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우 영 (작가. 한국해외문화교류회)

[서울=동북아신문]옛 말에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 본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는 속담이 있다. 어린나무는 애당초 싹이 좋아야 잘 자라고, 어린아이 때 버릇은 어른되기까지 간다는 얘기이다. 예전에 어른들이 자녀의 혼사시에는 꼭 상대의 가정환경부터 살폈다. 어릴 때 부터 자란 환경이 그 사람의 인성을 좌우하기에 그렇다.

한 참 커 나가는 아이들의 언행은 매우 중요하다. 말과 행동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아아들은 매사가 씨끄럽고 문제를 안고 다닌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바른 언어의 가정교육을 잘 받은 아이들은 고루하며 차분하게 행동한다.

지난달 공원을 조용히 거니는데 어린 청소년들이 깔깔대며 거침없이 대화를 한다. 이들의 언어는 ‘매우’, ‘아주’ ‘굉장히’의 뜻으로 ‘졸라’ 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졸라’는 ‘남성의 성기(性器)’를 비유 한다. ‘o나게(o ← 나다)’가 결합하여 변화된 것으로 듣기 거북한 말. ‘시벌, 시펄, 스벌, 개에쉑’과 같은 비어와 속어를 예사로 하고 있었다. 저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꿈나무들이 아닌가?

어려서부터 좋은 부모님과 바른 언어환경에서 자라면서 바른 언행을 배운 아이들은 커서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런 아이는 아무리 화나도 비어나 속어를 사용하지 않고 논리비약의 언성만 높을 뿐이다. 자라나는 어린나무의 말 부터 흔들리면 커서도 흔들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도 ‘바른 우리말 나들이’에 나서는 것이다. 세계적인 유우머 소유자 ‘버나드 쇼’의 말이다.  

“인간이 호랑이를 죽일 때는 그것을 스포츠라고 하지만, 호랑이가 인간을 죽일 때는 사람들은 그것을 재난이라고 한다. ”  

어려서 무분별하게 대하는 말이 처음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은 거친 언어와 행동으로 잡초처럼 자라 훗날 재난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어린새싹을 잘 키워야 미래가 밝다. 어려서의 말과 글을 매우 중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소설가 현기영님이 쓴 장편소설이다. 여기에서 ‘숟가락은 곧 밥이지요. 밥은 곧 삶이고요’ 라고 인용하고 있다. 숟가락과 젓가락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우리의 끈끈한 삶과 함께하고 있다. 모양새가 숟가락은 긴 손잡이 둥근주걱 형태요, 젓가락은 가늘고 길게 평행선을 이룬 물건이다.

 그런데 왜 똑같이 우리게 중요한 물품인데 숟가락은 받침에 ‘ㄷ’을 사용하고 젓가락은 받침에 ‘ㅅ’ 을 쓸까? 모양새나 용도, 발음까지 비슷한 이 물건들이 왜 받침을 달리 사용하는지 궁금 할 것이다.

 ‘숟가락’은 ‘밥 한 술’의 ‘술(밥 따위의 음식물을 숟가락으로 떠 그 분량을 세는 단위)’에 ‘가락’이 붙은 말. ‘술’의 ‘ㄹ’이 가락과 붙으면서 ‘ㄷ’으로 변했다. (한글 맞춤법 제29항 참조) [술+-ㅅ+가락] →숟가락의 형태이다. 이런 예로는 ‘이틀→이튿날’ ‘사흘→사흗날’ ‘삼질→삼짇날’ ‘풀→푿소’ ‘설→섣달’ 등이 있다. 반면 ‘젓가락’은 한자로 ‘저(箸. 젓가락을 줄여 쓴 말)로 쓰기도 한다. 이 말에 ‘가락’이 붙으면서 말을 연결할 때 사이시옷 [저+-ㅅ+가락]가 들어갔다. 빗자루, 찻잔 등과 같은 경우이다.

 얼마 전 어느 한글연구자를 만나 식사하는데 웃으며 말한다.

  “김 작가님, 숟가락은 움푹 파인 모습이 ‘ㄷ’처럼 보이니 받침을 ‘ㄷ’으로 쓰고, 젓가락은 반찬을 집거나 벌릴 때 모양이 ‘ㅅ’처럼 보여 ‘ㅅ’을 사용한답니다!”  

“오, 그래요…!”

 

사람이 죽으면 숟가락을 놓았다고 한다. 그만큼 숟가락은 우리의 중요한 생명이자 삶 자체이며 전부이다.  

 

 
 
     
 

 
현기영 작가의 저서 '지상의 숟가락 하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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