천을 들고 무덤밖으로 나왔다. 그것은 한폭의 당기(党旗)였다. 생각해보니 큰 아버지는 공산당당원이였다. 유체를 묻을 때 관우에 당기를 덮어 장례를 치렀던것이다. 아버지는 잔디풀우에 찢겨진 당기를 정연하게 펴놓은후 아까 삼촌한테 던졌던 그 천쪼각을 가져다 제 위치에 맞춰놓았다. 당기는 화학섬유로 만들어진거라 원 모양이 그대로 보존되여있었다.
《우리가문에 공산당원은 형님 한사람뿐이구나. 렬사까지 됐으니 가문의 영광이다.》
《무슨 소용이요. 죽으니 한줌의 흙으로 되여버린걸.》
나는 그 당기를 보자 가슴이 벅차오름을 어쩔수 없었다. 그리고 렬사의 조카로 된것에 더없는 자호감을 느꼈다. 나는 여직껏 이런 기분을 느껴본적이 한번도 없었던만큼 어린 마음에 큰 충격이였다.
아버지는 소달구지에서 칠성판을 내려 당기옆에 놓고는 백지를 꺼내 칠성판우에 한벌 폈다. 그리고는 다시 무덤속으로 내려갔다. 조금 지나자 아버지가 썩은 판자쪼각을 무덤밖으로 내던졌다. 나는 무심결에 무덤속을 내려다보았다. 열린 관속에는 검게 썩은 광목천이 덕지덕지 들어붙은 큰 아버지 유골이 뭔가를 기다리듯 누워있었다. 갑자기 여지껏 맡아보지 못한 이상한 냄새가 내 얼굴을 덮쳤다. 시체가 썩은 냄새였다. 일명 《저승냄새》였다.
《육탈이 잘됐구나. 수맥피해(유골에 물이 찬 상태)도 없고, 참 다행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근심했던바를 혼자소리로 되뇌였다. 그리고는 두개골부터 시작해서 각 부위별로 하나 삼촌한테  올려보냈다. 삼촌은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어쩔수 없이 받아 종이로 유골에 묻은 흙따위를 닦은후 칠성판우에 순서대로 올려놓았다. 유골을 다 올려오자 아버지는 무덤속에서 나왔다. 아버지는 나와 삼촌을 부르더니 손바닥을 펴서 우리앞에 내밀었다. 아버지의 손바닥우에는 푸른 녹이 두툼하게 낀 줄당콩 크기만한 금속덩이 두개가 놓여져있었다. 찬찬히 여겨보니 탄알같았다.
《이게 탄알 아니유?》
삼촌의 두눈이 휘둥그래져서 아버지를 건너다보았다.
《그래, 이게 바로 형님을 죽인 탄알이다.》
《뭐라구?》
나도 놀라움과 호기심에 그 중 하나를 집어들고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사십여년간 형님은 이 원한을 가슴에 간직하고있었던거다. 오늘 이 탄알을 가슴속에서 꺼냈으니 형님은 인제부터 저 세상에서 편히 지낼거다.》
아버지는 가지고 온 도끼등으로 그 탄알을 돌우에 올려놓고 부셔버린후 그대로 유골을 파낸 무덤속에 던져버렸다.
아버지는 두손을 탁탁 털고는 유골이 놓인 순서를 확인한후 준비해두었던 광목천으로 염습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거들던 삼촌이 한마디 했다.
《이 당기는 어쩌려우?》
《다시 덮어서 보내야지.》
아마 그 당기가 큰 아버지의 하나밖에 없는 마지막 명예이자 재산일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큰 아버지의 유골은 할아버지의 묘옆으로 옮겨져 자리잡았고 그후 할머니도 가지런히 그 자리를 지키게 되였다. 아버지는 여기가 쉽게 찾을수 없는 명당자리라고 여러번 되뇌이며 자랑삼아 우리한테 말했다. 나는 어떤곳이 명당자리인지 알수 없었던만큼 아버지가 명당자리라고 하면 명당자리라고 여겼다.
그후 나는 마을뒤산기슭의 렬사비에 새겨진 큰 아버지의 이름을 볼 때면 찢겨진 당기에 덮혀있던 큰 아버지의 유골을 떠올리군 했다. 다행이도 그것이 내가 큰 아버지의 모습을 확인한 마지막 기회였던것이다.

5

내가 장가가기 두해전인 그해 추석날, 왠지 아침부터 까마귀가 귀찮게 울어대며 마을을 떠날념 않고 있길래 낫을 들고 대문을 나서던 아버지가 괜스레 넉두리같은 소리로 중얼댔다.
《까마귀가 설치니 길조가 아닌갑다. 오늘은 벌초나 해놓고 간단하게 제지내고 내려오자꾸나.》
《삼촌은 안감두?》
나는 삼촌의 자리가 새삼스레 상기되면서 삼촌의 역할을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나는 손자이고 조카이지만 삼촌은 아들이자 동생이 아닌가. 순서는 아무래도 삼촌이 앞이고 내가 뒤였다. 나는 해마다 아버지를 따라 산소로 다니면서 느낀것이 하나있는데 그것은 바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지간의 끊기지 않는 뉴대가 바로 무덤이라고 여겼다. 인간은 이렇게 무덤을 만들어놓고 령혼에 기도하며 자신의 운명을 기탁한다. 그러한 기탁이 욕망으로 무너져내릴 때면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게 된다.
나는 아버지가 얼마만한 기탁을 가지고 죽은자의 령혼을 불러오고 안식시키고있는지는 알수 없지만 아버지의 그 한결같은 신념만은 알아봐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국이 병때문에 병원에 간다드라. 귀신이 붙었는지 갑자기 웬 정신병이냐?》
민국이는 삼촌의 큰 아들이다. 대학시험에 미끄러지자 우울해있더니 어느날 갑자기  귀신에게 홀리우듯 접신한 사람처럼 옷벗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미친듯이 추태를 부렸다. 정신이상을 호소하는 아들앞에서 삼촌은 속수무책이였고 숙모는 눈물만 뚤렁뚤렁 흘렸다. 정신병은 일단 걸리면 떨어지는 병이 아니기때문에 그 타격이 더 심했다.
나는 아버지 말에 입을 다물고말았다. 나 자신도 사촌동생의 병에 마음이 안스러워져 있었기때문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산소에 이르니 무덤과 무덤주위에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잡초속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큰 아버지의 무덤이 고즈넉하게 자리잡고있었다. 아버지를 도와 무덤 세기를 깨끗하게 벌초하고나니 나는 이미 땀벌창이 되였다.
제까지 다 지내고 아버지는 제 지내고 남은 술을 술잔에 부어들고 한참 있더니 단숨에 굽냈다. 그리고는 조용히 아무일도 아닌듯한 소리로 한마디 했다.
《네 할미 무덤을 누가 판것 같구나.》
아버지의 그 말에 나는 등골이 오싹해남을 어쩔수 없었다. 나는 아무 낌새도 채지 못했는데 도대체 아버지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있는건지 알수 없었다. 갑자기 공포가 엄습해왔다. 마치 할머니가 무덤속에서 서서히 걸어나오는듯한 착각을 느낄 지경이였다.
《여보, 무슨 소릴 하는겁두. 지금…》
어머니도 몹시 겁먹은 기색이였다.
《벌초하면서 보니 할머니 무덤자리 한쪽켠에 새 흙이 나와있고 풀도 봄풀이 아니였다. 내 짐작이 틀림없니라.》
아버지는 또 술 한잔을 비우면서 량미간을 찌프렸다.
《그럼 누가 할머니무덤을 도굴했다는겁두? 말도 안돼는 일이지. 우리하구 원쑤진 사람도 없는데…》
《글쎄다, 믿기지 않는 일이 우리 발등에 떨어지다니. 아무래도 내가 귀신을 노엽혀 화를 부른것 같구나.》
아버지는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내려뜨린채 볼품없이 무너져있었다. 한참후 아버지는 나한테 당부했다.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거라. 이건 우리가문의 치욕이다.》
어머니는 더 말할나위 없거니와 나 역시 입을 굳게 닫아버렸다. 물론 삼촌하고도 비밀에 붙혔다.
그후부터 아버지의 말수는 더욱 적어졌고 장례집이나 제사집에 다니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으며 삼촌집에도 거의 가는 일이 없었다. 혹시 삼촌이 시내갔다가 돼지고기같은 색다른 음식을 사오면 마지못해 건너가군 했다.
아버지의 이상을 눈치챘는지 삼촌이 어느날 나를 불렀다.
《룡국아, 아버지가 좀 이상해진것 같구나. 어디 아픈게 아니냐?》
《아프긴, 일이 바빠 피곤해 그런거요. 삼촌, 신경쓰지 마오.》
나는 삼촌의 호기심을 눅잦혀주면서도 아버지에 대해 불안해오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아버지 신상에 난데없는 일이라도 생길가봐 걱정스러웠던것이다.
그런데 난데없는 생벼락이 삼촌 발등에 떨어졌다. 가을과 겨울이 만나는 어느 추운 바람이 부는 날, 삼촌이 허둥지둥 우리집 문을 열어제끼며 대성통곡했다. 깜짝 놀란 우리집 식구들은 삼촌의 눈물코물 번벅이 된 모습에 아연해지고말았다.
《아니, 영규야. 무슨 일이냐?》
부엌아궁이에 마주앉아있던 아버지가 놀라고 어정쩡한 얼굴로 삼촌을 쳐다보았다.
《민국이가… 민국이가 목맸소. 어이쿠, 형님. 이게 웬일이우…》
이른 아침, 삼촌이 소여물을 주려고 소외양간에 들어가니 외양간 대들보에 민국이가 데룽데룽 매달려있었다. 밤중에 식구 몰래 자살을 해버린것이였다. 삼촌은 아들이 정신병에 걸렸어도 이렇게 독한 짓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던만큼 그 타격이 너무나 아름차게 컸다. 아들의 시신을 보는 순간 삼촌은 하마트면 기절할번 했다. 눈앞의 정경을 꿈으로밖에 느낄수 없었다. 삼촌은 낫을 찾아 바줄을 끊고 아들을 땅에 눕힌후 허둥지둥 아버지를 찾아왔던것이다.
우리가 삼촌뒤를 따라 삼촌집에 가보니 민국이의 시신은 이미 꽁꽁 굳어있었고 가부키처럼 하얀 얼굴에 혀가 한발이나 나온 모습은 너무나도 험악했다. 우리가 가서야 숙모가 알고 집에서 뛰쳐나와 아들을 끌어안고 대성통곡했다.
《아이고, 내 새끼. 무슨 놈의 지랄병이 내 아들을 앗아갔노. 아이고, 불쌍한것아…》
그리고 숙모는 기절하고말았다. 한참 복새판을 벌여서야 숙모는 깨여났지만 눈을 감고 넉두리만 해댔다.
《아이고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민국이 시신을 집에 들여다 눕힌후 아버지는 민국이가 입었던 옷을 벗겨가지고 밖으로 나가더니 옷을 휘휘 저으면서 혼자소리로 혼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마치도 놀러나간 자식한테 저녁먹으러 들어오라고 부르는 소리같기도 했다.
이튿날 삼촌은 장의관의 령구차를 불러 민국이의 시신을 화장터에 가져다 화장해버렸다. 부모먼저 가버린 자식은 무덤을 하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지만 삼촌은 이렇게 함으로써 자식의 죽음을 말끔하게 잊고싶었을것이다.
화장을 끝내고 집에 온 삼촌은 아들의 유물을 정리하다가 책갈피속에서 민국이가 남긴 이상한 내용의 글을 발견했다. 그 내용은 대개 이러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꿈을 꾼것 같다. 꿈에 누군가 나한테 자기의 물건을 돌려달라고 했는데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는 그런 꿈을 꾸지 말아야겠는데… 그런데 왜 자꾸 무서워지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죽을것만 같다. 누가 나를 죽일것 같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냥 나를 노려보고있는것 같아 잠도 제대로 못 자겠다… 》
삼촌은 아들의 글을 읽으면서 아들의 몸속에 귀신이 들어있었다고 생각했다. 삼촌은 그 글을 가지고 아버지 몰래 시내로 들어가 점쟁이한테 보였다. 점쟁이는 그 글을 보더니 짧게 한마디했다.
《귀신을 노엽혔느니라.》
《어찌하면 될가유?》
《제자리로 돌리거라, 아니면 멀리 피하거라.》
삼촌은 시내에서 돌아오자 숙모와 그 일을 말했다. 그리고 이사가려고 결심했다. 숙모도 변을 치르고나니 삼촌의 말에 응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냥 이렇게 있다가는 어떤 변을 또 당할지 누가 알겠는가? 일단은 이 자리를 떠나는것이 상책일듯 싶었다. 삼촌은 숙모의 본가가 살던 흑룡강의 어느 작은 진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아버지가 나서서 말려보았으나 막무가내였다. 떠나는 날 삼촌이 아버지한테 한마디 남겼다.
《형님, 인젠 제발 그 귀신놀이 그만하우. 생 사람 잡지 말구.》
삼촌의 말에 아버지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순간 비껴갔다. 그리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이 대답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몰랐다. 삼촌은 그렇게 가버렸지만 숱한 애환을 남겨놓았다.

6

삼촌은 이사간후 청명에도 추석에도 오지 않았다. 그해 추석에 아버지는 돈을 들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큰 아버지묘에 비석을 깎아 세웠다. 비석을 세우고 난후 아버지는 비석곁에 쭈크리고 앉아 담배를 말아 입에 물더니 두눈을 쪼프리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이젠 표시가 되였으니 내가 죽어도 묘자리를 잊을 걱정 없겠지.》
아버지는 자신의 사명을 다 한듯 말하며 아직 낮선 비석을 어루쓸었다. 나는 아버지의 말속에 무언가 숨겨진 의미가 슴배여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아버지는 삼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리고 여기 조상의 뼈가 묻힌 고향에 와서 살기를 바라고있었다.
《아버지, 인젠 삼촌을 용서해줍소. 삼촌도 겪을만큼 겪었재임두. 보응이라는건 뉘우치는 나름에 따른거라고 여깁꾸마. 내가 삼촌한테 편지도 보내고 했으니 내 결혼때 꼭 올겁꾸마.》
나의 확신에 가까운 말에 아버지는 낮선 사람보듯 나를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알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너도 삼촌이 그랬을거라고 여겼댔구나.》
나는 그저 머리를 끄덕여 응답했다. 그런 일을 입으로 말하지 않는것이 낫다고 여겼기때문이였다. 아버지도 머리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삼촌을 떠나보내면서 얼마나 큰 돌덩이를 가슴속에 안고 녹여버려야 했는지 그것은 아마 아버지 혼자만이 아는 일일것이다.
한달후 삼촌한테서 끝내 소식이 날아왔다. 삼촌은 편지에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 몽땅 부정하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열백번도 더 했다. 그리고 나의 결혼식에 가족과 함께 꼭 참가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끝으로 집 전화번호까지 적어보냈다. 그때 우리 여기 촌에는 전화가 보급되지 않았었다. 전화하려면 촌 공소부에 가야 전화련락을 할수 있었지만 그것도 불편하기 짝이 없어 아예 편하게 편지쓰는것을 위주로 해왔다.
삼촌은 편지에다 끝내 그 일만은 일언반구도 비치지 않았다. 차마 자신의 입으로 그 말을 꺼낼수가 없었을것이다. 그랬다, 어찌 그렇게 어마어마한 일을 저지르고 입밖에 내비칠수 있으랴.
따스한 봄이 두만강을 건너 여기 오봉산기슭에까지 푸릇푸릇 다가왔다. 나의 결혼식도 아득바득 눈앞으로 닥쳐왔다. 나의 결혼식날은 아버지가 황도길일을 택한다고 손꼽으며 셈도 하고 책도 뚜져보면서 정한 날이였다.
나의 결혼식을 이틀 앞둔 그날 오후 삼촌은 일가족을 이끌고 끝내 살과 뼈가 여문 고향에 발을 들여놓았다. 얼마나 큰 결심을 했으랴. 정말 짐작키 어려운 일이였다. 일년이 좀 넘은 사이 삼촌은 머리가 많이 세여진것 같고 체구도 좀 주럽든듯 했지만 그 령리함을 말해주는 두눈만은 그대로 생기를 잃지 않고있었다.
그날 저녁, 가족이 오래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이런 날을 고대해왔을 아버지를 넌지시 바라보며 나는 감개가 사뭇 넘쳐오름을 어쩔수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그 깊은 속마음을 헤아려보기가 너무나 벅참을 새삼스레 느끼게 했다.
저녁상을 물리자 술기운에 삼촌은 말이 많아졌지만 아버지는 그저 여기만 더 살기 좋냐고 묻고는 별로 묻지 않았다. 어머니가 숙모와 삼촌과 자연스레 이사간 곳에 대해 주고받았다. 말을 들어보니 살기 괜찮은곳 같았다. 타향도 정들면 고향이라고 더구나 숙모의 고향이라니까 별일은 없을것 같았다.
삼촌은 래일 산소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아버지가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혼자가는게 더 편하다고 하면서 딱 잡아뗐다.
이튿날 어머니는 아침밥상을 물리자 간단하게 제물을 준비해 삼촌한테 챙겨주었다. 삼촌은 아버지한테 뭔가 말하려고 머뭇거리다가 어머니가 챙겨준 제물 보따리를 들고 그대로 몸을 돌려 허청허청 뒤산더기로 향했다.
삼촌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큰 아버지 묘앞에 두억시니처럼 마주섰다. 삼촌은 제물을 차려놓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버지, 엄마. 그리고 큰 형님. 내가 때늦게 와서 많이 노여웠지우. 욕도 험하게 했을거구. 당연하지, 살을 뜯어 팔아도 지은 죄 다 갚지 못할거라는거 아우. 땅에 그대로 묻어버리는게 하두 아까워 그런거우. 없애지 않고 가보로 그냥 두려다가 도로 가져왔으니 인젠 화 풀어유. 엄마가 지니고있수. 아버지가 준 선물이라든데…》
삼촌은 눈에 눈물이 글썽해서 한참 서있더니 품에서 종이에 싼 금반지를 꺼내 할머니의 제돌우에 올려놓고 꾸벅꾸벅 세번 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맨손으로 비석뒤켠의 흙을 깊숙히 판후 반지를 종이에 싼채로 고이 묻고 잔디를 파다가 덮어놓았다.
삼촌은 무덤가장자리에 홀로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형님의 속내는 깊구나. 말없이 비석까지 다 세우구. 돈을 꽤나 팔았을텐데. 후ㅡ 아버지, 엄마. 형님의 얼굴을 봐서라도 앞으로 손자들이 잘되게 저승에서라도 기도 좀 해주우. 큰 형님도 말이우.》
삼촌은 자신의 옥셈을 스스로 감내하며 뚤렁뚤렁 눈물을 쥐여짰다. 삼촌은 가지고 온 술을 반병이나 비운후 마른 명태를 북ㅡ 찢어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으며 자리털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비석뒤쪽에 눈길을 주더니 한숨을 길게 뽑고는 무덤을 떠났다. 그것이 삼촌이 부모의 산소를 찾은 마지막 걸음이였다. 삼촌은 나의 결혼식이 끝나는대로 떠나갔다. 며칠후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화가 마을 공소부로 전해온후 다시는 소식이 없었다.
그리고 일년후 우리 마을에도 전화가 보급되여 우리도 전화선을 늘여 전화기를 안장했다. 전화가 통하자 나는 제일 먼저 삼촌한테 전화해 우리집 전화번호부터 알려주었다.
《후에 일이 생기면 이리루 전화하오, 삼촌.》

십여년이 흘러갔다. 그간 삼촌한테서는 세번의 전화가 걸려왔다. 첫번은 둘째아들 동국이가 중점대학에 입학했다는 소식이고 두번째는 숙모가 한국으로 돈벌이 나갔다는 소식이였으며 세번째는 이제 숙모가 한국에서 돌아오면 한번 고향에 다녀오겠다는 인사말이였다. 나와 아버지는 삼촌이 꼭 고향에 돌아오기를 기대했다.
작년 여름, 아버지는 정부로부터 장례와 상례행사례법을 전수하는 전승인 칭호를 수여받았는데 인젠 팔십을 넘긴 아버지 나이의 전승인은 지금 몇명 생존해있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으로 민간인인 아버지가 전승인으로 되였다는것이 어찌보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아버지는 여러번 회의에도 참석해 텔레비에도 나와 린근에서 유명인으로 되였다. 나는 물론 이 일을 삼촌한테 알렸다. 소식을 듣고 삼촌은 별일도 다 있다며 웃었다.
《공산당이 좋긴 좋다. 형님을 명인으로 다 만들어놓구. 아무튼 좋은 일이니 아버지를 잘 모셔라, 사람몸에서 떠나간 령혼을 불러들이는 사람은 너의 아버지밖에 없니라. 신선은 신선이다.》
나는 삼촌의 말을 아버지한테 했더니 아버지는 그저 웃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미소에서 아버지의 가슴속에 박힌 솔옹이 조금씩 조금씩 녹아버리는것을 감지할수 있었다…

2013년 7월31일
룡정에서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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