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변대학교 조선어문학부 교수이며, 현재 파리 모 대학교 교환교수로 계시는 우상렬 박사가 본지에 파리인상기를 보내왔다. 교수 사업이 바쁜 와중에도 본지의 요청에 정성 껏 글을 써서 보내주신 그 성의와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존경을 표한다. 편집자 주]  

▲ 우상렬 파리 모 대학교 교환교수
[서울=동북아신문] 보통 파리하면 무슨 낭만의 도시요, 예술의 도시요, 패션의 도시요 하며 멋진 수식어들이 많이 붙는다. 바로 이런 타이틀들 때문에 사람들은 파리로 몰려드는 것일까.

파리의 드골공항, 좀 초라하다. 거무틱틱한게 삐까삐까한 북경공항이나 인천공항에 비기면 시골과 도시의 차이 같다. 그런데 입국이 그렇게 순조롭고 빨리 이루어질 줄이야! 사람들은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두 줄로 꼬리가 보이지 않도록 장사진을 이루며 쭉 늘어선다. 순간, 나의 뇌리에는 내국인, 외국인 생각이 피끗 떠오르며 어느 것이 외국인 줄인지를 살펴보았다.

우리 동양의 많은 나라들의 입국에서 습관된 동작으로.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두 줄 공히 내국인, 외국인이 막 썩여있는 것 같았다. 두 줄 다 코가 크고 작고, 키가 크고 작고, 피부색이 각양각색인 사람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추장스럽게 내국인용, 외국인용하는 입국신고서를 작성하라는 법도 없다. 좀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아무 줄에나 섰다. 입국심사카운터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볼라니 굳이 내국인이요, 국내인이요 나누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안내 글자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이제 곧 내 심사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어쩐지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 거리진다. 우리 줄을 심사하는 사람은 얼굴이 감실감실하고 두억시니 같이 생긴 커쿨진 사나이였다. 뭐, 나는 합법인데 뭐... 나는 스스로 강심제를 놓으며 여권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그런데... 참, 재미나게도스리 그 두억시니는 내 여권을 받아 프랑스비자 부분에 도장을 꾹 박드니 프랑스사람 특유의 윙크를 씩 해보이며 OK란다. 내가 언젠가 우리 코앞의 고국이랍시고 찾아간 나라의 입국심사에서 시시콜콜 캐어묻던 것과는 천양지차다. 괜히 긴장을 한 내 스스로가 우스웠다.

여하튼 기분은 좋았다. 입국심사를 통과하고 나와 뒤를 한번 돌아보았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거저 여권에 도장만 꾹꾹 박히고 나오기. 입국심사원은 도장을 박는 기계런듯... 이런 판국이니 그 장사진을 이룬 줄이 쭉쭉 줄어들기다. 입국심사는 순식간에 완료! 이제 짐을 찾아 나오는데 누가 말리지도 않고 검사하자고 하지도 않는다. 세관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이렇게 쉽게 프랑스에 입국했다. 프랑스수도 파리에 정착. 사실 유럽련맹(EU)사이에도 모두 이렇다. 국경이 있는지 없는지 서로 자유롭게 드나든다, 돈도 유러로 통일되지 않았는가. 얼마 전에 여행사버스에 앉아 유럽련맹 여러 나라를 다녀봤는데 국경검사 같은 것은 전혀 없다. 강 하나 코앞에 두고 마음대로 못 드나드는 우리의 현실이 서글프다.

파리는 원래 낭만의 도시였다. 파리(Paris)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트로이국왕 푸리아머(Priam)와 왕후 헤카파(Hecuba) 사이에서 난 둘째 아들 파리스(Priams)로부터 왔다고 한다. 그럼 이 파리스란 어떤 존재냐? 헤카파가 파리스를 낳을 때 무서운 꿈을 꾸었단다. 파리스가 백 개의 손을 가졌는데 매 개 손에 횃불을 치켜든 복수의 여신으로 꿈에 나타났던 것이다. 이에 기겁을 한 헤카파는 파리스를 짐승들이 잡아먹도록 들녘에 갖다버리도록 했다. 그런데 이 파리스는 죽지 않고 곰과 잘 지내며 점차 건장하고 용감하며 멋진 총각으로 자라났던 것이다. 파리는 멋진 총각-♂  파리, 아니 프랑스사람들은 좀 요란스럽다. 아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여자건, 남자건 저 먼데서부터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봉슈(안녕)~’라는 말을 길게 내빼며 서로 왼쪽, 오른쪽 볼을 엇갈아 비벼대기에 바쁘다. 그들은 이런 흥분하기 쉬운 고도의 밀착형으로 친밀감을 나타낸다. 한국의 성희롱 같은 것은 여기서 통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는 그간 잘 있었냐, 뭘 했냐, 보고 싶었다... 호들감을 뜬다. 그리고는 허리를 비비꼬며 낄낄 웃기도 한다. 물론 여자들이 더 하다. 좀 진정이 되는가 싶으면 담배를 꼬나물고 하염없이 연기를 내뿜기. 대학생들도 마찬가지. 커피숍이나 바(술집)에 가보면 엄지손가락보다 좀 더 굵은 잔에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또는 와인 한잔, 생맥 한잔 받아놓고 별로 안주도 없이 세월아, 네월아 앉아 뭉게며 벅쩍 떠들어댄다.  얼마 전에 내가 소속되어 있는 파리7대학교 아시아학과에서 이번에 초빙해온 새로운 교수들을 환영하는 파티가 있었다. 썩 오래 전부터 통보하기에 퍼그나 기대가 갔다. 그런데 점심에 학과의 어느 세미나실 같은데서 술이라야 기껏 포도주에 케익 몇 접시를 놓고 환영파티랍시고 하는데 나로서는 도저히 먹을 것이 별로 없었다. 우리 쪽 식으로 상다리 부러지도록 푸짐한 술상을 상상했으니 말이다. 그들은 원래 먹기보다도 이리저리 다니며 와인잔을 가볍게 부딪치고 조금씩 마시는 흉내를 내며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정다운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였다. 이런 분위기야 말로 바로 환영의 분위기란다.  파리날씨는 정말 사람을 죽인다. 잠풍함에 어둑칙칙하다. 현재 겨울철 아침에는 8시가 되어야 희끄무레 밝아온다. 해가 잘 나오지 않는다. 작년에는 역사상 최악의 상태였다고 한다. 해가 나온다고 해야 우리처럼 화창하거나 화끈한 맛은 없다. 해가 뜨 있는 하늘이래야 우리처럼 해맑다기보다는 검푸르다. 그래도 해가 나오는 날은 축제분위기. 파리의 식당이나 커피숍, 바에 일반적으로 테라스(밖에 식탁과 걸상을 쭉 놓은 것)가 딸린 것은 바로 해가 나오는 날 해쪼임을 하며 먹고 마시기 위해서다. 물론 이 테라스자리는 값이 더 비싸다. 정말 파리의 이런 날씨에 묻혀 살다가는 우울증이 오기 쉽다. 파리사람들은 바로 이 우울증을 떨쳐버리자고 안간힘을 써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이벤트나 모임을 벌리기 좋아하는 것 같다. 가족이벤트, 친구이벤트, 동네이벤트... 시내에 다니다보면 쩍 하면 무슨 놀이요, 공연이요, 축제요... 여하튼 구경거리가 많다.   요즘 1년에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시즌이라 나무들에 색등을 늘이고 샹제리아거리 및 세느강주변 파리중심부에서는 벌써부터 축제분위기가 들끓고 있다. 샴페인나라답게 곳곳에서 샴페인 팡팡~! 이런 이벤트나 모임은 하나의 축제! 그러니 멋지게 차려입고 기분 내기다. 허영을 좀 부려도 괜찮다. 그러니 모파쌍의 ‘목걸이’의 여주인공의 마음도 이해할만 하다. 그리고 그들은 햇빛 찬란한 프랑스의 남부 지중해연안도시나 대서양연안도시로 잘 몰려간다. 썬턴(해쪼임)을 위해서다. 썬턴을 가서 키카색으로 감실감실하게 태워서 오는 것이 휴가 때의 하나의 소원이란다.   여기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벌어지기도 한다... 휴가철이다. 다들 해변가로 썬턴을 가니 뭐요하며 야단이다. 그래 ‘나’도 가야겠는데 돈이 없다. 그런데 돈이 없어 못 간다고 하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옆집에 휴가를 간다해놓고는 집에 가만히 꾹 들어박혀 있기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 전등불이 켜져 있으니 옆집 사람이 신고를 했단다. 도적이 들었나 해서. 그래 경찰이 닥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고... 파리시정부에서는 여름에 돈이 없어 휴가를 못 가는 사람들을 위해 세느강가에 모래톱을 만들어 거기서 해쪼임을 하며 즐기도록 배려하기도 한단다.   파리사람들은 요량껏 재미나게 사는 것 같다. 파리는 교통신호체계가 잘 잡혀있다. 동네의 좁은 길목에도 파란등, 빨간등이 자동으로 켜졌다, 꺼졌다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이 신호등에 그리 개의치 않는데 있다. 그들은 빨간등이 켜졌는데도 지나가는 차가 없으면 무조건 지나가기다. 저 먼데서 차가 온다면 뛰어서 건너가기다. 지나가지 않거나 건너가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스럽다. 같은 선진국 우리 동양의 일본사람와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여기에 파리의 차들은 철저히 인간중심적이다. 내가 지나갈 차례인데 아무리 사람이 건너간다고 해서 욕을 하거나 빵빵 경적을 울리는 법이 없다. 조용히 기다려주거나 때로는 손을 흔들며 마저 건너가라는 신호를 해준다.   파리의 버스나 지하철 같은 시내교통은 참 잘 되어 있다. 편리하다. 세계일류! 버스를 인공지구위성으로 통제하기도 한다고 하니 말이다. 여기에 사람들은 좌석이 비어있어도 잘 앉지를 않는다. 나는 이때까지 서로 앉겠다고 밀고 닥치거나 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앉는다는게 기껏 비어있으니 앉으나 주지 하는 식이다. 버스나 지하철 출입문을 보면 승객들이 보턴으로 개폐를 조절하며 자기 절로 타고 내릴 수 있다. 그리고 표 한 장이면 버스나 지하철을 마음대로 탈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표를 잘 사지 않는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다는데 있다.   재미나는 것은 버스기사나 지하철 매표소의 직원들이 무임승차하는 사람을 뻔히 보면서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는다. 자신의 역할은 차를 몰거나 표를 파는 것이지 무임승차 단속이 아니라는 태도다. 사실 전문 무임승차단속인원들이 있기는 하다. 이들은 예고 없이 불시로 단속을 한다. 그때마다 무임승차자들이 수두룩 잡혀나온다. 그런데 또 재미나는 것은 이들 무임승차자들에게 몇 십 배의 벌금을 안기는 마당에 발금을 안기는 쪽에서는 친구, 참 미안하이, 내가 이런 일을 맡아하다보니 할 수 없이...라는 태도고 발금을 내는 쪽에서는 힐쭉 웃으며 오늘은 재수가 없으니 방법없지... 라는 태도라는 것이다. 이래서 단속자들과 무임승차자들의 숨박꼭질이 꼭꼭 숨으라 머리카락 보인다 술래잡기처럼 ‘재미나’게 반복 풀이되고 있단다.   자, 그럼 이번에는 먹고 싸는 얘기. 좀 시시껄렁한 얘기 같지만 참 재미있다. 특히 여기 화장실이 재미있다. 내가 강의하는 청사에는 화장실에 거저 프랑스어로 ‘toillec'라고 씌었을 뿐 굳이 남자화장실이니, 여자화장실이니 밝히지를 않았다. 그러니 남자, 여자가 같은 화장실을 쓴다는 말이 되겠다. 물론 일을 보는 칸은 누가 들어가든지 안에서 문을 찰칵 채우면 나만의 은밀한 세계가 된다. 여기 대학생들은 화장실에서 남녀동급생들끼리 부딪쳐도 추호의 어색함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히히닥닥 거리며 웃고 야단이다. 남녀칠세부동석, 남녀수수불친(授受不親)이 무의식속에 박혀있는 우리로서는 어색하겠는데 말이다. 선생과 학생이 부딪쳐도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아직 습관이 잘 안 된다. 사도존엄이 계속 머리를 쳐드니 말이다. 물론 여기도 남녀화장실의 구별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금단의 성역은 아니다. 남자 화장실이 차고 여자 화장실이 비었으면 남자가 여자 화장실을 써도 무방하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낭만은 뭐니뭐니 해도 남녀관계에서 가장 진하게 피어난다. 어느 프랑스영화를 보니 남주인공 고중생이 자기 여자친구와 집 앞에서 키스를 하는데 엄마가 그것을 보고는 좋다고 박수를 쳐대는 것이였다. 사랑의 성숙축복! 사실 무슨 영화에서가 아니고 여기 젊은 처녀총각들은 실제로 길가나 버스, 지하철 같은 공중장소에서 잘 껴안고 키스도 잘 한다. 그렇다해서 누가 신경도 쓰지 않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거저 내 혼자 신경이 쓰인다. 프랑스는 법률상 동거인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항도 있고 미혼모 보호법도 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결코 두 사람의 애정을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라는 생각이 일반인에게 팽배하다. 그래서 합법적인 결혼을 통해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 부부들만큼 동거형식으로 사는 부부들도 수두룩하다. 결혼 전에 동거 기간을 갖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동거를 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 학생게시란을 보면 ‘여자친구 찾고 있어요. 밤이 외로워요!’하는 문구도 서슴없이 눈에 띈다. 몇 십 년을 동거하면서 아이도 낳고 실제 부부로 사는 이들도 많다.   이에 반해 합법적인 결혼의 이혼율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다. 세 쌍 중 한 쌍이라는 것이다. 그 이혼의 이유는 가장 솔직하고 흔한 것으로 ‘이젠 당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우리처럼 구차하게 다른 변명은 안한단다. 부부 한 쪽이 바람이 났을 경우 ‘한순간의 실수였어. 용서해줘!’, ‘용서해줄게! 다시는 그러지 마!’ 같은 있을법한 대화도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곧 바로 합법적인 이혼절차로 들어간단다. 자식 때문에 헤어질 수 없다는 부부는 거의 없단다. ‘내 삶은 내 것이야~!’ 그러니 결코 자식 때문에 나를 희생하는 것은 부부 간 그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단다. 그리고 헤어진 후에도 원망, 저주보다는 가끔 연락하고 일이 있을 때 도와주기도 하는 일반 친구관계로 지내는 사람들도 많단다. 여기서는 황혼결혼도 많지만 이혼도 많단다. 이제 다 산 인생인데 뭐, 늘그막에 무슨 꼴... 그들에게는 우리 같은 이런 생각이 아니라 사랑은 죽을 때까지 추구하는 것이란다. 파파 늙은 할머니가 첫사랑이 그리워 이혼하기도 한단단다. 사랑에 있어서 그들의 이런 의무와 책임보다는 홀가분하게 사랑 하나에 매달리는 사랑지상주의는 자연히 외도도 곳곳에서 만연되고 있단다. 외도야말로 순수한 첫사랑에 첫날밤의 기분을 맛볼 수 있다는 ‘년놈’들도 있단다. 그 외도상대 통계리스트를 보면 대체로 첫째가 직장동료, 그 다음이 친구의 파트너, 이웃, 아이들 학교 학부모순으로 간단다. 그래 ‘등잔 밑이 어둡다’는 우리 속담이 맞지!  여기 여자들은 아이낳이를 그렇게 홀가분하게 한단다. 아이를 낳고는 곧 바로 시원하게 샤워를 한단다. 그리고는 곳곳에 전화를 하며 아이낳던 과정이나 느낌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불룩했던 배가 쑥 꺼져 들어가니 좋아죽겠다고 한단다. 산후풍이 올새라 머리를 동이고 뜨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 끙끙거리는 우리들 산모들과는 다른 풍경. 동서양 여자들 체질적으로 다른가봐. 그녀들은 아이를 쉽게 키우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이때까지 여기 엄마들이 애를 안거나 업고 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다. 꼭 유아차에 밀고 다닌다. 버스에서든지 지하철에서든지 슈퍼에서든지... 우리 엄마들처럼 업고 안고 하면 적어도 좀 이상한 눈길로 볼 것이다. 왜 저렇게 힘들게스리... 파리의 녹색운동 세계가 알아준다. 파리 온 시내에 연기를 내뿜는 굴뚝은 두 개 뿐. 그것도 말짱 흰 구름 같은 정화된 맑은 연기를 내뿜는다. 무슨 밀가루 공장의 굴뚝이란다. 그런데도 파리시민들은 불만투성이다. 환경보호를 잘 못해 공기가 개망태기란다. 내가 느끼기에는 파리공기가 좋은데 말이다. 파리시내는 옛도시구획이라 길이 좁다. 여기에 녹색운동가들은 한 술 더 떠 길의 확장을 반대하고 차도를 불편하게 하며 차를 줄이자고 야단이다. 그래서 그런지 파리는 자연과 인간이 잘 조화된 낭만적 모습들이 많다. 파리에는 도처에 비둘기가 있다. 비둘기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어떤 벤취에 앉아 있으면 무슨 먹을거리라도 얻어먹을가 해서 비둘기가 날아와 주위에 맴돌아친다. 이런 비둘기들은 어느새 사람과 가장 친한 존재가 되었다. 나는 파리노트르담사원에 갔을 때 깜짝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나무 밑에서 손바닥에 빵 같은 음식부스레기를 놓고 쳐들고 서있는데 나무에 있던 참새들이 앞다투어 내리 앉으며 주어먹는다. 여기서는 고 영악한 참새마저도 사람과 친해있다. 드골공항의 잔디밭에서는 토끼들이 뛰어논단다. 그리고 프랑스정부에서는 자기네 나라에서 이미 멸종된 독수리며 승냥이를 수입해 생태평형을 꾀한단다.   파리, 아니 프랑스는 기본 인권이 존중되는 세상이다. 프랑스는 원래 켈트, 라틴, 게르만 종족으로 출발했다. 그렇지만 인권선언에 자유, 평등, 박애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프랑스인인지라 무릇 인권, 자유를 찾아오는 사람에 대해서는 두 손 들어 환영이란다. 그래서 독재정권을 탈출해 프랑스에 와서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든지, 기아를 벗어나기 위한 생존권 운운하면 프랑스국적을 얻는데 가장 효과적이란다. 한국의 홍세와, 아프리카의 많은 난민들은 그 전형적인 한 보기. 탈북자의 소리는 여기서도 들린다. 그래서 현재 프랑스는 많은 종족, 민족들이 별 탈 없이 어울려 산다.     파리, 아니 프랑스는 다원가치가 존중되는 세상이다. 그들은 프랑스혁명 때 혁명의 풍운아 마라와 이 마라를 살해한 샤록트․과대라는 여자에 대한 가치판단에 있어서도 악마와 천사의 흑백논리로 흐르지 않으며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균형을 갖추고 있다. 심지어 제2차세계대전 때 나치스독일에게 투항한 페당원수에 대해서도 절대악인 천고의 죄인으로 보지 않는 기분이다. 프랑스 사상가 뇌몽․에홍의 “인간연극의 관객”에 보면 페당원수의 투항은 당시 프랑스 절대 다수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했다고 평가한다. 왜냐하면 당시 프랑스의 모든 저항은 단지 프랑스 사람지간의 증오와 절망만 가중시키기 때문이란다. 프랑스사람들은 구소련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파리에는 스탈린거리가 있고 스탈린지하철역 이름이 있다.  스탈린의 제2차세계대전 시기의 공로를 그려. 한마디로 그들은 예술가적인 다혈질에 어느 한 틀에 매여 편협하게 흐를 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 않고 유연하게 트여있는 다원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유럽련맹이 형성되면서 프랑스인들은 유럽 내지 세계보편의 가치에 더 공감하는 것 같다. 여기 내 주위에 있는 분들을 보면 오늘은 독일, 내일은 스위스, 모래는 이태리 하며 별로 다른 나라에 간다는 의식 없이 거기 가서 관광도 하고 놀기도 하고 학위도 하고 포닥도 한다. 그리고는 말한다. 인간이 사는 곳이면 다 갈 볼만하고. 먹을거리, 볼거리, 배울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이러면서 그들은 알게 모르게 세계적인 마인드를 키운다. 참 재미있고 멋있어 보인다. 한 울안에서 맴돌고 한 나뭇가지에 목매는 우리는 답답할시구!   파리, 아니 프랑스는 분명 위대한 사상가를 많이 배출한 나라다. 루쏘, 라깡, 부꼬... 그런데 이들 위대한 사상가에게서조차도 천진난만함이 있단다. 1948년 혁명과 1968년 ‘5월폭풍’ 같은 거창한 사회혁명에 참가하여 거리에 나가 돌을 던지고 총탄을 맞받아 나간 것은 단지 ‘자극적이’고 ‘재미나’고 ‘일종 심리체험’이고 ‘일종 사회실험’적이기 때문이란다.   파리는 쇼쇼쇼~의 도시. 볼거리도 많다. ‘MOULIN ROUGE’-빛과 색채, 소리의 환상적인 조화 속에서의 파리미인들의 각종 낭만적인 야한 쇼도 세계인들의 눈을 끌고 있다.   오세요, 파리로 오세요! 파리 잡으러 오시지 말고 낭만을 즐기려 오세요!  2013.12.14.  [참고 ] ‘예술의 다리’는 ‘사랑의 다리’ 또는 연인의 다리‘라고 불릴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 위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이 다리는 사랑의 다리로 부릴 만큼 사랑이 시작하기도 하며 사랑하는 연인들의 데이트장소로도 많이 이용된다. 이 다리를 남녀가 함께 건너면 결혼을 한다는 속설도 있다. 게다가 요즘은 다리 위에 자물쇠를 채워놓고 사랑의 약속을 하는 장소로도 유명. 다리 난간에 빈 공간이 별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연인들이 이곳에서 사랑을 확인한다고 하니, 파리에서 가장 낭만스러운 장소.  연인들의 데이트장소이자 친구들와의 파티장소로 사랑받는 곳이다. 연인들이 사랑을 맹세하며 다리 난간에 자물쇠를 달고 열쇠는 센느강에 버리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최근에 다리가 무너질 위험이 있어 안타깝게도 그동안 달려 있던 모든 자물쇠를 철거했다.   아베스(Abbesses)역에 있는 작은 공원에는 ‘사랑해 벽(Le Mur Des Je t'aime)’이 있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사랑해’라는 말이 적혀 있는데 물론 한국어도 있다.  작가 프로필   1963년 중국 심양 출생한국정신문화연구원 대학원 박사연구생.북한김일성종합대학 조문학부 객좌교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 고전국어전업 박사한국 배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객원교수사천대학교 박사후 과정연변대학조문학부 교수 및 교연실 주임 역임현재 프랑스 모대학교 교환교수수필가, 평론가. 저서 다수.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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